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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14: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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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라 계속 달렸다. 시간이 멈췄으면! 세상이 멸망했으면! 이대로 사라졌으면!
내가 미쳤지. 그 타이밍에 선배에게 고백을 해? 당황하는 표정에서 더이상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여름의 갑작스런 소나기가 달궈진 얼굴을 식히며 온몸을 적시고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런 비는 아무리 기다려도 그치지 않는다. 쫄딱 젖은채로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항상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겐 비를 피하려 뛰어다니는걸로 보였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쿵쿵거리며 내 방의 침대로 뛰어들어가 애꿎은 이불을 차댔다. 왕바보, 멍충이. 내일도 학교에서 선배를 볼건데 어떡할거야? 죽고싶다. 벌레로 태어나 새에게 먹히고싶다. 해파리로 태어나 파도에 쓸려 모래 위에서 말라 죽고싶다.
오지도 않는 잠을 부르는데 딩동. 하는 초인종이 소리가 들렸다. 택배인가? 아무도 없어요. 경비실에 놔주세요. 다시 딩동. 잘못 찾아왔어요. 여기 사람 안살아요. 또 한번 딩동.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발을 끌었다.
“누구세요?”
“나야.”
선배였다. 깜짝 놀라서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나랑 똑같이 쫄딱 젖은 선배가 서있었다.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심장은 콩닥거리고 있었다.
“왜.. 왔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 말에 콩닥거리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겨우 그런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건가? 눈 주위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봐요.”
곧바로 문을 닫으려는데 선배가 다급히 붙잡았다.
“잠깐만! 그게 아니야,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거야! 좋아한다고!”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이거 꿈인가? 뭐라고요? 선배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선배가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그래.. 어.. 갈게.”
“잠깐만요!”
나는 도망치는 선배의 소매를 붙잡았다.
“젖었으니 몸 좀 말리고 가요.”
어느새 비가 그친 하늘에는 햇빛이 쨍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