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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9 14: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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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별점평은 씨네21에서 나온 겁니다.(링크: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id=10811 ) 씨네21은 한겨레 계열이었다가 독립된 영화잡지로, 독립했다고는 하나 정치적 성향으로는 여전히 진보를 지향하고 있는 엄연한 진보매체죠. 영화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여러가지 사안들을 모두 다루기에 굳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글들이 실리고 있습니다.(유명한 진보 논객이자 문화평론가인 진중권씨도 씨네21에 자주 기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한 주제보다 문화 전반이나 철학, 미학에 관한 글들이 더 많죠)
씨네21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씨네21은 보수정권에게 쉽게 길들여질 성격의 잡지가 아닙니다. 국내 영화관련 매체 중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것들 중 하나이면서도 현 정권과 그들의 정책에 대해 꾸준히 비판을 가하고 있죠. 전 정권때의 FTA나 이라크 파병에도 날선 비판을 가할만큼 '순수 진보'였고, 지금 정권에 대해서는 말그대로 뭐하나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사대강 사업 등을 비롯한 현 정권의 각종 굵직한 실정들과, 특히나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천박한 인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죠.
게다가 저 기사가 뜬 시점은 이전 정권 시절입니다. 저 영화에 대한 혹평은 '언론이 정부 눈치볼 필요가 없던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는 얘기죠. 씨네21은 정권의 입김에 따라 곡필을 할만한 잡지가 아닙니다.(앞으로야 어찌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 별점평은 언론탄압이 없던 시절에 쓰여진 기사이구요. 브이 포 벤데타는 저 또한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는 하나, 그와는 별개로 영화평론가들이 보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잘 표현해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영화가 아무리 훌륭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그것이 관객의 감정적 호응을 잘 이끌어낸다고 할지라도 평론가들은 때로는 기술적 완성도를 꼼꼼히 살펴가며 태클을 걸기도 하고 또 때로는 주제를 세밀하게 파고들지 않고 너무 추상적으로 그렸다며 박한 평을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평론가 각자의 전공이나 성향, 취향에 따라서 평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구요. 특히나 씨네21의 특이한 점은, 이렇게 한 영화에 대해 상반되는 평론가들의 평을 가감없이 그대로 실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동일한 영화에 대해 누군가는 별점 5개 만점을 주는 이도 있고, 누군가는 2개 반을 주는 이도 있지만 그걸 그냥 한 지면에 올려두고, 정히 싸우고 싶으면 다음호 특집기사에 둘이 대담형식으로든 번갈아 글을 적든 알아서 하라고 해버릴 정도로 '다양성의 존중'을 목표로 삼는 잡지죠.
어떤 영화에 대한 평론가와 관객의 평이 갈리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심지어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서로간에 의견이 달라지기도 하죠. 역사에 대해 사가의 개인적 입장과 신념에 의해 각자의 평가가 갈라지듯, 한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도 서로의 입장과 시대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겠죠. 예로 들자면, 만약 저 영화가 2005년 민주정권 시절이 아니라 2011년 현재의 '언론탄압 국가' 시절에 개봉했다면 아마 씨네21 각 평론가들의 평가도 좀 달라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매무새는 썩 매끄럽지 못하는 울리는 바는 크다"는 식으로요.(이런 논조는 씨네21이 현 정권 들어선 이후 주제는 훌륭하나 기술적인 면이 부족한, 그러나 울림은 큰 영화들에 대해 자주 보여온 자세입니다)
저 영화가 개봉한 2005년 당시(다시 보니 국내는 06년 초로군요) 미국은 전쟁광 조지부시의 시대였고, 한국은 아직까지 민주정권 하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 평론가들이 주제에 대한 호평을 내리는 동안 한국 평론가들은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릴 '여유'가 아직까지는 있었을 시절이란 얘기죠.
'선동이 아니라 성찰이 필요하다'는 평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관객 개개인의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느냐 혹은 카타르시스에 만족하고 영화속 내용으로만 간직하느냐의 차이는 주제가 아니라 말솜씨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영화는 좋은 주제를 가졌어도 말솜씨가 부족해 선동에 그쳤다는 평론가 개인적 평가라 보입니다.
사실 지금와서 이 영화가 재조명 받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지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주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너무도 목말라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가 너무도 당연한 '일상의 상식'이었던 그 시절의 평론가들에게는 그것을 굳이 새삼스레 영화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이슈라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잘 요리해서 연출해냈느냐는 기술적 관점이 더 우선했을테죠..
평론가와 관객의 시점이 언제나 일치하라는 법은 없고(되려 어긋나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나죠) 둘 중 어느 한쪽만의 주장이 무조건 옳거나 틀린것이라 말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평론가들을 권력자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곡필을 일삼는 이들로 몰아가는 것 역시 올바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 어쨌거나, 브이 포 벤데타가 확실히 재미도 있고 시사하는 바도 큰 영화라는데에는 동의합니다. 저 또한 강추 영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