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녀는 말을 잃었다. 벙어리처럼, 원래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읽고 들을 수 있지만 소리를 낼 수 없다. 문장을 적는 것이 힘겹다.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그것은 '원인도 전조도 없는' 현상이었다. 수년 전의 이혼, 반년 전 어머니의 죽음, 수개월 전 양육권을 잃어 전남편에게 빼앗긴 아들. 그 무엇도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p><blockquote style="padding:10px 20px;margin:0px 0px 20px;font-size:17.5px;border-left:5px solid rgb(238,238,238);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전략) 심리치료사는 그토록 자명한 원인들을 왜 그녀가 부인하려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br><em>아니요</em><br>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백지에 적었다.<br><em>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em></blockquote>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녀의 실어는, 독자에게 의문을 던지는 정체불명의 존재다. 심리적인 원인으로써 지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사건들을, 그녀는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피나 자존심 같은 것이 아니라 담담한 확인이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단지 그녀는 어렸을 적 겪었던 비슷한 현상을 떠올린다. 말의, 단어의, 문장의 날카로움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마침내 언어를 잃었던 유년 시절, 학창 시절.</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생경하고 강렬한 자극의 범람을 견디다 못해 도피했던 것뿐이었다. 또한 그때는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음에도 사소한 계기를 통해 언어를 되찾기도 했다.</p><blockquote style="padding:10px 20px;margin:0px 0px 20px;font-size:17.5px;border-left:5px solid rgb(238,238,238);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녀는 의문했다.<br>방학을 앞둔 그해 겨울의 평범한 수업시간, 한 개의 평범한 불어 단어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퇴화된 기관을 기억하듯 무심코 언어를 기억하지 않았다면.<br>(중략)<br>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br>공포는 아직 희미했다. 고통은 침묵의 뱃속에서 뜨거운 회로를 드러내기 전에 망설이고 있었다. 철자와 음운, 헐거운 의미가 만나는 곳에 희열과 죄가 함께, 폭약의 심지처럼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blockquote>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녀의 생각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녀가 품고 있는 폭약은 무엇인가. 왜 언어가, 말이, 불꽃이 되어 그 폭약을 터뜨리기 위해 심지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왜 다시, 언어를 잃었는가. 되찾을 수 있는가. 되찾아야 하는가. 되찾아도 되는가.</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일견에는 그녀가 말을 되찾지 않는 편이 나아 보인다. 그녀는 말에 의해 고통받아 왔다. 말에 대해 민감하고 예민한 그녀에게, 말로 입은 상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할 바 없이 클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도피했다, 고 본다. 말에서 멀어졌다. 스스로 입을 닫고 손을 멈추고 타인의 말을 말로써 듣지 않았다. 그저 소리의 파편으로써 맞닿을 뿐.</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러나 그 도피로 인해 그녀는 아들을 되찾을 방법을 잃었다. 그녀가 말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아들을 되찾고자 하는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p><blockquote style="padding:10px 20px;margin:0px 0px 20px;font-size:17.5px;border-left:5px solid rgb(238,238,238);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말로 열리는 통로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갔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아이를 영영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알면 알수록 통로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갔다. 간절히 구할수록 그것을 거꾸로 행하는 신이 있는 것처럼. 신음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더 고요해졌다. 피도 고름도 눈에서 흐르지 않았다.</blockquote>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이러쿵저러쿵 길게 이야기해 봤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매우 질 나쁜 종류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녀가 나에게 불가사의한,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존재다.) 한 번 정독해서는 도저히 문장들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두세 번에 이르면 문장과 단어들은 더욱 난잡하게 날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간접적이다. 소설의 분위기나 느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그 이상을 얻고자 하면 독서 이상의 영역으로 - 독해나 해석으로 - 들어가야 할 것만 같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냥 '그런 캐릭터야. 깊게 생각하지 마'라고 넘길 수는 없다. 일말의 공감의 여지가 없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 캐릭터를 용인한 채 넘어가서는 이 책을 이해할 수도 없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내 머리가 나쁜 것인가. 혹은 내 감성이 맛 간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소설을 한두 편만 읽어 보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자면, 같은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여주인공도 다소 난해한 면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생하지는 않았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그러나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매력이 있다. 만약 매력이 없었다면 공감이 안 되는 캐릭터를 붙들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진작에 내팽개치고 '나랑 안 맞네' 한 마디 감상과 함께 곧 잊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묘하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읽고, 또 읽어서,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끝끝내 이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p> <p style="margin:0px 0px 10px;color:#333333;font-family:'Helvetica Neue', 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이해하여, 이해한 후에 다시 감상문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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