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경성방송국 일본인 아나운서 다카하시 기요시의 회고담 중 일부 </div> <div> </div> <div>...전략</div> <div> </div> <div>이 요청을 받고 편성과 에서는</div> <div>예정된 프로그램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div> <div>일본인들은 비장함과 긴박감속에서 내일의 방송을</div> <div>대비하고 있는 반면 조선인 아나운서들은 냉정한 태도로</div> <div>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와 같은 태도를 관찰하고</div> <div>분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일본인들에게는</div> <div> 전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앞에서 말한</div> <div>의견에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div> <div> </div> <div>아마 정확히 말해서 내일의 중요방송 내용을</div> <div>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div> <div>그러나 내가 그 내용을 말 할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는데</div> <div>정보를 제공 해준 인사의 신분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질 수</div> <div>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개와 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div> <div>일본인들의 빗나간 예측을 들으면서 죄송한</div> <div>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div> <div> </div> <div>그리고 그 진상을 고하는 방송시간이</div> <div>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었다.</div> <div>정오시보가 울리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소개</div> <div>아나운서에 이어 천황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div> <div>생각한대로 포츠담 선언에 대한 항복의 조칙이었다.</div> <div>천황의 방송은 15분이 못 미쳐 끝났다.</div> <div> </div> <div>악몽 같은 태평양 전쟁은 여기서 끝난 것이다.</div> <div>조선 독립운동의 공로자 여운형에게 협력하고 있던</div> <div>나의 친구가 극비로 들려준 정보가 바로 이것이었다.</div> <div>그러나 그도 항복 선언을 천황이 직접 발표할 줄은 몰랐던 같다.</div> <div>나도 의표를 찔렸다. 설마 그렇게까지 한 줄은 몰랐다. 어쨌든</div> <div>전쟁이 끝났다는 현실감은 암흑 속에서 번쩍이는 햇빛 아래로</div> <div>뛰쳐나오는 듯 한 환희와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div> <div> </div> <div>그것도 나의 자유의사에 의한 지극히</div> <div>솔직한 만세를 절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div> <div>그때였다. 칙어방송에 이어 계속되던 임시방송이 돌연 중단 </div> <div>되었다.“ 송전기 고장인가.” 하고 생각하며 2분, 5분, 10분을 </div> <div>기다렸다. 그러나 방송은 중단된 채였다. 불안한 예감이 </div> <div>스쳐갔다. 이와 동시에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 졌다.</div> <div> </div> <div><strong><u>시끄러운 군중들의 함성과 기분 나쁜</u></strong></div> <div><strong><u>징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내가 살고 있는 신당동</u></strong></div> <div><strong><u>동쪽 20-300m동쪽 조선인 마을에서 군중들이 쏟아져 나와</u></strong></div> <div><strong><u>함성을 지르며 수많은 군중들이 징을 쳐대고 있었다.</u></strong></div> <div> </div> <div>또한 함성을 지를 때 마다 모두가 나무대기 같은</div> <div> 물건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그 끝은 빛나는 태양빛을 받아</div> <div>빛나는 태양빛같이 번쩍이고 있었다. “ 저것은 무엇일까? 잠시</div> <div>생각 했지만 모르겠다. 예상대로 조선인들은 오늘의 해방을</div> <div>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조선인 아나운서들이</div> <div>취한 태도에도 분명히 그것이 나타나 있었다.</div> <div> </div> <div>그러나 그들의 지식층에서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div> <div> 하층 일반대중들까지 이토록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div> <div>그것은 아마 나의 인식부족인지 모른다. 30여 년간 일본의 악정에</div> <div> 시달려온 그들의 비분과 저주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div> <div> </div> <div>... 중략 </div> <div> </div> <div>언덕을 올라 방송국 현관 앞에 도착했다.</div> <div>그러자 조금 전에 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그 옆에는</div> <div>대한빈국 임시정부 假방송소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div> <div>날리고 있었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서자 조선옷을 입은</div> <div> 사람들로 각 방에서 붐비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단히</div> <div>실어하는 마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div> <div> </div> <div>다행히 그들은 나를 검문하거나 제지하지 않고</div> <div>못 본체 했다. 바로 내가 소속된 제1방송부에 들어가니</div> <div>그곳에서 조신인은 보이지 않고 대신 국장이하 모든 직원들이</div> <div> 빽빽이 앉아 있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div> <div>그들은 나를 보더니 놀라는 표정들이었다.<br></div> <div>....후략</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서대문 형무소가 해방이 된것은 </div> <div> </div> <div>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가 맞습니다. </div> <div> </div> <div>1945년 8월 15일 12시 일본이 항복하자 여운형이 찾아가 </div> <div> </div> <div>이날 오후 4시에 개방하라고 했지만 </div> <div> </div> <div>일본인들이 정비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며 </div> <div> </div> <div>다음날 오전에 모두 석방한다는 조건을 받아 들여 </div> <div> </div> <div>8월 16일 9시 서대문 형무소가 개방되었습니다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640" height="472" alt="서대문 형무소.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3/1489915016723ccd8fc7d14f5290267f437cf50f32__mn279646__w640__h472__f91414__Ym201703.jpg" filesize="91414"></div> <div> </div> <div> </div> <div>이 사진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div> <div> </div> <div>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45년 8월 15일 사진이라 설명하지만 </div> <div> </div> <div>서대문 형무소가 개방된 것이 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이니 이 사진도 8월 16일 사진이라는 </div> <div> </div> <div>증언이 그런 뜻이겠죠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문제는 여러 인터넷 매체에서 말하는 1945년 8월 15일 당일 조선 민중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div> <div> </div> <div>역시 왜곡이란 점입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1945년 8월 15일 12시 일본의 항복 방송이 나오자 </div> <div> </div> <div>경성방송국 일본인 아나운서의 증언을 보듯 </div> <div> </div> <div>신당동 지역에서 민중들이 8월 15일 당일 </div> <div> </div> <div>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와 징을 치며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고 </div> <div> </div> <div>방송국 관계자들이 6시간 동안 방송을 중단하고 </div> <div> </div> <div>불안에 떨다 녹음된 내용을 7시와 9시 반복에서 방송했다고 </div> <div> </div> <div>증언하고 있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또한 </div> <div> </div> <div>한국인 종사자의 증언으로는 8월 16일 다음 날 아침</div> <div> </div> <div>일본인 방송국 관계자의 증언으로는 8월 15일 당일 방송 직후 </div> <div> </div> <div>이미 경성 방송국에는 </div> <div> </div> <div>조선인들이 들어와 </div> <div> </div> <div>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방송국이라 현수막을 걸고 </div> <div> </div> <div>경성 방송국을 장악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때문에 일본인 경성방송국 관계자들은</div> <div> </div> <div>조선인들이 이토록 빠르게 대응하는 것에 놀라서 </div> <div> </div> <div>8월 15일에 이미 일본이 패망할 것을 예상하고 </div> <div> </div> <div>사전에 준비하고 있던게 아니냐 의아해 했을 정도죠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물론 전국적으로 보자면 </div> <div> </div> <div>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 소식이 알려지는게 </div> <div> </div> <div>시일이 걸렸을 것이 분명하긴 합니다 </div> <div> </div> <div>라디오 청취자가 20만 내외 밖에 안되던 시절이고 </div> <div> </div> <div>어떤 지역에서는 일본의 통치가 지속되기 했을 것이고 </div> <div> </div> <div>어떤 지역에서는 이 사실을 안 일본인들이 도주하며 </div> <div> </div> <div>바로 광복의 사실을 인지했을 수도 있죠 </div> <div> </div> <div> </div> <div>본격적으로 8월 16일 아침 조간 신문에 일제히 </div> <div> </div> <div>일본의 패방 소식이 신문으로 기재되고 </div> <div> </div> <div>경성 방송국을 장악한 조선인들이 </div> <div> </div> <div>"조선 해방 만세" 를 반복적으로 방송하는 상황에서 </div> <div> </div> <div>서대문 형무소가 오전 9시에 개방되고 </div> <div> </div> <div>조선인 정치범이 석방되어 나왔을 때 </div> <div> </div> <div>광복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정보의 확산이라는 것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죠 </div> <div> </div> <div>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div> <div> </div> <div> </div> <div>마치 1945년 8월 15일 당일 조선의 민중들이 </div> <div> </div> <div>겁먹고 비겁한 심성으로 쥐죽은 듯 눈치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div> <div> </div> <div>일부의 사례를 과장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경성 방송이 치안을 우려해 잠시 중단 될 정도로 </div> <div> </div> <div>일부 지역에서는 민중들이 나와 만세를 불렀고 </div> <div> </div> <div>여운형 같은 민족 지도자들은 총독부를 찾아가 </div> <div> </div> <div>정치범의 즉각적인 석방과 해방 이후의 민정 이전 상황에 대해 </div> <div> </div> <div>일본에 요구를 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1945년 8월 15일 만세 소리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떠나 </div> <div> </div> <div>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증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div> <div> </div> <div>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수 없는 </div> <div> </div> <div>1919년 3.1운 이래 감추었던 태극기가 </div> <div> </div> <div>마지 준비라도 한듯 민중들이 한손에 하나식 들고 </div> <div> </div> <div>그때 거리로 나왔다고 하죠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게 한국 민중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