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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어새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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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 : 20-12-11
    방문 :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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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35252
    작성자 : 저어새
    추천 : 2
    조회수 : 235
    IP : 222.97.***.14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12/14 17:18:29
    http://todayhumor.com/?readers_35252 모바일
    (소설) 포트홀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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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태성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가 나고 한 달이나 지났음에도. 솔직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바이탈 기계의 표시와, 산 사람들에게만 할 터인 콧줄과 소변줄은 꽂혀 있었지만. 겉보기엔 완벽히 시체처럼 보였다. 그는 이따금, 자신이 살아있음을 주장이라도 하듯, 소변통에 찔끔찔끔 오줌을 쏟아냈다. 나는 중학교 때의 태성이를 떠올렸다. 그는 점심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밖으로 나오라고. 그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운 뒤 국도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 랜덤채팅으로 놀만한 얘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예쁜 얘들이니 너도 좋아할 것이라고. 나는 학교를 짼 값어치는 하라고 말했다. 그는 장담했다. 그만한 값이라고.

     

     

    그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 상태가 더 이상 호전되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나는 야자를 그만두었다. 담임에겐 태성이 어머니 혼자 힘드실 것 같아, 나도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태성이의 어머니는 그럴 능력이 됨에도 간병인을 쓰지 않았고, 하루 24시간을 태성이 옆을 지켰다. 혹시 태성이가 눈을 뜰까봐, 잠도 자지 않으셨고, 나는 그런 태성이의 어머니가 픽 하고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담임은 순순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내용은 생기부에 적어주겠다고, 남들 다 하는 야자보단 이런 게 네 생기부에 도움이 될 거라 말했다. 나는 그게 태성이를 팔아먹는 짓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거부는 하지 않았다.

     

     

    태성이 어머니에겐, 평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는 내가 있겠다고 말했다. 태성이 어머니는 순순히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초췌한 태성이의 어머니의 모습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내 뺨을 후려갈기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눈동자엔 힘이 없었고, 손등에는 핏줄이 가득히 보였다.

     

     

    어머니에겐 독서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내가 식물인간이 된 태성이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 돌아버릴 것이었다. 이제 인생 끝난 놈 옆에서, 뭣 하러 니 인생을 낭비 하냐며.

     

     

    나는 두 달쯤 그렇게 살았다.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 갔고 어머니와 자리를 교체했다. 이따금 그의 똥오줌을 치웠고, 체위를 변경해주었다. 중간에 시험기간이 있었지만, 공부는 병원에서 했다. 2인실이었기에, 병실은 대체로 조용했고 오히려 독서실보다 공부하는데 집중이 더 잘되었다. 같은 병실엔 뇌출혈로 입원한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항상 아무 말씀도 없이 조용히 TV만 보셨다. 가족들이 주말마다 찾아왔고, 평일엔 간병인 아주머니가 옆에 계셨다. 아주머니는 태성이의 사연을 듣고는 그래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10년간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오토바이로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대게 죽어나갔다고. 나는 식물인간이 과연 죽는 것보다 나은 걸까라는 의문을 말했다. 아주머니는, 어머니는 그나마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면서 버티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대학병원 생활을 두어 달쯤 하고나니, 병원을 옮겨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이제 태성이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태성이 어머니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담당 의사의 설득 끝에 병원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옮기는 곳은, 바닷가 근처 산에 지어진 작고 오래된 요양병원이었다. 말기 암 환자나,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도 않는 곳이었다. 온 사방에서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은 끔찍한 고통과, 살고 싶다는 욕망이 휘몰아치던 중환자실보다는 훨씬 나은 분위기였다. 모두가 죽음을 인정했기에, 그곳은 꽤나 평온했다. 코드 블루 때문에 뛰어다니는 간호사들도, 고통의 신음소리도, 어딘가에서 들리는 곡소리도 없었다.

     

     

    병실이 꽤나 널러리 한 편이었기에, 텅 빈 6인실을 태성이 혼자 썼다. 병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서 바다가 보였다. 태성이의 어머니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태성이는 바다를 좋아했다고. 여기 있으면, 바다 내음이라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간호사들이 전부 관리해주니. 더 이상 간병인도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태성이의 어머니는 운영하시던 사업체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다시 야자를 하는 생활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따금 화창한 주말이 되면, 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딱히, 태성이 옆에서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다내음을 맡고. 옆에서 공부를 하던 책을 읽든 어찌됐건 시간을 때웠다.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여기 오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쩌면 그와 함께하지 못한 2년간의 시간을 지금 와서 보내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요양병원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 사고의 원인은 아스팔트에 나있던 포트홀로 보인다는 교통사고 감식결과가 나왔다. 포트홀에 앞바퀴가 들어가면서 오토바이가 중심을 잃었고, 태성이는 그대로 떨어져 7m가량을 구르다 가로등에 머리를 박은 것이었다. 사실이 밝혀지자, 태성이의 어머니는 도로공사와 시에게 소송을 걸었으나, 태성이의 헬멧 미착용과 과속으로 인해 무엇하나도 배상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돈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내게 말했다. 그저 누구 하나라도, 태성이의 사고에 책임이 있기를 바랐다고.

     

     

    사고가 난 태성이의 오토바이는 내게 돌아왔다.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오토바이를 보고 싶지 않아하셨기 때문이었다. 오토바이는 옆 도장이 완전히 갈리고, 백미러나 악셀 그립 따위가 완전히 작살이 나버리긴 했지만. 그 외에는 멀쩡했기에 수리하면 충분히 고쳐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는 형이 있는 정비소에 오토바이를 맡겼다. 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새것처럼 고쳐놓고 싶었다. 태성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바이크를 닦곤 했다. 그래서 오토바이는 항상 새 것 같았다.

     

     

     

     

     

     

    여름방학이 되고, 나는 평소보다 더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집 안에서 어머니의 따가운 눈초리나 받을 바엔(병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성적은 더 떨어졌다), 독서실을 간다는 핑계로 이곳을 찾는 것이 몇 배는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젠 요양 병원 간호사들과도 어느 정도 면식이 생겼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태성이를 보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깨는 데로, 가방을 챙겨 병원을 향했고, 저녁 늦어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런 대로 보람찬 생활이었다. 비어있는 병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있어도. 독서실이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야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창구에 태성이를 보러왔다고 말하니, 그를 먼저 찾은 사람이 있다고 간호사가 말해주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지만, 간호사는 여자친구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잘못 들었다는 표정을 하자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분명 여자친구라고 말했어. 관계를 물어보니까, 여자 친구라고. 예쁜 여자애였는데……. 너도 처음 듣지?”

     

     

    , 그 친구한테 여자친구가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그럴 거야. 그러니까 사고 난 후 연락이 뚝 끊겨서, 자긴 일방적으로 차인 줄 알았데. 가엾게도.” 간호사는 안타까운지 혀를 찼다. “비밀연예 같은 거였던 거야, 분명. 그러니까 아무도 걔한테 연락을 해주지 못했던 거지.”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

     

     

    간호사는 컴퓨터 화면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아직 올라간 지 채 두 시간도 안 지났고, 여기 계속 있었는데 나가는 건 못 봤으니까. 이런 우중충한데서 그런 얜, 눈에 확 띄거든.”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태성이의 병실로 걸어 올라갔다. 그러면서 태성이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의 그는 뻑하면 헤어졌다 사귀었다를 반복했다. 길게는 세 달, 짧게는 이틀도 채 가지 못했다. 그가 먼저 고백을 했던 기억은 없었다. 여자 쪽에서 먼저 우리 사귀어볼래? 라고 다가왔고, 태성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헤어질 때마다 타산을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진심으로 나를 좋아한다거나, 관심이 있다거나 해서 다가온 게 아니었어.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뭔가의 이득을 얻으려고 했지.”

     

     

    나는 인간관계가 모두 그런 것 아니겠냐고 반론했지만, 태성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마치 너와 나의 관계처럼.” 나는 그 말을 듣고 애매하게 웃어보였다.

     

     

    태성이 병실 문 앞에 서서, 문에 난 작은 창으로 안을 쳐다보았다. 안에는 불이 전부 꺼져있었다. 창문은 닫히고, 커튼도 쳐진 채였다. 그래도 어슴푸레한 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을 충분히 밝게 비추었다. 나는 태성이 옆 침대에 여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등을 등진 채 앉아 있었고, 옆에는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조용히 가만 서 있으니, 태성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지, 방에서부터 조곤조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최대한 문에 귀를 붙여, 그녀가 태성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건지 들어보려고 애섰다. 몇 몇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무슨 애기를 하는 건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그녀가 하는 얘기들을 상상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후회의 얘기나, 반대로 평범히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상상했다. 태성이는 그 옆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 조곤조곤 말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얘깃거리가 떨어졌거나, 잠시 목을 쉬게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온지 한 시간이 넘었고, 어쩌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렇게 떠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마치, 태성이가 살아있을 때처럼. 하지만, 나는 여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생각을 접었다. 인기척을 느낀 게 분명했다. 나는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마치 방금 들어오는 것처럼 태연하게.

     

     

    여자는 뒤를 돌아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는 그 얼굴이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고. 가슴이 속에서 왠지 모르게 아련함을 느끼자, 중학교 시절 랜덤채팅으로 만난 여자애들의 리더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와는 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볼의 보조개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멈칫하며 현관 앞에 서 있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는 여자친구예요. 아니, 였었다고 해야 하나.”

     

     

    그녀는 태성이에게 시선을 내리깔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쳐다보니, 울었는지 눈과 볼이 빨갰다. “태성이의 친구시죠? 엄청 성실하게 생겼는데……. 아니었나 보네.” 그렇게 말하고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나도 작게 웃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나는 곧장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당장 여자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세 희미한 어둠에 눈이 적응했는지, 커튼을 열자 눈이 부셨다. 창문을 밀자, 시원한 바람이 곧장 들어왔다. 바다내음이 진했다.

    커튼을 줄로 묶어 정리하고 있자, 뒤에서 여자친구가 말했다.

     

     

    보아하니, 태성이한테 제 얘기는 못 들으셨죠? 분명 아무한테도 얘기 안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늦게…….”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넬까 생각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머릿속에 짧은 문장조차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커튼의 줄을 묶으며, 나는 그저 언제부터 이 둘이 사귀었는지를 짐작했다. 그때는 태성이와의 사건이 있기 1년 전이었다. 그가 그 시절에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면, 내게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때부터 이 여자친구와 사귀었다면 벌써 3. 내게 일부러 숨겼다는 얘기다.

    나는 태성이와 여태 있었던 여자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태성이는 이 여자친구로부터는 타산을 못 느꼈다는 걸까.

     

     

    ……하지만 이해는 해요. 친구 분이랑은 달리 저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친구는 아니었을 테니까.”

     

     

    그럴 리가요.”

     

     

    커튼의 리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게 매어져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여자친구는 아직 햇빛이 눈부신지 인상을 썼다.

     

     

    병원 3층에 마련된 야외공원에서 나는 태성이의 여자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사고의 원인과, 태성이의 입은 부상과 현재 상태, 시에게 건 소송과 결과에 대해서. 여자친구는 담담하게 얘기를 들었다. 얘기가 끝나자, 여자친구는 어딘가 염세적으로 보이는 대답을 내게 돌려주었다.

     

     

    포트홀, 그런 작은 구멍에 자기가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는. 걔는 절대로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세상에 어느 인간도 자신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걔는 특히 더 그럴 거예요. 특히나, 식물인간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죽으면 죽었지, 식물인간은 안됐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대번의 자기 목숨을 끊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했다. 그에게 정신이 있었다면,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긴 커녕 당장에 휠체어를 끌고 나가 바닷속에 몸을 던지고 더 깊은 곳을 향해 아득바득 기어갔을 것이었다.

     

     

    어쩌면, 식물인간이 된 게 기적일지도 몰라요. 그냥 저냥 장애인이 되어버렸으면, 걔는 분명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 버렸을 테니까요. 죽음의 권리라는 게 있다면, 그 권리를 빼앗기게 된 태성이에게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만약, 태성이가 권리를 챙길 정신이 있었고, 그래서 죽어버리기로 결심했다면. 태성이의 어머니도, 친구도, 나도, 다시는 태성이를 볼 수는 없었겠죠. 어쩌면 죽었다면 모두가 굉장히 불행해졌을 일을. 이런 기적으로 인해, 적당히 불행해져버린 걸지도 몰라요.”

     

     

    나는 그 의견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모두 굉장히 불행해질 것이고, 지금은 그걸 할부로 끊어 놓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재미있는 비유라고 말했다.

     

     

    그러면, 굉장히 불행해지기 전에. 적당히 불행한 상태를 즐겨야 되겠네요.”

     

     

    나는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보라고 말했다. 다들, 이미 그러고 있다고.

     

     

     

     

     

    그 뒤로, 여자친구와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일주일에 최소 너덧 번은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매일 같이 병원을 찾았고,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태성이 옆 침대에 앉아 그에 관한 얘기를 하곤 했다. 그는 더 이상 듣지 못하니, 괜히 그에게 숨길 필요 없이 그에 대한 부끄러운 얘기들을 낱낱이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여태까지 해온 수많은 바보 같은 짓거리와 나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들에 관한 얘기를 했었고, 여자친구도 그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와, 그가 멋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만약 그가 단순히 잠에 빠진 것이었다면, 잠결에 들어도 대번에 벌떡 일어날 얘기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 앞에서 그런 얘기를 했던 건, 내심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기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자친구의 이름은 예지로,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다. 고등학교는 1학년 때 자퇴했고, 올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끝끝내, 자신과 내가 3년 전에 마주쳤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 일에 대해선 괜히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왜 태성이가 자신과 사귄 것을 내게 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의문을 머릿속에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 의문은 묻어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지나, 나나, 태성이나 우리 모두에게.

     

     

    그녀의 집은 이곳에서부터 꽤나 먼 편이었지만, 스쿠터가 있어서 오는 데에는 크게 무리는 없었다. 화창한 날에 스쿠터로 국도를 달려 이곳으로 오는 경험은, 태성이의 사고 후 무미건조하던 일상에 그나마 활력소가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확실히 이 근방은 차도 없고, 도로는 넓은데 주변은 모두 산이고 논이었기에 드라이브하기엔 꽤 괜찮은 코스였다.

     

     

    가끔 병실에서 대화하는 게 지루해지고 배가 출출해지면. 우리는 스쿠터를 끌고 바닷가 앞 시내로 나가곤 했다. 그 앞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하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떨 땐 돌아오지 않고 바닷가 앞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헤어졌다. 태성이에겐 미안했지만, 시체 같은 그와 둘이 있던 시간보다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언젠가 우리는 태성이가 사고 났던 곳을 찾았다. 그곳은 넓은 왕복 4차선 도로였지만, 주변에 멀쩡한 신호등이나 가로등 하나 없었고, 차 역시 거의 다니지 않았다. 예지는 이곳의 사연에 대해서 나름 알고 있는 바가 있는지 내게 말해주었다.

     

     

    왜 예전에 이 근방에 아파트 잔뜩 지어지던 시절 있었잖아. 시에서 신도시를 만든다고 해서 말이야. 그때, 한 중소 건설업체가 여기에 있는 논과 밭을 투자도 받고 빚도 내서 전부 샀다고 하나봐 아파트 지으려고. 근데, 신도시 건설 계획이 굉장히 장기화 되다가, 시장이 바뀌고 흐지부지돼서 치솟던 땅값 떨어지고, 이자는 못 갚고, 투자자들의 독촉에 그냥 파산했나봐. 해놓은 건 도로 포장이랑 아파트 3층 정도가 전부인데.”

     

     

    나중에 이 땅의 소유권이 굉장히 복잡해져서 여기저기서 소송이 걸렸고, 지리멸렬한 소송기간 동안 이 아파트 공사장 부근은 죄다 방치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이곳저곳 균열이 가고 구멍이 난 아스팔트 도로였다.

    일전에 예지는 이곳에 한번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주변엔 건물도 없고, 그나마 있는 가로등 불은 듬성듬성 나있어서 무척이나 어둡다고 말했다.

     

     

    스쿠터의 불을 꺼버리면, 그야말로 암흑이야.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보였을 거야.”

     

     

    태성이는 이런데 왜 왔던 걸까.”

     

     

    이 도로를 쭉 따라가면 꽤 시골로 내려가는 국도가 나왔다. 하지만 그 야심한 밤에 태성이가 국도를 타고 시골로 내려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

    예지는 내 질문에, 자기도 그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밤중에 이곳을 찾았을 때도, 이곳에 오면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답을 찾았어?”

     

     

    아니, 전혀. 생각해보면, 살아 있을 때도 걔 생각은 잘 몰랐던 것 같아. 자기 입으로 얘기해주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태성이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와 몇 년을 함께 있었음에도 나는 함부로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할 때도 단 한 번도 얼굴에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를 많이 사귀고 나선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이런저런 표정을 변화시키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가 진심으로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표정으로 그의 감정을 읽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태성이가 밞은 포트홀을 스쿠터를 천천히 달리며 부지런히 찾았다. 하지만, 도로에 있는 포트홀을 죄다 메꿔버린 것인지 구멍이라곤 전혀 보이진 않았다. 그가 박았다던 가로등은, 그 뿌리의 흔적만 남아있고 진작에 뽑혀있었다. 이럴 때만, 시는 재빨랐다.

     

     

    예지는 꽃다발이라도 그곳에 놓아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태성이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꽃다발을 놓는 건 안 될 일이라고 말했지만, 예지는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꽃집까진 찾아갈 수 없어서, 우린 주변에서 이름 모를 꽃들을 꺾었다. 예지는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 꽃들을 한데 모아 엮었다. 그러자 가게에서 파는 것만큼 정갈하진 않지만, 꽃다발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만들어지긴 했다. 우리는 가로등 뿌리의 흔적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한동안 태양빛이 너무 강하게 내리쬐어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우리는 스쿠터와 함께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몸을 피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망가지고 녹이 쓸어있었지만, 지붕이 있어 뜨거운 태양빛을 피하는 데엔 지장 없었다. 벽에 붙은 노선도에는, 단 하나의 노선만 운용되고 있었는데,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먼지 쌓인 의자를 툭툭 털고 그 위에 앉았다. 차가운 쇠의 느낌이 허벅지와 엉덩이에 닿는 게 시원해서 기분 좋았다. 예지는 땀을 많이 흘렸는지, 앉자마자 연신 티셔츠 안으로 손부채를 부쳐댔다. 나는 머리카락에서 땀을 털어냈다. 방금 머리라도 감은 것처럼 젖어있었다. 한동안 온 몸에 손 부채질을 하던 예지는 입고 있던 반바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더니 머리를 뒤로 넘겨 하나로 묶었다. 그 능숙한 손놀림을, 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병원으로 오는 국도 말이야.”

     

     

    예지는 머리카락을 묶으면서 말했다. “가끔 거기서, 나는 브레이크를 잡고 가만히 서 있고는 해. 쭉 뻗은 아스팔트를 보면서.” 예지가 슬쩍 눈길을 주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밖에선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스믈스믈 올라오는 게 보였다.

     

     

    혹시 포트홀이 보일까 싶었거든.”

     

     

    공감되지 않는 얘기는 아니었다. 나도 이따금 인도를 걸어가며, 차도에 나있는 그 구멍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것들은 대게 찾으려고 하면 보이지 않았고, 우연히 멍하니 시선을 둔 자리에 뜬금없이 나있곤 했다.

     

     

    그리고 혹시 포트홀이 보이면 나는 이런 상상을 해. 기분 좋게 속도를 내다가, 그걸 밟아서, 내 몸이 하늘에 붕 뜬 다음에 가로등에 처박히는 상상을. 순간 뇌가 팍 찌그러져서,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는 거야.”

     

     

    나는 가로등에 부딪친 재 쓰러져있는 예지에 대해 상상했다. 스쿠터는 넘어진 채 하염없이 바퀴를 돌리고, 뜨거운 태양빛 아래 붉은 선혈이 검은 아스팔트 바닥을 적신다.

     

     

    왜 그런 상상을 하는 거야.”

     

     

    그냥, 궁금한 거지. 태성이의 지금 상태는 어떨까 싶어서. 가로등에 처박히면 그냥 끝일까? 아무것도 없는 무? 아니면, 영혼만은 어디선가 떠다니는 걸까. 가로등에 부딪히면서, 영혼만 쏙 빠져나오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나는 가로등 뿌리의 흔적에 꽃다발을 놓고 싶다던 예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태성이의 영혼은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병원에 있는 건 태성이의 껍질이라고.

     

     

    뇌가 팍 찌그러지는 순간, 끝일거야. 영혼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현실적인 내 말에 예지는 재미없다는 듯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구나?”

     

     

    눈으로 본 것만 믿어 보통은. 적어도, 그러려고 하지.”

     

     

    그럼 너, 우주도 본 적이 없으니까. 안 믿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몰라. 우주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지구가 평평할 수도 있지.”

     

     

    예지는 피식하고 웃었다. “솔직히 말해, 너 공부 못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에 반해 동생의 성적은 항상 순위권이었다. 어머니는 줄 곧 동생과 나를 비교하곤 하셨다. 알게 모르게 동생도 그러한 비교를 즐기는 게 분명했다.

     

     

    그 뒤로, 우리는 근처에 있던 국수집에서 점심을 때웠고, 예지는 내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무작정 나를 태우고 바닷가로 갔다. 우리는 선착장 끝에 앉아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예지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고기잡이배는 위에서부터 나올 거라고 했다. 나는 멍하니 수평선위로 떠오를 고기잡이배를 기다렸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더울까봐 사온 아이스크림은 채 반절도 먹지 않았는데 손등에 뚝뚝 물을 흘렸다. 나는 덥다고 말했다. 예지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닷바람이 불면 시원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별로네.”

     

     

    예지가 말했다.

     

     

    며칠째 폭염이라 바닷물도 더워져서 그래. 그래서 바람도 더운 거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봤자, 수평선 저 멀리서 고기잡이배가 나타날지 안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 너 공부 못하지?”

     

     

    예지도 내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더니 나보곤 잠시 여기 있으라고 해놓곤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뒤를 돌아본 채 멀어져가는 예지를 잠시 쳐다보다가, 바다를 향해 다시 눈길을 돌렸다. 스쿠터는 내 옆에 있었고, 어디서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사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한 십여 분 기다리니, 갑자기 머리 위에 그늘이 졌다. 올려다보니 노란 우산이었다. 예지가 그 위에서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횟집에서 빌렸어. 괜찮지 않아 이거?”

     

     

    꽤나 큰 우산이었다. 바닥에 뉘어놓으니 허벅지까지는 다 가렸다. 예지는 내게 얼음물을 건네곤 옆에 앉았다. 종아리 부분엔 햇볕이 그대로 닿아 뜨거웠지만, 우산 덕분에 다른 곳은 시원하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괜찮네. 모래사장 파라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원래는 부채를 사오려고 했는데. 이게 눈에 띄더라고. 빌릴 수 있을까 했는데, 흔쾌히 빌려주더라. 어차피 누가 놓고 간 거라고 하더라고.”

     

     

    횟집에 으레 있을만한 아저씨들이 들고 다닐 우산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빠 손잡고 따라온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엉엉 우는 장면을 상상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탓을 하고, 아버지는 그깟 우산 하나 사오겠다고 말한다. 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잘 되지 않았다. 상상도 경험이라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는데, 어쩌면 내게 그러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가.

    얼음물의 뚜껑을 따서 마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갈증이 심했는지 물이 벌컥벌컥 들어갔다. 예지가 옆에서 주먹으로 툭툭 쳤다.

     

     

    , 다 마시지마.”

     

     

    나는 알겠다며, 입을 슥 닦고는 예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예지는 물통에 입을 대고 남은 물을 들이켰다. 내가 마시고 얼마 남아있지 않았는지, 물병을 수직으로 세우고 밑에서 받아먹으려고 해도 몇 방울 떨어지는 게 다였다. 예지는 원망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바로 얼음이 든 페트병이 머리로 날아왔다.

    우산 밖에 세워두면 금방 녹을 거라고 나는 예지를 달랬다. 뚜껑을 닫고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쳐 얼음을 좀 부셨다. 그리고 밖에 세워놓으니 강렬한 태양빛에 부서진 얼음들이 유리조각처럼 빛이 났다. 예지는 그렇게 쓰는 건 에너지 낭비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써야지 에너지 낭비가 아닌데?”

     

     

    그냥, 몸에 열을 식히는데 쓰는 거지. 손 부채질 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나는 아까 전 실컷 얼음물을 들이켰기에, 몸에 열이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얼음물을 예지에게 건네주니 예지는 볼이나 이마위에 얼음물을 올리면서 열을 식혔다. 밖에서 십여분 가까이는 걸었을 테니, 그야 열이 찼을 만도 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란 우산 때문에, 예지의 피부는 샛노랗게 비쳐보였다. 늘어진 흰색 티셔츠 사이로 브래지어가 보였다. 그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미지근한 바람이었지만, 땀이 식으면서 꽤 기분 좋게 시원했다. 우리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고기잡이배는 여전히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루했는지 예지가 말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그냥, 태성이랑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서.”

     

     

    초등학교 때 한번 같은 반이었어. 중학교 때는 계속 같은 반이었지.”

     

     

    예지는 표정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야.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됐는가가 궁금한 거지.”

     

     

    설명하자면 긴 얘기였다. 그리고 별로 하고 싶은 얘기도 아니었다.

     

     

    같은 반을 많이 했으니까. 자연스레 친해진 게 아닐까.”

     

     

    정말로 그런 식으로 친해진 거야?”

     

     

    예지는 추궁하듯이 말했다.

     

     

    요약하자면.”

     

     

    나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옆에서 미지근한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예지는 어느새 내게 몸을 바짝 붙여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부탁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가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을 겪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지는 조용히 내 얘기를 들었다.

     

     

     

     

     

    예지는 내 얘기를 다 듣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가 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지에게 말했다. 갈까. 예지는 내 순순히 내 뒤를 쫓았다.

    예지는 스쿠터 뒤에서 팔로 나를 감싸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스쿠터를 달렸다. 바람이 차가웠다. 어느새 해는 산 너머로 거의 다 져가고 있었다. 차 한 대 없는 국도 위에서, 붉은 신호에 걸려 나는 스쿠터를 세웠다. 신호는 쓸데없이 길었다. 주변에선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예지가 뒤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태성이의 아버지는 태성이가 찾아와서 반갑다고 생각했을까?”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만약 반가워하지 않았다면 되게 슬퍼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쩌면 아버지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 태성이의 말도 듣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그림에 대한 얘기를 했을지도 몰라.”

     

     

    나는 휠체어에 앉아 쉴 새 없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태성이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수염은 지저분하게 목과 구레나룻까지 덮었고, 환자복에선 이상한 냄새도 난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어린 태성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태성이는 밝게 웃어보였지만, 아버지는 무표정하다.

     

     

    적어도 표정은 무표정했을 거야.”

     

     

    내가 말했다. 예지도 잠시 내 대답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진짜로, 그럴 것 같아.”

     

     

    초록불이되고, 나는 악셀 그립을 돌렸다. 땀이 식어 바람이 불자 몸이 차가웠다. 등에 닿는 예지의 체온이 따뜻했다. 떠올려보면 결국, 나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고기잡이배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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