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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5 2018-10-12 18:48:27 5
심심풀이로 볼만한 움짤들 모음 226.GIF [새창]
2018/10/12 18:28:36
거북이 겁나 빨라 ㅎㅎㅎㅎㅎ
11454 2018-10-12 17:05:32 3
네이버 지식iN - 일한혼혈 vs 식물신 [새창]
2018/10/12 09:51:52
딱 봐도 어그로네.

일본에서 살다 온 사람이 저렇게 한국인용 한국어를 잘 할 리가 없음.
11453 2018-10-12 14:23:02 19
나는 집안의 수치라고 하신 분(이과 집안에 태어난 문과) [새창]
2018/10/11 22:22:04

http://cfile251.uf.daum.net/image/0358EB4151DF388F08610A
11452 2018-10-12 12:40:28 1
K리그가 살아나는 방안 - 연맹/협회 필독 [새창]
2018/10/11 10:28:49
연맹과 협회가 할 일이 아니라 구단이 할 일이네요.
11451 2018-10-12 12:14:55 0
마오쩌둥의 뜨거운 교육 열정 [새창]
2018/10/12 00:26:53
나는 정말 궁금한게 이때 홍위병 활동 하고 다니던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살까 궁금함.
11450 2018-10-12 12:07:34 24
나는 집안의 수치라고 하신 분(이과 집안에 태어난 문과) [새창]
2018/10/11 22:22:04
[부연설명]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의 남편. 마리의 연구를 도와주다가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게 되어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됨. 근데 아내인 마리가 시작한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자신도 안받겠다고 함. 결국 수많은 탄원서 끝에 아내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게 됨.

사실 마리 퀴리가 워낙 유명해서 일반인은 그냥 "유명인의 남편"으로 아는 경우도 많지만 그 스스로도 훌륭한 과학자였음. 심지어 마리 퀴리가 노벨상을 받을 때 '남편 잘 둔 덕에 상 받아서 좋겠네~' 라는 악평도 받아야 했을 정도였음. 16살에 소르본대학교에 입학하여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모교의 교수로 재직했음. 노벨물리학상 말고도 루카스상, 프란테상 등의 유명한 상을 받았고 광물학을 전공한 형 졸리오 퀴리와 함께 결정 연구를 통해 '압전 현상'을 발견하기도 함. 그밖에 자화가 온도에 반비례한다는 '퀴리의 법칙'을 발견하기도 했음. (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이름이 붙은 거라고 착각하는데 엄밀히 남편의 업적임) 이렇듯 훌륭한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동료 과학자로서 존중하는 훌륭한 인격자였다고 함.

그러나 1906년 출근길에 마차 바퀴에 깔려리는 사고를 당하여 현장에서 즉사함. 당시 비가 와서 앞이 안보이는 상황이었고 마차를 몰던 마부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함. 마부는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자살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이 시신의 소지품을 확인하여 피에르 퀴리였다는 것을 확인하자 당시 사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 마부를 집단폭행했다고 함. 마부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그 당시 경찰이 막지 않았으면 분노한 시민들에게 맞아죽었을 뻔 했다고...

그의 죽음을 들은 마리 퀴리는 엄청나게 슬퍼했으며(그의 죽음 후 마리 퀴리의 일기장에는 "당신이 없는 삶은 잔인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번민이자, 바닥없는 고뇌이며, 끝없는 비탄입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함) 이후 그의 자리였던 소르본 대학교 교수직을 마리 퀴리가 이어받았는데 첫 강의가 그 전에 남편이 하던 강의 이후 진도를 그대로 나갔을 정도로 남편을 존중했다고 함.

이렌 퀴리
퀴리 부부의 큰 딸. 과학자로 남편과 함께 노벨화학상을 나서 최초의 모녀 노벨상 수상자가 됨. 사위, 그러니까 큰딸의 남편인 프레데리크 졸리오는 '퀴리라는 성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 라며 자신의 성을 '졸리오퀴리'로 바꿔버림. 이후 이렌은 프랑스 과학계에서 여권 인권 신장에 큰 기여를 함(한마디로 고루한 과학자 나부랭이들과 여성과학자의 권리를 인정해달라면서 겁나게 싸웠다는 얘기).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연구소의 폭발사고로 폴로늄에 노출되어 백혈병에 걸려서 일찍 세상을 떠나심. 그리고 그녀의 자식들. 그러니까 퀴리 부인의 손자와 손녀 모두 과학자임.

이브 퀴리
이브는 과학이 적성에 안맞는다고 생각해서 과학자가 되지는 않음. 대신 피아니스트 겸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활동하면서 어머니 사후에 '퀴리 부인전'을 집필함. 2차대전때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빠져나와 미국에 가서 반 나치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50이 넘어서 유니세프에서 활동하면서 같이 활동하던 미국 외교관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와 결혼했는데, 이후 유니세프가 1965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어서 남편이 유니세프를 대표해서 상을 받자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 라는 농담을 하고 다녔다고 함. 왜냐하면 자기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남편이 다 노벨상을 받았는데 자기만 못받았다고........................ 이후 100세 생일때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들의 축전을 받기도 하고 장수하다가 102살때 돌아가심.
11449 2018-10-12 11:52:58 26
나는 집안의 수치라고 하신 분(이과 집안에 태어난 문과) [새창]
2018/10/11 22:22:04
[부연설명]

마리 퀴리
폴란드 출신 과학자.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후 금속 라듐 분리에 성공하여 노벨화학상 수상. 바르샤뱌 출생으로 러시아 치하의 폴란드에서 일가가 어려운 삶을 살다가 학업의 뜻을 두었으나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는 남자만 받아서 여자도 받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인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

이후 방사능 물질인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였으나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라고 노벨상 수상 대상에서 빠짐. 문제는 여자는 과학 아카데미 회원에 받아주지를 않았음. 그래서 정작 자기가 시작한 연구임에도 남편만 받고 자기는 못받을 상황에 처함. 그러나 남편이 '그럼 나도 안받아!' 라고 해서 물리학상을 받게 됨.

이후 남편이 죽고 소르본 대학교에서 남편의 빈 자리에 후임으로 초빙. 프랑스 고등교육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학 교수가 됨. 이후 금속 라듐 분리에 성공하여 두번째 노벨상을 받게 되었으나 마침 폴 랑주벨과의 불륜 사건이 일어남. 언론들은 마침 잘되었다고 연일 까대는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고 오죽하면 스웨덴에서 마리 퀴리에게 노벨상 거절하는게 어떻겠냐는 편지를 쓰기까지 했으나 마리 퀴리는 '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라며 상을 수상함. 그러나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린 마리 퀴리는 프랑스를 떠남.

당시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마리 퀴리를 괴롭히고 있었음. 특히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과학계에서는 그녀에게 심한 성차별을 지속했는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후보 투표에서도 탈락시켰는데 그 이유가 높으신 분들의 '이민자이고 여자를 아카데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라는 주장때문이었음. 심지어 "여성은 영원히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없다" 라는 결의안까지 통과시키기까지 했음. 이 관행은 퀴리 부부의 제자인 마르게리테 프레이가 최초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여성 회원이 되는 1962년까지 유지됨.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퀴리 부인은 X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리틀 퀴리'라는 자동차를 직접 개발하여 전선을 돌아다니며 부상병을 진단, 100만명이 넘는 병사가 도움을 받았다고 함. 그러나 마리 퀴리에게는 어떠한 훈장이나 영예도 돌아가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도 모두 국가에 헌납해서 무일푼이 되었음.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지만 남아있는 라듐이 1g밖에 안되었고 여기저기서 의학용으로 라듐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돈이 한푼도 없어서 구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음. 라듐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의 생활이 윤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라듐은 하나의 원소이며 모든 사람들의 것' 이라는 마인드로 특허권을 포기했었다고 함.

이 사실을 인터뷰 중 알게 된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멜로니가 사연을 듣고 모금 운동을 전개, 라듐 1g을 구입할 돈을 마련하게 됨.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라듐 1g을 받는 행사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어서야 프랑스 정부는 자신들이 마리 퀴리를 너무 함부로 대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됨. "프랑스 정부는 뭐했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흘대하냐?" 라는 욕을 먹기 싫었던 프랑스 정부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그녀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려고 했으나 이미 마음 상할대로 상했던 그녀는 훈장을 사양함. 미국에 간 마리 퀴리는 대통령이 직접 수여식에 참여할 정도로 극진한 환대를 받음.

급해진 프랑스는 이후 마리 퀴리에게 국가상과 연금을 수여하기로 하며 아예 그녀가 사양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박탈해버림".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에서는 1923년 과학 아카데미가 엿먹으라는 듯 그녀를 회원으로 받아들임. 그녀가 입후보하지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추천하였고, 다른 후보들이 모두 사퇴를 해 버렸음.

마리 퀴리는 말년에 방사능에 의한 빈혈로 고생했으며 요양원에서 1934년 숨을 거둠. 그러나 피폭된 방사능 량에 비하면 오래 살았다고 하며, 방사능 피폭은 라듐 연구 때문이 아니라 1차대전때 부상병들의 X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가 입었다고 함.
11448 2018-10-12 09:38:09 0
한국 최초의 밀실 살인사건 - 거여동 여고동창 밀실 살인사건 [새창]
2018/10/11 15:13:00
아... 너무 안타깝네요. 아이들과 피해자는 무슨 죄야...
11447 2018-10-12 09:03:04 24
오늘자 타임(TIME)지 표지모델. jpg [새창]
2018/10/12 04:22:43
[부연설명]

2018년 10월 11일 타임지 아시아/남태평양 커버. 주제는 "Next Generation Leaders"(차세대 리더)로, BTS 외에 다른 활동가들과 예술가들, 운동 선수를 다룰 예정.

BTS에 대해서는 "방탄소년단은 현재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로 2013년 데뷔 이후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룰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라고 다룸. 타임지 홈페이지에 보면 멤버들 인터뷰 일부도 들어있음. 참고로 타임지는 최근 2년 연속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으로 BTS를 뽑기도 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주간지인 타임지는 매 호마다 가장 이슈가 있는 인물을 표지로 선정함. 그래서 타임지 표지를 보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함. 타임지의 붉은색 테두리는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서 타임지 표지처럼 만드는 앱도 있을 정도.

타임지의 표지 테두리가 붉은 색이 아니었던 적은 총 4번 있었음. 9.11 테러때 검정색, 2008년 지구의 날때 녹색, 2011년 9.11 10주기때 은색, 2012년 12월 오바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며 은색으로 바꿨던 적이 있음. 또한 커버스토리에 붉은색으로 X 표시를 친 적도 5번 있는데 히틀러, 후세인, 알 자르카위(IS 지도자), 빈 라덴이 죽었을 때 4번, 그리고 2차대전때 일본이 항복했을때 1번 있었음.

참고로 어떨 때는 TIME 글자가 인물 앞에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뒤에 나오기도 하는데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인물일 때는 글자가 가린다'라는 루머도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거 없음. 그냥 디자인적으로 고르는 듯.

한국사람중 타임지 커버에 등장한 사람은 미국판에서 이승만 2번에 전두환 1번이 있었음. (물론 좋은 의미로 나온 건 아님...) 그리고 아시아판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나왔음. 리스트는 아래와 같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박세리, 김대중, 안정환, 노무현, 윤미진, 송아리, 박지성, 장동건, 황우석, 박근혜, 문재인, 손흥민&신태용호, BTS

북한 인물도 많이 나왔었음. 미국판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한번씩 나왔고, 아시아판에는 김정일 5회에 김정은 1번 나온 적 있음.
남북 공통으로는 아시아판에서 2000 남북정상회담 사진이 나온 적 있었고, 2018년에는 미국판에 북미정상회담 사진이 실렸었음.
11446 2018-10-11 20:13:48 6
우연히 보호색이 된 사진 모음 [새창]
2018/10/11 18:58:45
와... 신기...
11445 2018-10-11 12:16:24 27
흔한 뇌가 히토미류 甲 [새창]
2018/10/10 21:23:45
소수에 대한 배려가 최종목적이 아니라 소수에 대한 배려를 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는게 문제죠.
11444 2018-10-11 12:12:46 32
사과의 법칙.jpg [새창]
2018/10/11 01:06:06
아... 이거 보니까 대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네.
분명히 시험문제 나온 알고리즘 맞게 답 제출했는데 채점결과 틀렸다고 나왔음.
그래서 따지러 가서 '이리저리해서 내가 낸 답이 맞지 않느냐' 라고 했더니 나중엔 버럭 화를 내며 "근데 답이 왜 이렇게 짧아!" 라고 소리쳤던 XXX가 생각나네...
아우 그때 진짜 열받았었는데...
11443 2018-10-11 10:27:29 9
잘못 건 전화 [새창]
2018/10/11 09:27:50
저도 참 그게 걸렸습니다.
11442 2018-10-11 09:37:45 0
관악산에 노루가 뛰논다를 영어로?(feat. 서울대 법대 합격하는 법) [새창]
2018/10/10 23:58:44
그러고 보니 노루는 영어로 뭐지?
11441 2018-10-11 09:35:38 1
80년대 wwf 선수들.jpg [새창]
2018/10/04 15:37:22
[부연설명]
약물에 대한 부연설명을 좀 더 하자면, WWF는 바쁜 스케줄과 부상, 상대의 공격을 맞아주어야 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과격하고 위험한 기술을 해야 하는 등 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프로레슬러들이 진통제와 수면제를 상시복용했습니다. 또한 음주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게 축적되어서 선수의 몸에 큰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또한 선수들의 근육량을 키우기 위한 성장호르몬이나 펩타이드 호르몬 등도 많이 복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스테로이드 문제 역시 크게 발생했습니다. WWF는 당시 선수들에게 근육 생성과 유지를 위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게 했는데요. 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근육의 성장을 촉진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주는 약인데요. 부작용 또한 심각합니다. 고환 위축, 발기부전, 피부병, 공격성 증대 등의 증상이 늘어나며 무엇보다 심장질환을 유발시키는 아주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근육을 키우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와중에 심장 근육까지 커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심혈관을 압박해서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기 때문에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거의 대다수의 스포츠에서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많은 WWF 스타들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과하고 심장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것은 대부분 이 스테로이드와 위에서 언급한 진통제나 성장호르몬 등의 약물 복용의 부작용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여간 1990년대 초반에 WWF는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 복용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존폐 자체를 걱정할 정도의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실제로 빈스 맥마흔은 감옥에 갈 준비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징역은 면하는 대신 천문학적인 벌금을 내게 되고 이후 이미지가 악화되어 고난의 시대를 보내게 됩니다. 사실 이게 90년대에 터졌기 망정이지 만약 동일한 사건이 지금 일어났다면 아예 회사 자체가 공중분해되었고 맥마흔 일가는 모두 감방갔을겁니다.

하여간 이후 WWF에서는 도핑테스트를 강화하고 선수의 건강과 안전을 케어하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선수들을 위한 복지가 향상되는 계기가 됩니다. 정책 또한 기존의 빅맨과 근육질 레슬러 위주의 라인업에서 몸집이 크지 않지만 실력있는 선수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하게 되었죠. 그밖에 선수들에게 약물검사를 해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될 경우 일정기간동안의 출장정지와 심할 경우 퇴출을 시키기도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WWE가 약물에 아주 '클린'한 상황이 되었냐라고 하면 그건 모르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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