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표현 방식은 본래의 의도 자체를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 잘못된 표현 방식으로부터 잘못된 인식이,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잘못된 의도가 파생됩니다.

"워딩"이라는게 그래서 중요한거죠.

얼핏 생각하면 워딩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수단에 불과한 것 같지만

사실은 역으로 워딩이 메시지를 결정하는 관계에 있기도 합니다.

지금 강남역 사건도 그렇습니다.

사실 몇몇 어그로종자들을 제외하면

상당수의 여성분들이 공포와 불안, 고통, 분노 등을 호소하시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요청할 권리도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 방식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거죠.

그냥 표현 방식이 조금 아쉽다...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잘못되었고

오히려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모순되는 표현 방식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차별과 혐오 정서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리가요.

물론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것처럼, 

표현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본래의 의미까지 무시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왜 여성들이 저렇게까지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나에 대해서는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죠.

하지만 반대로 본래의 의미가 타당하다는 이유로 표현 방식의 문제, 어휘와 공격적 언행들의 문제가 어물쩍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표현 방식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왜 본래의 메시지를 보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를 꼬투리잡느냐"라고 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는 겁니다.

잘못된 수단은 잘못된 목적과 "동등하게 나쁩니다"

목적이 본질이고 수단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지 않아요. 절대로.

목적이 수단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단은 목적 자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한 마디로,

정당한 메시지를 잘못된 표현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은

잘못된 메시지를 정당한 표현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과 동등하게 나쁩니다. 

표현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는건 결코 가벼운 꼬투리 잡기 같은게 아닙니다.

이건 표현 내용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동등한 수준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순수하게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들의 고통과 불안, 공포 등을 표현하고

이에 대한 남성들의 이해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를 원하시는 분들이시라면

여러분에게 잘못된 표현 방식을 사용하도록 유혹하고 유도하는 사람들을

결코 "아군"으로 착각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의견 표출을 돕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의견을 왜곡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며

여러분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인데

서빙하는 알바생이 음식에 독을 타서 손님들에게 서빙하고 있습니다.

독을 먹고 화가 난 손님들이 당신에게 와서 따지고 있습니다.

억울하죠. 나는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조리했는데

먹고 고마워하기는 커녕 와서 멱살을 잡고 화를 내니까요.

근데 이 상황에서 정말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요.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조리한 당신의 정성과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 손님들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돕는 척하면서 음식에 독을 탄 알바생일까요.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