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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1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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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에드워드 L. 버네이즈(Edward L. Bernays)
1891년 오스트리아 출생. 1995년 104세로 사망.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 유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외조카. 뉴욕에서 아내의 이름을 딴 플레시먼이라는 PR회사를 열었는데 나중에 세계 3위의 글로벌 PR회사로 성장함.
PR의 아버지이자 조작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 PR의 아버지(Father of Public Relations)는 그의 주도사에 나온 표현이며, 조작의 아버지(Father of Spin)은 그의 전기 제목이기도 함.
그의 전공은 원래 농업이었으나 1차세계대전때 정부의 공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냄. 전쟁중 정부의 공보위원회 활동 (모병, 국채 판매, 적십자 운동 등)을 보고 이런 기술을 일상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함. 이후 뉴욕대학에서 PR강의를 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저설했는데, 그중 저술한 책이 그 유명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임.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있음.
"조직된 습관이나 여론을 의식적이고 현명하게 조종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이다."
위 글에 적혀 있는 베이컨 관련 일화는 2920년대 베이컨 제조회사인 비치너트패킹이라는 회사로부터 받은 요청에 따라 진행한 프로젝트였는데, 실제 그가 한 일은 매우 간단했음. 당시 막강한 언론이었던 신문에 미국 내과의사들로부터 받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4,500명의 내과의들이 든든한 아침 식사를 권했다." 라는 기사를 내었고 (실제 설문지에는 가벼운 아침식사보다는 든든한 아침 식사가 밤사이 잃어버린 에너지를 보충하는게 더 좋다라는 답변을 유도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함), 바로 그 기사와 함께 "베이컨과 달걀이 훌륭한 아침 식사 메뉴 중 하나이다." 라는 기사를 내게 한 것임. 즉 2개의 기사를 내서 독자들로부터 '의사들이 권장하는 든든한 아침식사=베이컨'으로 연결을 하게 만든 것임. 물론 의사들에게는 '베이컨이 아침 식사로 좋은가?'를 질문하지는 않았음.
담배 관련 이슈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당시 저명한 심리학자인 A.A. 브릴의 자문을 구했음. 그리고 브릴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남성과 동일시되는 흡연이 여성에게는 자유의 횃불이다' 라는 '자유의 횃불' 운동을 만들어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흡연을 금기시하는 것은 여권 제압이라는 식으로 접근, 맨하탄 5번가에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기획함. 결국 여성의 흡연을 남녀차별적 관점에서 접근해서 많은 여성 흡연자를 만들어 내 담배회사의 매출 신장에 큰 도움이 되었음.
그밖에 위에 언급한 과테말라 사회주의 정권 붕괴 사건 말고도, 책의 판매를 높이기 위해 건설사들에게 '붙박이 책장이 집의 가치를 높일 것이다.' 라며 로비, 당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붙박이 책장을 대중화시켜서 궁극적으로 책의 판매를 높인 일화나, 아이보리 비누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비누조각대회를 열고, 여성용 머리망을 팔기 위해 '공장에서 일할 때 여성들이 머리망을 하면 기계에 머리카락이휘말려 들어가 생기는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라는 켐페인을 벌이기도 하는 등 '남의 시장을 뺏어오는 것' 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PR 아이디어를 많이 냄. 그는 뛰어난 창의력과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매진하는 PR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음. 인내와 민주주의를 주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혹사시켰으며,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운동을 했으나 정작 자신은 회사의 여성 직원들과 아내를 차별하고 낮추어 대했다고 함. 담배 판매를 촉진하는 프로젝트를 했으면서 또 국가건강보험을 판촉하기도 했던 아이러니도 있음.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보 조작의 아버지' 라는 평가도 받았음.
다만 버네이즈는 담배 판촉을 위해 여성들을 흡연에 빠지게 한 '자유의 횃불 캠페인'은 후회했다고 함. 1960년대에는 금연 운동 변호사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하며, 이후 그의 아내가 폐암으로 죽기도 했다고 함.
여담으로 나치의 괴벨스가 버네이스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함. 괴벨스는 버네이스가 쓴 책을 모두 탐독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일 내 반유대주의 여론을 일으키고 독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치가 되게 만드는 프로파간다에 적극적으로 버네이스의 이론을 사용함. 원래 히틀러도 버네이스를 나치를 위한 선전 기구 책임자로 영입하려고 했으나 버네이스가 거절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