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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4 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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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토방위를 위해 1억 옥쇄를 주창하는 결호작전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에 수립되었습니다. 결호작전 내용 중에는 죽창, 활, 일본도를 "본토결전병기"로 준비하고 투석기의 포병 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2. 천황제(일왕제) 유지 역시 '국체호지(國體護持)'라고 '천황이 곧 국가다' 라는 주장을 하며 덴노제 유지를 항복조건으로 넣기 위해서 무지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 라며 국민들을 반자이 어택과 카미카제에 동원하기도 했죠.
3. 원폭 투하 사전 예고도 원래는 검토되었으나 '저놈들은 분명 연합군 포로를 투하예정지에 묶어놓고 인간방패로 쓸 것이다' 라는 주장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에 하나 '핵폭탄 쏜다' 라고 했는데 불발되었을 경우 역반응을 우려해서 그날 핵폭탄 쏜다는 건 비밀로 하고 있었습니다.
4. 히로시마 투하 후 일본군 내에서는 현실도피&인지부조화로 초기에 제대로 된 대응(항복하겠다는 의지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격을 맞은 히로시마에서는 어떠한 보고도 올라오지 않았고(당연히 전멸했으니..), 히로시마 주변에서 올라오는 간접적인 보고들밖에 받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는 '두꺼운 면 옷을 입으면 폭발 당시 열기를 막을 수 있다' 라는 말도 안되는 보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5. 당시 일본 내부에서는 항복에 대해 논의를 하기는 하고 있었는데 '텐노제 유지 조건만 달고 전면항복하자' 라는 화평파와 '무장 해제와 전범 재판을 일본이 스스로 해야 한다' 라는 강경파가 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군부가 미적대는 바람에 8월 8일 열리기로 한 회의가 8월 9일에야 열렸습니다. 강경파가 미적거리지 않았으면 나가사키 투하는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심지어 9일 회의에서도 '미국이 하나 쐈는데 두개나 가지고
있겠어?' 라는 의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6. 사실 당시 미국에는 핵폭탄이 딱 두개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핵폭탄은 거의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었고 원료 추출 역시 생산시설 고장으로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만일 3번째 핵폭탄까지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한참 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7. 아시다시피 8월 15일에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항복 선언을 하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옥음방송이라고 합디다...) 당시 신적인 존재였던 일왕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라디오 기술이 별로 좋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몰랐고, 문구 자체도 고어와 문어체로 가득차 있어 정작 당시에 방송을 들은 사람들 태반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고 합니다. 일왕 방송 이후에 일왕이 한 소리가 무슨소린지 해설하는 해설방송이 나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