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오유 바로가기
http://m.todayhumor.co.kr
분류 게시판
베스트
  • 베스트오브베스트
  • 베스트
  • 오늘의베스트
  • 유머
  • 유머자료
  • 유머글
  • 이야기
  • 자유
  • 고민
  • 연애
  • 결혼생활
  • 좋은글
  • 자랑
  • 공포
  • 멘붕
  • 사이다
  • 군대
  • 밀리터리
  • 미스터리
  • 술한잔
  • 오늘있잖아요
  • 투표인증
  • 새해
  • 이슈
  • 시사
  • 시사아카이브
  • 사회면
  • 사건사고
  • 생활
  • 패션
  • 패션착샷
  • 아동패션착샷
  • 뷰티
  • 인테리어
  • DIY
  • 요리
  • 커피&차
  • 육아
  • 법률
  • 동물
  • 지식
  • 취업정보
  • 식물
  • 다이어트
  • 의료
  • 영어
  • 맛집
  • 추천사이트
  • 해외직구
  • 취미
  • 사진
  • 사진강좌
  • 카메라
  • 만화
  • 애니메이션
  • 포니
  • 자전거
  • 자동차
  • 여행
  • 바이크
  • 민물낚시
  • 바다낚시
  • 장난감
  • 그림판
  • 학술
  • 경제
  • 역사
  • 예술
  • 과학
  • 철학
  • 심리학
  • 방송연예
  • 연예
  • 음악
  • 음악찾기
  • 악기
  • 음향기기
  • 영화
  • 다큐멘터리
  • 국내드라마
  • 해외드라마
  • 예능
  • 팟케스트
  • 방송프로그램
  • 무한도전
  • 더지니어스
  • 개그콘서트
  • 런닝맨
  • 나가수
  • 디지털
  • 컴퓨터
  • 프로그래머
  • IT
  • 안티바이러스
  • 애플
  • 안드로이드
  • 스마트폰
  • 윈도우폰
  • 심비안
  • 스포츠
  • 스포츠
  • 축구
  • 야구
  • 농구
  • 바둑
  • 야구팀
  • 삼성
  • 두산
  • NC
  • 넥센
  • 한화
  • SK
  • 기아
  • 롯데
  • LG
  • KT
  • 메이저리그
  • 일본프로야구리그
  • 게임1
  • 플래시게임
  • 게임토론방
  • 엑스박스
  • 플레이스테이션
  • 닌텐도
  • 모바일게임
  • 게임2
  • 던전앤파이터
  • 마비노기
  • 마비노기영웅전
  • 하스스톤
  • 히어로즈오브더스톰
  • gta5
  • 디아블로
  • 디아블로2
  • 피파온라인2
  • 피파온라인3
  • 워크래프트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 밀리언아서
  • 월드오브탱크
  • 블레이드앤소울
  • 검은사막
  •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2
  • 베틀필드3
  • 마인크래프트
  • 데이즈
  • 문명
  • 서든어택
  • 테라
  • 아이온
  • 심시티5
  • 프리스타일풋볼
  • 스페셜포스
  • 사이퍼즈
  • 도타2
  • 메이플스토리1
  • 메이플스토리2
  • 오버워치
  • 오버워치그룹모집
  • 포켓몬고
  • 파이널판타지14
  • 배틀그라운드
  • 기타
  • 종교
  • 단어장
  • 자료창고
  • 운영
  • 공지사항
  • 오유운영
  • 게시판신청
  • 보류
  • 임시게시판
  • 메르스
  • 세월호
  • 원전사고
  • 2016리오올림픽
  • 2018평창올림픽
  • 코로나19
  • 2020도쿄올림픽
  • 게시판찾기
  • 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bsn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6-07-08
    방문 : 172회
    닉네임변경 이력
    회원차단
    회원차단해제
    게시물ID : panic_90021
    작성자 : Wit-Dori
    추천 : 27
    조회수 : 2946
    IP : 124.80.***.133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16/08/14 09:36:12
    http://todayhumor.com/?panic_90021 모바일
    [단편] 영혼 도서관
    옵션
    • 창작글
    <div style="text-align:left;"> <div style="text-align:left;"><img style="width:151px;height:135px;" alt="tumblr_static_31om0pni6c4koccg4owo4s8c4.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8/1471090632581f638e7cd1460da92db43a3073b818__mn719979__w500__h500__f61895__Ym201608.jpg" filesize="61895"></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strong>영혼 도서관</strong><br><br>『천장이 보이지 않는 첨탑과, 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책들.<br>나선형의 도서관은, 마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이무기처럼, 그 모습이 웅장하다.<br>용의 비늘처럼 보이는 형형색색의 책들은, 의식을 뚫고 들어와 이성을 우아하게 현혹시키는 듯하다.<br> <br>각각의 비늘 즉, 책에는 사람들의 영혼이 깃들어져 있다.<br> <br>책의 제목에는 하나같이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고,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전 인생이 담겨져 있었다.<br>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람들,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사람들의 이름을 담은 책들이 시간의 카테고리에 따라 층별로 보관되어져 있었다.<br><br>책은 주인의 수명과 업적에 따라, 그 두께가 천차만별이었다.<br>어떤 자는 4000 페이지 가량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10 페이지도 안되었다.』<br> <br> <br><br><br> <br>이곳이 어느곳인지는 모르지만,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다.<br> <br>다만 신의 선물도 완벽하지는 않았다.<br> <br>신께선 내 이름을 담은 책만을 이 무한한 도서관에서 없애버리신 것이다.<br> <br>덕분에 난 이 능력을 가지고도, 내 영혼의 미래를 볼 수 없다.<br> <br>그래도 뭐 상관없다.<br>애초에 난 내 인생의 마지막 따위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br> <br> <br> <br> <br> <br>오늘도 지하철은 만석이다.<br> <br>그나마 집 근처에 있는 역이 노선의 끝이었기 때문에, 난 항상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br><br>아침과 저녁의 지하철은 사람들의 인간성을 빨아먹는 뱀과 같다.<br>노인을 무시하고 노약자석에 앉는 청년이나, 자리가 났다고 저 멀리서 사람들을 밀며 달려오는 노인이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부럼움 섞인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자나.<br>그들은 모두 지하철로부터 인간성을 빼앗긴, 이기심이라는 껍질만 남은 인간이다.<br> <br>난 그런 그들의 모습이 역겨워,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br> <br> <br> <br>얼마나 잤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귀를 간지럽혔다.<br> <br><br>[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br> <br><br>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간다. <br>그 빽빽한 인간의 숲이 흐르는 물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면, 경탄밖에 나오지 않는다.<br> <br>한데, 그들중에 한명이 날 빤히 쳐다보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인파 속에 묻혀 사라져 간다.<br> <br>(뭐...이젠 별 감흥도 없네...)<br> <br>언제부턴가 지하철에서 '잠'만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br>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br> <br>(내가 잠꼬대를 심하게 하나보네)<br> <br>그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머리도 안 아프고 더 편하다.<br> <br> <br> <br> <br> <br>내가 '영혼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그 능력을 갖게 된 이후로부터, 내게 생긴 한 가지 변화가 있다.<br> <br>나의 꿈.<br> <br>영혼 도서관은 일종의 자각몽 같은 것이다. <br>즉, 꿈 속 세계에서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란 뜻이다.<br> <br>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내 모든 다른 꿈들이 사라져버렸다.<br> <br>정확히 말하면, 격일제로 꿈을 꾸는데 하루는 영혼 도서관 꿈을 꾸고, 다음날은 아무런 꿈도 꾸지 않으며, 이 2일의 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br> <br>모든 꿈을 잃는다는 것이 약간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능력을 위한 대가라고 보면 그렇게 큰 손실도 아니다.<br>이득이 훨씬 더 큰, 남는 거래니까.<br> <br> <br><br> <br> <br>"주 과장, 이것 좀 부탁해. 그리고 오늘 회식이 있긴한데, 힘들면 집에 가서 쉬어도 돼."<br> <br>"예, 알겠습니다 김 부장님."<br> <br>김 부장,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형설지공으로 공부해, 지금은 대기업의 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자수성가의 전형적인 표본이다.<br>성실한 성격에 사람들에게도 항상 천사 같은 그는, 정말이지 완벽한 사람이다.<br> <br>그러나,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 <br>그의 책은 약 700페이지 가량이고, 지금은 680페이지쯤의 인생을 살고 있다.<br>한 마디로, 그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br> <br>(신은 참으로 불공평하시구나...)<br> <br>그의 최후도 그의 인생과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잔인하다.<br>미친 살인마에게 납치돼 사지가 절단되어 죽는다니.<br> <br>하지만, 그에게 그 잔인한 운명을 말해줄 순 없다.<br> <br>영혼 도서관에 존재하는 유일한 '규칙'이 '결코 미래를 바꾸어선 안됀다'이기 때문이다.<br> <br> <br> <br>"부장님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br> <br>"어, 그래 그럼 다음주에 봐~"<br> <br>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직책이 더 높은 사람보다 빠르게 퇴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이 견고한 인맥을 나타내는 증거이다.<br> <br>난 인간관계가 좋다. 모두 다 영혼 도서관 덕분이다.<br>대화를 할 때마다 내가 이끌어 나가고, 나의 유머에 모든 직원들의 웃음이 끊기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br><br><br><br><br><br>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시계를 바라봤다.<br> <br>7시 30분.<br> <br>이어서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br> <br>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의 모습은 산 송장이 따로 없었다.<br>피부는 사막처럼 건조하고,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쳐져 있으며, 눈에선 미세한 붉은 빛이 감돈다.<br> <br>(하...또 이러네...)<br> <br>신의 선물에 대한 또 다른 대가가 있었다.<br> <br>몸의 피로.<br> <br>분명 정신은 맑지만, 몸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이질적인 느낌을 아는가?<br>이 능력을 갖고 난 뒤로 난 항상 그런 느낌이다.<br> <br>몸과 정신 사이의 괴리감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피곤한 것이다.<br> <br> <br>허나, 영혼 도서관을 통해 예지의 신이 되는 그 황홀함은 이 피곤함을 뛰어넘는다.<br><br>(그래도 내일부터 주말이니까 그게 그나마 다행이네)<br><br>난 옷도 벗지 않은 채, 하얀 침대에 몸을 날렸다.<br><br>이윽고 포근함, 익숙함, 피로감이 섞인 오묘한 감각이 전신을 자극했다.<br>그 편안한 느낌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저절로 감겨오며, 익숙한 심연이 눈 앞에 펼쳐졌다.<br> <br> <br> <br><br>그 심연은 오래가지 못 했다. <br> <br> <br> <br>갑자기 밝아져 오는 하얀 빛에 난 눈을 떴다.<br> <br>10시 30분.<br> <br>"하아..."<br> <br>힌숨이 절로 나왔다. 눈을 감았다 뜨니까 바로 아침이라니.<br>박탈감이 느껴졌다.<br> <br>다시 자려고 했지만, 정신이 너무 맑아 포기했다.<br> <br>몸은 여전히 무겁다.<br> <br>난  바로 화장실로 가 샤워기를 틀었다. <br>따뜻한 물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을 타고 흘러갔다.<br>마치 양수에 다시 들어온 듯한 그 느낌에, 방금 전까지의 스트레스가 풀리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br><br><br><br>(오늘은 카페나 가볼까?)<br> <br>샤워를 끝마치고 머리를 털면서 문득 떠오른 그 생각에, 난 오늘의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렸다.<br> <br>(오늘은 아무런 계획도 없네)<br><br> <br><br>헤어 드라이기의 은은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br> <br>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색채로운 가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br> <br>"와~외출하기 딱 좋은 날씨네."<br><br>머리 손질을 끝마친 뒤, 난 옷장에 가 오늘의 완벽한 패션을 머릿속에 구상하기 시작했다. <br><br> <br> <br> <br> <br>가을 낮의 선선한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간다.<br><br> <br>"아~역시 가을이 최고라니까~"<br> <br>난 적당한 가게를 찾아 카페 거리를 돌아다녔다.<br>그런 나의 눈에 한 간판이 들어왔다.<br> <br>"북&커피..? 책이라도 읽는 곳인가?"<br> <br>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그 가게로 들어갔다. <br> <br>"어서 오십시오~!"<br> <br>알바생의 힘찬 목소리가 카페 내에 울려 퍼졌다.<br> <br>손님은 나까지 포함해 총 6명이었다.<br><br>난 바로 카운터에 가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을 했다.<br> <br>"아이스 카푸치노 하나 주세요."<br> <br>"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br><br><br> <br>이어서, 난 자리에 앉아 주위의 테이블을 둘러봤다. <br>남자 4명이 각각의 테이블에 앉아, 어딘가를 멍하게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다.<br><br>난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br> <br>내 옆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br> <br>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br>(허억...맙소사...)<br> <br>포니테일 머리에 갈색이 섞인 눈동자, 그리고 면사포만큼이나 새하얀 그 피부.<br>비너스가 질투를 넘어 증오를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br>그 천사의 용안에 압도되어 하얀 원피스는 제 색을 잃어갔지만, 그녀의 얼굴은 더 밝게만 느껴졌다.<br><br>그녀가 모든 남자들의 시선에 고정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br> <br>책에 집중해 시선을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남자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받는 것이 익숙한 건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책을 읽고 있었다.<br> <br><br><br>순간,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망설이듯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br>마침내 그녀 앞에 선, 그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br> <br>"저..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번...호 좀 주실 수 있나요..?"<br> <br>"싫어요."<br> <br>잔인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구애자의 자존심을 깨부셨다.<br> <br>이윽고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 그대로 카페를 뛰쳐나갔다.<br><br>(남자가 그럴 때는 센스 있게 행동해야지...)<br> <br>여자에 대한 접근법도 모르는, 그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br> <br>난 다시 그녀를 바라보고, 얕은 생각에 잠기었다.<br>그녀의 도도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고,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은 우아하다 못 해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br>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테이블로 향했다.<br> <br>그녀는 내가 자기 테이블에 앉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br>나도 다른 것들은 신경쓰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을 쳐다봤다.<br> <br>(정말 미의 여신 그 자체네...)<br> <br>순간, 그녀의 얼굴에 현혹되어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뻔했다.<br> <br>난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바라봤다.<br> <br>아담한 사이즈에, 제목만 있는 주황색의 책.<br> <br>다행히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던 나에겐, 이 책이 무엇인지 알아 맞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br> <br><br>"안녕하세요, '뤼크레스 넴로드'씨. 전 '이지도르 카첸버그'라 합니다. 읽고 계신 '뇌'는 재밌으신가요?"<br> <br>그녀가 눈만 올려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책에 시선을 집중시켰다.<br> <br>"SF를 좋아하시면, 아서 클라크의 소설들도 추천 드립니다. '라마와의 랑데부'나 '도시와 별'은 읽고 계신 책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거든요."   <br><br><br><br>"그렇긴 하죠."<br> <br>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 만큼이나 달콤한 목소리다.<br><br>"아, 그럼 그 두 작품도 읽어보신 건가요?"<br> <br>"아뇨, 라마와의 랑데부는 아직 못 읽어봤어요."<br><br>"아, 그렇군요. 그럼 꼭 한 번 읽어보세요. SF매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거든요."<br> <br>"네, 고마워요."<br> <br>그녀의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br>난 이 어색한 적막을 깨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굴려댔다.<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저..이름이 어떻게 되세요?"<br> <br>(뭐..? 지금 상황에서 이름을 묻는다고? 젠장, 내가 왜 그런 말을 한 거지?)<br> <br>틀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을 묻는 멍청이가 어디있단 말인가?<br> <br>"이현이요"<br> <br>(음..? 이름을 알려줬다고?)<br> <br>내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결국 난 그녀에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br> <br>"아...예, 그럼 기회가 되면 또 보죠."<br> <br>난 주문한 카푸치노도 잊은 채, 그렇게 카페를 나왔다.<br> <br> <br> <br>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털며 시계를 바라봤다.<br> <br>10시 30분.<br> <br>내가 오늘 일어난 시간과 일치한다.<br>다만 지금이 밤의 10시 30분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br> <br>"이현이라...괜찮은 이름이네."<br> <br>비록 오늘 처음 본 그녀였지만, 그 얼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두 볼이 벌겋게 상기되었다.<br> <br>"그럼 오늘은 그녀의 책을 읽도록 할까?"<br> <br>설레는 기대감에, 난 서둘러 옷을 입고 방으로 향했다.<br><br>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침대가 어김없이 날 맞이한다.<br>난 바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br> <br>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며 눈 앞에 익숙한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br> <br> <br> <br> <br> </div> <div style="text-align:left;">『천장이 보이지 않는 첨탑과, 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br><br> 책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보였으며, 도서관 특유의 그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를 자극해왔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br>"좋았어! 그럼 현재의 '이현'을 찾아볼까?"<br> <br>난 위를 향해 점프했다.<br>이곳에서 난 날아다닐 수 있다. <br>내가 첨탑의 높은 곳에 있는 책들을, 그 어떤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br> <br> <br> <br>"이혁재..이혁찬...이..현!!!"<br> <br>찾았다, 그녀의 영혼을.<br>그녀의 우아함에 걸맞게 책도 순수한 흰색을 띠었으며, 그 두께 또한 남달랐다. <br> <br>"와~1200 페이지나 되네!"<br> <br>사실 페이지가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때, 페이지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br>다만,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이다.<br>잠을 자는 10시간 동안 1200 페이지의 책을 읽으려면, 1시간동안 120 페이지, 1분에 2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br><br>그 시간의 추격을 고려하며, 난 빠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br> <br> <br> <br>전체적인 인생은 모범생의 표본 그 자체였다.<br> <br>중산층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여러 교육을 받고 명문대를 졸업. <br>이후 천재적인 두뇌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국내 교수를 준비하고 있는 29살의 그녀.<br><br>우아한 미모 속에 숨어있는, 그 지적인 면은 완벽한 내 스타일이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br>난 그녀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찾아, 책 속의 문장들을 탐험했다.<br> <br> <br>[ 사는 동안 친구가 없었으며, 아버지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곤 했다. ]<br> <br><br>이유를 찾았다. 그녀에겐 책이 곧 친구였다.<br> <br>즉, 친구가 없는 공허함을 책으로 메꾸려 했던 것이다.<br>그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다시 상상하니, 이번엔 약간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br><br>그 슬픈 감정을 떨치며, 난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br> <br> <br> <br>얼마나 읽었을까.<br>순간, 나의 두 눈동자가 어느 한 문장에서 멈춰섰다.<br><br>그것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br>그녀의 영혼의 마지막...<br> <br> <br>[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살해된다. ]<br> <br><br>"뭐..뭐라고? 안돼..."<br> <br>이럴 수가 없다. 시간 상으로 보면 날 만난 바로 다음날이다.<br>내일 그녀가 죽는다. 그것도 아주 수치스럽고, 비참한 방식으로.<br> <br>난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었다. <br>흔들리는 동공 때문에, 책이 여러개의 잔상과 겹쳐져 보였다.<br>이어서 머리가 심하게 아파오더니,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br> <br> <br> <br> <br> <br>"허억..허억.."<br> <br>난 본능적으로 시계를 바라봤다.<br> <br>8시 15분.<br> <br>난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br> <br>"뭐..뭐야??!!!"<br> <br>내 방의 책장은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있었으며, 분명히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이불은 방문 앞에 너부러져 있었다.<br> <br>잠깐 동안 도둑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꿈의 내용이 떠올랐다.<br><br>난 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br>사방으로 튀어대는 물방울들의 집합만큼이나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어왔다.<br> <br> <br> <br> <br> <br>거리의 간판들을 수색하는 나의 두 눈에 '북&커피'의 이니셜이 들어왔다.<br>난 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br> <br>(책의 내용을 보면 분명 오늘도 올 거야)<br> <br>힘차게 연 문 뒤로,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br>검은 색의 찬란한 생머리는, 뒷모습만으로도 남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br><br>난 그녀의 테이블에 가 자리에 앉았다.<br> <br>"저..안녕하세요. 어제 인사했던 사람입니다."<br> <br>그녀가 이번엔 얼굴 전체를 들어 날 바라봤다.<br>그녀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br> <br>"아~네, 안 그래도 지금 '라마와의 랑데부' 읽고 있는데...재밌네요. 노턴 사령관 님."<br> <br>뒤에 이어지는 눈웃음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br><br>외모, 지력, 센스 그 어느 것도 꿇리지 않는 그녀는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다.<br>그리고 이 새로운 비너스가 내게 미소를 짓고 있다.<br> <br>"아, 그렇군요. 역시 취향저격 책이 맞았네요."<br> <br>"과학적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그래서 재밌고요. 아 그런데, 제가 지금 중앙 도서관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실래요?" <br> <br>도서관이라는 그 단어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지만, 난 이성적 사고를 최대한 유지하려 애썼다.<br><br>그런 나의 머릿속에 결론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br><br><br>[ 절대로 혼자 보내면 안됀다. ]<br><br><br>더이상 생각할 것도, 선택할 다른 여지도 없었다.<br><br>난 승낙의 의미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br>우리는 그렇게 카페를 나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br> <br>(하아..어떡하지...)<br> <br>내 표정은 밝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br> <br>이미 머리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생각하느라 과부화가 걸릴 지경이었다.<br> <br>이런 심란한 상황에서, 그녀가 내게 말을 해오기 시작했다.<br><br> <br>"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어요."<br> <br><br>대화를 위한 생각과, 독립된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난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br><br> <br>"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성품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 찾기는 힘들죠."<br><br> <br>내가 한 말이 이상하진 않은지 아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하기 힘들었다.<br> <br><br>"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죠. 아 참,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못 물어봤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br> <br><br>(내...내 이름..? 잠깐만 이것 먼저 생각해보고)<br><br><br>"주연이라고 합니다. 남자 이름 치고는 너무 여성스럽죠? 하하~"<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그녀에게 그 운명을 말해야 되려나...)<br> <br><br>"아니에요~그런데 우리 공통점이 하나 더 있네요? 이름이 두 글자인 거."<br><br><br>(역시 무리...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지? 나랑 그녀의 공통점..? 뭐가 있지..뭐가있지..아 그래! 이름!)<br><br><br>"하하 그러게요. 이름 두 글자인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나?"<br> <br><br>(그래 이따가 직접 말하고, 그녀를 지키는 편이 더 낫겠어)<br><br> <br>난 다른 사고를 멈추고, 그녀와의 상호작용에 집중했다.<br> <br><br>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br>이어서 은은한 향수 내음이 코를 자극해왔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더 선명히 들려왔다.<br> <br>"저기 보이네요."<br> <br>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중앙 도서관이 보였다.<br>난 재차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옆을 지켜주듯 걸어갔다.<br> <br> <br> <br> <br> <br>그녀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br><br>"이 책도 재밌어요. 이거 한 번 읽어보세요."<br> <br>작고 고운 그녀의 손엔 '타나토노트'가 쥐어져 있었다.<br> <br>(영계 탐사단의 모험을 담은 책이라...)<br> <br>'죽음'이라는 속성과 그녀의 '운명'이 묘하게 일치했다.<br> <br>"저승 탐험 소설이라..재밌겠네요!"<br> <br>난 일단 지금의 이 순간 순간들을 즐기고, 마지막에 운명을 고백하기로 결정했다. <br> <br><br> <br>우리는 2인용의 작은 책상에서, 서로의 책을 펼쳤다.<br><br>그녀의 손엔 '유년기의 끝'이 쥐어져 있었고, 내 손엔 '타나토노트'가 담겨져 있었다. <br> <br>사실상 독서는 불가능했다.<br>1페이지를 읽고 5분간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보는 반복된 행동에 의해, 이미 책의 내용은 안중에도 없었다.<br> <br>그녀는 책의 세계에 푹 빠졌는지, 나의 이 부담스런 시선을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았다.<br> <br>그녀는 이상한 버릇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br>무엇인가에 집중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움직이는 버릇.<br>물론 그녀의 영혼의 책에서 본 내용이다. <br>허나 그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꽤나 다른 상쾌한 느낌을 준다.<br> <br>그녀는 책을 읽느라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br>그런데 그 모습마저 내겐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br> <br>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귀에 걸쳐 머리를 넘긴 그 모습.<br> <br>그 검은 머리에 감춰져 있던, 진주 같은 그녀의 볼.<br> <br>본래의 흰색과 상기된 붉은색이 섞여있는 그것은, 내 눈을 순수하게 현혹시키고 있었다.<br><br> <br> <br> <br> <br>"주연씨? 주연씨, 왜 대답이 없어요?"<br> <br>"아..네? 뭐라고 했어요 방금?"<br> <br>"네, 날이 많이 어두워졌는데..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br> <br>난 창밖을 바라봤다. <br>이미 날은 저물어, 도시의 빛이 하늘의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다.<br> <br>(젠장..졸았었나? 도대체 얼마나 잔거야...)<br> <br>"이현씨, 혹시 제가 졸고 있었나요?"<br> <br>나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br> <br>"아뇨~ 아까부터 계속 책만 읽었잖아요. 벌써 2권까지 읽으셨는데."<br> <br>(뭐..뭐라고? 난 3페이지만 기억이 나는데?)<br> <br>난 일단 복잡한 생각은 보류하고,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br> <br>"아, 예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하셨죠?"<br> <br>"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서."<br> <br>"아 그렇군요. 그럼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 줄게요."<br> <br>"제가 애도 아닌데 무슨~"<br> <br>"아니에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제가 바래다 줄게요. 제가 걱정되서 그래요."<br> <br>그녀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br>우리는 책을 원래 자리에 갖다 놓고, 그렇게 도서관을 나왔다.<br><br> <br> <br> <br> <br>그녀의 옆을 걸으면서,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br><br>(난 분명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그동안 책을 읽고 있었다고?)<br> <br>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은 상식선에선 일어날 수가 없다. <br>순간, 영혼 도서관의 규칙이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br> <br><br>[ 결코 운명을 바꾸어선 안됀다. ]<br> <br><br>(혹시 운명을 바꾸려 해서...)<br><br>그러자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난 현실의 그 잔인함 앞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br> <br>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난 그녀를 지켜줄 수가 없다.<br>분명히, 중요한 순간에 또 의식을 잃고 말 것이다.<br>운명을 바꾸지 못 하도록 막는, 그 빌어먹을 신 때문에...<br><br>처음으로 나의 이 능력에 대한 증오감이 느껴졌다.<br>애초에 이 능력만 없었더라면 내 몸도 더 건강할 것이고, 자유로운 연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br> <br>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최후를 알면서,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br> <br>순간 나의 이 절망 섞인 증오감을 어루만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br> <br>"다 왔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br> <br>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br> <br>그녀의 표정은 마치 아이처럼 너무나 순수했다. <br>그 때묻지 않은 맑고 사랑스런 영혼이, 이제 곧 처참히 짓밟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흘러나왔다.<br><br>"어? 제가 뭘...잘못했나요..?"<br> <br>당황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br> <br>"오늘..흐흐..절대 집 밖에 나가지 마세요..흐흐..오늘은 제발..안전한 곳에서..흐흐흑..."<br> <br>갑자기 눈 앞이 흐려지더니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br> <br>"주..주연씨 왜 그러세요? 괜..괜찮아요?"<br> <br>걱정에 찬 그녀의 목소리마저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빛과 소리가 사라진 그 익숙한 심연이 펼쳐졌다.<br> <br> <br> <br> <br> <br>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침이 가까운 시간이었다.<br> <br>난 내 방, 내 침대에 누워있었다.<br><br>그리고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br>방금 전까지 내 눈 앞에 서있던 그녀의 잔상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br><br>오늘이 출근하는 날이라는 것도 잊은 채, 난 비틀거리면 거실로 걸어갔다.<br>이어서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TV에선 한창 아침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br> <br>[ 이틀전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는 홀로 살던 여성으로, 강간을 당한 뒤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며 현재... ]<br> <br>난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화면만 바라봤다.<br> <br>익숙한 거리, 익숙한 아파트, 익숙한 이름...<br>그녀는 죽었다. 그 운명의 날에 바람처럼 사라졌다.<br> <br>볼에서 차가운 액체의 흐름이 느껴졌다. <br>그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 마침내 목까지 도달했을 때도, 내 목에선 그 어떤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br>난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그렇게 소리 없는 눈물만을 흘려댔다.<br><br><br><br> <br> <br>오늘은 화요일이고, 그녀랑 도서관에 있을 때는 일요일이었다. <br>즉, 난 이틀동안 잠을 잔 것이다. 아마도 운명을 거스르려는 행동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보였다.<br> <br>"빌어먹을 도서관..,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더라면..."<br> <br>이젠 이 능력이 너무나 역겹게 느껴졌다.<br>더 이상 책을 읽지도 못 할 것 같았다.<br> <br>난 애써 마음을 추스리며 출근 준비를 했다.<br> <br>집을 나서며 핸드폰을 켜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수도 없이 남겨져 있었다.<br> <br>당연한 일이다. 말도 없이 하루를 출근하지 않았으니.<br>그래도 부장님은 이해해 주실 거다. 마음이 넓으신 분이니까. <br> <br> <br> <br>1시간의 출근 과정을 거쳐 회사에 도착했다.<br> <br>익숙한 로비를 거쳐, 익숙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익숙한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날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살기 어린 욕설이었다.<br> <br>"너 이 XX야, 내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주 만만하게 보이냐?! 이 XXXX야! 니 마음대로 쳐살거면 회사는 왜 다니냐?!<br>전부터 이상한 개소리만 지껄이고 이 정신병자 같은 XX가, 아오 진짜 개 빡치네!<br>니 낙하산 타고 왔지? 나 죽을 듯이 공부해서 여기 간신히 들어왔어. 너 같이 낙하산으로 들어온 XX 뒷바라지 하려고 입사한게 아니라고 이 XXX야!!"<br><br>(음..? 뭔가 이상하다? 김 부장은 완전히 천사 같은 사람이 아닌가? 천사도 욕을 하나?)<br> <br>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뇌의 사고가 멈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br> <br>내 머릿속엔 감정이라는 속성만이 남게 되었다.<br>그것은 처음엔 당황감 이어서 공포, 그리고 마지막엔 증오감으로 서서히 변질되어 갔다.<br> <br>결국엔 증오감과 그것에 얽힌 잡다한 감정들만이 내 몸을 통제하게 되었을 때, 아주 잠깐,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을 차지했다.<br><br> <br>[ 좋아하는 여자 하나 지키지 못 하는 내가 한심해... ]<br>[ 내 앞에 서있는 이 자가 미워... ]<br> <br><br>그러고 보니, 오늘은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 자의 마지막 날이다.<br><br>그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구하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br> <br>난 그대로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br>그의 의미없는 그 욕설은 문을 통과해서 들릴 정도로 우렁찼다.<br> <br>복도를 지나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것은 여전히 17층에 머물러 있었다.<br> <br>난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1층을 눌렀다.<br>불과 몇분전까지의 나와 똑같은 행동이었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였다.<br> <br>심지어 감정의 방향까지도...<br></div> <div style="text-align:left;"> <br> <br> <br> <br>하루가 지났다.<br>누군가에게는 생에 잊지 못 할 최고의 날이었을, 어떤 사람에겐 수치스러운 최악의 날이었을, 그리고 그에겐 인생의 마지막이었을 그 하루.</div> <div style="text-align:left;"><br>난 어김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br> <br>어제와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똑같은 건물에 들어서, 똑같은 문을 열었다.<br> <br>열린 문 앞으로 보이는 그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br>분주하게 통화를 해대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그에게 문제가 생긴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br> <br>일순간,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더니, 기분 나쁜 침묵이 그 뒤를 이었다.<br> <br>수많은 사람들의 시선.<br> <br>생에 처음 느껴보는 대중들의 눈길이었지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br>그것은...그것은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며칠전 그 여자의 시선이었다.<br> <br>부러움 섞인 경멸의 시선.<br> <br>그러나 난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br>왜냐하면 그들의 눈빛에는 살기 또한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br> <br>난 두려움에 뒷걸음치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br> <br><br><br> <br> <br>집으로 돌아와 현관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인생이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br>영혼 도서관이란 이 능력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br>차라리 이승을 떠나, 그녀의 옆으로 회귀하고 싶었다.<br><br>그러나 내겐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br> <br>그런 내가 또 한심해서, 그녀가 보고 싶어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br> <br>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지쳐, 더 이상 눈도 뜨기 힘든 상황이 되자, 심신의 피로가 날 옥죄어오기 시작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거부할 수 없는 잠의 유혹에, 의식이 희미해지며, 난 천천히 꿈 속으로 떨어져만 갔다.</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br>얼마 지나지 않아, 난 모든 일의 원흉인 이 끔찍한 도서관에 도달했다.<br> <br>마치 그동안의 일을 철저히 무시하듯, 도서관에는 그 어떤 작은 변화조차도 없었다.<br>그녀의 책도 김 부장의 책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br> <br>난 그녀의 그 새하얀 책을 바라봤다.<br><br>순간, 책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br><br>"고통스러워...꺼내줘...꺼내줘..."<br><br>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영혼은 자신의 책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br><br>그 책에 속박되어 있는, 그녀의 영혼을 해방시켜주고 싶었다.<br>편히 저세상으로 가게 해주고 싶었다.<br> <br>난 그 하얀 책을 꺼내들었다. <br>내 손엔 어느샌가 어디서 온 지 모를, 작은 라이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br> <br>"그래, 아마도 이게 최선일거야..."<br><br>난 라이터의 불을 켰다.<br>흰색과, 그것에 대비되는 주황색의 빛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br><br>책을 향해 천천히 불을 옮기는 그 순간,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도서관 내에 울려 퍼졌다.<br><br> <br>[ 안돼!!! ]<br> <br> <br>난 그 목소리에 놀라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br> <br>왜냐하면...그 목소리는 다름아닌 내 목소리였기 때문이다.<br> <br>이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br>그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지만, 내 두뇌는 아무것도 산출해 낼 수 없었다.<br> <br>난 그대로 책을 던지고 이 혼란의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기가 두려웠다.<br>정말로 내게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br> <br>그렇게 이곳을 나갈 방법을 갈구하며 몸을 돌린 순간, 내 머리는 하얗게 멈춰버렸다.<br><br>이 도서관은 나의 꿈, 나만의 공간이다. 즉, 나이외의 그 어떤 사람의 출입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br>그런데, 지금 내 앞엔 두명의 사람이 서있다.<br>그들은 적대적인 눈빛을 하며 창을 내게 겨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하고 있다.<br> <br>[ @*%^&%^#^@&$(*#&{*@** ]<br> <br>그들이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br>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시야가 흐릿해지며 머리가 아파온다.<br> <br>"제발...제발 오지마..제발..."<br> <br>갑자기 전방이 하얀 빛으로 밝아지더니, 그렇게 의식이 끊겨버렸다.<br> <br> <br> <br> <br> <br>내 영혼이 다시 몸을 찾아왔을 때, 난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br> <br>검은 방에 노란 불빛,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는 한 남자.<br>그의 손에는 서류 한뭉치가 쥐어져 있었다.<br> <br>"좋은 말로 할 때, 자백해라. 이미 증거 다 나왔으니까 부인하면 할수록 너만 손해다."<br> <br>(이게 무슨 소리지..? 자백이라니, 내가 뭘 잘못했나?)<br> <br>"무...무슨 말씀이신지..?"<br> <br>그가 격정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br> <br>"너 이XX 지금 사람 2명이나 죽여 놓고 어디서 시치미를 떼고 있어??!!!"<br> <br>"예..?!"<br> <br>"납치, 감금, 폭행, 강간, 2명 연쇄살인 및, 시체훼손... <br>이야~이거 최소 10년은 가겠네~ 회장 아들이란 놈이 아주 그냥 지 애비 명예를 제대로 말아먹었어."<br><br>(지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아니, 애초에 여긴 어디지?)<br><br>"저..여기가 어딘..가요?"<br> <br>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어서 입을 열었다. <br> <br>"어디긴 어디야, 취조실이지."<br> <br>"네...네??!!!"<br> <br>"이 XX 진짜 정신에 문제가 있긴 하나보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정상이었는데..."<br><br>그가 자신의 손에 있던 서류를 내게 거칠게 던졌다. <br>난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 서류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br> <br>"뭐..뭐야, 이게 왜..."<br> <br>그것은 김 부장과, 이현씨에 관한 서류였다. 난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 서류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br> <br>그런데 뭔가 이상했다.<br>김 부장의 서류 내용은 그의 영혼의 책의 내용과 비슷했지만, 그녀의 서류는 그렇지가 않았다.<br></div> <div style="text-align:left;">그녀는 중산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부모님이 없었다.<br>고아원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작은 중소기업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던 그녀.<br><br>책을 좋아한다는 내용만 제외하면, 서류에 담겨진 그녀의 삶은, 내가 아는 그녀의 인생과는 완벽하게 달랐다.<br> <br>"아...아니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사실이 아니야, 분명히 영혼 도서관에는..."<br> <br>이윽고 마치 쐐기를 박듯, 그가 한 CCTV의 영상을 보여줬다. 그 영상엔 내 얼굴이 담겨져 있었다.<br>그리고 난 그 영상의 참혹함에,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br>아니 어쩌면 그 '살인마'의 실루엣이 '나'의 모습과 겹쳐졌다는 사실에,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br> <br>순간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그것은 분명한 나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이질적인 목소리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br></div> <div style="text-align:left;"> <br>[ 영혼의 작가는 결코 책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아. ]<br>[ 영혼 도서관의 사서는 단지 영혼의 책에 따라 움직일 뿐이야. ]<br> <br><br> <br> <br> <br>영혼의 도서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br>내 육신이 멈추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은 계속해서 써질 것이고, 갈 곳 잃은 영혼들은 계속해서 그 안에 갇힐 것이다.<br><br> <br> <br> <br> <br>[ 4일 전 발생한 강간살인 사건과, 어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오늘 아침 검거되었습니다.<br>용의자는 시리우스 그룹 회장의 아들인 주연으로, 판정 결과, '다중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br>전문가들은 그가 '영혼 도서관'이라 부르는 망상에 관련된, 3가지의 인격이 있음을 파악했고, 현재 그 인격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br>일각에서는 그의 처벌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통해 국내 최고 기업인, 시리우스 그룹이 입을 타격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다음 소식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br> <br><br><br><br><br>내 육신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br><br>난 잠을 잘 때마다 죽음을 경험한다.<br><br>그리고 그 무의식의 시간동안, '내가 아닌 내'가 이 작은 몸둥아리의 주인이 된다.<br><br>다른 사람의 영혼을 관장하는, 그 도서관을 더 높게 쌓아올리기 위해.<br> <br> <br><br><br> <br>-끝-</div> <div> </div> <div> </div> <div> </div></div>
    출처 그림 출처 http://photoholicat.tistory.com/153
    Wit-Dori의 꼬릿말입니다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네요... 앞으론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하나씩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6/08/14 10:16:40  1.248.***.30  내방구향기로와  520331
    [2] 2016/08/14 10:26:21  121.187.***.107  고소한고양이  563671
    [3] 2016/08/14 10:29:24  211.201.***.85  글라라J  704744
    [4] 2016/08/14 10:31:50  211.210.***.165  Ailee  139005
    [5] 2016/08/14 10:34:22  175.117.***.15  mercurius  537184
    [6] 2016/08/14 10:35:02  123.254.***.182  복날은간다  185680
    [7] 2016/08/14 11:22:42  114.4.***.153  마카시  320063
    [8] 2016/08/14 13:10:18  210.204.***.129  블랙달리아  719827
    [9] 2016/08/14 13:40:15  220.126.***.194  보고싶은내맘  411730
    [10] 2016/08/14 14:29:20  121.130.***.112  새벽감성  408953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
    [단편] 오랜 꿈의 외로운 끝 창작글 bsn 17/08/22 22:06 99 10
    9
    [단편] 초행길 [6] 창작글 bsn 17/06/01 16:55 173 18
    8
    [단편] 앨리스 [3] 창작글 bsn 17/05/15 21:57 127 16
    7
    [단편] 이별 10분 전 [6] 창작글 bsn 17/03/07 17:24 228 27
    6
    [단편] 달빛이 내리는 오솔길 [5] 창작글 Wit-Dori 16/08/28 10:34 147 11
    5
    [단편] 허락받지 못한 곳 [3] 창작글 Wit-Dori 16/08/21 12:05 146 14
    [단편] 영혼 도서관 [12] 창작글 Wit-Dori 16/08/14 09:36 171 27
    3
    [단편] 도시엔 별이 닿지 않는다 [8] 창작글 Wit-Dori 16/07/25 18:44 76 22
    2
    [단편] 새로운 신 [3] 창작글 Wit-Dori 16/07/16 12:30 175 28
    1
    [단편] 사냥 [4] 창작글 Wit-Dori 16/07/10 14:03 153 14
    [1]
    단축키 운영진에게 바란다(삭제요청/제안) 운영게 게시판신청 자료창고 보류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모바일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