2004년 어느날 이었습니다.
(학생의 이야기)
오늘도 내가 다니는 학원의 노처녀 수학 선생은 나에게 꾸지람을 늘어놓는다.
"공식도 안 외우고 어떻게 문제를 풀겠다는 거야!"
"답은 맞았잖아요!"
"그럼 너 나중에 삼각함수 미적분 할때도 그래프 그릴래!? 공식 외워!"
"삼각함수 미적분 알려주세요."
"뭐?"
"한번 제 식대로 해볼테니 알려주세요!"
"딴소리 하기 없기다!"
선생은 나한테 삼각함수 미적분에 대해 알려주고 나서 말했다.
"공식 없으면 못 풀겠지? 그러니 외워!"
(선생님의 이야기)
오늘도 이 말썽꾸러기는 끝까지 내 말을 안 듣는다.
얼마전엔 수학정석책까지 갖다 버렸단다.
거기서 학교 중간/기말 문제들이 나오는데도 쓸모가 없다고 한다.
자기 맘대로다.
함수를 풀 때 한번도 공식을 외워 풀지 않았다.
기가 찼지만...
정말로 그래프를 그려서 푸는 노가다꾼이 있을줄은 몰랐다.
거기다...
미적분까지 노가다로 푼다.
뭐... 답은 맞았으니 그렇다 치자.
근데... 녀석은 공식의 소중함을 모른다.
공식의 소중함을 설명하던 도중 녀석은 내게 도전했다.
고3때 나가야 할걸 이제 고2 올라간 녀석이 배워보겠다 도전했다.
뭐... 여기가 과학고나 강남 유명한 학원이었다면 진즉 진도가 다 나갔겠지만
여긴 안타깝게도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학교/학원이라 진도는 서로 맞추는 편.
그런데 도전을? 난 이번기회에 녀석에게 공식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기 위해
삼각함수 미적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됐죠?"
이 녀석은 날 경악시켰다.
독한놈... 모눈종이를 몇 장을 이어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다 사소한 기울기까지 전부 따져 그래프를 그려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이런 미친놈...
"그 정성으로 공식을 외우겠다 이놈아!"
짝!
(학생의 이야기)
학교나 학원을 다니며 맞아본 적은 많았다.
그런데 이 선생처럼 매가 아닌 손으로 맞은건 처음이다.
얼떨결에 놀라 멍때리고 있었는데
앞의 선생 역시 놀란건 마찬가지인거 같았다.
아 맞다. 저 선생 약간 어이가 없으면 학생의 어께를 손바닥으로 치는 습관이 있었지.
문제는 내 키였다. 내 키는 막 고 2였지만 158.
선생 키는... 캐안습이다. 나보다 작다.
그런데... 우리 학원에서 남자 중 170이 안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으니
그 학생들한테 하듯 하다 얼떨결에 때린듯하다.
문제는 장소였다.
단둘이 있거나 했으면 큰 문제는 안됬겠지.
문제는 복도에서 다른 선생들과 내 친구들까지 보고 있었으니 문제였겠지.
문어대가리(원장)에게 끌려가는 걸 보니 맞은건 난데 저 선생이 더 불쌍해 보인다.
(선생님의 이야기)
분명 실수였다.
하지만 사과할 기회는 내가 멍때림과 동시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문제는 그거... 원장선생님도 봐버렸다.
후...
덕분에 원장실에 끌려가 한참동안 꾸지람을 들었다.
"학생이 잘못한게 있으면! 무릎을 꿇리던지! 엎드리게 해서 매를 들던지! 왜 손바닥으로 얘 따귀를 때립니까! 그거... 인격모독이에요!"
아직까지 저 대사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퇴근하니 12시가 넘었다.
아... 녀석도 집에 들어갔겠지.
미안하다 한마디도 못했는데...
술 생각이 난다.
(학생의 이야기)
아직 4월인데 이상하게 춥다.
아까 선생이 끌려가는 걸 본데다 따귀맞는 장면을 본 친구들이 많아 학원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걸었다.
하지만 이걸 겨우 10분만에 후회할줄은 몰랐지...
걸으면서 생각났지만 우리집에서 학원까지는 지하철 5정거장 거리다. 젠장!
낮이었으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학원에서 모든 힘을 다 빼고 쓸쓸히 걸어가는 밤이다.
"주머니에 돈이..."
혼잣말을 하며 지갑을 뒤져 보았다. 어차피 버스나 지하철은 끊겼고 택시를 탈 수 있나 했지만..
"X발, 3천원으론 어림도 없잖아!"
그 와중에 걷다가 나에게 구원의 단어가 보였다.
[닭꼬치 1500원]
좋아, 저거 먹고 힘내서 걸어가는거야!
(선생님의 이야기)
힘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역시 나 닮아서 늙고(낡고) 느렸다.
"중고차가 어디 가겠어...?"
혼잣말을 하며 도로로 나오는데... 웬 교복입은 조그만 녀석이
포장마차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잠깐!"
차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지만 녀석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본게 아니라면 진즉 집에 도착했을 그 녀석이다.
학원버스도 안 타고 왜...
얼른 잠깐 차를 세우고 포장마차에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야! 누가 미성년자가 이런데서 술 처먹으래!"
라고 외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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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애 3명이 잽싸게 튀었고
그 녀석은 멀뚱멀뚱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는... 애들이에요?"
라며 녀석은 손에 닭꼬치 하날 들고 다른손엔 검은 비닐봉투를 쥐고 있었다.
아차! 교복입은 학생에게 술을 팔 리가 없잖아!
(학생의 이야기)
포장마차 주인 아저씨는 좋은 분이었다.
내가 늦은 시간에 공부하다 집에 간다며 닭꼬치 하난 포장, 하난 먹으면서 가게 해달라 했더니
1500원짜리보다 더 큰 닭꼬치를 주셨다.
"중학생이니?"
"아뇨, 고등학생인데요?"
라는 질문답 후에
"잘 먹어야 크지!"
라는 한마디와 함께 더 큰걸 집어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먹으며 나가려는 타이밍에
아까 수학선생이 소리를 지르며 포장마차에 들어왔고
저 구석에 있던 3명이 도망갔다.
(선생님의 이야기)
오늘 정말 최악의 날이다.
실수라곤 하지만 얘 따귀를 때리지 않나...
포장마차에서 소란을 피우질 않나...
더 민망하고 부끄러운건 정작 따귀맞은 학생이나 포장마차 주인이나
괜찮다며 그럴 수 있다는 듯하는 태도였다.
오히려 넉살 좋은 포장마차 아저씨는 능글거리며
"선생님이라 하셨죠? 그럼 여기 학생 집에 데려다주시는건 어떻습니까?"
라며 민망함이 더 오래 가게 해주셨다.
녀석은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닭꼬치를 입에 물고
"선생님도 하나 드실래요?"
라며 자기 손에 있는걸 나한테 내밀었다.
에라... 내가 널 사줘도 모자를 판에 그걸 내가 먹냐?
라는 속마음과 다르게 집에 있는 맥주 안주로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다음 날부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학생의 이야기)
몰랐는데 수학 선생... 진짜 귀엽다.
어른이고 늘 가르칠때 깐깐하게 굴길래 정말 꼰대의 정석인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아니었다.
완전 실수투성이에 푼수기질까지 있는데다
데려다주며 운전석에서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거기다 닭꼬치를 내밀었을떄의 표정은...
'먹긴 미안한데 나 사실 배고파' 였으니까.
사실, 따귀사건은 까먹은지 오래다.
그런데 반응이 재미있어 일부러 선생에게 따귀가 아팟었다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오늘이 내가 그 학원 마지막으로 간 날이었던게 기억났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엄마가 다른 학원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선생을 그 후로 한번도 보지 못한 채 10년이 흘렀다.
(10년 후... 2014년 학생이야기)
오랜만에 성당에 나갔다.
청년으로 활동하는 것 없이 그냥 미사만 볼 뿐이다.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 5명은 4명은 외국이나 지방에, 한명은 성당 신학생이 되어 자주 볼 수 없고
성당생활이 재미없어 2년간 나가지 않다 다시 마음을 잡고 나왔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인원 모집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서모임(성경 공부) 인원 모집해요~ "
"나 공부하는거 싫어해...응?"
10년전 그때 그 선생님이다!
웬지 들어가면 그때 그 생각이 나며 재미있을거 같은 기분은 왜일까?"
(10년 후 2014년 선생님의 이야기)
성서모임 대표봉사자로 요즘 너무 힘들다.
학원은 토,일도 출근이라 쉬는 시간도 없지만
나 말고 이걸 이끌어갈만한 청년도 없다.
하긴, 청년은 개뿔... 이제 40대지만 성당 사람들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데다
아직 미혼이란게 한몫했다.
그래도 같이 이런 모임을 가질 수 있음에 희망을 갖고
어느 단체보다 적은 인원이지만 다시 한번 모집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성당에서 보지 못했던 뉴 페이스를 찾아내었다.
그래...예비자거나 막 이동네로 온 청년 같은데 아무것도 모를 때 이런데로 꼬셔야지.
그리고 그 청년을 잡으며 말했다.
"성서 모임 인원 모집해요~"
"나 공부하는거 싫어해..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에 외모다.
그래... 예전에 이런 공부하기 싫어하는 반항아 녀석 있었지 아마?
아... 아닐꺼야
그...녀석은 키 조그만했다고.
"닭꼬치 선생님?"
...그녀석이다.
에효... 예전엔 돈 받고 가르치던걸 이젠 무료로 가르치게 생겼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