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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꽃 진 자리에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이성선, 일몰 후
해지는 시간에는 시를 쓰지 않는다
스러지는 빛이 쓸쓸히 내 목숨을 비치다 떠나고
나무 사이로 그분의 젖은 눈빛도
한참이나 나를 보다가 돌아서면
나는 혼자다 다른 약속도 없다
내게 연결된 이름들이 모두 이렇게 제 길을 갔다
망가진 악기처럼 나는 버려졌다
그리운 소리는 다시
내 악기 줄로 길을 물으러 오지 않는다
가슴의 문풍지만 고독히 운다
물을 긷는 자도 돌아갔다
산이 비어 더 크게 나를 안는다
이런 시간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해지고 나서는 사람을 맞지 않는다
문을 열어 놓고 빈 산과 벌레 소리만
집 안 가득 맞아들인다
혼자 있는 악기만 운다
이명우, 열무밭
봄햇살이 이불을 덮자마자 코를 곤다
끙끙 식은땀을
한 방울 두 방울
열무밭에 떨어뜨리고
꺾인 허리처럼 빗줄기도 휘어져 내린다
가랑가랑 봄비 내리면
어머니 비료를 이고 열무밭으로 나갔다
고랑을 따라다니셨다
밭고랑을 오리걸음 하시던 당신
칠남매 돌보듯
열무밭을 돌아보신다
비 오는 열무밭에서
툭툭 허리를 치신다
이준관, 밥상
밥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상장을 받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나는 날마다 상
푸짐한 밥상을 받습니다
어쩐지 남이 받을 상을 빼앗는 것 같아서
나는 밥상 앞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밥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밥상 앞에 앉습니다
오늘을 무엇을 했는가
참회하듯이
박복화, 이별의 다른 말
너는 한마디 못하고 떨고만 있다
며칠째 내 눈치만 보고 있다
가지 마라
내 품에서 떠나지 마라
속말을 되뇌이며 부는 바람 쪽으로 나는 선다
사랑했던 지난 날은 즐거웠으나
이별하는 지금 나는 가난하다
후회는 없다
내 몸에 먼저 가시를 두른다
이제 너에게 이별을 주마
이별도 사랑의 방편이니 또한 아름다운 일
밝은 그늘 쪽으로 너를 밀어낸다
잎사귀 하나 반짝, 햇살처럼 나부낀다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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