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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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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3757
    작성자 : bsn
    추천 : 18
    조회수 : 2242
    IP : 117.123.***.109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7/06/01 16:55:33
    http://todayhumor.com/?panic_93757 모바일
    [단편] 초행길
    옵션
    • 창작글
    <div style="text-align:left;"> <div style="text-align:left;"><img style="width:258px;height:171px;" alt="사진2.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6/149630398986f1deef96fc43b2a2fd150243175332__mn719979__w640__h427__f77250__Ym201706.jpg"></div></div> <div><br><strong>초행길</strong></div> <div><strong></strong> </div> <div>어느덧 선명한 햇살이 감히 창문을 넘으며 살을 뜨겁게 달구는 여름이다.<br> <br>난 침대에 누워 있다 도저히 그 열기를 참을 수 없어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br> <br> <br>"아나, 진짜 더워 죽겠네..."<br> <br> <br>여름만 되면 언제쯤 겨울이 올까 달력을 뒤지는 것을 반복한지도 어언 6년이다. 그 정도로 난 여름을 싫어했다.<br><br>(아이스크림이라도 살까?)<br><br>허나, 창밖 너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도로를 보고 이내 생각을 접었다. <br><br>난 땀과 열기로 가득찬 방을 나가 거실로 향했다. 역시나 거실도 다를 바는 없었다.<br><br>(아 좀 시원한 거 없나...)<br><br>기분 좋은 냉장고 바람을 맞으며 그것을 뒤적거리던 와중에 문득 내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br><br>(산..이나 가볼까..?)<br> <br>평소에 운동을 죽을 만큼 싫어했던 나였지만, 시원한 산바람이 온몸을 스치는 상상을 하자 지금의 불가마 같은 집구석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br> <br> <br>"그래! 산을 가는 거야!"<br> <br> <br>난 그 충동스런 성격에 걸맞게 이내 컴퓨터를 키고 무작정 인터넷에 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br> <br> <br>"어디 보자~ 어디가 좋을까..?"<br> <br> <br>포털에 산이라는 한 글자를 검색하자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들이 화면에 펼쳐졌다.<br> <br>그 중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역시나 맨 위에 뜬 블로그였다.<br> <br> <br>"시원한 지리산으로의 여름 여행이라..."<br> <br> <br>난 블로그를 클릭해 그것을 대충 둘러보기 시작했다.<br> <br> <br>[계곡물이 진짜 시원하더라구요~]<br> <br><br>(계곡..? 그래, 계곡 좋지!)<br> <br>사실 계곡은 대부분의 큰 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것이었지만, 내 단순한 머리는 지리산의 계곡이 유일한 것인 마냥 받아드리고 있는 중이었다.<br> <br> <br>"그래! 바로 지리산이야!"<br> <br> <br>난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br> <br>대충 지갑, 핸드폰 등의 귀중품과 만약을 위한 두꺼운 옷 한 벌, 그리고 평지에 깔 돗자리 하나만을 챙긴 채 집을 나서자, 집 안에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햇빛이 내 눈을 괴롭혀 댔다.<br> <br> <br>"와, 이건 진짜 미쳤다 미쳤어."<br> <br> <br>난 한 손으로 눈 위를 가리며 간신히 내 차를 향해 걸어갔다.<br> <br>그렇게 차에 올라 GPS로 지리산을 검색하니 곧 그것이 온화한 기계음으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br> <br> <br>[목적지까지 4시간 걸립니다.]<br> <br>"헐, 4시간이나 걸려..?"<br> <br> <br>그 긴 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 있을 걸 생각하니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br> <br> <br>"아..아니야, 그래도 집에 쳐박혀 있는 것보단 낫잖아."<br> <br> <br>난 동시에 노래와 에어컨을 키며 애써 귀찮은 마음을 다잡았다. <br> <br>(도착하면 계곡 먼저 가야지~)<br> <br>난 산속에서 시원하게 놀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이내 <span style="font-size:9pt;">힘차게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span></div> <div><br><br><br><br><br>"드디어 도착했다..."<br><br><br>고속도로를 두 개나 타며 무려 4시간 만에 도착한 지리산은 그간의 피로감을 싹 지워줄 만큼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br><br> <br>"이야~ 쥑이네~"<br><br><br>그렇게 산을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문득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굶주린 소리가 들려왔다.<br>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 한 허기가 이제서야 올라온 것이다.<br><br><br>"하, 이젠 배고파 죽겠네.."<br> <br> <br>난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대충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br> <br>그렇게 배가 부르자 미처 준비하지 못 한 한 가지<span style="font-size:9pt;">가 불현듯 떠올랐다.</span></div> <div><br>(아, 맞다! 여행이라면 먹을거리가 있어야지!)<br><br>산에서 절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편의점에 진열된 모든 음식들이 매력적으로 보여졌다.<br><br>난 곧바로 맥주와 기타 여러 간식들을 산 뒤 편의점을 나왔다.<br> <br>이젠 배낭이 제법 두툼해져 있었다.<br> <br> <br>"그래, 이거지! 이제야 진짜 놀러 온 것 같네~"<br> <br> <br>그렇게 한껏 들뜬 마음으로 더위도 잊은 채 난 산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br> <br> <br> <br> <br> <br>"아야~ 역시 오길 잘했네. 시원하니 아주 좋아."<br> <br> <br>산들산들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으며 올라가는 산길은 처음엔 그리 어렵지 않았다.<br> <br>그렇게 등산로를 경시하며 내 멋대로 뛰어 올라가자 얼마 안 가 곧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br> <br> <br>"헉..헉.. 괜히 뛰었나..."<br><br><br>평상시 내 체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br> <br>(고작 15분 만에 이렇게 지치다니..)<br> <br> <br>"하.. 그냥 빨리 계곡이나 가자."<br> <br> <br>난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만 버티자는 집념으로 계속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br> <br>가파른 길을 오를 때마다 뒤로 쏠리는 배낭 때문에 난 등을 굽혀 가면서 오르막길을 걸었다.<br> <br>(내가 왜 괜히 이런 데를 와서..)<br> <br> <br> <br>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순간 저 멀리서 갈림길과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시야에 들어왔다.<br> <br>난 기쁜 마음에 가파른 길을 뛰어 올라가며 표지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br> <br> <br>"아니, 계곡까지 2km나 남았다고?!"<br><br><br>난 근처에 있던 큰 바위에 걸터앉으며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br><br>(2km 동안 이걸 메고 가야 한다니..)<br> <br>(그래도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시간 낭비에 기름값 낭비잖아..)<br> <br> <br>결국 헛짓거리의 허전함과 몸의 피로감 중 난 전자를 택하기로 했다.<br><br>(그래, 기왕 온 거 목적은 달성해야지)<br><br>난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팻말이 가리키는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br><br>수많은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이마엔 하나같이 엄청난 수의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다.<br><br>그러자 나도 곧 저렇게 땀으로 흠뻑 젖을 거란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br><br><br>"에효.. 계곡까지 언제 올라가냐..."<br><br> <br>왜때문인지 아까보다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그렇게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내 왼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br> <br> <br>"뭐야, 이거 물소리잖아?"<br> <br> <br>그것은 계곡의 물소리였다. <br> <br>낮은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와 빠르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합쳐진 그 소리는 매우 흐릿하게 내 왼쪽 귀에서 맴돌고 있었다.<br><br>(이쪽 길에도 계곡이 있나..?)<br><br>난 몸을 돌려 왼쪽 길을 바라봤다. </div> <div><br>빛이 잘 들지 않고 무언가 축축해 보이는 그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 나뭇잎과 가지들이 난잡하게 쌓여 있었다.<br> <br>그 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엔 글씨가 거의 다 번져 있어 뭐라 적혀 있는지 읽기가 힘들었지만, 빨간색으로 적혀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div> <div><br><br>그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길이었지만, 내 머리는 이미 이쪽 길이 완벽한 대책인 것마냥 받아드리고 있었다.<br><br>(그래, 여기로 가면 더 빠르게 계곡도 가고 몸도 덜 피곤하고, 완전 일석이조잖아?)<br><br>난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왼쪽 길로 방향을 돌렸다.<br><br><br>"오~ 여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네."<br><br> <br>아까의 돌길과는 달리 적당한 가파름과 시원한 그늘이 들어선 이 길은 내게 엄청난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br><br>(그래, 역시 이쪽 길이 답이었어)<br></div> <div> </div> <div><br>한껏 들뜬 분위기로 가벼운 발걸음을 이어가는 내겐 주위의 경치가 모두 조화롭게만 느껴졌다.<br><br>허나, 그 음침한 풍경화를 둘러보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한 명뿐이었다.<br><br>그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br></div> <div><br> <br> <br> <br>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몸에 조금씩 피로감이 몰려오자 문득 주변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br> <br>엄청난 높이의 나무들과 축축히 젖은 길, 그리고 간간이 한 줄기씩 새어 들어오는 빛들, 이곳은 지금 바로 저 나무들 사이에서 귀신이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음산했다.<br><br>(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몇 명 봤지..?)<br> <br>생각해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시끌법적하게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이 길에 들어선 뒤로는 단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br> <br> <br>"혼자 가는 게 조용하고 더 좋지, 뭐..."<br> <br> <br>난 서서히 차오르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일부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걸어갔다.<br> <br>그 흔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오로지 물소리와 내 목소리만이 울리는 이 어두운 길이 이상하다고는 느껴졌지만, 왜인지 발걸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br> <br> </div> <div><br>"흐우.. 여기 뭐 이리 추워..."<br><br><br>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마냥 시원하게 느껴졌던 이 길이 이젠 한기가 들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br><br>시계를 보니 해가 지기까진 아직 3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br><br>(그냥 돌아갈까..)<br><br>그렇지만 이젠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난 어쩔 수 없이 이끌렸다.<br><br>난 배낭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은 뒤 걸음을 재촉했다.<br><br>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가며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따라갔다.<br><br>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br><br>이 정도 크기의 소리가 들릴 정도면 바로 눈앞에 보여야 할 계곡이 전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br> <br> <br>"뭐지? 소리는 들리는데 왜 보이지가 않아..?"<br> <br> <br>그렇게 한참을 찾아도 계곡은 커녕 작은 개울조차 나타나지 않았다.<br> <br>시간은 그새 또 얼마나 지났는지 조금씩 들어오던 빛줄기들이 이젠 붉은 석양을 띠고 있었다.<br> <br> <br>"안되겠다. 그냥 돌아가자."<br> <br> <br>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뒤를 돌아 내가 온 길을 바라봤다.<br> <br> <br>"뭐..뭐야, 이거?!"<br> <br> <br>내 뒤에 남아 있는 길을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br> <br>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선명히 보이는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뒤를 돌아보니 그 흔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br> <br> <br>"이..이쪽인가? 아니면 이쪽...?"<br> <br> <br>마치 머릿속에 무언가 지나간 듯 지금까지 왔던 과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br> <br>몸을 한 바퀴 돌려 봐도 다 똑같이 보이는 풍경에 이젠 방향감각마저 희미해졌다.<br> <br>그 와중에도 선명히 들려오는 물소리는 계속해서 내 머리를 어지럽힐 뿐이었다.<br> <br>난 패닉에 빠져 그냥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br> <br>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태양빛에 쫒겨 단순히 그저 길인 것처럼 보이는 곳을 밟아 가며 달렸다.<br> <br>터질 듯 요동치는 가슴의 고통도 느끼지 못 한 채, 반쯤 희미해진 정신으로 달리는 내 옆으로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br> <br> <br>"무..무슨 소리지..?"<br> <br> <br>규칙적인 리듬으로 스스슥거리는 그 소리는 사람의 발에 쓸리는 수풀 소리였다.<br> <br>(사람이다! 다행이야!)<br> <br>난 근처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br> <br>비교적 가까운 거리였기에 난 곧바로 사람의 실루엣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훤칠한 키의 남자의 모습이었다.<br> <br> <br>"저..저기..."<br> <br> <br>내가 말을 걸자 남자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내 쪽을 바라봤다.<br> <br> <br>"아..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길을 잃었는데 혹시 내려가는 길을 아시나요?"<br> <br> <br>남자는 반응이 없었다.<br> <br> <br>"저기요..?"<br> <br> <br>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난 괜히 무안해져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br> <br> <br>"너무 어두워서 길이 잘 안 보이네.."<br> <br> <br>어색한 혼잣말을 해대며 핸드폰 화면을 킨 그 순간, 난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br> <br> <br>"뭐..뭐야?!!"<br> <br> <br>여태까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남자의 얼굴이 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br> <br>그는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br> <br></div> <div>난 반사적으로 빠르게 뒤걸음질쳤다.<br> <br>마음 같아선 당장 뒤돌아 전력 질주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에게서 눈을 떼선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br> <br> <br>"오..오지마!"<br> <br> <br>내가 뒤로 물러가는 속도를 높이자 그 남자는 천천히 손을 내 쪽으로 뻗으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br> <br> <br>"씨..씨발!!"<br> <br> <br>난 결국 뒤를 돌아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br> <br> <br>"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말라고!!!"<br> <br> <br>차가운 바람이 볼을 가르며 동시에 귀에선 그것의 소리가 휘몰아쳤다. <br> <br>전방엔 심하게 흔들리는 팔 때문에 덩달아 요동치는 핸드폰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br> <br> <br>"씨발!!!"<br> <br> <br>내 발소리 뒤로 선명하게 이어지는 그 남자의 발소리에 난 다리에 더욱 힘을 주며 오르막길을 뛰어 올라갔다.<br> <br>그 순간, 뭔가 발등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br> <br>(아..안돼!!)<br> <br>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재빨리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난 뜻하지 않게 내 뒤를 아주 잠깐 볼 수가 있었다.<br> <br> <br>"허억!!"<br> <br> <br>사람이 극한의 두려움에 빠지면 몸이 굳어 버린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br> <br>난 이제 두 손을 이용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그로부터 도망쳤다.<br> <br>손에 있는 핸드폰의 액정이 깨지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br> <br>짐승처럼 네 발로 빠르게 기어오는 그 남자의 모습에 난 살기 위해 뛰는 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br> <br>허나,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질 않았다.<br> <br> <br>"헉..헉.."<br> <br> <br>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더 이상 낼 여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br> <br>다리에 서서히 힘이 빠지며 느려지는 나와 달리 내 등 뒤에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하염없이 커져만 갔다.<br><br><br>"하아... 아..안돼..."<br> <br> <br>그렇게 그 남자의 숨결이 바로 내 등 뒤에서 느껴질 때쯤, 모든 것을 포기한 내 앞에 조그만 오솔길이 나타났다.<br> <br><br>(사..살았다!!)<br> <br>난 없던 힘까지 짜내며 거친 산길에서 평탄한 그 길로 뛰어 올라갔다.<br> <br>그렇게 길에 오르니 내 양옆으로 하나씩 쌓여 있는 커다란 돌탑이 눈에 들어왔다.</div> <div><br>난 몸을 곧게 세우며 평지로 된 그 길을 따라 다시 힘겹게 달리기 시작했다.<br><br>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div> <div><br></div> <div>아까까지만 해도 뒤쪽에서 분명히 들리던 남자의 웃음소리가 이젠 전혀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br><br>(뭐..뭐지?)<br><br>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다.<br></div> <div> <br>그는 오솔길에 오르지 못 하며 그저 주위를 뺑뺑 돌고만 있었다.<br> <br>이젠 날 죽일 듯 노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옆으로 아까 그 돌탑들이 눈에 띄었다.<br> <br> <br>"설마.. 돌탑 때문에...?"<br><br> <br>확실히 커다란 두 개의 그것 뒤로 길 양옆엔 조그만 돌탑들이 줄을 세우고 있었으며, 남자는 어떻게든 그것을 피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br><br>(도대체 이런 곳에 누가 돌탑을 쌓은 거지..?)<br><br>조금 안심이 든 나는 이 길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며 길을 걷는 속도를 편하게 줄이기 시작했다.<br></div> <div><br></div> <div><br>(이건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br></div> <div><br></div> <div>그렇게 수많은 의문을 품으며 난 끝 모를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갈 뿐이었다.<br><br><br><br><br><br>하늘은 어느새 해가 지고 새하얀 달이 그 빈 자리를 채운 뒤였다.<br><br> <br>절망적이게도 핸드폰은 액정이 깨지고 이젠 배터리마저 나가 버렸다.<br> <br>난 어쩔 수 없이 자연의 빛을 이용하며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br> <br>하지만 돌탑에 비치는 희미한 달빛을 따라 길을 걷는 것은 역시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br><br><br>"도대체 이거 얼마나 가야 되는 거야.."<br><br><br>도저히 종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그렇게 한참을 걷자 마침내 저멀리서 길의 끝이 보였다.<br></div> <div>허나, 그것이 완전한 끝은 아니었다. <br> <br> <br>"와, 이건 또 뭐야."<br> <br> <br>길이 끊어지는 곳엔 하늘에 닿을 듯 높이 펼쳐진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br> <br>그런데 믿기 힘든 점은 계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마치 발광하듯 달빛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었다.<br> <br>(이건 뭐로 만들었길래 이렇게 빛나는 거지..?) <br> <br>그렇게 궁금증을 품으며 계단에 발을 올리자 순간 발 아래서 진동이 느껴졌다.<br> <br> <br>"뭐..뭐야, 이거?!"<br> <br> <br>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돌로부터 어떠한 맥동이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br> <br>그것은 불쾌하다기보단 무언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음악 같은 느낌이었다.<br><br>(발이 왜 이렇게 가볍지?)<br> <br>의아하게도 거의 60도가 다 되는 이 계단을 오르는 것 또한 전혀 힘이 들지가 않았다.<br><br>마치 순탄한 내리막길을 걷는 듯한 그 감각에 신기해 하며 잠깐을 걷자, 어느새 눈 앞엔 웬 커다란 절이 나타나 있었다.<br> <br> <br>"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br><br> <br>난 곧 이 이상한 환경에 대해 생각하길 멈추고 절 안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br><br><br><br>"저기.. 계세요? 아무도 없나요..?"<br> <br>(뭐야, 여기.. 왜 절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br> <br>환하게 불이 켜진 이 거대한 절 안엔 나밖에 없었다.<br> <br>작은 건물, 큰 건물, 심지어 변소까지 확인해 보았건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가 않았다.<br> <br>(혹시 저 곳엔 누가 있으려나?)<br> <br>난 마지막으로 체크 안 한 가장 큰 건물로 향했다.<br> <br> <br><br>"와, 이 건물은 진짜 크네."<br> <br></div> <div>매우 고풍스런 디자인 때문인지 몰라도 건물 자체에서 어떤 신성한 아우라가 느껴졌다.<br></div> <div><br></div> <div>건물 안엔 방이 없었으며 그저 중앙에 거대한 불상만 있는 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기도를 드리는데 사용된 듯 보였다.<br> <br>난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서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br> <br> <br>"저기.. 계세요...?"<br> <br> <br>대답은 없었다.<br> <br>그 뒤로 한참을 이어지는 침묵에 실망하며 도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린 그 순간, 오른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br> <br> <br>"뉘이신지요?"<br> <br><br>난 바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br> <br>그곳엔 웬 스님 한 분이 서 있었다. 흐릿한 미소가 담겨진 인자한 표정의 스님은 정말이지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br> <br> <br>"아, 스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산에서 길을 잃..."<br> <br>"어쩌다가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는지... 쯧쯧.."<br> <br>"네..?"<br> <br> <br>난 당황하며 스님에게 되물었다.<br> <br> <br>"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애초에 여긴 어디죠?"<br><br><br>그러자 스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였다.<br> <br> <br>"일단 따라오시지요."<br> <br> <br>난 스님을 따라 건물 옆의 작은 요사채로 들어갔다.<br> <br> <br>"이쪽에 앉으시지요."<br> <br> <br>그렇게 자리에 앉자, 스님이 내게 얼굴을 마주한 채 아까와는 전혀 다른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br> <br> <br>"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이곳은 이승이 아닙니다."<br> <br>"네..네?!"<br> <br> <br>난 당황하며 말했다.<br> <br> <br>"그게 무슨.. 전 그냥 등산 중이었다고요... 그럼 도대체 여긴 어디죠..?"<br><br> <br>이어지는 스님의 말에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br> <br> <br>"이곳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중간의 길입니다. 처자께서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신지는 저도 잘 모르겠으나, 동시에 이곳에 있을 만한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br> <br> <br>날 바라보는 스님의 걱정스런 시선이 자연스레 느껴졌다.<br> <br> <br>"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거죠..?"<br> <br>"처자의 등에는 아직 밝게 빛나는 구슬이 보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 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것을 보존한 채로 산을 둘러싸는 계곡을 넘어 간다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br> <br> <br>그 뒤로 이어지는 스님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br> <br> <br>"이 산엔 저승에 갈 준비를 하는 망자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승으로 돌아갈 생을 원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들킨다면 그들은 처자의 생을 빼앗기 위해 죽을 듯이 쫒아 올 것입니다. 절대로 그들과 접촉해선 안 됩니다. 혹여나 그들의 손이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생을 잃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명심하십시오."<br><br><br>난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결코 내 몸을 지탱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br> <br> <br>"자, 받으십시오. 이것이 필요할 것입니다."<br> <br> <br>스님은 내게 작은 등불을 건네주었다. <br> <br>그 조그만 불꽃을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참아 왔던 눈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br><br>괜히 산을 와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한심하고 또 불쌍했다.<br> <br>그렇게 울고 있는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br> <br>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진 내 앞의 자리엔 움푹 패인 방석만이 허전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등불에 의존한 채 산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조심스러웠다.</div> <div> </div> <div>(절대로 그들과 마주쳐선 안 돼...)</div> <div> </div> <div>난 스님의 말씀을 수십 번 되새기며 천천히 길을 내려갔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한순간 내리막길이 끝나며 이어서 드넓은 평탄한 지대가 나타났다.</div> <div> </div> <div>(아.. 좀 살 것 같다)</div> <div> </div> <div>다리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고, 곧 머릿속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올랐다.</div> <div> </div> <div> </div> <div>(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 저승길에 오르게 된 걸까..?)</div> <div> </div> <div>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div> <div> </div> <div>(그래, 그때 난 왼쪽 길로 방향을 틀었어)</div> <div> </div> <div>장담하건데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그때 그 갈림길에서 왼쪽을 택했기 때문이었다.</div> <div> </div> <div>아무도 걷지 않는 음산한 길을 따라가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었다.</div> <div> </div> <div>허나,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가지 큰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이 시작된 거지?)</div> <div> </div> <div>그것만큼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div> <div> </div> <div>왼쪽 길에 들어선 뒤로 어느 시점에서부터 난 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오게 되었다. </div> <div> </div> <div>하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는 결코 짐작할 수도 없었다.</div> <div> </div> <div> </div> <div>(혹시.. 물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인가?)</div> <div> </div> <div>그럴듯한 가정이었지만 물소리가 처음 들린 곳은 갈림길이었으며, 그때에는 내 옆에서 사람들도 지나가고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난 답을 낼 수 없는 추측들을 포기하고 이내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div> <div> </div> <div>(아까는 물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잠만! 물소리?!)</div> <div><br>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줄곧 들려오던 물소리가 문득 뇌리를 스쳤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래! 계곡!!"</div> <div> </div> <div> </div> <div>탈출구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다.</div> <div> </div> <div>지금은 들리지 않는 그 물소리의 근원이 바로 스님이 말한 그 계곡이었던 것이다.</div> <div>그곳만 찾으면 난 여기서 살아 나갈 수가 있었다.</div> <div> </div> <div>(빨리 아까 왔던 길을 찾아야 해)</div> <div> </div> <div>난 이미 지워진 흔적들을 쫒아 거의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div> <div> </div> <div> </div> <div>어느덧 평야는 끝나고 또 지독하게 이어진 내리막길이 날 마주했다.</div> <div> </div> <div>(기억을 떠올리자.. 기억을 떠올려...)</div> <div> </div> <div>난 최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며 내가 있었던 그 자리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래, 맞아! 거긴 축축하고 또 검은 나무들이 많았어!!)</div> <div> </div> <div>난 한 줄기 희망을 품으며 습기가 찬 낙엽들과 가장 어두운 나무들을 찾아 꼼꼼히 걷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게 얼마나 헤맸을까, 아까와는 달리 비교적 습하게 느껴지는 공기에 난 바로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만져 봤다.</div> <div> </div> <div> </div> <div>"여기 있다! 축축한 길!!"<br> </div> <div> </div> <div>난 겨우 찾아 낸 그 습기 찬 길을 따라 무작정 뛰어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살 수 있다는 확신에 찬 희망에 이미 머릿속은 새하얗게 지워진 뒤였다.</div> <div> </div> <div>그렇게 망자들과 마주쳐선 안 된다는 스님의 충고도 잊은 채 어두운 산길을 달리는 내 앞으로 곧 알 수 없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뭐야, 여긴..? 이런 곳이 있었었나...?"<br> </div> <div> </div> <div>그것은 상당히 큰 시골 마을이었다. 아니, 시골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완전한 조선 시대 풍의 촌락이었다.</div> <div> </div> <div>중앙의 넓은 흙길 양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초가집들과 그것들 사이에서 간간이 보이는 기와집은 시대감각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선명했다.</div> <div> </div> <div>그렇게 당황하며 마을을 바라보는 와중에 순간 내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div> <div> </div> <div> </div> <div>"뭐..뭐야 저기?!"<br></div> <div> </div> <div>그것은 사람들이었다. 마을 중앙에 광장 같은 곳에서 수많은 망자들이 줄을 지어 원형으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div> <div> </div> <div>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에 의미 없는 손짓을 해대고 있었다.</div> <div> </div> <div>그곳에서부터 이따금 들려오는 그들의 곡소리는 꽤나 먼 거리였음에도 뇌리에 박힐 정도로 크고 분명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저길 어떻게 지나가지..?)</div> <div> </div> <div>난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망자들은 광장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의 집 안에서도 보였지만, 확실히 외곽쪽에선 그 수가 현저히 적은 것 같았다.</div> <div> </div> <div> </div> <div>난 이내 마음을 먹고 마을 입구를 지나 가장자리로 빙 돌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그 과정에서 그들이 한두 번 내 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왜인지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의 빛을 전혀 보지 못 하는 듯하였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제 이곳만 지나면 돼..)</div> <div> </div> <div>한참을 돌아 마을의 반대편에 왔을 때쯤 상당히 귀족스러워 보이는 기와집이 내 앞에 나타났다.</div> <div> </div> <div>집 주변엔 망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집 안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div> <div> </div> <div>(아무도 없나보네)</div> <div> </div> <div>난 안심하며 기와집의 대문 앞을 지나 마침내 장승이 서 있는 마을의 끝까지 도달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 끼이익 〕</div> <div> </div> <div> </div> <div>그때 정말 거짓말 같이 기와집 안방의 문이 열리며 작은 하얀 실루엣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div> <div> </div> <div> </div> <div>"뭐..뭐야?! 허억!!"</div> <div> </div> <div> </div> <div>새하얀 소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과 내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div> <div> </div> <div>그의 공허한 눈길은 무심히 내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날 지켜볼 때 드는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div> <div> </div> <div>그 뒤로 한참을 이어지는 정적에도 왜인지 난 땅바닥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div> <div> </div> <div>그러다 문득 노인의 시선이 내 등 쪽을 향하며 그가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 웃기 시작했다. </div> <div>등골이 서늘해지는 참으로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한순간 웃음을 뚝 그치더니 이내 엄청나게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구슬 내놔!!"</div> <div> </div> <div> </div> <div>백발의 노인이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찬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div> <div> </div> <div>이에 내 존재를 알아챈 다른 망자들이 마을에서부터 몰려오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div> <div> </div> <div>난 앞쪽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div> <div> </div> <div>비록 아직 다리의 피로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뛸 수가 있었다.</div> <div> </div> <div>다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자들의 절규가 내 두 다리를 쥐어잡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살고 싶어.. 제발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한 번만 가족을 보게 해 줘...]</div> <div> </div> <div> </div> <div>난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봤다.</div> <div> </div> <div>(허억!!)</div> <div> </div> <div>구슬픈 문장을 읊어 대며 죽일 듯이 날 쫒아 오는 그들의 괴악한 모습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div> <div> </div> <div> </div> <div>"싫어! 안 돼!!"<br> </div> <div> </div> <div>난 다리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일부로 의식해 힘을 주며 산길을 내달렸다.</div> <div> </div> <div>허나, 산의 가파름은 20대 여인이 달리기엔 그리 쉬운 환경이 아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허억.. 허억..."<br></div> <div> </div> <div>점점 체력이 고갈되며 늦춰지는 나와 달리, 뒤의 수많은 그들은 마치 날아오듯 연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div> <div> </div> <div>(안 돼...)</div> <div> </div> <div>내 발걸음 뒤로 들려오는 한탄은 어느새 살기 어린 협박으로 바뀌어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이 년아, 거기 안 서?! 구슬 빨리 내놔!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들의 외침은 갈수록 더 커져만 갔고 극복할 수 없는 공포감에 다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하아.. 안 돼,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div> <div> </div> <div> </div> <div>절망하며 거의 기다시피 오르막길을 뛰는 내 뒤로 그들의 손짓이 닿을 듯 말 듯 느껴졌다.</div> <div> </div> <div>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 버릴 그 절박한 순간, 내 앞에 기적 같이 계단이 나타났다.</div> <div> </div> <div> </div> <div>등산로처럼 잘 정비된 그 통나무 계단은 경사를 기울여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div> <div> </div> <div>(사..살았다!!)</div> <div> </div> <div>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난 달리는 속도를 한층 높여 계단으로 뛰어 올랐다.</div> <div> </div> <div>이어서 무리하며 넓은 보폭으로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내려가자 야밤의 차가운 바람이 온몸에 부딪혔다.</div> <div> </div> <div>그 와중에도 망자들의 외침은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연신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무..물소리다!!!)</div> <div> </div> <div>순간, 저 아래서부터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div> <div> </div> <div>난 온 신경을 다리와 귀에 집중한 채 흐릿한 그 소리를 따라 길을 헤매어 달리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차..찾았다!!"</div> <div> </div> <div> </div> <div>얼마 안 가 내 왼편에서 달빛을 받아 난잡하게 반짝이는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div> <div> </div> <div>드디어 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젠 내 등 바로 뒤에서 놈들의 숨소리가 느껴졌다.</div> <div> </div> <div>(안 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div> <div> </div> <div>난 이제 등불까지 내던진 채 양 팔로 나무들을 밀어내며 몸에 가속도를 주었다.</div> <div> </div> <div>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계곡만을 응시한 채 그곳에 가까워지자, 뒤에서 외쳐 대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들려왔다.</div> <div> </div> <div> </div> <div>[안 돼.. 제발 가지 마!!!]</div> <div> </div> <div> </div> <div>난 슬피 울어 대는 망자들을 무시한 채 계곡 바로 앞까지 뛰어갔다.</div> <div> </div> <div> </div> <div>"끄..끝이야!!!"</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게 마침내 계곡에 들어서며 발을 담구는 그 순간, 하늘에서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div> <div> </div> <div>온 공간을 떨리게 만드는 그 엄청난 소리 뒤로 하늘에서 갑자기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뭐야?! 왜 하필 지금..."<br> </div> <div> </div> <div>그것은 비라기보단 거의 창과 같았다. </div> <div>고드름만한 굵기의 거센 물방울들이 내 어깨와 머리를 강타해 댔으며 그 충격에 난 앞으로 전혀 나아갈 수가 없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아..안 돼!!"</div> <div> </div> <div> </div> <div>이윽고 계곡은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리며 인근에 빽빽이 세워져 있던 나무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그 괴물과도 같은 물살에 난 하염없이 끌려갔고 날 따라오던 망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살려줘!! 빨리 구슬.. 구슬!!!]</div> <div> </div> <div> </div> <div>한밤의 늑대처럼 울부짖는 그들의 절규가 내 귓가에 아주 선명히 맴돌았다.</div> <div> </div> <div>이런 와중에도 구슬을 찾아 대는 그들이 이젠 오히려 역겹게 느껴졌다.</div> <div><br></div> <div> </div> <div>그렇게 왜인지 서서히 작아지는 주위의 소리와 함께 내 시야도 점차 어두워져 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한여름의 햇살과 선선한 산바람이 내 몸을 감싸안아 왔다. </div> <div> </div> <div>그 기분 좋은 감각에 난 천천히 눈을 뜨며 흐릿하게 번진 시야로 주위를 둘러봤다.</div> <div> </div> <div>제멋대로 자란 굽은 나무들과 못생긴 바위들, 그리고 하늘의 틈으로 물 새듯 들어오는 하얀 빛줄기까지.</div> <div> </div> <div> </div> <div>"여..여긴?!"</div> <div> </div> <div> </div> <div>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누워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div> <div>  </div> <div>세 방향으로 뻗친 길들과 그 중앙에 있는 표지판 두 개, 왼쪽을 향한 곳엔 글자들이 붉은색으로 번져 있었으며 오른쪽을 향한 곳엔 계곡이라는 단어가 무심히 적혀져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드디어..드디어 돌아왔어..."</div> <div> </div> <div> </div> <div>잡고 있던 모든 긴장이 다 풀리자 이어지는 몸의 반응은 힘이 빠져 버린 다리와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이었다.</div> <div> </div> <div>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 대는 내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일 리는 없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생각에도 없었다.</div> <div> </div> <div>단지 이제 끝났다는 그 생각 하나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난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길을 이루는 계단들과 울타리를 본지 약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몇 년 만에 보는 고향 집처럼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div> <div> </div> <div>그렇게 잽싸게 입구까지 내려오자 주차장에 외로이 서 있는 내 차가 눈에 들어왔다.</div> <div> </div> <div>난 빠르게 차로 뛰어가며 곧바로 열쇠를 꺼내 차 문을 열었다.</div> <div> </div> <div>평소엔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구박만 하던 차가 이젠 마냥 고맙게 느껴졌다.</div> <div> </div> <div> </div> <div>난 차에 들어가 운전석에 앉은 뒤 눈 앞의 전경을 바라보며 이내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그러자 곧 정신이 편안해지며 아까까지의 모든 기억들이 단순히 꿈처럼 느껴졌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래, 그건 그냥 악몽이었을 거야."</div> <div> </div> <div> </div> <div>그러다 문득 아까 봤던 스님이 떠올랐다.</div> <div> </div> <div>너무나 평온해 보였던 그 얼굴이 어쩐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자, 마치 날 반기듯 골골대는 엔진음이 이어서 들려왔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런데 지금 몇 시지?"<br> </div> <div> </div> <div>난 시선을 내려 차에 있는 디지털 시계를 바라봤다.</div> <div> </div> <div> </div> <div>[88:88]</div> <div> </div> <div> </div> <div>"뭐..뭐야?!"<br> </div> <div> </div> <div>모든 빛이 들어온 디지털 숫자 특유의 그 문양에 난 당황하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곳엔 시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div> <div>시침, 분침, 초침, 그 어떤 바늘도 없이 숫자만 적혀 있는 그 시계는 도저히 내가 알던 물건이 아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자..잠깐만..."<br> </div> <div> </div> <div>난 그때 깨달았다.</div> <div> </div> <div>산을 내려와 지금까지 날 제외한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가 않았다는 것을.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살기마저 느껴지는 여름의 햇빛은 그저 무심히 검은 본넷을 달구고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그 앞에 서서 힘겹게 대화를 해대는 두 명의 남자는 옷이 다 축축하게 젖어 표정이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div> <div> </div> <div> </div> <div>"나 참, 이 여자 차 두고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이봐 박형사, 정말 CCTV에 찍힌 거 맞아?"<br> </div> <div>"네.. 분명 3일 전에 이 쪽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그런데..."</div> <div> </div> <div>"그럼 저쪽에서 나와야 하는데 왜 저쪽 CCTV엔 찍히지가 않았냔 말이야?!"<br> </div> <div>"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 코스는 길이 하나에 그리 길지도 않아 헤매었을 리가 없는데..."</div> <div> </div> <div>"아니, 도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이 여자?"<br>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div> <div> </div> <div>운동을 목적으로, 놀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단순히 취미로 온 그들은 버티기 힘든 여름 날씨에도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다.</div> <div> </div> <div>이 길을 여러 번 걸은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처음 밟아 보는 길이리라.</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작은 갈림길에 들어선다.</div> <div> </div> <div>그의 앞으로 보이는 두 개의 표지판, 한쪽은 글씨가 붉게 번져 알아보기가 힘들다.</div> <div> </div> <div>그가 양옆 길과 팻말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div> <div> </div> <div>그렇게 이어지는 그의 '초행길'은 갈수록 어두워져 결국엔 흔적마저 남지 않을 뿐이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끝-</div> <div> </div> <div> </div><br>
    출처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kfs4079/1720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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