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어릴 적에는 집에 가지고 놀 것이 없어서 곡괭이나 수갑, 그것들도 여의치가 않으면 족쇄 따위를 가지고 놀았다. 벽지에 재를 바른 집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갈 수는 없었다. 나는 문고리를 건드리기만 해도 아버지에게 꾸짖음을 들었다. 사실 문고리까지 손이 닫지도 않았지만 그러려는 기색만 보여도, 아니 문을 보고만 있어도 아버지는 늘 나를 혼내셨다.

 우리 집에는 네모난 창문도 있었다. 가끔 햇빛이 방바닥에 들어오면 그 위에 누운 적은 있어도 밖을 본 적은 없었다. 문득 창문이 보고 싶어졌었다. 발을 뻗고 팔을 뻗어도 창밖을 보기는커녕 창문턱에도 안 닿았다. 뛰면 창이 보이기야 하는데 뿌예서 밖이 안 보인다. 나는 헛손질이나 하며 기우뚱거리다가 결국 넘어졌다. 크게 넘어져 바닥에 쌓인 먼지가 떠오르는데, 문이 열렸다. “얘야! 뭘 하는 거니!” 우리 아버지는 까만 콧수염이 멋들어지셨다. 이때와 같이 날 꾸짖으실 때면, 아버지의 콧수염은 바르르 떨렸다.

 나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봤었는데, 고개가 아팠다. 아버지는 나를 거칠게 일으키셨다. “얘야! 점잖게 있지 않고!” “하지만…….” 내 목소리는 토끼가 깡총거리는 것보다 조금 컸다. “육시랄! 하지만 뭐, 얘야!” 아버지는 손수건으로 콧수염을 닦으셨다. 흰 손수건이 슥 지나가면 손수건은 검어지고 콧수염은 하얘졌다.

 “창문 밖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눈이 떨리고 눈썹이 떨리고 안경이 떨리고 입술이 떨리고 볼이 떨리고 머리칼이 떨리고 귀가 떨리고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배가 떨리고 어깨가 떨리고 목이 떨리고 수염까지 떨렸다. “창문 밖!” 아버지의 수염이 다시 검어졌다. “저 멍청한 창문 밖이 뭐가 그리 궁금해!” 아버지는 큰 걸음으로 창문가로 가서, 의자를 들어 그것을 박살내셨다. “보렴, 얘야!” 나는 볼 수 없었다. “저기 뭐가 있겠니? 보잘것없는 나무랑 짜증나는 망아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나무랑 망아지.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는 말들이었다. “내 말을 듣기는 하니, 얘야!” 내가 헛생각을 하느라 우두커니 있다 보니, 그게 답답하셨는지 아버지는 내 뺨을 한 대 때리셨다.

 “얘야, 잘 듣거라. 이 집은 진지한 사람이 진지한 일을 하는 진지한 곳이야! 나무도 망아지도 필요 없어! 여기에 필요한 건 곡괭이 님과 수갑 군, 족쇄 씨야! 너도 그분들과 친하게 지내거라. 커서 진지한 어른이 되어야지!”

 아버지는 내 등을 한 번 토닥여주시곤, 일이 있다며 곧바로 다시 나가셨다. 아버지가 문을 닫으시자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건 하나였다. 망아지. 나무는 어찌 되든 관심이 없고 망아지. 나도 창밖을 보고 싶으나 망아지. 아버지처럼 키가 커서 그냥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망아지. 아버지,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쓰신 의자를 창가로 끌고 가 세웠다. 그 위에 오르니, 너머가 안 보이는 창문도 없으니 밖이 보였다. 밖에는 잎이 엄청 많은 나무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망아지가 있었다. 정말로 망아지가 있었다. “이봐!” 내 소리는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거기가 가까워질 수는 없으니 내가 가야 했다. 나는 곡괭이를 던져버리고 당장 창문 밖으로 나갔다. 깨진 유리를 잡고 넘으면 풀밭이었다. 나가기는 너무 쉬웠다.

 나는 나가자마자 후회했다. 모나고 쥣빛인 집은 다시 들어가기가 어려워보였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집에서 눈길을 간신히 떼어서 풀들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말은 풀을 열심히도 뜯느라 내가 바로 뒤에 올 때까지 풀만 뜯었다. “이봐!” 그제야 말이 나를 돌아봤다. 말의 털은 주홍이었고 갈기는 노랑이었다. “안녕! 여기에 죽 있었지만, 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나는 말하는 말이 신기해서 조금 전에 아버지 앞에서 했듯, 멍하니 있었다. 망아지는 풀 뜯는 것을 멈추고 나무로 가 나무를 뒷발로 가볍게 툭 쳤다. 나무가 풍 걸린 듯 떨다, 내 머리 위로 사과를 내뱉었다.

 “이 말하는 말의 이름은 애플잭이야! 사과가 주는 사과를 잘 먹도록 해.”

나는 사과를 먹으며 대답을 했다. 혹은 대답을 하면서 사과를 먹었다. 나는 이때 사과를 처음 먹는 것이어서, 그 맛이 신기해 또 멍하니 씹고 있었다. 사과는 맛이 신기했다. 어디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한두 번 본 사과, 사과는 달았다. “더 줄까?” 애플잭이 얼굴을 바싹 붙였다. 사과는 콧김이 뜨거웠다. “어, 아니. 난 가야 돼.” 나는 놀라서 집으로 뛰어갔다. 나는 기뻐서 방방 뛰면서 갔다.

 겨울이 되어 창문을 수리하기 전에 언제, 나는 다리가 반절이 된 의자로도 집을 나올 수 있었다. 겨울이 다가와서인지 잎이 많은 나무에는 사과가 없었다.

 내가 문고리를 열어서 집을 환기할 때에, 족쇄를 무거워하며 간만에 나무쪽으로 갔었다. 마른 풀은 족쇄가 지나가기만 해도 바스라졌다. 잎이 있는 나무의 단단한 줄기에 기대어서 불편하게 쉬었다.

 콧수염을 죄다 밀어버리고 나서, 곡괭이를 질질 끌며 사과를 보러 갔다. 곡괭이 가는 길 근처는 땅거미도 피해갔다. 잎이 조금 시든 나무 옆에는 말라비틀어진 사과 몇 알과 낙엽만 수북했다. 나는 사과를 주머니에 넣고 곡괭이를 들었다. 나무 옆에 구덩이를 팠다. 내 무릎만한 구덩이를 팠다가, 키만한 구덩이를 팠다가, 나오기 힘들 정도로 팠다. 돌이 나와 더 파지 못하게 됐을 때에 나는 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냈다. 사과 몇 알을 구덩이 가운데에 놓고 치워놓은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었다. 이 무덤은 사과의 무덤이다. 나는 조용히 합장(合掌)하고 몸을 일으켰다.

 “옘병!” 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과 했었다. 나는 묘를 파느라 힘이 빠져 다시 올라갈 기력이 없었다. 힘이 다시 차려면 한참이나 있어야 한다.

 콧수염이 거뭇거뭇해질 때가 되어서야 난 집에 돌아왔다. 한참이나 있다가, 곡괭이까지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온 나를 아버지는 탓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간만에 크게 웃으셨다. “메인해튼으로 가자꾸나, 얘야! 수정산맥 근처에서 찾은 광맥의 채굴권을 땄어! 싸구려 곡괭이는 이제 버리렴, 얘야! 짐을 꾸리지도 말거라! 이 집도 팔아야겠구나.”

 나는 아무래도 사과나무가 걸렸다. 얼마만 있으면 열매가 다시 열릴 텐데. “아버지, 하지만.” “어서 가자꾸나!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야!” 그새 집은 허물리고 있었다. 나는 회색이 사라지는 것은 보았으나 그 너머로 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기차는 빠르다. 나는 느릿한 마차가 타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완고하셨다. 사과를 으적으적 씹으며 탄 기차는 정말로 빨랐다. 마차는 기었고 버팔로는 걸었다. “얘야, 바깥을 보렴! 구경하는 거라도 하지 않으면 차표 값이 아깝잖니.” 밖으로 뭐가 보이나. 빠르게 지나가는 사과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대충 세어보니 사과나무는 사백여 그루이다. 나는 그것들 사이에 사과가 있는지 유심히도 살폈다. 내가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입에 든 사과를 흘렸을 때 나는 내려야 했다. 아버지는 가방을 두르시고 업으셨다. 무슨 짐이 저리도 많은지 물었을 때, 그 가방들이 새 곡괭이로 채워졌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무심코 사과나무를 바라봤다. 곡괭이가 자꾸 귓가를 맴돌아서 사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가방이 무거워 대답하기를 힘들어하셨다. “전 먼저 수정산맥으로 가면 안 될까요?”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차창으로 아버지가 가방에 깔리는 것을 보았으나 나는 보지 못한 척했다.

 나는 대신 사과나무를 보려 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를 보지 못한 것처럼 사과나무도 보지 못했다. 조금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 쉬고 나면 사과를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