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근본적으로 혹사라는 표현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것 같아 제 글에선 '과부하'로 대체하고 시작하겠습니다. <div><br></div> <div><div><br></div> <div>가장 먼저 짚고넘어갈 점은, 투수의 과부하를 논하는 데 본인의 행복도가 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div> <div><br></div> <div>한국 프로야구에서 신체능력 이상으로 무리해서 던졌던 투수들의 대명사와 같은 이름들이 있죠.</div> <div><br></div> <div>박철순, 장명부, 최동원, 김성길, 염종석, 임창용, 구대성, 김현욱 등</div> <div><br></div> <div>당연하지만, 이 중에 아무도 혹사당해서 힘들었다 혹사가 내 커리어를 망쳤다 말하는 선수는 없습니다.</div> <div><br></div> <div>잘 던지니까 많이 나와 던졌고, 많이 나와 던져 잘 했으니 팀도 자신도 영광을 얻었으니까요.</div> <div><br></div> <div>이 선수들이 덜 던졌으면 더 오래 잘 할수 있었을지, 지금 이상의 명성을 얻었을지는 모릅니다.</div> <div><br></div> <div>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혹사당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시는 것이겠지요.</div> <div><br></div> <div><br></div> <div>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기준에서 그와 같은 선수들은 과부하를 겪었거나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div> <div><br></div> <div>선수보호 개념이 거의 없었던 초창기 프로야구에는 사실 선발은 완투가 목표였고, 주당 3번 등판하는 게 예사였으며</div> <div><br></div> <div>불펜이라면 연투의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필요하면 던지는 거였지요. 사실 원년 해태처럼 선수단 규모가</div> <div><br></div> <div>10명대라면 타자고 투수고 선발이고 불펜이고 없죠. 그냥 던지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가 빠르게 은퇴하고,</div> <div><br></div> <div>기량이 출중해 남은 선수들도 30대 중반을 넘기기 어려웠죠. 그런 시대였습니다.</div> <div><br></div> <div>메이저리그로 치면 19세기에, 선발투수가 한 시즌에 40번씩 등판해서 30번씩 완투하고 400이닝을 던져대던 시대.</div> <div><br></div> <div>그러다 90년대가 왔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에 대한 개념이 수직상승했죠.</div> <div><br></div> <div>스타시스템을 주창해 투수 분업화를 꾀했던 이광환 등의 야구관이 전면에 등장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박찬호의 영향으로, 선진야구를 접하게 된 야구팬들이 늘어나면서 '투수 과부하'라는 개념이 일반화됩니다.</div> <div><br></div> <div>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빨리 펴서 빨리 지는 것인가. 왜 불펜투수가 130~150이닝씩 던지는 것인가?</div> <div><br></div> <div>심지어 MLB에서도 200이닝을 던지는 선수가 한 팀에 한명이 될까말까하는데, 우리나라는 경기도 그들보다</div> <div><br></div> <div>30여게임 적게 하면서 200이닝 투수들이 이렇게나 탄생하는 것인가?</div> <div><br></div> <div>혹사라는 말이 이때부터 일반화되었죠. 고교를 졸업한 어린 투수가 데뷔시즌부터 몇 시즌 내내 200이닝 가까이</div> <div><br></div> <div>던져대다 탈이 나고, 일류 마무리투수들이 5-6회부터 나와 정규이닝을 채우는 일들에 대해 문제제기가 시작됩니다.</div> <div><br></div> <div>근본적으로 승부의 이름으로 무시되던 신체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합당한 논의였고, 야구적으로 그리고 스포츠적으로</div> <div><br></div> <div>볼 때도 굉장히 의미있는 발전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있던 승부라는 이름 속의 신체 훼손을 이제 팬들이</div> <div><br></div> <div>용납하지 않게 된 것이죠.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선동렬은 중무리로 구르면서도 80년대 야구계의 일각</div> <div><br></div> <div>에서는 보호받는다고 공격받았는데, 십여년 후 임창용을 비슷하게 쓴 서정환에게는 인간백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죠...</div> <div><br></div> <div>2000년대에도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배영수라든지), 사실 90년대 중반까지 중요한 경기에 주축 선수가 계속 연투하고</div> <div><br></div> <div>다치면 데메롤 맞고 나오고 지치면 암페타민 마시고 이런 일이 정말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그런 것들이 지면상에</div> <div><br></div> <div>투혼이라고 포장되던 시대였고, 그로인해 일찍 은퇴하게 된 선수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죠.</div> <div><br></div> <div><br></div> <div>물론, 그 후에도 여러 과부하를 겪은 투수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투수를 그렇게 굴린 코칭스태프는 거의 반드시라고</div> <div><br></div> <div>해도 될 정도로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미 각성된 팬들의 선수보호에 대한 의식이, 더는 90년대 중반</div> <div><br></div> <div>까지처럼 선수를 굴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불펜투수들은 80이닝 이하를 투구하게 됐고,</div> <div><br></div> <div>그 이상을 투구하면서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선수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빅리그 기준에서도 그 투구이닝은</div> <div><br></div> <div>충분히 과부하라고 불릴 정도로 많지만, 적어도 불펜투수가 일주일에 서너번 나와 8~90구를 던지는 일이 80년대엔</div> <div><br></div> <div>예사였다면 현재는 팬까페에 이를 성토하거나 걱정하는 글이 몇십개는 올라올 정도니 많이 발전했지요.</div> <div><br></div> <div>(참고로 MLB에서는, 2010년대에 평균 8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투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우리나라보다 선수층이</div> <div><br></div> <div> 더 두꺼운 것도 있겠지만, 선수보호라는 측면에서 70이닝대를 한계치로 본다는 시각이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저는 이게 올바른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야구선수도 어디까지나 직업인입니다. 직업 안정성이 타 직종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직업에 종사하는 시기가</div> <div><br></div> <div>많이 짧은 만큼, 최대한 그 직업을 유지하는 수단을 오래 보존해야 할 의무와 보존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div> <div><br></div> <div>스스로 원해서 무리해서 과부하를 자처하는 것은, 야구선수로서 의무를 방기하는 일이며 또한 몸에 무리가 갈</div> <div><br></div> <div>것을 알면서 무리하게 출장하게 하는 것은, 한 직업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div> <div><br></div> <div>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선수에게 그러한 많은 출장이 없었다면 영광도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div> <div><br></div> <div>혹사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2001년 신윤호가 있겠지요. 그가 2001년에 중무리로 144이닝</div> <div><br></div> <div>을 던지지 않았다면, 3관광도 골글도 없었을 것이며 결국 별볼일없는 선수로 남았으리라는 것입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신윤호가 상식적인 수준의 투구수를 2001년에 기록했다면, 그 시즌에 각성했던</div> <div><br></div> <div>피칭능력과 상대적으로 괜찮은 몸을 가지고 좀 더 오래 전성기를 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92년 염종석은 온몸을</div> <div><br></div> <div>불사르는 투구로 모든 영광을 한 몸에 안았지만, 그가 현재의 만 19세 선수에게 요구되는 제한 이닝(약 150이닝)</div> <div><br></div> <div>이하로 던졌다면 90년대 안에 100승을 기록했을 수도 있고요. 김현욱이 97년에 150이닝+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div> <div><br></div> <div>무릎 연골이 더 싱싱해서 던질 때마다 통증을 느끼지 않은 그가 트레이너로 전향하지 않고 아직 현역선수일 수도</div> <div><br></div> <div>있습니다. 임창용의 부진했던 시절은 아예 없었을 수도 있으며, 이동현은 현재 250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을 수도</div> <div><br></div> <div>있습니다. 데드암을 겪지 않은 정민철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에이스로 등극했을 수도 있을테고요.</div> <div><br></div> <div>스포츠에 가정은 없습니다만, 최소한 신체 과부하와 부상 그리고 출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들이 그</div> <div><br></div> <div>상관관계가 틀림없이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팀의 필요와 본인의 의지, 여러 상황적인 요인들에 의해</div> <div><br></div> <div>어떤 시기, 또는 한 시즌 선수가 과도하게 많이 출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용인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관찰</div> <div><br></div> <div>자의 시선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그것이 일상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스포츠적 관점에서, 직업인의</div> <div><br></div> <div>동지적 관점에서 그리고 인권적 관점에서 분명히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div> <div><br></div> <div>흔히 일컬어지는 <혹사>가 절대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후진적이면서 타파되어야 할 과거의 유산에 가깝다</div> <div><br></div> <div>는 것은 이미 판을 구성하는 전체 소구자들에 의해 합의된 것이라는 얘깁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정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십수년간 자팀 팬들에 의해 혹사당하는 선수들에 대한 걱정과 코칭스태프에 대한</div> <div><br></div> <div>비판을 들어온 사람으로(비근한 예로 김응룡 시절의 송창식) 최근의 한화 불펜진에 대한 혹사 논란에 있어</div> <div><br></div> <div>그것을 팀 상황에 비추어볼 때 불가피하고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는 팬들의 반응은 좀 당혹스러운 데가 있습니다.</div> <div><br></div> <div>불과 수년~십년 전에, 그 때도 침체기를 지나 김인식을 감독으로 맞이해 쓸 만한 팀이 되어갈 때였습니다.</div> <div><br></div> <div>윤규진-마정길-정병희-양훈 등의 선수들이 지금의 권혁-박정진 느낌으로 출장했었고, 많이 비판받았었는데</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때를 생각하니 지금의 반응이 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3할 팀이 5할 팀이 되었더라도, 그래서 그 승률을</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만든 리더가 구세주처럼 보여도 팬의 역할은 그것을 찬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송진우의 다승왕 만들어주기 당시, 아직 야구에 대한 인식이 후진적이었음에도 수많은 홈 팬들의 비판과 우려를</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경험했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span></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특정 감독이 특별히 투수 혹사를 하고 있고, 그래서 그 감독만 특별히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div> <div><br></div> <div>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지금까지도 정말 소수 몇몇 감독을 제외하면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죠.</div> <div><br></div> <div>그리고 리그에서 성공했던 감독 중 다수는 여러 선수들의 과부하를 바탕으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래서 그것이 혹사라고 비판되기보단 투혼으로 찬미되기 마련이었고요. 그게 한국프로야구였습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 정당했던 시절은 이미 지났고, 성적에 대한 의무만큼</div> <div><br></div> <div>선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 또한 강해진 것이 21세기의 감독입니다. 그 기준에서 선수에게 무리한 출장으로 과부하를</div> <div><br></div> <div>일으키고 있다면, 그게 누구이든간에 팬들은 그것을 견제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프로야구가 출범한지 이제 33년이 흘렀고, 야구 수준도 팬들의 의식도 마케팅 수준도 스포츠생리학도 많이 발달했습니다.</div> <div><br></div> <div>야구가 발전한 만큼, 야구 여명기에나 용인될 수 있던 선수의 과부하는 지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div> <div><br></div> <div>좋은 하루 되세요.</div> <div><br></div> <div><br></div> <div>PS: 비공감 누르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언질을 드리자면, 25년째 한화팬 맞고 글에 다른 의도 없습니다.</div> <div><br></div> <div>      다른 의견을 개진하시는 건 물론 환영입니다만, 최소한 그 점들은 사실로 인식하여 주시고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div> <div><br></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