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안현수)이라는 키워드 자체에 다양한 인간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이 글은 안현수 선수 자체가 절대선(善)이라거나 피해자라는 걸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안현수'에 초점을 두고 떠올린 글이니 너그러이 봐주세요.
얼핏 연상되는 것만 적어 보더라도 파벌(라인) 간의 다툼, 기득권의 횡포, 그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들, 공정하지 못한 경쟁, 폭행과 따돌림, 옆에서 함께 맞아주던 동료(성시백 선수), 부당한 대우, 성취를 막기 위해 펼쳐지는 각종 방해공작(다른 선수는 몰라도 안현수만큼은 금메달 못 타게 해라 등), 갑작스런 큰 부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 성장 소설의 단골 테마인 일을 계속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연(보다 더 안타까운 국적의 변경), 끈끈한 부자(父子) 관계, 와신상담, 권토중래, 금의환향, 오유와는 관련 없겠지만 어려운 과정 중 만나게 된 애인 등. 어제의 영화와 같은 결과를 인과응보, 권선징악, Justice has been done의 관점에서 보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요(그만큼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도 볼 수 있겠죠).
사람마다 위와 공통되는 사연 혹은 바람이 한 두 가지씩은 있기 마련이고,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 패턴이 그대로 녹아 있으니 친밀하기도 해서 여러 사람이 안현수 선수를 (아마도 실제보다 더) 애틋하게 바라보고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또 저는 시상식을 보면서 안현수 선수가 짊어지고 있던 리스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안현수 선수는 사실 오로지 1등 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던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한국 선수보다 낮은 시상대에 섰다면 온갖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겠죠. 고작 나라를 등지고 가서 그 정도냐, 은(동)메달이 그렇게 아쉬웠더냐, 한물갔구나, 꼬락서니 좋다 등. 본인이 뒷얘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곤란한 상황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텐데, 결국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유난히(?), 유난스레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마음이 놓이고 뭉클하더라고요. 동료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도 멋있었고요. 한 편의 잘 쓰인 인물담을 본 기분이고, 일련의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