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885일을 맞이하는 9월 16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안형준 학생의 생일입니다.
안형준 학생입니다.
형준이는 부모님이 늦게 결혼해서 얻으신 귀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친척들까지 모두 기뻐하고 듬뿍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형준이가 세 살때부터 사업을 시작하셨고, 엄마아빠 모두 돈 버느라 정신이 없어 형준이를 마음만큼 살뜰하게 돌봐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어차피 직접 형준이를 돌봐주지 못한다면 조기유학을 보내 어렸을 때부터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외국어 실력을 쌓게 해주자고 결정하셨습니다. 형준이는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에 중국에 유학해서 4학년 때까지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힘들었을텐데 금방 적응했고, 중국인 선생님도 인정하실 정도로 중국어 발음도 좋고 어학실력도, 친구들 사이에서 교우관계도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형준이는 초등학교 4학년 되던 어느 날에 부모님께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형준이는 한국으로 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형준이 아버님은 처음에는 유학생활을 중단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 고민하셨지만, 형준이가 돌아온 뒤에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다고 하십니다.
형준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공부를 잘 하고 자기 앞가림도 잘 했습니다. 중국어를 계속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제 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단원고를 형준이가 직접 선택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가는 걸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중국어 학원을 다니며 어학자격증도 땄습니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지 2개월만에 300점 만점에 294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합격해서 선생님도 놀라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형준이의 꿈은 중국어 국가고시에서 더 높은 자격증을 따서 한양대 중국어과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형준이는 농구를 아주 좋아해서 주말이면 친구들하고 농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형준이는 키도 176cm로 훤칠하고 운동신경도 좋아서, 학교 농구부에 가입해서 쉬는 시간마다 연습하더니 안산시 시대항전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형준이는 엄마하고 친했습니다. 부엌에 나란히 서서 엄마랑 같이 요리도 하고, 장도 같이 보러 가고, 엄마 옷 사러 가면 따라가서 코디도 해 드리고 잔소리도 했습니다. 이럴 때면 엄마가 형준이한테 많이 의지하시고 형준이는 어른처럼 엄마를 돌봐드렸다고 합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4월 15일 아침에 아빠는 형준이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시고 용돈도 주셨습니다. 그날 저녁에 형준이는 함박 웃는 얼굴로 세월호에 오르는 사진을 아빠한테 보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형준이는 4월 23일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4반 칠판 오른쪽에 4반 아이들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형준이는 두 번째입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형준아 재밌게 놀고 농구 실컷 하렴"이라는 말이 하트 안에 적혀 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로 문자 보내 형준이 생일을 축하해 주시면 가족분들께서 보실 수 있습니다. 885일, 참사 2년 반이 지나도 잊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한다는 한 마디가 가족분들께 큰 힘이 됩니다. 농구 잘 하고 중국어가 특기였던 형준이, 자기 앞가림도 척척 하던 어른스러운 형준이를 잊지 말아 주세요.
추석 연휴 내내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추석맞이 행사는 계속됩니다. 매일 오후 4시 16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