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독립운동가 후손인 우리 가족이 잠재적 간첩으로 몰려 50년간 끝나지 않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 자곡동에 사는 안용수 목사(63)는 이렇게 절규했다. 비극은 그의 형 안학수 하사가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가 실종되면서 시작됐다.<br></strong><br>경북 지역 향토사단인 5관구사령관에서 암호병으로 근무하던 안학수 하사는 1964년 8월30일 육군 통신병 가운데 유일하게 베트남 파병에 차출됐다는 인사명령을 받고 130여 명의 의무병과 함께 붕따우 소재 제1외과병원에 배속됐다.<br><br>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안 하사가 엄격한 신원조회를 통과해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된 배경에는 대구사범학교 동문 사이였던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안 하사 아버지의 관계가 적잖이 작용했다고 한다. 안용수 목사는 “형님이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울면서 반대했다. 아버지는 ‘박 대통령이 교장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고 격려 치하까지 했는데 믿고 보냅시다’라고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안 하사의 부친은 대구사범 5년 선후배 사이다.<br>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 align="center" border="0"><tbody><tr><td width="10"> </td> <td align="center"><img border="1" alt="<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2005년 기밀 해제된 베트남 전쟁 포로 관련 문서들. 국군과 민간인 포로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src="http://www.sisainlive.com/news/photo/201508/24148_47242_556.jpg"></td> <td width="10"> </td></tr><tr><td class="view_r_caption" colspan="3"> <div align="right"><font color="#0000ff">ⓒ시사IN 신선영</font></div>2005년 기밀 해제된 베트남 전쟁 포로 관련 문서들. 국군과 민간인 포로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br> </td></tr></tbody></table><div>그런데 1966년 9월9일께, 안 하사가 2년 복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1주일쯤 전에 사달이 났다. 사이공에 있던 미군 부대에 의약품을 수령하러 출장을 나간 안 하사가 부대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br><br>실종된 안 하사는 7개월쯤 지난 1967년 3월27일 북한의 대남방송에 등장하면서 소재가 확인됐다. 대남방송에 안 하사가 등장하자 바로 당일 밤 안 하사 가족이 살던 경북 영일군 의창면 곡강초등학교 교장 관사에 중앙정보부(중정) 요인들이 들이닥쳤다. 중정은 “안학수가 공무 중 북한 군사고문단에 납치돼 평양으로 끌려갔다.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포로 송환 요구를 해야 하니 가족의 육성 호소문을 녹음하자”라고 했다. 동시에 중정에서는 안 하사의 신원 및 배후조사를 실시했다. 1967년 3월27일자로 작성된 정보기관 신원조사 기록에는 “안학수의 부친 안영술은 대구사범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9월경 배일정신에 따른 ‘반딧불’ 잡지 발간 학생운동 사건으로 구속된 뒤 일본국 동경을 경유해 중국 청진 등지로 망명해 활동을 하다가 1946년 9월 귀국해 영일군 성하면 율포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근무해왔다. 가족 및 친척 중에도 부역 및 전과 사실이 없는 등 사상적 불순자가 일체 전무하다”라고 적혀 있다.<br><br>그러나 며칠 뒤 분위기가 급변했다. 안학수 하사 가족에 대한 관리가 중정에서 보안사로 넘어가면서 보안사 포항지부 요원 4명이 한밤중에 교장 관사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권총으로 가족을 위협하며 “아들이 빨갱이가 되었으니 당장 관사를 비우고 교장직을 사직하라”고 요구했다. 관사에서 쫓겨나 포항 산동네로 이사한 아버지는 사직서 제출만은 거부했다. 그러자 경주 근처 한 시골 초등학교로 전출시킨 다음 끝내 사직서를 받아냈다. 이후 보안사에서는 안 하사의 아버지를 강원도 횡성 산골짝에 자리한 교재 공장에 ‘임시 노무원’ 신분으로 강제 취업시켰다. 때맞춰 대구사범학교 동창회에서는 안 하사 부친을 대구사범학교 독립운동사에서 제외하고 항일운동 흔적도 지워버렸다.<br><br>“납치됐다는 증거를 가족이 직접 찾아와라”</div> <div> </div> <div>후략.......<br></div> <div> </div> <div> </div> <div>국가를 위해 희생한 대가가 이거라만</div> <div>과연 누가 어떤 국민이 이런 나라를 위해 </div> <div>희생 하겠는가란 억울하고도 슬픈 교훈을 주는 사연이네요....</div> <div> </div> <div>정말 가슴 아프네요......</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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