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frame width="728" height="90"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style="width:728px;height:90px;"></iframe></div> <div class="viewContent"> <div> </div> <div> </div> <div><a target="_blank" hre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5822&s_no=3634658&kind=member&page=5&member_kind=total&mn=279646" target="_blank">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5822&s_no=3634658&kind=member&page=5&member_kind=total&mn=279646</a></div> <div> </div> <div>* 고종의 근대화 개혁에 대해 논하기 전에 전제될 것</div> <div> </div> <div>제가 2012년 오유에 가입하고 역게에 쓴 첫 번째 글이었네요. 해당 글에서 댓글로 논쟁을 하며 </div> <div> </div> <div>오유가 참으로 인상깊은 사이트라 느끼게 되었던 글이기도 합니다. </div> <div> </div> <div>고종의 근대화 개혁 성과에 관한 글이 오르고 그에 대한 댓글을 보니 이때 글이 생각나서 재탕해서 다시 올려 봅니다. </div> <div> </div> <div>글의 요점은 고종 시대 수 많은 논의가 있지만 </div> <div> </div> <div>중요한 것은 개항 이래 한반도가 외세의 간섭 없이 개혁을 추진하게 된 진짜 기간은 </div> <div> </div> <div>니시-로젠 협정으로 개항이래 최초로 한반도에서 외세가 철수하게 된 기간 </div> <div> </div> <div>1898년 말~ 부터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전 까지 길게 잡아야 6년 보통 3~5년간의 기간 뿐입니다. </div> <div> </div> <div>이때 그 유명한 광무개혁이 단행 되었고 밑에 게시물에서 본 수많른 경제, 정치, 사회의 근대화 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그 근대화 개혁의 성과가 미미할 수도 있고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div> <div> </div> <div>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적 한꼐에서 한반도의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div> <div> </div> <div>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경우 일본이 당시 승전이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워 한 </div> <div> </div> <div>러시아를 상대로 무리하다 싶을 정도인 선제기습공격을 하며 전쟁을 벌인 이유로 </div> <div> </div> <div>일본이 철수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이런 근대화개혁의 성과 때문에 </div> <div> </div> <div>자신들이 사활을 걸고 식민지화에 걸었던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원천 차단할 거런 우려로 </div> <div> </div> <div>사실상 한반도 대한제국에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무리한 도박을 한 것이라 보기도 합니다. </div> <div> </div> <div>개항이래 일본에 포섭된 지식인 관료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다 실패하고 </div> <div> </div> <div>이어 청나라가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 전체가 청일전쟁으로 전쟁판이 되고 </div> <div> </div> <div>친일관료들이 내각을 장악하고 황후를 시해하고 왕이 도망다니고 하는</div> <div> </div> <div>끊임 없는 외세의 침략 속 어쩌면 기적처럼 찾아 온 단 5년간의 한반도 중립화 기간 </div> <div> </div> <div>그때 개혁의 성과를 비판하자면 무엇을 못 찾을까요. </div> <div> </div> <div> </div> <div>조선이 망할 만 하고 먹일 만 하니 일본에 식민지가 되었다. </div> <div> </div> <div>조선은 일본의 침략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근대화가 되었다. </div> <div> </div> <div> </div> <div>결국 관점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고종은 망국의 군주로 일제시대 36년간 조선이 망한 이유의 예시로 폄하되어 왔고 </div> <div>또한 지난 100년간 그 평가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div> <div> </div> <div>물론 고종이란 군주역시 인간의 한 종류일 뿐이고 그의 장단점이 있기에 </div> <div>그의 치세의 개혁과 한계는 충분이 모두 아는 바입니다. </div> <div> </div> <div>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div> <div>고종의 개혁을 두고 IF를 논할 때 사실관계를 정확히 했으면 합니다. </div> <div> </div> <div>흔히 고종의 평가를 두고 조선의 근대화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div> <div> </div> <div>조선은 개항이후 일본의 지속적인 간섭과 조직적인 침탈에 직면하였고 청일전쟁과 같은 전쟁도 겪었습니다. </div> <div> </div> <div>고종의 성과인 대한제국의 선포와 근대화개혁은 이런 기간에서 유일하게 단 한번 있었던 소중한 기회 </div> <div> </div> <div>러시아와 일본이 니시-로젠 협정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갔던 3년의 기간동안 발생한 일이고 </div> <div>러일전쟁 이전까지 길어야 단 5년 동안 이뤄진 개혁입니다. </div> <div> </div> <div>이 짧은 기간 조선은</div> <div> </div> <div>대한제국 국제를 통해 기초적인 흠정헌법을 도입하였고 </div> <div>의회창설을 시도했으며 사법제도와 경찰제도를 우편전신 제도를 도입하였고 </div> <div>근대식 군대를 정비하였으며 발전소가 세워지고 수도의 도로가 정비되었으며</div> <div>대중교통인 전차가 도입되었고 민간에는 초기 자본기업이 설립되었습니다.</div> <div>비록 러일전쟁으로 실패했지만 </div> <div>서북철도를 독자적으로 건설하려 시도한 바는 연구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죠 </div> <div> </div> <div>생각해 보면 </div> <div>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외세의 침탈이 없는 공백기간이 도래하자 </div> <div>물고가 터지듯 근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div> <div> </div> <div>한 국가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요소가 </div> <div>1. 인력 2. 자본 .3 안정적인 정책 추진 세력 이라 본다면 </div> <div> </div> <div>500년 왕정을 이어온 국가에서 </div> <div>조선의 근대화 추진세력은 3. 왕권이었지요</div> <div>또한 그 추진세력이 가진 가능성과 진정성은 5년의 성과가 말해 주는게 아닌가 합니다 </div> <div> </div> <div>과연 단 5년간의 개혁기간의 성과를 두고 </div> <div>일본의 40년 개혁의 성과와 비교하여 양자를 두고 </div> <div>조선의 근대화역량을 한계가 있었다 주장하는게 정말 공평한 일일까요?</div> <div> </div> <div>사족을 더 하면 이런 주장이 있지요 </div> <div>대한제국의 개혁은 왕권강화를 위한 퇴보적인 개혁이었다</div> <div> </div> <div>더불어 고종이 내장원을 중시하여 국고를 집중 시킨 것에 대해 </div> <div>전근대적인 회계로 부정축재의 사례라 이야기합니다. </div> <div> </div> <div>하지만 반대로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div> <div>개항이후 일본이 조선의 정계에 간섭하며 </div> <div>주장한 내각중심으로 권력 재편 외친 </div> <div>조선의 내정개혁은 말이 좋아 개혁인 것이지 </div> <div> </div> <div>정작 일본은 자신들도 </div> <div>메이지 유신이후 20년간 </div> <div>천황중심으로 개혁을 진행하였고 </div> <div>그들 조차 메이지헌법을 제정한 것은</div> <div>대한제국의 흠정헌법제정 직전에 이르러야 가능음을 보듯</div> <div>자신들도 추진하지 않았던 내정개혁입니다. </div> <div> </div> <div>일본 자신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결코하지 않은 권력의 분산을 </div> <div>유독 조선에만 개혁이란 이름으로 강요한 것 </div> <div>그리고 이를 두고 개혁이라 평가하는것 자체가 넌센스 아닐까요</div> <div> </div> <div>500년 왕실중심의 중앙집권 국가에서 </div> <div>대원군 이후 겨우 왕권을 되찾았음에도 </div> <div>다시 이를 대신들과 내각에 권력을 이양하여 권력을 분산하라는 의미는 </div> <div>다른말로는 결국 일본이 영향을 미치기 쉽게 권력을 이양하라는 의미일 뿐이죠 </div> <div>그리고 실제 그것이 실현되 었을때의 상황은 명성황후의 시해가 증거였습니다. </div> <div> </div> <div>이런 것을 직접 목도한 고종과 조선상황에서 </div> <div>왕실 재정인 내장원에 집중된 국고와 </div> <div>대한제국 시기 광무황제가 추진한 측근정치는 </div> <div>이런 조선의 특수성을 감안한 </div> <div>안정적인 근대화 추진과 군사력 강화를 위한</div> <div>하나의 방법이였던것이죠.</div> <div> </div> <div>생각해 봅니다.</div> <div> </div> <div>결국 러일전쟁이 터지고 </div> <div>일본이 승리하며 대한제국은</div> <div>국권이 피탈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고종이 망국의 군주인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div> <div> </div> <div>하지만 단순히 망국의 군주라는 사실을 넘어 </div> <div>겨우 5년의 개혁만을 가지고 한계점만 지적하며</div> <div>새로운 가정으로 </div> <div>조선은 근대화 가능성이 없는 나라였고 </div> <div>결국 일본이 식민통치를 한 기간 조선은 근대화를 달성했다 비약하는건 </div> <div> </div> <div>역사의 수레바퀴에서 </div> <div>지나치게 불공평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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