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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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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3503
    작성자 : bsn
    추천 : 16
    조회수 : 2165
    IP : 117.123.***.102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7/05/15 21:57:11
    http://todayhumor.com/?panic_93503 모바일
    [단편] 앨리스
    옵션
    • 창작글
    <div style="text-align:left;"><img style="width:159px;height:168px;" alt="300px-Alice-white-rabbit.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5/149484239621a0b8e9b8a64b6a8c1b2f888f86b496__mn719979__w300__h459__f51800__Ym201705.jpg" filesize="51800"></div> <div> </div> <div><strong>앨리스</strong></div> <div><strong></strong> </div> <div>『잿빛의 무뚝뚝한 건물들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흘러들어 온다.<br> <br>각각의 벽에서 난반사되며 어지러이 하늘을 떠돌던 빛들은 곧 땅에 다다르며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을 힘겹게 비춘다.』<br> <br> <br>"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br> <br> <br>25명의 사람들이 길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다.<br> <br>그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 한다.<br><br>한순간, 한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울리지 않는 고음의 목소리로 소리친다.<br> <br> <br>"여러분 저기를 보세요!!"<br> <br> <br>그러자 수십 개의 눈들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며 이내 어느 한 곳에 도달한다.<br> <br> <br>"뭐..뭐야 저게?!!"<br><br> <br>25명의 사람들이 같은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엔 간결한 기호들의 집합 대신 귀품있는 필기체의 문장들이 갈겨져 있었다.<br> <br><br>[토끼를 잡는 사람은 나갈 수 있습니다.]<br> <br><br>계속해서 그 아래의 문장을 읽어 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한다.<br><br> <br>[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br> <br> <br>"이보시오들, 이게 도대체 뭐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니?"<br> <br> <br>한 중년 신사의 말을 시작으로 조용했던 도시가 한순간에 요란하게 울려 댔다.<br>둘씩 또는 셋씩 짝을 이루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br><br><br><br>"연아, 이게 뭐야... 나 무서워.."<br> <br>"괜찮아 현아, 아무 일 없을 거야."<br> <br> <br>한 쌍의 연인이 두 손을 꼭 잡은 채 서로를 달래 주고 있다.<br> <br>일행으로 보이는 그 옆의 남자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br> <br> <br>"야! 저게 뭐냐?!!"<br> <br>"뭐..뭐가?"<br> <br> <br>준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난 준우의 얼굴을 살폈다. <br> <br>준우는 멍하니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br> <br>난 그런 준우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br> <br> <br>"뭐..뭐야 저게?!!"<br> <br> <br>그곳엔 웬 커다란 토까 인형이 서 있었다. 아니, 건물보다 더 큰 토끼 인형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br> <br>안경을 끼고 체크무늬 옷을 걸친 채 손엔 시계를 들고 있는 하얀 토끼, 그것은 완전한 동화의 산물이었다. <br> <br><br>〔 꺄아아악 〕<br> <br>이어진 현이의 비명으로 하늘을 바라본 사람들이 뒤늦게 인형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br> <br> <br>"뭐야 저거?!!"<br> <br>"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br> <br>"으아아앙 엄마~"<br> <br> <br>여자의 앙칼진 비명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고함소리,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난잡하게 울려 대는 공포의 메아리를 만들어 냈다.<br> <br>메아리는 맞부딪힐수록 더한 두려움을 가져오며 사람들의 이성을 빠르게 마비시켜 갔다.<br> <br>허나, 모든 사람들이 패닉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br> <br>한 남자가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큰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한 것이다.<br> <br> <br>"여러분 진정하십시오!"<br> <br> <br>훤칠한 키에 체격까지 좋은 그의 풍채는 영락없는 리더의 실루엣이었다.<br> <br> <br>"여러분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br> <br> <br>요동치던 메아리가 하나둘씩 사라지며 고요해지는 도시엔 곧 그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br> <br> <br>"일단 조를 나눠 주변을 살펴보고 저 토끼 인형을 조사하러 가봅시다."<br> <br> <br>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가 리더였다는 듯 아무런 반대 없이 그의 의견을 따랐고, 이어서 5명씩 5개의 조가 만들어졌다.<br> <br>나와 현이와 준우는 리더 아저씨와 그의 부인으로 조를 이루게 되었다.<br> <br> <br>"연아, 나 진짜 무서워..."<br> <br>"괜찮아 걱정하지마. 너한텐 아무런 일도 없을 거야."<br> <br> </div> <div><br>난 내 옆의 현이와 주연이를 바라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br> <br>하늘의 대부분의 여백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br></div> <div>그와 대조적으로 밝게 빛나는 보름달과 검은 푸른빛의 구름이 어쩐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br> <br>내 직관에 의존한 불안한 감이 온몸을 적셔왔다.<br> <br>필연적으로 이것이 좋게 끝날 리는 없다.<br> <br> <br> <br> <br> <br>"자, 1조와 2조는 여기에 머무르면서 베이스캠프를 지켜주십쇼. 그리고 나머지 조는 사거리를 따라 각각 동쪽, 북쪽 그리고 서쪽 일대에 다른 사람 또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무언가가 있나 살펴볼 것입니다."<br><br> <br>그의 말이 끝나자 곧 세 그룹이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br><br>사거리의 서쪽엔 상업지구가 있었고, 북쪽엔 높은 빌딩들, 그리고 동쪽엔 고급진 주택가가 펼쳐져 있었다.<br><br>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행렬엔 모두가 어두운 표정을 간직한 채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br> <br> <br> <br> <br> <br>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때쯤 문득 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br><br><br>"연아.. 너는 괜찮아..?"<br> <br>"어, 나? 나야 당연히 괜찮지.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마 현아.. 부탁이야."<br> <br> <br>이렇게 말로라도 현이를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나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드리기가 힘들었다. <br><br>무엇보다도 주변의 풍경이 공포스러웠다. <br> <br>비록 아무도 말하고 있진 않지만 이 주택가는 뭔가 철저히 잘못됐다.<br> <br> <br>일단 주변의 풍경을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다.<br> <br>직진으로 뻗쳐진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주택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br> <br>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br> <br>아까 사거리에서  본 대로라면 우리가 가는 길 정면엔 그 토끼 인형이 보여야 한다. <br> <br>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인형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br> <br>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허한 하늘과 흐릿한 지평선뿐, 그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br> <br>뒤를 돌아봐도 우리가 출발한 사거리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는다. <br>그저 똑같은 검은 공간과 수평선만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다.<br> <br>이젠 우리가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도 구분하기가 힘들다. <br> <br>마치 나란 존재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그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br> <br> <br> <br>"저..저기 뭔가 있어요!!"<br> <br> <br>준우의 다급한 외침에 우린 모두 준우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br> <br> <br>"이..이게 도대체..."<br><br>"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br> <br> <br>그곳엔 아까의 그 거대한 토끼 인형이 변함없이 서 있었다. <br> <br>아니, 그것은 변해 있었다. 살짝 올라간 입고리와 처진 눈매, 그것은 웃고 있었다.<br>아까의 무표정했던 얼굴과 달리, 저 인형은 분명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br> <br>그렇게 천천히 아래로 시야를 내리던 우리는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br> <br>인형의 손엔 커다란 팻말이 들려 있었고 그곳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다.<br> <br> <br>[첫번째 미로의 승자는 여러분입니다.]<br> <br> <br> <br>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아저씨였다. <br> <br> <br>"일단 돌아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겠어."<br> <br> <br>그 말에 우리는 모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br> <br> <br>"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린 이제 여길 나갈 수 있다고요!"<br><br><br>그러자 아저씨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주머니에게 답했다.<br><br> <br>"당신이야말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기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br><br>"우리가 그 사람들까지 신경쓸 여유가 어딨어요... 게다가 우리가 갔다 왔을 때 이 인형이 여기 계속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br> <br>"당신 그게 사람이 할 말이야?! 나 혼자라도 갈 거니까 당신은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br> <br>"아니, 여보!!!"<br> <br> <br>아저씨는 그대로 아주머니를 무시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br> <br>우리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서로 눈을 마주쳤고 그 어색한 분위기에 곧이어 아저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br><br>아주머니가 우리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br> <br> <br> <br> <br> <br>사거리에 도착하자 베이스를 지키던 조들이 우리를 맞이했다.<br> <br> <br>"어때요? 동쪽엔 뭐라도 있나요?" <br> <br>"네, 아무래도 저쪽이 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요?"<br> <br>"네..."<br> <br> <br>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 사거리의 북쪽에서부터 오는 소리였다.<br> <br>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 펼쳐진 모습에 모두 경악했다.<br><br> <br>"뭐...뭐야.."<br> <br> <br>한 남자가 온몸이 시뻘겋게 타고 눈만 부릅뜬 채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br> <br>그의 눈엔 극한의 공포감이 서려 있었으며 마치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 연신 입을 오물거려 댔다.<br> <br>흡사 좀비 같은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걸어오던 남자는 이내 다리를 심하게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br> <br>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br> <br>뭔가 미련이라도 남은 듯 이젠 양손을 이용해 기어오기 시작한 것이다.<br> <br>당연히 그의 그런 처절한 움직임은 얼마 가지 못해 전부 멈춰 버렸다.<br> <br>15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된 그 산 송장의 모든 움직임이 갑작스레 끊기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br><br>온갖 울음과 비명이 섞인 완벽한 혼란의 도가니였다.<br> <br>허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 팻말의 내용을 도저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br> <br> <br> <br> <br> <br>어느정도 상황이 진정되자 아저씨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br> <br> <br>"학생.. 이름이 뭐지?"<br><br>"주..주연이라고.. 합니다."<br> <br>"그래 주연군, 난 지금 서쪽의 상황을 보러 갈 거야. 아마 한 시간쯤 걸리겠지. 그리고 말인데.. 우리가 봤던 것들은 저 사람들의 안정을 위해서 말하지 않아 줬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지?"<br> <br>"예? 아, 네..."<br> <br>"그래.. 그럼 갔다오마."<br> <br> <br>그렇게 아저씨가 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우가 내게 다가왔다.<br> <br> <br>"야 괜찮냐..?"<br> <br>"어? 어.. 괜찮아.."<br> <br> <br>내가 한 말과는 달리, 내 상태는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었다.<br> <br> <br>"아까 그 팻말 있잖아..."<br> <br> <br>팻말이란 단어에 난 신경질적인 어조로 준우의 말을 끊었다.<br> <br> <br>"야, 그 얘긴 하지 말자."<br> <br> <br>그러자 준우가 한결 무거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br> <br> <br>"우리가 아까의 일에 대해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왜냐면 우린 아무런 사실도 몰랐으니까."<br> <br> <br>난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br> <br> <br>"그만하라고."<br><br> <br>얼마간의 침묵이 끝나자 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br> <br> <br>"알겠어. 그리고 가서 니 여친 좀 챙겨라. 쟤도 분명 생각이 많을 거다."<br> <br>(맞아! 현이!!)<br> <br>난 준우의 그 말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br> <br><br><br>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br> <br>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밝고 활기찬 현이에게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br> <br> <br>"현아, 좀 괜찮아..?"<br> <br> <br>그 소리에 현이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br> <br> <br>"연아... 우리 어떡해..."<br><br> <br>난 현이를 감싸안으며 달래 줬다.<br> <br> <br>"괜찮아 현아... 아까 그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야.."<br><br>"하지만.."<br><br>"우리는 아무런 사실도 몰랐을 뿐이야. 그게 다야 현아..."<br> </div> <div> </div> <div>난 그저 단순히 현이를 안아줄 뿐 그 이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div> <div> </div> <div>그런 나의 무력한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왼쪽에서 아저씨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br> <br>아저씨는 한 시간 전에 길을 나섰을 때처럼 홀로 도로를 걸어오고 있었다.<br><br>난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걱정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br> <br> <br>"아무도.. 없었나요..?"<br> <br><br>그러자 아저씨는 고개를 들어 날 한 번 힐끗 보더니 이내 다시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br> <br> <br>"그래... 상업지구엔 사람이 지나간 흔적조차 없더구나..."<br> <br> <br>그렇게 답하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불규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br> <br>그러나 난 따로 말을 더 시키진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마음에 편했기 때문이다.<br> <br> <br> <br>아저씨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출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br> <br>도중에 현이와 연이를 살펴보니 둘은 꽤나 큰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br><br>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다.<br></div> <div>그럼에도 친구로서 저 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하다.<br> <br>하지만 세 명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보단 한 명이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 훨씬 낫겠지.<br> <br>나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저 둘도 곧 힘을 낼 거고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br> <br> <br> <br> <br> <br>조용한 도시의 도로엔 십수 명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br> <br>수많은 저벅거리는 소리들이 모여 이루어진 화음이 썩 듣기 좋지는 않다.<br> <br>그러다 문득 한 남자가 한참을 이어가던 그 지루한 리듬에 지쳐 입을 열기 시작한다.<br> <br> <br>"이보시오, 도대체 그 토끼가 어디 있다는 거요?!"<br> <br> <br>그 말에 아저씨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br> <br> <br>"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분명 이쯤 걸으면 인형이 나타날 텐데..."<br><br>"거, 서쪽이 제대로 된 길이었던 거 아니오?!"<br> <br>"아닙니다! 분명 거기엔..."<br><br> <br>순간,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말을 가로채며 입을 열었다.<br> <br> <br>"분명 이 길이었다니까요! 그렇게 못 믿겠으면 그냥 가고 싶은 데로 가시던지."<br> <br> <br>나도 아저씨의 편을 들며 젊은 남자에게 말했다.<br> <br> <br>"조금만 더 걸어 봐요. 우린 분명히 이 길에서 그 인형을 봤어요."<br><br>"아니.. 그래, 알겠어... 그나저나 여기 진짜 빌어먹게 무섭네.."<br> <br><br> <br>오랫동안 걸어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은 안정된 듯하였다.<br> <br>현이도 이제 좀 가라앉았는지 내가 미소를 지어주면 따라서 웃어 주고 있다.<br> <br>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도 인형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br> <br>대략 시간을 어림해 보면 우린 지금 인형이 보이던 지점에서 약 20분 정도를 더 걸어왔다.<br> <br>하지만 인형은 실루엣도 보이지 않는다.<br><br>이 이상한 도시에 어느정도는 적응해 그것이 놀랍진 않지만, 이대로 이 안에 갇혀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상상 따위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다.<br> <br>어서 빨리 인형이 나타나야 할 텐데...<br> <br><br> <br>"저..저기를 보세요!"<br> <br> <br>한순간, 맨앞의 여자가 소리쳤다. <br> <br><br>"뭐야? 저 인형.."<br> <br>"저거.. 왜 저러고 있어?"<br> <br><br>그때처럼 갑자기 나타난 토끼 인형은 전과 달리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 채 하늘에 떠 있었다. <br>아니, 그것은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날리듯 상하좌우로 요동치며 우리에게서 천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br> <br>주위의 풍경은 어느새 복잡한 시가지로 변해 있었고 수많은 표지판엔 모두 똑같은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br> <br> <br>[토끼가 낯선 이방인들을 피해 도망간다. 저 잽싼 토끼를 무슨 수로 따라잡을까.]<br> <br><br> <br>난 그 뒤의 상황을 바로잡을 수 없었다. <br> <br>모든 사람들이 인형을 쫒아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엔 내 아내의 모습도 섞여 있었다.<br> <br>난 아내를 따라잡으려 했다. <br>하지만 난 아내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잡지 않았다.<br> <br>아내는 작은 맨홀 위를 뛰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이 미처 읽지 못 한 그 문장이 내 눈엔 아주 선명하게 들어왔기 때문에...<br> <br> <br>[동시에 땅밑의 하얀 뿌리들은 지나가는 이방인을 잡아가네.]<br> <br> <br> <br>한순간, 땅에 있던 모든 맨홀 뚜껑이 날라가며 그 안에서 하얀 팔이 튀어나왔다.<br><br>성인 남성 3명 정도의 길이의 팔들은 곧바로 가까운 사람들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맨홀 안으로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다.<br> <br>그 과정에서 방향이 맞지 않아 땅에 머리를 부딪힌 사람들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br><br>그 모든 상황이 일어나는 데에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br> <br>사람들은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뒤로 엎어진 채 맨홀에서부터 빠르게 물러섰다.<br><br>그렇게 한 시간 같던 몇 초가 지나자 그 팔들이 천천히 다시 올라왔다.<br><br><br>"꺄아아악!!"<br><br>"흐어어억!!"<br><br><br>그것들의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br> <br>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빨간 잉크를 흩뿌려 놓은 듯한 그 참혹한 모습에, 사람들은 그저 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br> <br>허나, 피로 얼룩진 팔들은 남아있는 나약한 사냥감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div> <div> </div> <div>그것들은 단지 손에 뭍은 피를 어떻게든 닦아 내고 싶어 했다.<br><br>이내 팔들은 마치 그들에게 끔찍한 오물이라도 뭍은 듯 격렬히 팔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br><br>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핏방울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그들에게 무력감을 새겨 줄 뿐이었다.<br> <br>피가 조금 씻겨 나가자, 그 기괴한 살육의 팔들은 곧 자신의 맨홀 뚜껑을 찾아 땅을 더듬기 시작했다.<br> <br>얼마 안 가 자신의 방패를 찾은 팔들은 그대로 지하에 돌아가며, 그 어두운 공간에서 다시 찾아올 사냥감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br> <br> <br> <br> </div> <div><br>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1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br> <br>고개를 흔드며 천천히 시야를 내리자 앞으로 뻗쳐진 내 팔이 두 눈에 흐릿하게 들어왔다.<br><br>그 끝의 손은 다른 손을 잡기 위해 활짝 펼쳐져 있었지만 그곳에 다른 손은 없었다.<br>희미하게 떨려 대는 그 손은 결코 아내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br> <br>잠시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내 손에서부터 주변으로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br> <br>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울어대는 사람들, 도로 곳곳을 넘어 근처 건물에까지 튀어 있는 붉은 액체와 덩어리들...<br> <br>난 아내가 뛰어가던 길을 바라봤다.<br> <br>작별 인사도 하지 못 한 채 떠나간 아내의 자리엔 불꽃처럼 펼쳐진 핏자국만이 남겨져 있었다.<br> <br>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지더니 이내 찌릿한 고통이 다리를 타고 가슴까지 올라왔다.<br>동시에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입에선 어린애 같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br> <br>그렇게 조용한 도시엔 남은 이들의 울음소리가 비탄의 하모니를 이루며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이었다.<br> <br><br> <br>나와 현이와 연이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나였다.<br> <br>차츰 시야가 선명해지며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내 앞에서 엎어진 채 흐느끼는 아저씨의 모습이었다.<br> <br>아저씨의 그런 처참한 모습에 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br> <br> <br>"아저씨...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우린 가야 해요.."<br> <br> <br>그러자 아저씨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br> <br> <br>"우리 아내... 우리 아내..."<br><br> <br>입을 뻐끔거리며 아내를 찾는 아저씨의 모습이 참으로 비참해 보였다.<br> <br> <br>"죄송해요 아저씨... 하지만 저 괴물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우린 몰라요. 분명 아주머니도 우리가 여기서 똑같이 죽길 원하진 않을 거예요."<br> <br> <br>엎드린 채로 계속 울던 아저씨는 그 말을 듣자 서서히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br> <br>좌절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저씨는 이내 표정을 굳히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br><br><br>"그래.. 학생 말이 맞아... 우리 아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꼭 살려서 내보내야 해.."<br><br><br>아저씨는 이어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br><br>난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이와 연이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br><br><br>"연아.. 현아..."<br> <br>"어.. 어?"<br> <br> <br>둘의 표정은 극단적으로 경직되어 있었으며 동공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br> <br> <br>"야! 정신들 차려! 여기 계속 있으면 저 괴물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른다고!"<br> <br> <br>괴물이라는 말에 둘은 정신을 차린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br> <br> <br>"마..맞아! 토끼는.. 토끼는 어디 갔어?"<br> <br>"계속 날아가고 있어. 빨리 쫒아가지 않으면 놓칠 거야."<br> <br>"그..그래 최대한 빨리 여길 나가자.."<br> <br> <br>그렇게 말하는 연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br> <br>난 그런 연이를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다.<br> <br> <br><br>내 앞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br>한순간, 나와 현이 또는 준우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br> <br> <br>"연아... 너.. 아까 죽을 뻔 했어..."<br> <br>"어..어?"<br> <br> <br>현이의 그 말에 방금 전의 상황이 뇌리를 스쳤다.<br> <br>내 옆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가는 현이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은 그 순간,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사라졌다.<br>내게 핏분수를 뿜으며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br> <br>아직도 눈앞에 선명한 그 광경이 머릿속을 가득 메어 오고 있는 와중에, 순간 얼굴을 쓰다듬는 여인의 손결이 느껴졌다.<br> <br> <br>"연아... 내가 얼굴 닦아줄게.."<br><br> <br>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br>지극히 당연한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br> <br>난 그대로 현이를 쎄게 끌어안았다.<br> <br>갑작스런 포옹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현이도 곧 내 맘을 안 듯 날 껴안아 주었다.<br> <br>그 순간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은 현이뿐이었다.<br>그저 현이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div> <div> <br> <br> <br> <br><br>내 잘못이다. 모두 내 잘못이다. 내 아내는 나 때문에 죽었다.<br> <br>난 그 찰나의 순간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잡지 않았다.<br>고작 그따위 글 한 문장이 무서워서 아내를 죽게 만들었단 말이다.<br> <br>결코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온몸을 옥죄여 왔다.<br><br>생각해보니 난 이 세상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악질이었다. 아니, 인간이라 불릴 자격도 없었다.<br><br>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자였다.<br> <br>그 순간, 머릿속에서 일부로 잊혀졌던 그 날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br> <br> <br> <br>폭풍우가 치는 밤의 드넓은 곡창지대, 그곳에서 절망적으로 버티는 군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위하는 나.<br><br><br>"김 대위님! 퇴각로가 모두 막혔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모두 몰살당합니다!!"<br> <br>"이 중사, 저기 전방 우측에 있는 마을에 반군이 있나?!!"<br> <br>"예, 하지만 무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보입니다!!"<br> <br>"좋아 저길 뚫고 여기서 빠져나간다!"<br> <br>"네, 알겠습니다!"<br><br> <br>우리는 그렇게 마을로 달려갔고 그곳에 있는 반군들을 처치하며 그 생지옥에서 무사히 벗어났다.<br> <br>무장한 군인들의 수는 적었고 우리 측의 피해는 부상도 없었다.  <br> <br>완벽한 작전이었다고 생각했다.<br> <br>허나, 그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민간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이 지나서였다.<br> <br> <br>"이 중사, 절대 민간인에겐 발포하지 않도록 애들한테 전해!"<br> <br>"예, 알겠습니다!!"<br> <br> <br>그날 우리가 죽인 반군들이 전부 민간인이었다는 말을 난 믿지 못 했다.<br> <br>칼을 들고 우리에게 달려들던 그 사람들이 한낱 평범한 주민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br><br>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아이들이 포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반군의 명령을 따르게 된 선량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였다.<br> <br>우린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 가슴에, 다리에 총알을 박았다.<br> <br> <br>그 뒤로 군인을 그만두고 세계 어디선가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10년이란 세월 동안 봉사를 해왔는데 내 아내조차 살릴 수가 없다니.<br><br>참으로 허무했다.<br> <br>아이들한텐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br> <br>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생명을 살리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이들이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div> <div><br>왜 엄마는 살리지 못 했냐면서 비난할까? 혼자 살아 돌아온 아빠를 증오할까?</div> <div><br>그래, 아마도 그러겠지...<br> <br>어쩌면 그냥 이곳에 갇혀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br> <br> <br> <br>"아저씨... 저기.."<br> <br> <br>순간, 갑자기 들려온 학생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이 돌아왔다.<br><br>이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학생을 바라보니 그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저 날 바라만 보고 있었다.<br><br>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난 곧바로 시선을 올려 전방을 쳐다봤다. </div> <div><br>내 시야가 향한 곳엔 또 다른 표지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br> <br>고속도로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크기의 표지판에는 단 두 줄의 문장만이 담겨져 있었다.<br> <br> <br>[여왕님이 묻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리가 없는 것 중에 가장 쌘 것은 무엇일까요?]<br> <br> <br>"아저씨, 이게 도대체 뭐..."<br> <br> <br>어이가 없었다.<br><br>이딴 유치한 장난이나 하는 놈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떠나간 사람들의 목숨을 갖고 장난쳤다는 것이 너무나 분했다.<br><br><br>사실 서쪽의 상업지구엔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br> <br>그 길의 끝엔 숨이 멎은 다섯 명의 사람들이 다섯 개의 어항에 각기 나뉘어 들어가 있었다.<br> <br>모두 눈을 부릅 뜬 채 기괴한 자세로 물속에 떠 있는 그 광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br> <br>그 순간, 가슴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br><br>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난 그저 어떻게든 이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다.<br><br> <br>"야 이 개XX야!! 사람 목숨 가지고 이딴 장난질하니까 좋냐?! 이 미친 싸이코 새끼야!!"<br> <br> <br>아저씨의 그런 갑작스런 태도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br> <br> <br>"어떻게 니까짓 놈이 맘대로 누가 살고 죽을지를 결정하냐?! 이 씨발 새끼야!!"<br></div> <div>"아..아저씨..."</div> <div> <br> <br>이어지는 짧은 정적 뒤에, 갑자기 표지판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앞뒤가 뒤집어졌다.<br> <br>그렇게 드러난 표지판의 하얀 면엔 방정맞은 문장 한 줄만이 붉게 써져 있을 뿐이었다.<br> <br> <br>[땡~ 정답은 뱀입니다~]<br> <br> </div> <div>그 뒤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br>아저씨의 욕지거리도, 빌딩을 타는 바람 소리도, 우리들의 심장 박동도 들리지 않았다.<br> <br>그 마이너스의 데시벨은 분명 길진 않았지만 왜인지 우리의 지각은 그것을 선명하게 오랫동안 느낄 수 있었다.<br> <br>그렇게 한순간의 침묵이 사라지고 이어지는 첫 소리는 우리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br> <br> <br> <br>"뭐야, 뒤의 도로가 왜?!"<br> <br> <br>난 내 눈을 믿지 못 했다.<br> <br>우리가 방금까지 걸어오던 도로가 한순간에 끊어지며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br> <br> <br>"뒤로 가는 길이 막혔어..."<br><br> <br>그것은 마치 무엇인가가 끌어당기듯 계속해서 회전했고, 이내 똑바로 서며 우리의 뒤에 벽을 만들었다.<br> <br>그 어떤 손상도 없이 하늘의 끝을 향해 펼쳐진 도로의 모습에 우린 모두 정신이 아찔해졌다.<br> <br>사람들은 패닉에 빠졌고 다시 그때처럼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br> <br> <br>"현아, 내 손 꽉 잡아!!"<br> <br> <br>난 현이의 손을 잡은 채 준우의 옆에서 달리기 시작했다.<br> <br>그 순간, 갑자기 양옆에서 스스슥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br> <br>마치 콘크리트가 통째로 갈리는 듯한 그 기괴한 소리에 난 몸만 앞으로 향한 채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봤다.<br> <br> <br>"흐어어..흐악!!!"<br> </div> <div><br>난 그 이상 옆을 더 바라볼 수가 없었다.</div> <div><br>십수 채의 고층 건물들이 뱀처럼 흐물거리며 우리를 노려다 보는 모습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br></div> <div>그 괴이한 콘크리트의 뱀들은 이윽고 자신의 머리를 땅에 박아 대기 시작했다.<br><br>자신들 앞을 지나가는 먹이들을 겨냥하며 우리를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br> </div> <div> <br>"흐어어악!!"<br></div> <div> </div> <div> 〔 콰광 〕<br> <br>순간, 우리들 앞으로 한 놈의 머리가 떨어졌다. </div> <div> </div> <div>놈은 마치 그곳에 있는 사람을 땅속으로 파묻으려는 듯 연신 터져 죽은 시신을 공격해 댔다.<br><br>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에 한 손으로 귀를 막으며 우린 그 옆을 지나서 계속 달렸다.<br> <br>발바닥 밑으로 물컹한 것들이 밟히며 질척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작게 맴돌았다.<br> <br>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무시했다.<br> <br>(지금 멈추면 우리가 저렇게 될 거야...)<br><br>난 우리 세 사람을 생각하며 그 고어한 감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br><br>그러면서 동시에 다리가 풀리지 않도록 허벅지와 종아리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며 계속 달렸다.<br><br>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울음소리도 없이 굉음만이 울려 퍼지는 도로엔 어느새 우리들만이 달리고 있었다.<br><br>하지만 우린 그런 걸 파악할 시간도 없었다.<br>우린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 따위가 없었다.<br> <br></div> <div> </div> <div> </div> <div> <br>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가슴에 숨이 한계로 차올랐을 때쯤 난 연이에게 멈춰 달라고 말했다.<br> <br> <br>"여..연아 잠깐만..."<br> <br>"왜..왜 그래, 현아?"<br> <br>"스...숨 좀.."<br> <br>"어? 아..알겠어... 좀만 쉬자."<br> <br> <br>내가 힘들어하며 자리에 주저앉자 날 향한 연이의 걱정스런 시선이 느껴졌다.<br> <br> <br>"난 괜찮아. 그냥 조금 숨이 차서 그래."<br> <br> <br>그렇게 말하며 문득 팔을 내려다보니 연이가 잡고 있던 오른팔이 빨개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br> <br> <br>"미안... 내가 너무 쎄게 잡았지..?"<br> <br>"아니야, 괜찮아. 고마워."<br> <br> <br>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연이도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br> <br> <br>"준우야, 넌 안 힘들어?"<br> <br>"어, 난 체력이 좋아서."<br> <br>"그렇구나.."<br> <br> <br>준우는 그대로 서서 마치 잘 훈련된 군인처럼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br> <br> <br>"너 진짜로 괜찮아..?"<br> <br> <br>그러자 준우가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내게 답했다.<br> <br> <br>"난 걱정 안 해도 돼. 그냥 이 도시는 이상하고 위험하니까 주위를 살피고 있는 거야."<br> <br>"아..알겠어."<br> <br> <br> <br>하늘엔 이제 흘러가는 구름도 없이 그저 선명한 보름달만이 외롭게 떠 있었다.<br> <br>그 둥근 은빛의 구 바로 아래엔 하늘에 닿을 듯 말 듯 높이 펼쳐진 첨탑이 지루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br> <br>허나, 검은 하늘에 가려진 그 흐릿한 창의 끝엔 사람들이 그토록 쫒던 이 도시의 열쇠가 걸려 있다.<br> <br>그곳이 바로 사람들의, 아니 우리들의 목표였다.<br> <br> <br> <br> <br> <br>고작 세 명의 사람이 걷기엔 이 도시는 너무나 크고, 또 너무나 조용했다.<br> <br>마치 거인의 세계에 온 듯한 거대한 건물들은 여타 그 어느 대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지만, 왜인지 도시는 아무런 소리도 내고 있지 않았다.<br> <br>우리는 그 기분 나쁜 고요함 속에서도 계속해서 걸었고 마침내 첨탑 앞의 커다란 원형 공원에까지 도달했다.<br> <br>난 그곳 중앙에 서 있는 한 여인의 조각상을 바라보다 문득 연이에게 말을 걸었다.<br> <br> <br>"연아, 아저씨는 죽었겠지..?"<br> <br>"현아, 그런 것들은 이제 기억에서 잊어버려. 이곳엔 우리들만 있었던 거야, 그렇게 받아드려야만 해."<br> <br> <br>그렇게 말하는 연이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결연했다.<br> <br> <br>"어..."<br> <br> <br>준우는 우리 둘의 대화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br> <br>(준우가 원래 이렇게 과묵하진 않았는데..)<br> <br>연이와 준우는 변해가고 있었다. 이 도시와 그 상황들에 적응하며 감정을 잃어 가고 있었다.<br> <br>그렇게 그 둘은 내가 알던 그들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갔다.<br>이젠 마치 내가 전혀 알지 못 하는 그저 지나가는 남처럼 느껴졌다.<br> <br>허나,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내 안에 있었다.<br> <br>이 모든 일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체 모를 나 자신이 난 너무나 두려웠다.<br> <br>우리가 사거리에서 동쪽 길로 가서, 팔들이 내가 아닌 내 옆의 사람들을 잡아가서, 뱀들이 아저씨와 나머지 사람들만 파묻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미치도록 두려웠다.<br><br>그 순간, 숨이 탁 막히는 듯한 느낌에 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br><br><br>"혀..현아, 왜 그래? 어디 아파..?"<br> <br> <br>난 이성을 잃은 채 그저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br> <br> <br>"얘들아, 지금 우리가 우리가 맞을까..?"</div> <div> </div> <div> </div> <div>그 말에 연이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div> <div><br> <br>"현아, 그게 무슨 소리야..."<br> <br>"우리는 우리를 잃었어.. 우리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야."<br> <br>"그..그게..."<br> <br> <br>연이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준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br>난 그런 둘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근원 모를 망언들을 쏟아 냈다.<br> <br> <br>"우리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비록 우리의 몸은 이곳을 나가도 우리의 정신은 이곳에 갇혀 있을 뿐이야.."<br> <br> <br>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 우리 셋은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br> <br> <br>"우리는 이미.. 죽었어..."<br> <br> <br> <br>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노랫가락이 들려왔다.<br> <br>웅장하면서도 구슬픈 그 멜로디는 우리를 알 수 없는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했다.<br><br><br>"뭐..뭐야..."<br> <br> <br>노래가 시작되고 몇 초가 지나자, 갑자기 원형 공원의 가장 바깥쪽에서 신호등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br> <br>수십 아니, 수백 개의 신호등들이 빨간불과 파란불이 모두 켜진 채 땅속에서 솟아났다.<br> <br>신호등이 모두 나타나자 이번엔 조각상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주 기분 나쁜 여인의 웃음소리였다.<br> <br> <br>"조..조각상이 움직이고 있어.."<br> <br> <br>순간, 공원 중앙에 있던 조각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우리를 향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br><br>그러다 그것의 입술이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갈라지는 고음의 목소리로 외쳐 대기 시작했다.<br><br><br>[감히 여왕의 정원에 들어와 이 땅의 정조를 더럽힌 저것을 찢어발겨라.]<br> <br> <br>그 순간, 모든 신호등에서 한 쌍의 사람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br> <br>신호등 속의 하얀 실루엣들이 마치 TV에서 기어나오는 링처럼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br> <br>수백 마리의 그것들은 마치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br><br><br>"현아, 내 손 잡아!!"<br> <br> <br>난 다시 현이의 손을 잡고 빠져나갈 출구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br> <br> <br>"뭐야, 이거.. 어디로 가야 돼?!"<br> <br> <br>출구는 없었다. 저 괴물들은 원형의 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며 우린 그저 그 원 안의 중심에 서 있을 뿐이었다.<br> <br>뒤에 있는 조각상은 어느새 음을 더욱 높여 고막을 찢는 듯한 고음으로 웃어 대기 시작했다.<br> <br> <br>"여..연아, 우리 이제 어떡해..."<br> <br>"걱정 마 얘들아, 뭔가 방법이..방법이..."<br> <br>(씨발!!)<br> <br>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하늘을 날 수도, 빽빽히 들어찬 저것들을 뚫고 나갈 수도 없었다.<br> <br>우리가 당황하면 할수록 놈들은 그에 맞춰 가속이라도 하는 듯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br> <br> <br>"연아!! 준우야!!"<br> <br>"여긴 그냥 막혔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br> <br>"씨발!!!"<br></div> <div> <br>입에선 연신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허나, 그러는 와중에도 그것들은 계속해서 다가왔다.<br><br><br>"연아!!"<br> <br>"틀렸어.. 연아, 현아... 이게 끝이야."<br> <br> <br>이젠 1m도 채 남지 않았다. </div> <div><br>이렇게 끝난다. 우리 셋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저 허무하게 다른 사람들처럼...<br> <br> <br>"꺄아아악!!"<br> <br>"흐어아악!!"<br> <br> <br>난 그저 현이를 내 품에 감싸고 한 손으론 준우의 팔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br> <br>내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소한 이 둘과는 함께 하고 싶었다.<br> <br>그렇게 놈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뻗쳤다.</div> <div> </div> <div> </div> <div><br>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런 순간이었다.<br> <br>마치 자동차가 들이박는 듯한 엄청난 힘에 그대로 나가떨어지며 현이와 준우를 놓쳐 버린 것이다.<br><br>나와 준우는 동시에 땅바닥에 엎어지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br><br>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쳐다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뒤쪽을 바라봤다.<br><br><br>"허어어어억...'<br> <br>"아아아..안돼, 연아!! 준우야!!"<br> <br> <br>놈들은 현이의 머리, 팔, 다리를 잡은 채 더 먼 곳으로 그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br> <br> <br>"연아! 살려줘 제발, 연아!!!"<br> <br> <br>현이는 끌려갈수록 더 큰 소리로 외쳐 댔지만 난 현이를 쫒아갈 수가 없었다.<br><br><br>"현아!! 현아!!!"<br> <br>"연아, 제발..."<br> <br> <br>마치 병풍처럼 서서 가로막는 놈들의 뒤로 들리는 현이의 목소리는 숨막힐 정도로 다급해져 있었다.<br></div> <div><br>"아..안돼, 안돼!!!"<br> <br> <br>그것이 내가 들은 현이의 마지막 말이었다.<br> <br>끔찍한 소리와 함께 하늘까지 튀어오른 핏방울들을 뒤로 현이의 목소리는 멈추어 버렸다.<br> <br>난 그 이상 눈도 감지 못 하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br> <br>현이의 죽음과 동시에 조용해진 공원은 이내 깨끗해졌다.<br><br>하얀 괴물들은 파도가 빠지듯 사라지고 조각상은 어디로 간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br> <br>현이가 끌려간 자리엔 꽃과 풀들을 흠뻑 적신 검붉은 피만이 생생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br> <br>도저히 사람이었다곤 할 수 없는 그 액체만 남은 자리는 당연히 말이 없었다.<br> <br>그런 현이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도 결코 입을 열 수가 없었다.<span> </span><span> </span></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우린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div> <div> </div> <div>눈에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으며 입에선 울음 비슷한 것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div> <div> </div> <div>6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하며 추억을 쌓았던 친구, 연인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각 능력을 무력화시킬 만큼 잔인한 일이었다.</div> <div> </div> <div>머릿속은 완전한 공허 그 자체였다.</div> <div> </div> <div>그렇게 다리의 고통도 느끼지 못 한 채 올라온 옥상엔 토끼 인형이 우리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div> <div> </div> <div>처음의 거대한 크기는 온데간데없고 그것은 이제 한 손에 잡힐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흐으..흐어억..."</div> <div> </div> <div> </div> <div>그 인형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서야 눈물이 흘러나왔다.</div> <div>그 모든 사람들, 그리고 현이의 죽음 뒤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이제서야 터져 나온 것이다. </div> <div> </div> <div>내 옆에 서 있는 벗은 말이 없었다.</div> <div> </div> <div>비록 그의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그 역시도 분명 눈물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div> <div> </div> <div>그렇게 흐릿하게 번진 시야 저 멀리의 인형을 향해 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div> <div> </div> <div> </div> <div>"하지마.."</div> <div> </div> <div>(뭐? 내가 잘못 들었나..?)</div> <div><br>"뭐..뭐라고...?"<br> </div> <div>"하지마라고."</div> <div> </div> <div> </div> <div>차갑고 결연한 그의 목소리에 난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야, 그게 뭔 소리야.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div> <div> </div> <div>"그러니까 만지지 말라고.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건 나야."<br> </div> <div> </div> <div>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위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난 알 수 있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야. 미안하지만 친구야, 난 여기에 갇혀 있고 싶지 않아..."<br></div> <div><br>서서히히 내게 다가오는 그를 경계하며 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div> <div> </div> <div> </div> <div>"경고하는데 이 인형 건들이면 아무리 너라도 가만 안 둬!"</div> <div> </div> <div> </div> <div>그는 나의 말을 계속 무시한 채 내게 다가오는 속도를 점점 높여 왔다.</div> <div> </div> <div><br>"야, 이 새끼야! 오지 말라고!!!"</div> <div> </div> <div>"미안하다..."<br> </div> <div> </div> <div> </div> <div>두 명의 남자가 차디찬 건물의 꼭대기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div> <div> </div> <div>둘은 마치 중앙에 있는 인형이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투사의 검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div> <div> </div> <div>참 비참하고도 우스운 광경이었다.</div> <div> </div> <div>둘이 6년지기 친구 사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지기도 한다.</div> <div> </div> <div>자세히 보니 둘의 모습은 상당히 비슷하다. 입고 있는 옷도, 체격도, 그리고 얼굴까지.</div> <div> </div> <div>누가 누구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참 어려울 정도이다.</div> <div> </div> <div>그때, 갑자기 한 놈이 다른 놈을 순식간에 압도했다.</div> <div> </div> <div>그는 거세게 저항하는 상대를 보기 좋게 제압하며 그를 바깥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엎어진 사내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 위의 사내도 그를 필사적으로 짓눌렀다.</div> <div> </div> <div>곧 끝에 도달하자, 머리맡에 보이는 풍경에 절망한 사내가 힘겹게 외쳐 댔다.</div> <div> </div> <div> </div> <div>"제발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아..제발..."</div> <div> </div> <div> </div> <div>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그를 바깥으로 밀어냈다.</div> <div> </div> <div>길게 늘어지는 비명소리와 숨이 찬 호흡이 어우러진 괴이한 하모니가 어두운 창공에 울려 퍼졌다.</div> <div> </div> <div>아마도 그 멜로디가 이 도시에서 연주된 마지막 노래였으리라.</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난 변했다. 살기 위해 평범한 사람에서 살인자로 변해 버렸다.</div> <div> </div> <div>어디서부터가 잘못이었을까.</div> <div> </div> <div>맨홀 주위에 번진 핏자국들을 봤을 때부터?</div> <div>아저씨와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부터?</div> <div>아니면... 현이가 찢겨지는 걸 본 뒤로부터?</div> <div> </div> <div>아니, 잘 모르겠다. </div> <div> </div> <div>어쩌면 이것이 원래의 나, 원래의 '앨리스'였을지도...</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하얀 방엔 두 명의 남자만이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와 환자복을 걸친 남자.</div> <div> </div> <div>좀 더 세련된 남자의 책상엔 의학 관련 서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div> <div> </div> <div>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파란 파일은 이곳에선 흔한 정신질환자들의 프로필이었다.</div> <div> </div> <div>그 명부에 써진 글들에 따르면 남자의 이름은 앨리스, 다중인격자였다.</div> <div> </div> <div>그 순간, 의사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그는 시끄럽게 진동하는 핸드폰이 못마땅한지 주머니에 손을 거칠게 넣으며 알람을 꺼 버렸다.</div> <div> </div> <div>곧이어 그는 자신 앞의 남자를 한 번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서서히 눈을 뜨는 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래서, 당신이 진짜 앨리스입니까?"</div> <div> </div> <div> </div> <div>그로부터 이어진 침묵, 그 한참의 적막 뒤에 한순간 그가 허탈한 듯 웃으며 답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예.. 제가 진짜 앨리스입니다..."</div> <div> </div> <div>"그렇군요."</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끝-</div> <div> </div> <div> </div>
    출처 그림 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EC%9D%B4%EC%83%81%ED%95%9C_%EB%82%98%EB%9D%BC%EC%9D%98_%EC%95%A8%EB%A6%AC%EC%8A%A4/%EC%A0%9C1%EC%9E%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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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15 22:16:07  123.254.***.182  복날은간다  185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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