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 <P> </P> <P> 제가 아는 사례인데요.</P> <P> </P> <P> A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았습니다.</P> <P> </P> <P> 기본적으로 허약체질인 거야 그렇다 치고,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더라고요.</P> <P> </P> <P> 구체적인 증상으로는,</P> <P> </P> <P> 아주 짧은 시간(5분)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혈액이 중력을 못 이기고 밑으로 쏠리는 것처럼 발이 아프고, 배가 아프고, 시야는 흐릿해지고, 숨이 찬다거나 하는 게 있고요. 특히 식사 후엔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배부르게 먹으면 피가 배로 몰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되서 그런 거라고 생각되네요.</P> <P>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런 고통에 시달리고 시간이 누적되면 결국 거의 기절하듯 쓰러지기도 하고요.</P> <P> </P> <P> 자다가 일어났을 때도 굉장히 숨이 차고 손발의 감각이 둔하달까 저리달까 몸을 움직이기가 힘듭니다. 근데 장소가 군대거든요.</P> <P> </P> <P> 조심성 없이 크게 자세를 바꾸는 일, 가령 앉아있다가 일어설 때라든가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킬 때라든가 할 때도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면서 쿵 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고요.</P> <P> </P> <P> 뭐 대충 이런 식인데,</P> <P> </P> <P> 군입대 전 병원에서 기립경검사라는, 강제로 서 있는 자세를 만들어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검사에서 2분 정도 만에 의사를 기겁하게 만들면서 검사가 중단되고 응급실로 실려갈 정도였으니까 상당히 안 좋은 상태인 것 같기는 한데,</P> <P> </P> <P> 병명은 미주신경성실신이라고 나오긴 했습니다만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건 확실한 병명이라기보다 증세에 맞춰서 대충 때려붙인 그런 것 같네요. 마치 감기처럼.</P> <P> </P> <P> 어쨌든 이걸 병무청에 제출했는데 예전에는 현역입대가 아니었지만 군인이 모자라서 법이 바뀌었다면서 이걸 3급 현역으로 때려버렸단 말이에요?</P> <P> </P> <P> 맨몸으로 가만히 서서 5분만 있어도 지치는 환자를?</P> <P> </P> <P> 근데 이 A라는 환자가 멍청한 건지 어떤지 몰라도 입대하라니까 아무 생각없이 입대해서는,</P> <P> </P> <P> 훈련소부터 자대배치 이후까지 오만가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거든요.</P> <P> </P> <P> 오래 서 있지 못 한다 같은 거야 진단서에도 나와 있으니 자대에서 경계근무를 아예 처음부터 맡길 생각조차 안 했으니까 자다가 일어나서 총들고 나가고 그런 일도 없었고,</P> <P> </P> <P> 아주 심한 훈련이나 작업에서도 어느 정도 사정을 많이 봐주기는 했는데,</P> <P> </P> <P> 사정을 봐주고 나발이고 그런 정도로 어떻게 될 상태가 아니거든요.</P> <P> </P> <P> 완전히 봐주는 것도 아니라서, 5분만 서 있어도 죽을맛 + 자다가 깨면 못 움직임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아침점호에 꼬박꼬박 나가라고 한다거나부터 시작해서 훈련도 사실 어지간한 건 다 따라다녔습니다. 혼자 열외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었을지 몰라도.</P> <P> </P> <P> 이쯤에서 강조해야겠는데,</P> <P> </P> <P> 같은 생활관 및 대대의 병사들과는 관계가 나름 양호했습니다.</P> <P> </P> <P> 싸우거나 앙심을 품거나 하긴커녕 오히려 사이좋게 지냈어요. 선임들이 환자후임에게도 잘해줄 정도로 멘탈이 좋았던 거죠. 어떻게 보면 보살이라고 하지 않나 이런 걸. 군대인데도.</P> <P> </P> <P> 그런데 이 A라는 환자병사가 군생활을 어리버리 하면서 일병이 되고 이제 1년이 다가오면서 머잖아 상병이 될 때가 됐는데,</P> <P> </P> <P> 드디어 이 A병사의 머릿속 어딘가가 끊어진 겁니다.</P> <P> </P> <P> 도대체가 뭐 때문에 군대에 온 건지도 모르겠고, 큰 훈련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무슨 가혹행위나 얼차려 받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는데,</P> <P> </P> <P> 그걸 무슨 노홍철 멘탈처럼 하하하 웃어넘기다가 결국 어느 시점에서 폭발한 것 같아요.</P> <P> </P> <P> 이 A병사가 군입대를 하자마자 훈련소와 자대에서는 <얘는 도저히 군생활을 못 할 환자인데 입대를 한 것 같으니까 제대를 시키자>라며 절차를 추진했다고 합니다.</P> <P> </P> <P> 근데 자대 대대장이 겉으로만 그런 말을 흘렸고 사실 해줄 맘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걸 해주면 자기가 무능하다고 찍혀서 진급에 영향이 있어서 그러는 걸 거라고 소문으로 들었네요.</P> <P> </P> <P> 이 A병사는 자기 쪽에서 나서서 <도저히 군생활을 못 하겠다. 내보내달라>라느니 하는 말을 선임이건 간부건 적극적으로 도통 말을 하지 못 하는(안 하는) 성격이었습니다.</P> <P> </P> <P> </P> <P> </P> <P> 그래서 군생활 11개월쯤이 되었을 때,</P> <P> </P> <P> 이 A병사는 계획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기 전에 이런저런 일들을 해두기로 합니다.</P> <P> </P> <P> 우선 끝장나게 못난 후임인 자신을 잘 돌봐준 선임들에 대해 칭찬하는 장문의 글을 써서 사단장과 사단주임원사에게 직통이메일로 날렸습니다.</P> <P> </P> <P> 자기가 죽기 전에 보답으로 포상휴가 같은 거라도 하나쯤 안겨주고 싶었던 거죠.</P> <P> </P> <P> 다행히 A병사가 사단장에게 보낸 이메일보고서는 묻히지 않고, 사단장으로부터 직접 포상금이랑 표창이랑 뭐시기 하여간 내려왔습니다.</P> <P> </P> <P> 그리고 A병사는 자신이 입대하게 된 배경과 부조리함, 군생활에서 받는 무의미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평소 문제가 있었던 간부의 잘못에 대한 폭로 등, 마음의편지에라도 썼다가는 부대가 뒤집어질 것 같은 장대한 내용을 계속 써서,</P> <P> </P> <P> 그걸 수백 명의 기자들 이메일과 인터넷게시판에 올리는 일을 준비했습니다.</P> <P> </P> <P> 거기에는 자신의 부대, 이름 등의 신상과 자신의 자살예정일까지도 써놓았죠. 자살예정일은 그 <유서>가 온 인터넷에 뿌려진 지 며칠 뒤였습니다.</P> <P> </P> <P> A병사는 자신이 자살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P> <P> </P> <P> 어차피 말해봐야 도와주기는커녕 걸리적대기만 한다고 생각했거든요.</P> <P> </P> <P> 군생활 못 하겠으니 내보내달라고 적극적으로 말한 적도 없지만, 내보내달라고 해도 그렇게 해줄 것 같지도 않고,</P> <P> </P> <P> 그렇다면 쓸데없는 소리를 해봐야 엄중한 감시 따위나 붙고 말겠죠.</P> <P> </P> <P> 그리고 그딴 감시가 붙어버리면 유서를 준비하고 공개하는 작업에 방해가 됐거든요. 자살시도 자체에도 방해가 되고.</P> <P> </P> <P> </P> <P> </P> <P> 그래서 이 A병사는,</P> <P> </P> <P>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P> <P> </P> <P> 군대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면서 국방부건 사단장이건 대대장이건 중대장이건 전부 다 좆돼라 하면서 유서와 자살수단을 준비했습니다.</P> <P> </P> <P> 행여라도 자기와 관련된 병사들에게 덤탱이를 씌울 것을 우려해서, 자살 직전에 사단장에게 표창을 받게 해주었고, 유서에서도 몇 번이나 병사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도 했지요.</P> <P> </P> <P>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걸 초월해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냈습니다. 개그를 보고 웃고 책을 읽는 등.</P> <P> </P> <P> 허공을 보며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거나 어두운 표정으로 구석에서 우울한 기운을 발산하는 짓 따위는 전혀 안 했지요.</P> <P> </P> <P> </P> <P> </P> <P> 그리고 유서를 완성해 공개한 뒤 실행하기까지의 며칠 간에는 집에 연락해 그 사실을 고하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P> <P> </P> <P> 참으로 몹쓸 짓이지만.</P> <P> </P> <P> </P> <P> </P> <P> 이 A병사의 자살예정일은 그가 군생활 1년을 채우고 원래대로라면 상병 계급장을 달았을 때쯤입니다.</P> <P> </P> <P> 무슨 이등병도 아니고, 전역일이 10개월밖에 안 남은 상병이 이런단 말이지요?</P> <P> </P> <P> </P> <P> </P> <P> 여러분이라면 이 사례에서, A병사의 자살계획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셨을 건가요?</P> <P> </P> <P> 참고로 A병사는 자살계획이 있다는 게 중대장/대대장 등에게 들켜서 면담을 요구받았다면, <아 좋나 짜증나게 왜 지랄이야 가만히 좀 냅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P> <P> </P> <P> </P> <P> </P> <P> 자살징후를 보이지 않거나 보이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자살희망자도 있네요.</P> <P> </P> <P>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