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대화">“이년 오늘 내손에 죽어봐라. 네 년을 죽여야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p> <p class="바탕글">혜영은 악을 품고 달려오는 준혁이 겁이나 뒷걸음을 쳤다. 그런데 그녀의 등 뒤에는 절벽이 하품을 하고 있지 않은가?</p> <p class="바탕글">혜영의 발은 허공에 머물렀다. 악이라고 소리칠 겨를 도 없이 혜영의 몸은 절벽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p> <p class="바탕글">준혁의 입장에서는 금상첨화였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준혁이 같은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여간한 악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p> <p class="바탕글">타인의 목숨을 개처럼 뺏는 악인도 있지만, 도저히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p> <p class="바탕글">준혁 같은 위인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혜영을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진즉이다. 절벽위에서 그녀를 밀어버릴 찬스는 도처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계속 움츠러들었다.</p> <p class="바탕글">지금 보면 준혁이 밀지 않고 혜영이 혼자 발을 헛디딘 것은 준혁에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p> <p class="바탕글">만일 준혁이 밀었다면 혜영의 옷이나 피부에 증거가 남았을테니 말이다. 또는 준혁의 손으로 혜영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지 못했을 것이다.</p> <p class="바탕글">준혁은 속으로 ‘아하, 떨어졌다. 스스로 아니 저절로 떨어졌다. 내손으로 밀지 않아도 되었다.’ 라고 안도했다.</p> <p class="바탕글">준혁의 정신상태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p> <p class="바탕글">이렇게 안심하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아무리 싫어했던 혜영이라도 이렇게 안도하는 자신이 두렵기도 하였다.</p> <p class="바탕글">이렇게 시치미를 떼로 앞으로 연희와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p class="바탕글">준혁은 여러 가지 염려가 되어, 절벽가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혜영이가 빠진 곳을 내려다 보았다.</p> <p class="바탕글">혜영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다가 준혁의 발밑 바위 모서리를 부여 잡고 있었다.</p> <p class="바탕글">두 손으로 바위를 부여잡고 허공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었다. 혜영은 죽을 힘을 다해 기어오르려고 바둥거렸다.</p> <p class="대화">“준혁 씨! 준혁 씨!”</p> <p class="바탕글">그녀는 부르짖었다. 지옥에서 살아돌아오는 시체를 보는 것 마냥 준혁은 저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리고는 모진말을 골랐다.</p> <p class="대화">“너 같은 년은 그렇게 죽어버리는 것이 마땅해. 이제 몇 분만 있으면 손에 힘이 빠지면서 물고기 밥이 되겠지!”</p> <p class="대화">“준혁 씨! 준혁 씨!”</p> <p class="바탕글">혜영은 다시 준혁을 불렀다.</p> <p class="대화">“살려 줘요. 사람 살려 줘요. 제발 잘못했어요. 손에 힘이 빠지고 있어요.”</p> <p class="바탕글">이렇게 하소연 하다가 혜영은 악을 바락 썼다.</p> <p class="대화">“그래, 정말 나를 죽일 작정이냐? 내가 죽는다고 너는 살아남을 것 같아? 살인죄를 범하고도 그 어린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p> <p class="바탕글">그러나 그 발악이 길지 않았다.</p> <p class="대화">“준혁씨 제발! 이제 손에 힘이 다 빠졌어. 살려만 주면 은혜는 잊지 않을께요. 제발 살려줘요!”</p> <p class="바탕글">그런 혜영을 보니 준혁의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악에 바친 말을 퍼부었지만 아까부터 준혁의 마음은 흔들렸다.</p> <p class="바탕글">특히 ‘살인죄를 범하고도 그 어린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한마디는 그의 가슴 깊이 박혔다. 사실이 그랬다. 이렇게 살인을 방관하는 죄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p> <p class="바탕글">직접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연희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무거워졌다.</p> <p class="바탕글">그러는 사이 혜영은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다만 피를 토하듯 단말마의 외마디를 외칠 뿐이었다.</p> <p class="바탕글">준혁은 차마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다.</p> <p class="바탕글">준혁은 절벽을 내려다보며, 손을 늘여 혜영의 손을 쥐었다.</p> <p class="바탕글">죽이려고 할 때는 펼쳐지지 않던 팔이 살리려는데는 잘 펼쳐졌다.</p> <p class="바탕글">한명을 살리려고 한명을 살려고 애를 썻다. 혜영을 간신히 끌어올려서 마침내 절벽위에 겨드랑이를 올려 놓았다.</p> <p class="바탕글">이것이 준혁에게 비극이 될지 희극이 될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p> <p class="바탕글">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며 절벽위에 섰을 때, 어느 쪽이 죽이려하는 쪽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p> <p class="바탕글">준혁의 얼굴은 비지땀이 흐르고 죽은 사람마냥 해쓱해졌고 온몸이 사시떨뜻이 떨고 있었다.</p> <p class="바탕글">혜영이는 전신의 피가 모조리 얼굴로 올라온 것 마냥 터질듯 새빨갛게 물들였다.</p> <p class="바탕글">한참을 둘은 서로 노려보았다. 선채로 밤을 새우려는 듯 보였다.</p> <p class="바탕글">혜영 쪽에서 먼저 쓸쓸히 코웃음을 치며,</p> <p class="대화">“으휴~ 죽는 줄 알았잖아. 그렇다고 너 같은 것을 겁낼 것 같아?”</p> <p class="바탕글">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 격이었다.</p> <p class="바탕글">희안한 것이 사람 마음일까 죽이자는 마음을 먹었다가 살려놓았더니 악을 퍼붓는 혜영이를 보니 정말로 죽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아니 진정으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p> <p class="바탕글">그런 악독한 마음을 굳히기라도 하는 듯 준혁은 </p> <p class="대화">“그래? 그럼 두고 봐, 다음에는 꼭 죽여 버릴 테니.”</p> <p class="바탕글">이 말의 진정을 느꼈는지 혜영도 이렇게 대답했다.</p> <p class="대화">“알았어! 이제 너와 만나지 않으면 되잖아. 잘 먹고 잘 살아라!”</p> <p class="바탕글">그 말을 듣고 준혁은 못내 반가웠다.</p> <p class="대화">“그래 제발 그렇게 해주라.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지 말고, 자! 여기 얼마 되지 않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준다. 돈 받고 내일 아침 꺼져주라.”</p> <p class="바탕글">하며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주었다.</p> <p class="대화">“마지막 인사 치고는 너무 적은데.... 뭐 우선은...”</p> <p class="바탕글">하면서 돈의 액수에 불만을 느끼는 눈치였다.</p> <p class="대화">“아무튼, 우리의 미래를 오늘 밤 천천히 생각해 볼게.”</p> <p class="바탕글">이렇게 말하고 혜영은 가벼렸다.</p> <p class="바탕글">준혁은 결과적으로 오늘 밤 일이 이렇게 끝이 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허나 연희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스러운 준혁이었다.</p> <p class="바탕글">이렇게 혜영이 살아있는 마당에 연희와 부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p> <p class="바탕글">차라리 사실대로 말하고 연희의 의사를 묻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p>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출판사 대표이다.
그의 이전 문학 작품으로는 '시간은 달린다' '꽃가루' 작품이 있으며, 그외에도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전자책을 잘 만드는 전문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노벨문학상을 꿈꾸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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