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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0502
    작성자 : 아마추어눔나
    추천 : 10
    조회수 : 1081
    IP : 175.223.***.197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6/09/06 1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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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는 그의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고속터미널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이들. 전면만을 향한 그들의 시선처럼, A또한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안에 눈길을 가둬놓았다.

    급작스레 찾아오는 정적.

    "..?"

    A는 그 기이함에 고개를 들었다. 줄줄이 이어진 인파와 수 없이 반짝이는 광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그것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의 정지. 작금의 상황에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허공에 '퐁-!'하는 경쾌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귀여운 천사와 악마 한 쌍이었다.

    "네, 네. A씨, 맞으시죠?"

    천사가 물음을 던져왔다. A는 당황하면서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와 악마의 입가에 살풋 웃음이 걸렸다.

    "자, 그럼" 
    "선택할 시간이야!"

    무엇을 선택하란 것일까,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A에게 고했다. 그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ㅁ...뭘?"

    그의 짧디 짧은 물음이 끝날세라, 그의 손에 칼이 한 자루 쥐어졌다. 이내 천사가 선택지를 열고,

    "저 사람을 죽이실 건지,"
    "아니면 안 죽일 건지 말이야!"

    악마가 닫았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무거운 선택지였다. A는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에 대한 말을 꺼내려 했으나 'ㄴ'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전에 천사의 입이 먼저 열렸다.

    "저 자가 손에 쥔 것이 보이시나요?"

    A는 얼떨결에 천사의 손짓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한 행인을 살펴보았다. 그는 오른손에 수트 케이스를 들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인이었다.

    "보이시지는 않겠지만, 저 가방 손잡이의 안쪽에 달려있는 작은 버튼은 이 터미널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소형 폭탄의 격발 장치입니다."

    A는 잠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폭탄? 테러리스트란 말이야?"

    그의 물음에 악마가 대답했다.

    "맞아! 니가 앉아있는 벤치의 팔걸이 아래쪽에도 붙어있었지. 이거야!"

    악마가 A에게 반으로 갈라진 작은 성냥갑같이 생긴 물건을 툭 하고 던졌다. 당연히 기겁하는 A였지만, 터지거나 지문이 묻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악마의 말을 덧붙여 듣고서야 조금 멀찍이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전자부품과 새카만 가루, 그에게 전문지식이 있진 않았으나 적어도 평범한 고속 터미널 벤치에 붙어있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자를 죽이지 않으신다면 폭발로 정확히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을 것입니다."

    A는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면 그 또한 폭발에 휘말렸을 테니까. 칼을 쥔 A의 손아귀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죽이면 넌 살인자가 되겠지. 아마 평생 그 기억이 따라다닐걸? 아, 그리고 일종의 '인질'로 잡혀있는 그의 가족 4명도 같이 꼴깍, 이지."

    "임무에 실패한다고 그의 가족이 죽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아, 괜히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수작은 부리지 말자고 우리. 보장이 없을 뿐이지 가능성이 1에 수렴하는건 사실이잖아? 참고로 임무가 성공하면 그는 풀려난 가족과 감동적인 상봉을 하게 될거야. 나름 그 바닥에도 신용이란게 있는 법이거든."

    "무고한 이들의 피로 범벅이된 상봉이겠죠."

    둘 사이에 약간의 신경전이 일어나는 동안 A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선택지는 어찌보면 단순했다. 한 남자를 죽여서 8명을 살릴 것이냐, 아니면 죽이지 않고 5명을 살릴것이냐.

    "하지만... 죽이면. 죽이고 나면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데?"

    A가 말했다. 그가 테러리스트를 찌르는 순간 주위의 모든 이들이 그가 저지른 살인과 그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합당한 질문이었다.

    "걱정마세요. 목격자들에게 당신은 그저 '누군가'로만 기억될거에요. 아무도 당신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진 못할거랍니다."

    "난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일종의 서비스란거지 서비스."

    당장 시간도 멈춰버린 판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A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차오른 긴장이 그의 목을 태우는 듯 했다.

    "...지금까지 했던 말들, 정말이지? 한 치의 거짓도 없는거지?"

    떨리는 목소리. 그럼에도 굳게 쥐어진 칼이 그의 마음이 기울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이에요."
    "당연하지."

    A는 8명을 살리기로 했다. 그는 피어오르는 죄책감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했던 이다. 심지어 자신도 휘말릴수도 있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결연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멈춰버린 세상, 그의 발걸음 소리가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가 앉아있던 벤치에도, 천사와 악마가 있는 곳도, 테러리스트가 쥐고 있는 가방에도, 그리고 그를 마주보고 서있는 A에까지. 뚜벅임의 잔향이 머물렀다.

    "미안합니다."

    쉭. 휘둘러지는 칼이 테러리스트에 가까워짐과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칼은, 출발했던 곳에서 점점 가속을 받아 '푸욱' 소리와 함께 목줄기에 박혔다.

    'A'의 목줄기에.

    A는 헛숨을 토해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테러리스트는 당황한 듯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삽시간에 비명이 공간을 메웠다.

    "컥...컥...ㅇ..왜..."

    어느새 천사와 악마는 그의 눈 앞으로 다가서 있었다.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조소였다.

    "멍청하긴. 오지랖은 넓어가지고 말이야."

    악마는 A가 자신이 내민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이내 악마는 낄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콰쾅-' A의 귓속으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폭탄이 작동된 것이리라.

    "당신이 따랐던 논리대로에요. 당신이 칼에 찔림으로써 사람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죠. 폭탄의 격발 타이밍도 정확히 7.9초 늦어졌구요."

    "사망자는 1명. 부상자 2명. 생존자는 원래의 운명에서 벗어난 7명과 테러리스트와 그의 가족 4명. 총 12명. 무슨 뜻인지 알겠어?"

    A는 꺼져가는 생명속에서 깨달았다.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선택'을 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음을.

     그는 흐려져가는 의식속에서 힘겨운 눈짓으로 그를 찌른 자를 찾아냈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라보면서도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였으니까. 그 의미없는 눈짓을 마지막으로, A의 숨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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