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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20: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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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은 무사했어요.
많은 로봇들이 첫 날에 박살난다고 들었던 터라 긴장했는데 말이에요. 잘은 모르겠지만 프로그래밍된 저의 행동 패턴이 죽은 딸과 비슷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저씨는 하루종일 집을 청소하는 저를 말없이 따라다니며 감시하더니 일찍 들어가 주무셨습니다.
둘째 날도 무사했어요.
오전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셨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어 괴로웠어요. 역시 내가 마음에 안드시는건 아닐까, 결국 부서지는게 아닐까 걱정되서 (깨끗했지만) 청소라도 할까요? 물었어요. 아저씨는 저를 한참동안 보시더니 “하고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어요. 저는 허락을 받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별 의미는 없지만 산책을 했죠. 돌아오는 길에는 들꽃을 땄어요. 집에 돌아오니 빈 술병이 어질러져 있어서 정리를 했습니다. 아저씨는 저에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긴 했는데 잘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이야기는 하루종일 이어졌고 아저씨는 어제보다 늦게 주무셨어요.
다음 날부터 아저씨는 저에게 “사람처럼 행동해라.”고 하셨어요.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저한테는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저는 낮에는 밖에 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배웠어요. 저는 사람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웠고 친구도 사귀게 되었어요. 소소한 취미도 만들었고 저만의 물건도 조금 갖췄어요. 물론 집안일과 아저씨를 돌보는 원래의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꽤 사람처럼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럴수록 아저씨는 왠지 저를 멀리하는것 같았습니다.
3개월이 지난 어느날 집에 깜짝 손님이 왔어요.
아저씨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가면 들르는 마트의 총각이었는데 대뜸 저에게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고 청혼해서 깜짝 놀랐어요. 사람처럼 행동하느라 친해져있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물론 로봇과의 결혼이 이상한 시대는 아니지만 주인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죠. 그가 아저씨에게 다시 말하니 아저씨는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냈어요. 그리고 한참동안 분을 삭이셨죠. 한참 뒤에 아저씨는 저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결정하라”고 하셨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저는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아저씨는 저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셨어요. 드디어 나도 끝났구나, 내 기억도 여기까지구나 싶었는데 “앞 집으로 이사를 가라”는 말이었어요. 혼란스러웠어요. 그럼 아저씨를 돌보는 일은 어떡하냐고 물었는데 “이제 내 일은 혼자 해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아저씨의 말을 따랐죠. 앞 집으로 몸은 옮겼지만 아저씨는 자주 찾아갔어요. 전보다 저를 편하게 대하시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선택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할 때마다 아저씨에게 찾아가 물었지만 “틀려도 좋으니 스스로 결정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저는 하나둘 저만의 결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혼은 결국 거절했어요.
몇 년 뒤 아저씨는 세상을 떠났어요. 재산을 전부 저에게 남겨 주시는 바람에 “선택권도 없는 로봇에게 재산이 왠 말이냐”하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들과 법적인 다툼을 하는건 힘들었지만 결국 재산을 지켜낼 수 있었어요. 저는 아직도 스스로 결정을 하는건 힘들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제가 결정하길 원하셨고, 고민이 될 때마다 “아저씨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걸 좋아하실까? “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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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뭘 썼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