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도 저 글을 보고 왈칵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지금까지 모아 왔던 과월호를 보낸 독자, 전화를 한 독자의 심정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고,
이에 대한 길윤형 편집장의 고뇌도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순수히 글로만 봤을 때는 '잘 쓴' 사과문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 글을 보면서 저는 이유모르게 마치 입안에 모래를 씹은 것 같은 꺼끌함을 느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민하다보니 저는 답을 발견했습니다.
길윤형 편집장은 독자들이 반발한 이유가 '표지 사건'과 '페북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발화점. '팍' 하고 일어난 불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저변에 깔려 있던 기름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화재의 원인은 결코 제대로 분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 - 소위 그네들이 말하는 문빠들 - 이 왜 한경오에 대해 척을 지게 되었을까요?
단순히 위에서 언급한 두번의 사건 때문에? 아닙니다.
페북 사건은 '개인의 일탈'로 처리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표지 사건도 '에이~ 뭘 저런 사진을 쓰냐?' 그냥 이러고 말 수 있었던 사진입니다.
저 사건들이 커진 일차적인 이유는 사건이 터진 직후에 아마추어적인 수습을 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까지 한경오에게 당하다 당하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터진 것이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밀어왔던 진보들의 권위의식과 특권의식, 선민의식에 대한 반발입니다.
'모름지기 진보는 이래야 해.' 라며 '공부도 못한 것들'이 진보를 논한다고 은연중에 터부시하고
'진보일수록 더욱더 날카롭게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지적에는 '감히 나를 지적해?' 라며 발끈하고
회사 차원, 혹은 기자 개인 차원에서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흔들고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그러한 행동들에 대한 반발이 십수년간 쌓여 왔다가 이제 임계점을 넘어서 폭발했다는 것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이러한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니 겨우 저정도 일로 난리야?" 라는 사고의 틀 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