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인이 잡혀갔고 그 중 16인이 치안유지법에 근거한 내란죄로 함흥형무소에 수감, 12명은 기소유예 됩니다. 여기서 이윤재와 한징이 옥사하죠.
하지만 어둡고 어둡던 그 시절도 끝은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9일,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은 석방돼 서울에 도착합니다. 감옥이 아무리 지옥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죠. 오히려 해방되었다는 기쁨과 희망이 더 북받쳐 올라왔을 겁니다. 해방된 조국, 그들이 할 일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29년부터 무려 13년을 기울인 노력이었습니다. 원고지로 2만 6천 5백여장 분량이었죠. 그 원고를 찾아야 했습니다. 보름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죠. 절망이 깊어지던 그 때,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증거물로 운송됐던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 있다는 거였습니다. 9월 8일, 원고는 일제에 압수당한 지 3년만에 학회로 돌아옵니다.
만약 이를 영영 잃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그러고도 시간이 훨씬 더 필요했습니다. 맞춤법을 다시 고치고 일제가 검열한 단어를 고쳐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해방된만큼 일본식 어휘를 최대한 빼야 했습니다. 해방 후 첫번째 국어 순화 작업이었죠.
"돌아보건대, 스무 해 전에, 사전 편찬을 시작한 것은 조상의 끼친 문화재를 모아 보전하여, 저 일본의 포악한 동화정책에 소멸됨을 면하게 하여, 써 자손만대에 전하고자 하던 일에 악운이 갈수록 짖궂어, 그 극적 기도조차 위태한 지경에 빠지기 몇 번이었던가? 이제 그 아홉 죽음에서, 한 삶을 얻고 보니, 때는 엄동설한이 지나간 봄철이요, 침침칠야가 밝아진 아침이라, 광명이 사방에 가득하고, 생명이 천지에 약동한다. 인제는 이 책이 다만 앞 사람의 유산을 찾는 도움이 됨에 그치지 아니하고, 나아가서는 민족 문화를 창조하고 활동의 이로운 연장이 되며, 또 그 창조된 문화재를 거두어들여, 앞으로 자꾸 충실해가는 보배로운 곳집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아니한다."
http://historia.tistory.com/entry/%EC%9A%B0%EB%A6%AC%EB%A7%90-%ED%81%B0%EC%82%AC%EC%A0%84-%EB%A8%B8%EB%A6%BF%EB%A7%901947 서문
그렇게 2년 후,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1권이 출판됩니다. 아예 전체적으로 뜯어고쳤나 봅니다. 2년만에 전 6권 중 단 한 권이 나온 걸 보면 말이죠.
+) 이 때 종이가 너무도 부족했습니다. 미군정에서 종이를 배급할 정도였죠 -_-; 이런 상황에서 사전 출판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만... 전직 총독부 관리였던 이들(조선인)이 82만원을 지원해 줍니다. 원래는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일제에 바치기로 했던 '국방헌금'이었죠.
1949년,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조선말 큰사전 역시 우리말 큰사전으로 이름을 바꿨죠. 이렇게 한글이라는 이름이 다시 돌아옵니다. 36년에 금지됐던 한글날 기념 역시 해방 후 다시 시작됐구요. 정부에서 공휴일로 선포한 것은 70년입니다만...
이렇게 좋은 날만 있을 줄 알았더니만... 분단이 돼 버렸죠. 한글 학자들은 지속적으로 남북한의 글을 통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죠. 언어와 문자는 그 나라의 사상과 역사를 담는 것이었고, 남북한의 이념이 다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거기다 북한에 있던 김두봉이나 월북한 정열모 등이 한국에 남은 최현배 등과 주장이 달랐기에 달라진 것도 있구요.
이럴 때는 앞으로 통일되면 잘 되겠지... 하는 결론을 내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더 달라질지 걱정만 되는군요.
한글학회의 활동도 계속됐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원고를 땅에 묻고 피난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작업을 계속했죠. 57년, 10년이나 걸친 작업이 완성되니 우리말 큰사전 6권입니다. 이 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사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우리말과 글을 모두 담은 사전 말입니다. 문법은 조선어학회가 33년에 발표한, 주시경의 이론을 뿌리로 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표음주의가 사라지진 않았으니까요. 역시 근거는 전통이라는 것과 배우기 쉽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배우기는 쉬워도 많이 배울수록 어려워지는 게 표음주의죠. 뭐 이들은 국한문혼용을 주장했으니 이해가 갑니다만... 이렇게 표의주의를 반대하는 이 중엔 대통령 이승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글학회는 여전히 주도권을 놓지 않습니다. 강점기 때부터 유능한 언어학자였던 이들을 미군정 역시 신뢰했구요.
이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최현배와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이희승간의 대립이었죠. 결국 최현배 측이 승리했고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쭉 한글 전용을 밀어붙입니다. 박정희는 이를 받아들였고, 현재는 한글 전용이 완전한 우위를 잡았죠.
해방 후에도 맞춤법은 계속 바뀌었고, 많은 외국어가 들어왔으며, 많은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논쟁은 계속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또 바뀌어 가겠죠. 하지만 우리의 문자가 "한글"이라는 것은 이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민족이 소멸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만든 것이죠. 하지만 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는 현대적인 문자로 바꾼 것은 주시경을 필두로 한 언어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황무지를 개간했고, 지금과 같은 결실을 맺은 것이죠. 외국의 어학을 연구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연구하고, 식민통치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말이죠. 한국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위험했던 그 때, 이 분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긴 세월을 돌고 돌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글, 이 하나에 수많은 분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