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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뮤다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1567 (약스압)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소한 역사적 오류들 Ⅲ [새창] 2016-12-21 14:28:18 1 삭제
    좀 더 검색해보니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한다는 부분은 청야작전의 유무가 아니라, 적을 영토 내로 깊숙히 끌어들여 지치게 만드는 일명 '스카타이식 전술' 을 의도적으로 편게 아니다라는 점이네요. 즉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이기기 어려운 나폴레옹군과의 싸움을 피하고 아군의 세력을 보존하는 형태였던 모양입니다.
    제가 댓글을 단 이유는 본문에서 러시아군이 마치 청야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그럴 생각도 아니었는데 그게 우연히 나폴레옹에게 먹혔다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맞닥뜨리면 그냥 도망치고, 도망치는 김에 근처에 있는 자국 마을들도 약탈하고 다니다가…. 애초의 작전은 아니였는데, 싸우다 보니 결과적으로 청야전술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특히 이 대목은 몇몇 독자로 하여금 오해의 소지를 주지않을까 싶습니다.
    1566 일본에서 잡힌물고기 [새창] 2016-12-21 11:53:38 5 삭제
    하늘산소/ 사실이 아닌것까지 과장해서 위험성을 심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만 적시해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왜곡과 과장은 왜하나요?
    1565 (약스압)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소한 역사적 오류들 Ⅲ [새창] 2016-12-21 11:17:52 1 삭제
    드 톨리도 스몰렌스크 함락까지 일부러 회전을 피했으며, 그의 후임인 쿠투조프조차 비슷한 전략 기조를 유지했던 것으로 압니다. 러시아 장군들이 명확하게 청야전술을 인지하고 적극 시행하였는지는 의문이나 적어도 적의 보급을 끊는 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몹시 기초적인 전략입니다. 즉 청야가 당시 러시아군의 대전략이 아니었다하여도 기세등등한 적과의 싸움을 피하고 보급로를 끊는건은 전략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것이죠. 무엇보다 러시아는 물러나도 물러나도 광대한 대지가 펼쳐진 곳이니 특히 유효한 전략이겠죠.
    톨스토이 건은 저도 나무위키에서 읽어봤습니다만 그것만으로 러시아군은 의도한 적이 없다고 하기엔 좀 근거가 부족한거 같습니다. 당장 톨스토이 본인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며 소설 전쟁과 평화도 러시아 원정으로부터 50년 뒤에 출간된 것이라 곤란하죠. 해당문서를 읽고나니 어처구니 없긴 하더군요. 근거랍시고 가져온게 소설이라니...나무위키의 전형적인 역사서술인거 같습니다.
    1564 한국사 오답률 높은문제.. [새창] 2016-12-21 09:14:59 0 삭제
    4번도 애매한게 물 밑에서 아무리 애썼더라도 궁극적으로 연합군이 패하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죠. 차라리 틀린 것을 찾으라면 쉬운 문제가 되겠으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이 아리송하네요.
    1563 (약스압)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소한 역사적 오류들 Ⅲ [새창] 2016-12-20 17:57:14 6 삭제
    양녕대군(늘 양념대군으로 읽었던...) 관련 야사는 아직도 믿는 분이 있을 정도로 널리퍼진 오해죠 ㅋㅋㅋㅋ
    근데 청야전술 부분은 러시아의 유구한 전술아닌가요? 19세기 장군들이 청야전술을 몰랐을거라는게 더 큰 오류인거 같습니다. 제가 나폴레옹 시대는 구체적으로 아는바가 없어서 여쭤봅니다.
    1562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제대로 청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새창] 2016-12-20 13:46:20 0 삭제
    아마도 기간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베트남, 미얀마는 일시적인 점령이었고, 대만의 경우는 오히려 긴 식민지 기간 때문에 더 복잡한거 같습니다.
    근데 대만의 친일청산이라 함은 대만 원주민들이 아닌 후에 들어온 국민당 주도의 청산인가요?
    1561 [질문]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우리 문화제가 약탈 당하지 않고 남았다면 [새창] 2016-12-14 14:11:31 1 삭제
    그것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문화재의 수량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행정적 문제니깐요. 그리고 아무리 외국에 반출된게 많다해도 국내에 있는 문화재, 유적이 절대다수입니다. 당초 상관없는 소리라는 거죠.
    1560 세계 역사에 김재규같은 사람이 있었나요? [새창] 2016-12-14 09:22:14 0/10 삭제
    어쨌거나 김재규는 의인이 아닙니다. 요즘 시국이 뒤숭숭해서 앞뒤 안보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1559 '탐라는 일본땅' 국정교과서 검토본 '파문' [새창] 2016-12-12 00:25:24 0 삭제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의 모습

    (AD925)11월 기축일. 탐라(耽羅)에서 특산물을 바쳤다.
    (AD938)12월 탐라국(耽羅國)의 태자 말로(末老)가 입조해 오자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작위를 내려주었다
    (AD1011)9월 탐라(耽羅)에서 나라 안의 다른 주군(州郡)의 예에 따라 주기(朱記)를 내려줄 것을 간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AD1012)8월 탐라(耽羅) 사람이 와서 큰 배 2척을 바쳤다.
    (AD1019)9월 중양절(重陽節)을 맞아 송나라 및 탐라(耽羅)와 흑수(黑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객관에서 잔치를 열어주었다.
    (AD1021)7월 방물을 바치다.
    (AD1022)2월 방물을 바치다.
    (AD1024)7월 탐라(耽羅)의 추장 주물(周物)과 그 아들 고몰(高沒)을 함께 운휘대장군(雲麾大將軍)·상호군(上護軍)으로 삼았다.
    (AD1026)6월 방물을 바치다.
    (AD1029)6월 탐라의 세자(世子) 고오노(孤烏弩)가 입조해 왔으므로, 그에게 유격 장군(游擊將軍) 벼슬을 주고 예복 한 벌을 내려주었다.
    7월 방물을 바치다.
    탐라 사람인 정일(貞一) 등이 일본으로부터 귀환했다. 애초 정일 등 21명이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동남쪽 멀리 있는 섬까지 표류해 갔는데, 섬사람들은 체격이 장대하고 온몸에 털이 났으며 말이 우리와 달랐다. 7개월 동안 그곳에 억류되어 있던 중 정일 등 일곱 명은 거룻배를 훔쳐 타고 동북쪽 일본 이사부(那沙府)에 당도했다가 생환하게 된 것이다.
    (AD1030)9월 방물을 바침.
    (AD1034)11월 방물을 바침.
    (AD1049)11월 탐라국(耽羅國)의 진위교위(振威校尉) 부을잉(夫乙仍) 등 77명과 북여진의 수령인 부거(夫擧) 등 2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AD1052)3월 삼사(三司)에서, 탐라국(耽羅國 : 지금의 제주도)이 해마다 바치는 귤의 양을 1백포로 고쳐 정하고 이를 차후의 상례로 삼으라고 건의하자 그 말을 좇았다.
    (AD1053)2월 탐라국(耽羅國)의 왕자(王子) 수운나(殊雲那)가 아들인 배융교위(陪戎校尉) 고물(古物) 등을 보내 우황(牛黃)·우각(牛角)·우피(牛皮)·나육(螺肉)·비자(榧子)·해조(海藻)·귀갑(龜甲) 등의 물품을 바쳤다. 이에 왕이 탐라국 왕자에게 중호장군(中虎將軍)의 벼슬을 주고, 공복(公服)·은대(銀帶)·채단·약물을 내려주었다.
    (AD1054)5월 한식(寒食)날을 맞아 송나라 상인 섭덕총(葉德寵) 등 87명은 오빈관(娛賓館)에서, 황증(黃拯) 등 1백 5명은 영빈관(迎賓館)에서, 황조(黃助) 등 48명은 청하관(淸河館)에서, 탐라국의 수령인 고한(高漢) 등 1백 58명은 조종관(朝宗館)에서 각각 음식을 대접했다.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탐라의 모습

    (AD1043)2월에 탁라국(乇羅國) 성주(星主) 유격장군(游擊將軍) 가리(加利)가 아뢰기를, “왕자(王子) 두라(豆羅)가 근일에 죽었으니, 칭호를 그대로 왕자라 하게 해 주소서." 하고 방물을 바쳤다. 탁라는 바로 탐라이다.
    (AD1054)탐라가 사신을 보내 태자를 책립한데 대해 하례하였다.
    (AD1097년)송나라에서 표류 중이던 우리나라 사람 자신(子信) 등 3명을 돌려보냈다. 당초에 탐라 백성 20명이 표류하여 나국(裸國)에 들어갔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오직 이 세 사람만이 살아남아서 송나라에 가서 의탁하였다가 이때에 이르러서 돌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홈페이지 탐라 역사 부분 설명
    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period/period02.htm

    탐라국 시대는 제주도가 성주(星主, 탐라국왕)ㆍ왕자(王子)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던 시기를 말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성주와 왕자의 호칭은 신라 전성기에 탐라 왕족인 고후(高厚)ㆍ고청(高淸) 등 세 형제가 신라에 가서 왕을 찾아뵈었을 때 신라왕이 그들에게 성주ㆍ왕자ㆍ도내(徒內)의 작위를 주었던 데서 유래한다. 고려 태조도 신라의 예를 따라 말로(末老)에게 성주ㆍ왕자의 작위를 주었다. 특히 성주는 국왕을 지칭하며 또 성주는 거의 독립적인 자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들을 태자ㆍ세자라 칭하였다.
    단지 고려에서는 탐라국 왕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무산계를 수여하거나 구당사를 파견하여 간접적으로 내정을 간섭하기도 하였다. 고려의 무산계는 무관에게 주었던 품계이며, 구당사는 탐라국 내의 민정을 살피고, 때로는 탐라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며, 또 처리하게 하는 등 지방 통제를 강화할 필요에서 두어진 관직이었다. 그 뒤 숙종 10년(1105)에 이르러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제되면서 고려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성주는 군현으로 편성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여 대대로 그 지위를 세습하며 조선 초기까지 내려 왔다. 그러나 조선조 태종 2년(1402)에 중앙의 행정력이 제주에 미치게 되면서 성주를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를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하면서부터 전과 같은 대우는 없어졌다.
    더욱이 고려에서는 탐라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중국의 송나라나 여진족ㆍ일본 등에서 왕래하는 사신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였다. 탐라국 사신들은 고려의 연중행사인 팔관회(토속신앙)나 연등회(불교행사)에도 참가했다. 또 이 때에는 물물 교역도 이루어졌다. 이 무렵 탐라국에서 진상했던 물품으로는 선박ㆍ귤ㆍ우황ㆍ쇠뿔ㆍ쇠가죽ㆍ나육(螺肉)ㆍ비자ㆍ해조ㆍ진주ㆍ말 등이 있었다.

    이처럼 고려초 조공 이후에도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로 활동했고, 1105년 숙종에 이르러서야 중앙의 통제에 들어갔습니다. 고려의 11세기 기록들을 보아도 국가의 행정구 라기보단 번국 느낌이 강하게 나죠.
    1557 '탐라는 일본땅' 국정교과서 검토본 '파문' [새창] 2016-12-12 00:08:08 0 삭제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777&cid=46621&categoryId=46621
    5도 양계의 성립 시기(생애와 활동사항 목차 참조)
    1556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 [새창] 2016-12-07 12:01:11 0 삭제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이미 객관성을 상당히 잃어버립니다. 당초 그 대목에서 저자의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실을 기재할 것이며, 어떤 사실을 뺄 것인가만으로 충분히 의도를 전달할 수 있죠. 굳이 허무맹랑한 과장을 쓰지 않고 취사선택된 팩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해석의 국사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인데 이걸 하나로 묶어 만든다고 하니 해당 학계나 국민들에게 거센 반발이 있는거죠.
    1555 제가 환단고기 별로 믿지 않고 역사에는 관심이 많은데 [새창] 2016-12-07 09:47:41 0 삭제
    그런 몇개 단어의 유사성만 따지고들면 이 세상에 같은 민족 아닌데 없습니다.
    원래 음모론도 가져다붙이면 그럴듯해보여서 자꾸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거죠.
    1554 아직도 메갈당에 미련 가지신 분들, 그 미련 버리세요. [새창] 2016-12-06 12:52:41 2 삭제
    morssola/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다양한 담론이 존재하는 다극화 사회에서 지지나 존속 이유 또한 다양한 법이죠.
    1553 '탐라는 일본땅' 국정교과서 검토본 '파문' [새창] 2016-12-04 21:35:12 0 삭제
    아시다시피 조공과 책봉은 동아시아 외교의 특성이잖습니까. 입조를 한다하여 조공국이 반드시 독립성을 잃었다곤 할 수 없지요. 그러니 고려 강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행정체제에 편입된 1105년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정의를 어떻게 내리냐따라 결과도 다를거 같습니다.
    그리고 5도양계제가 처음 성립된건 현종 9년, 즉 1018년이고, 탐라가 군으로 개칭된 것은 말씀하신대로 1105년입니다. 시기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현종 때 5도양계 체제에 탐라가 들어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탐라가 완전히 대륙국가에 복속된 것은 올리신대로 조선 초이고 그전까지 성주라는 직함으로 권력을 세습했죠.
    다시 본문 기사로 돌아가서 일본땅 운운은 기레기 주장이라는걸 잘아실테고, 문제 되는건 과연 고의성이 존재하냐 안하냐는 겁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변은 단순 채색 실수이고, 다른 지도에는 고려역역으로 표기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빼먹으려면 다 그렇게해야지, 영역도도 아니고 행정도만 빼먹는다? 그렇다면 실수일 확률이 절대적이죠. 고의라고 한다면 오직 저 지도만 탐라를 누락시켜서 일본땅 처럼 보이게 하려했다는 겁니다. 누가봐도 어거지죠 이건...
    실수가 아니었다는 가정하에도, 문제지도가 엄밀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제주 지역사에 대해 상세히 배우는 바가 아니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논쟁 소지를 없애기 위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 정도의 결론을 내리는게 최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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