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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다.
“읍읍,,세사사..살려주세요 !”
그녀의 멱살을 잡은 커다란 손, 그 반대편 손이 하늘 높이 치솟았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찢어지는 외침은 단어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의 다급함으로 내 고막을 찔러댔다.
쥐어짜낸 목소리보다 더 아픈 소리가 달빛을 메운 공기를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
왠지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 있다. 청춘이 그랬고,
거리엔 추위를 잊은 소녀들이 내 심장을 더욱 세차게 달구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이 그랬다.
해가 뜨려면 아직 두어 시간 더 남은 듯하지만,
지금 딱 헤어지기 좋을 만큼 기분이 좋아 그만두기로 했다.
위장에서부터 헛구역질이 내 목젖을 자극하는 건 기분 탓이겠지,
집까진 멀지않았으니 참아보기로 하자.
친구 놈은 걷기가 힘든가보다. 가로등이 없는 전봇대를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야 괜찮나? 편하게 학교 다니는 놈이 세상살이 뭐가 그리 빡빡하다고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야 나 하나도 안취했거든?”
별 실없는 대화에도 웃음이 날만큼 기분이 딱 좋았다. 그녀를 만나기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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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기 봐봐. 저거 뭐냐?” “아무것도 없구만 너 취했냐?ㅋ”
친구의 손가락 끝은 우리가 부둥켜안고 외로움을 달래는 전봇대보다 더 깊은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읍읍@%!^! 살려주세요!” 라는 찢어지는 외침이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콜 기운이 쓸모없는 용기들 준 탓일까.
“거기 뭡니까?”
소리치며 다급하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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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
눈물 자욱으로 흘러내린 아이라인,
찢어진 스타킹,
허리위로 뒤집어진 미니스커트,
내팽겨쳐진 핸드백과 한쪽 어깨에만 걸쳐진 쟈켓이 어두운 시야에 들어왔으며 곧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큰 체구의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어둠을 가르며 나에게 걸어왔고 그보다 더 빨리 그녀가 내 등 뒤로 숨었다.
등 뒤에선 하염없이 울음소리만 들려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 뭐하는 새끼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 밀치고 그 남자가 도망가려 했다.
뒤따라오는 친구에게 소리쳤다.
혼자 있는 줄 안 모양이지.
“야 그 새끼 잡아!!!” 말과 동시에 친구는 그 남자에게 달려가 부딪혔다.
‘짝!’ 누군가의 뺨에서 나는 날 이선 소리 사이로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며 부딪혀갔다.
그렇게 셋이 엉켜 몇 분이나 흘렀을까.
어두운 시야에 점점 익숙해질 때 즈음.
청색과 적색의 구원이 빛이 번갈아가 비추었다.
사황이 그랬던 것처럼 지겨운 싸움이 끝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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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녀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구원의 빛이 도착했을 때는 그녀가 없었다.
우릴 구원해줄 CCTV도, 블랙박스도, 증인도, 목격자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가해자가 되버린 술 취한 20대 두 명, 웨이트 트레이너같은 발정난 30대 피해자가 한 명.
이 부분이 주요했다.
우린 적당히 취해있었으며, 둘이었으며, 정의감에 불타며 무서울 게 없는 20대였기때문.
그런데 특수 폭행이란다.
아니, 20대면 우발적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나이 아니던가.
통한.
우리 외에 파출소안을 가득채운 인원들 사이로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합의를 강압 받았다.
그것도 몹시 아무렇지 않게.
억울하다.
우리말은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우리가 아니라면 아닌 것 아닌가.
마치 병에라도 걸린 것인가.
그렇게 배트맨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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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그날 이후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해 내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의가, 영웅이, 법 그리고 이 사회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는 당연하다는 듯 곧 집착으로 이어졌다.
학교를 그만두고 두어 달간은 모두를 만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나보다.
약자를 위한 국선변호사는 친구의 사건을 귀찮아 한 모양.
그 소식 이외엔 어떠한 것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 사건 자체를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사내들의 술안주로 꺼내기엔 아직 시간이란 모르핀이 좀 더 필요한 듯 했다.
얼마쯤 지났을 까 친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전화도, 연락도 안됐다.
이 위선으로 가득 찬 도시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의 정의감은 배신감과 실망감의 시너지로 점점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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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나의 남매는 방향감이 없고 진실은 거짓에 가려 창살 뒤로 갇혔다.
꽃 같던 소녀는 말없는 칼에 구름 뒤로 숨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디케의 부서진 천칭위에서 청소년들이 뛰어 놀았다.
그녀보다 어린 소녀들의 선명한 시린 기억은, 소녀들이 성인이 되는 날 피 눈물 나는 시선 앞에 그림자를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아비는 또 다시 목을 매겠지, 이름이 없는 손가락들이 우리의 여신을 죽였던 것처럼.
떨어진 십자가는 그의 제자들의 사타구니를 찌른다. 斷.
길거리 거지도 동전을 구걸하며 머리를 조아리는데 화면 너머 저 별을 쫓는 넌 그만 좀 꼬리치면 좋겠다.
닮지 않은 그녀의 아이보다도 좋은 집, 차아님 명품 구두,백을 위해 차가운 철판위에 몸을 눕힌다.
나 역시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과. 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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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 녀석이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가 아닌 장례식 장이었다.
모두의 통곡 속에 그녀석만 웃고 있는 모습이 지금까지의 상황과는 정 반대인 일이라 몹시 어색했다.
6,3,3,4,2.
입에 금칠을 하며 살기위한 인고의 세월들 위에 빨간 선이 더해졌던 것이 화근이었나.
지난 세월들이 어떠한 보상도 해줄 수 없게 되자 빨간 선을 지우기 위해 회색 선을 선택한 모양.
나처럼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너와 내가 매일 밤 상상하던 침대위에 목을 메는 것은 현실이 된다.
어쩜 나보다 그녀석이 더 용기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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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고
힘차게 도망갔던 두 다리로 여전히 서 있겠지만 함께 맞아도 즐거운 시간들은 이제 땅 밑에 누웠다.
웃고 있다. 세상이 그 녀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마지막으로 웃음을 보내며, 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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