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전 일이라 섞이고 흐려져서 다 못쓰겠지만 이것으로 정리됐으면 한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첫 사회생활이여서 더 못 놓고 더 기억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계속 붙잡고 있다는 거에 스스로가 변태스럽다

나이 서른하나였지만 시간강사의 변변치 못한 경력밖에 없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 다녔다

거주지는 경기도이지만 서해대교를 건너면 충남 서천, 홍천, 서산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거리라 운전을 하여 이력서를 넣고 다녔다

이러는 나를 보고 친구는 "얼마나 급하면 그 거리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안 뽑을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나에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우연히 경기도의 "면소재지 학교"를 발견하였고 그 학교에는 마침 교장 사진이 걸려 있었다. 

관상을 꽤나 본다고 칭찬을 듣고 이를 자부하던 나는 교장의 인상을 보고 그 학교에 이력서를 넣었고, 새 학년 개학이 임박했을 때였다

서해대교 너머의 충남 어느 지역에 이력서를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면소재지 학교"에서 올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하필이면 그날은 연락을 세군데에서나 받았다 

끝까지 사람이 안 구해지던 경기도 오지와 "이곳"과 천안의 어느 한 학교였다

짬밥이 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다른 학교들에 죄송하다는 연락을 드리고 급히 달려가 일년짜리 계약을 하였다. 

그 때의 정신없음과 지금까지 한번도 일을 해본 적 없이 나이만 먹은 자의 어리버리함과 막판에 뽑힌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였을까?

그날 나를 보던 행정보조원의 눈빛을 잊을수 없었고 이는 나를 옭아매었다. 

그날 교장과 마지막 면접/면담을 하며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이 헬게이트를 열었다는 후회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며칠 뒤, 선임이라는 사람의 문자를 받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으나 첫 출근날 본 얼굴은 일에 찌들고 냉랭하고 귀차니즘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는 왜 그런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꽤나 시달렸고 마지막 근무년수라는 걸,

3월

나는 순회교사직을 맡게 되었고 그 사람과 함께 순회교육 장소 탐방을 나가게 되었다. 그때 차 속에서 던져진 말은 내게 비수처럼 날아왔다.

"나는 오랫동안 연애를 해 왔고 한동안 연애할 생각이 없다"

나는 너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 

이성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 

업무적으로만 대하자.

처음 본 사람에게 던져진 이 말은 너무나 많은 오해와 생각을 하게 하였고 나는 이 사람이랑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더구나, 경력이 많던 친구는 누구와도 적당히 거리를 둬라 적당히 친해져라라는 말을 걱정스럽다는 듯이 했고 나는 이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하지만 차가워보이는 사람도 사람이었다. 첫 회의를 준비하던 날, 뭔가 상자를 차 트렁크에서 들고 오길래 무거울 줄 알고 달려가 번쩍 들었더니 과자만 들어 의외로 가벼운 상자였다. 그리고 뭔지 모를 웃음과 부장선생님의 흐뭇한 표정. 착각이겠거니 싶었다. 착각이었을 것이다. 

숫자에 약해 좋아하던 화학을 포기하고 문과를 선택했던 나는 매일 일곱시까지 남아 몇번을 수정해도 맞지 않는 숫자와 씨름하며 교육과정을 수정했고, 6년동안 준비한 교사시험 하나 통과하지 못해 면소재지 학교까지 와 귀양살이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키워야 할 자존감도 땅 밑으로 끌어내렸다

- "쌤은 키가 작으니까 저기 철봉에 매달려 키좀 키워 봐. 그렇다고 저기에 목은 매지 말고."라고 농담하는 듯 지나가는 듯 바람처럼 툭 던지신 부장선생님 말씀에 일년을 살아내는 힘이 났었다. 지금도, 여전히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3월은 서로를 간보며 지나가는 한달, 학교 생활 중 가장 정신없이 지나가는 한달이었다.

4월

학교의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가 끝나고 여유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실수는 여전했고 여전히 나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적당히 두었다. 그럼에도 부장님들과 옆자리의 기간제 선생님은 나를 측은하게 보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고 대해주셨다. 

집은 언제나 임용시험 공부에 방해가 되는 장소였다. 집에 가 초저녁에 잠을 자고 새벽 두시에 일어나 공부해 보기도 하고, 공부는 접고 실내암벽등반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결국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기도 하였고 운동을 하기도 하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2월에 생겼던 오해가 날로 커져갔나 보다.(내 착각이었을 것이다) 움츠려진 나의 모습에 오해가 커져갔나 보다.(내 착각이었을 것이다)

자기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집에 가느니 학교에 남아있는 나를 보며 "쌤은 학교가 좋은가 보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오로지 나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무경력자인 나를 선생님들의 감시자로 심고 모두가 퇴근후에 '보고를 하는 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늦게까지 남아있던 선생님이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두줄 쌤 남아서 운동 하던데요? 운동장도 뛰고"라는 말에 뭔가 하나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 날아가는 건 아직 먼 일이었다.

선임과 나는 순회교육을 나갔다. 시설의 경비초소로 활용하던 건물 안에서 방문 하나를 경계로 순회학급을 함께 운영하였던 것이다. 선임은 수업이 끝나면 시간 채우고/때우고 가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거리를 두었고 일찍 가고 싶었다. 학교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유를 찾던 선임과 학교 밖에서 이상하게 꼬이는 걸 경계했던 나의 심리적 거리였을 것이다. 내 학생들을 시설 방까지 데려다주고 상담하고 그렇게 학교로 돌아갔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어 얼굴에 수시로 열이 올랐고, 보건실에서 얼음팩을 가져다가 수시로 얼굴에 가져다대며 열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션 하나로 나랑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있던 선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왜 자꾸 얼굴이 열오르고 그러는 거에요? 왜 그럴까?" 

장난식이였고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에서는 '나 때문에 그러니?'라는 말 뜻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냥 눈치없는 척 긴장해서 그런다며 웃어넘겼고 연초에 철벽을 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말수도 적던 내가 너무 냉랭히 업무적인 말과 관계만 지속하여 던졌던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거리를 두었다. 

돌이켜보면 선임은 선임으로서 간격을 줄이려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한 거 같았다. 

이 학교에 온 걸 축하해야할 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면서 보냈던 커피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 학교를 어떤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냐고 했을 때 그냥 자리가 있어서 넣었다고 하였고, 나중에 학교 소식을 검색해보라고 하였다. 선임은 적어도 진심이었던 것이다. 시험에 붙고 물어볼 사람없는 시골 학교로 배정받아 맨바닥에 헤딩하며 업무를 배우던 사람으로서 베풀 수 있던 호의였을 것이다. 

지금 후회하는 것이지만 내 개인 감정을 공적인 장소에서 표출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 후에 내게 이 학교에 지원하도록 조언한 친구는 "그 정도면 마음을 많이 열어줬는데 너가 못 다가간 거네 이 등신아"라고 한소리를 했다

그 때가 사월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같은 지역의 다른 학교와 운동부의 시범 경기가 있던 날, 점심 시간이 지나서 모두들 학교에 돌아온 날이다. 시간이 애매하여 점심을 안 먹고 가도 된다고 적당히 넘기는데 "그래도 일하러 오는 곳인데 밥도 안 먹고 다니면 되겠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급식실로 다녀오더니 "사모님들께 말씀드렸으니 빨리 먹고 가요"라는 말이 고마웠다. 날도 흐린 날이었는데 고마웠다.

이 시기에 방과후학교 점검이 있었나보다. 순회학급 시설과의 협의로 토요일에 진행하였고 이는 금요일 밤에 본가로 돌아오던 일정을 바꾸어 토요일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쯤부터 첫날 냉랭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선임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뭔가를 도와줄 의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날 마주보는 자리에 학교 밖 같은 장소로 출근한다는 애매한 개인적 감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첫단추를 잘못 꿴 것-적당한 거리두기- 때문에 너무나 어색해져 딱 업무관계로 돼 버렸다. 

* 계약직 교사이던지 정규직 교사이던지 어쨌든 졸업 이후 계속 관계를 이어가며 만나온 친구들이랑 모여 밥을 먹고 그 싱숭생숭한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타로점집을 갔다. 그날 들었던 얘기는 조만간 두 사람이 먼 거리를 두고 헤어질 것이라는 점을 받았고, 이어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공부하면 시험에서 떨어질 것이다라는 어쩌면 뻔하디 뻔한 점괘였다. 교사이니 방학으로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이 문제인가? 그리고 나는 이 시기에 공부에는 살짝 손을 놓고 있어 납득할만한 내용이었다. 이날 타로점 복채 거스름돈은 그대로 집에 들고 들어가기가 이상해 과자를 한아름 사 들어갔다.

5월

이 때는 행사가 두개나 있었다. 하나는 대선, 하나는 현장체험학습. 현장체험학습을 전담하라며 내게 업무가 주어졌었고, 특수학급만 따로 현장체험학습을 갈지, 같이 움직일 지 라는 나름 중대한 기로에서 특수학급이 버스 한대를 지원하여 함께 움직이기로 하였고 다같이 놀이공원을 가던 날이다. 

그 때 탔던 아마존 익스***, 통나무 썰매, 그리고,,,,, 롤러코스터. 그때 알았다. 그 사람에게 고소공포증이 있구나.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안 마시는구나

박효신을 좋아하는구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시골학교에 배정받아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남들이 내신쓰고 나갈 때 같이 못 써서 힘들어 하는구나

가장 특이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던 면은 결혼문제였다.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엄마가 점을 보고 오셨는데 33살 넘어서나 결혼할 거래" 

"보통은 33살까지 결혼못한다고 하면 암울해 하는데 나는 33살까지는 놀 수 있겠네~"

파티션 너머에서 컴퓨터로 뭔가를 하고 있던 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긍정적인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 말이 아마 내가 그 사람을 기억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 방학 출근대신 대선날 출근해 여름방학동안 끊기지 말고 공부하라는 친구 말에 당직을 신청하였고, 학교 인근에 사는 남자 선생님과 토닥거렸다. 

'아니 왜 오세요' '쌤 데이트 하시라고요' '그날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이런말이 오갔던 거 같다

대선 당일, 출근하자마자 선거를 하고 열한시 쯤 대선 날 학교에 놀러오라는 약속을 철썩같이 지키는 애들이 왔다. 

한명은 마마무 팬이면서 앨범 한장 가진 것이 없던 애였다. 나보다는 이 아이가 더 오래 마마무를 좋아할 거 같아 모아뒀던 브로마이드, 앨범, 굿즈들을 줬고 피자를 사 먹이고 퇴근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정말 내가 바라던 학교 생활이었다.  

6월

칼퇴를 시작하던 시기였다. 기말고사를 준비한다고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바쁜 시기였다. 한 학생이 내게 오더니 "쌤 저 도서관에 좀 데려다 주세요"하였다. 시 외곽에 있는 학교에서 출발해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도서관이라 포기한 장소인데? 라는 생각에 다른 도서관이 있느냐고 물었고  데려다 준 그날, 나는 다른 도서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하였고, 내게도 공부할 장소가 부여되는구나라는 기쁜 마음으로 칼퇴를 시작하였다. 

그냥저냥 별 문제없이 넘어가던 시기였다.

7월 

방학이다. 학교에는 낡고 무거운 나무책상들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서랍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빼야 할 상황이었고, 선임은 건강 상의 문제로 자리를 비워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책상 속에서 뭔가를 꺼낼 때 내가 함부로 손대선 안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본 적이 있었고, 별 문제가 없을 거 같아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진 그대로 들어 다른 교실에 옮겨두었다. 

갑자기 선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책상의 짐 옮겨주고 있다고 연락받았다고. 실수였다. 미리 말할 걸.......

연락부터 하고 옮길 것을 내가 실수한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는 말로는 능숙하지 않지만 문자로는 이모티콘을 쓰면서 나름의 정서를 표현했었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었다. 어쩌면 내 관점의 오만함일 수도.

그렇게 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끝났다.

8월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내가 속한 부서의 세 사람이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