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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89187
    작성자 : 페롯
    추천 : 24
    조회수 : 1484
    IP : 180.64.***.130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07/12 22: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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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버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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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버러지 







     탁, 탁, 탁.  

    높은 철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난간이 꽤 높아서 무릎을 거의 배까지 올려가며 오른다. 몸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혀 그대로 계단에 똑, 똑 떨어지지만, 덥지는 않다. 오히려 머릿속이 차가워서, 몸조차도 차가운것 같다. 

     탁, 탁, 탁.  

    느리게 눈을 꿈뻑인다. 꿈뻑이는 눈에 차가운 밤하늘이 박힌다. 수없이 박혀온 하늘이 서린 눈으로 마주한다. 더없이 춥다.   

    -밥버러지.-  

    머리속을 파고들던 말들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눈을 감는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나는 밥버러지구나.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신었다. 신발은 벗기 싫다. 
    망설임 없는 눈이, 몸뚱이가, 새까만 밤하늘에 던져진다. 




     




     어휴, 저 밥버러지. 
    느릿느릿, 굼뜨게 TV앞을 서성이는 거대한 저 굼벵이.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것이 영락없는 굼벵이다. 느리게 서랍을 여닫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화가 치민다. 

     "야, 좀 비켜. 뭐 찾는데." 
    "으.....응...음,....그게, 배, 배, 밴드.." 
    "비켜보라고. 밴드는 여기있거든?"  

    예전에 본 주토피아에 나왔던 그...이름이 뭐더라? 그 나무늘보같다. 어지간히 동작이 느려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시간에 밴드를 한개 약국에서 사오는게 낫겠다. 진짜로. 
    내앞에 있는 밴드곽을 가르키는 팔도 아프다. 망할, 나는 밴드를 그쪽 앞으로 툭 던진다. 

     "헤, 헤.....고, 고마워, 어, 언니."
     "......"

     저 바보같은 웃음도 싫다. 저 굼벵이가 내 여동생이다. 여동생. 평범한외모에 평범한 몸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둔한 동작과 둔한 지능. 여동생은 몸도 정신도 굼벵이었다. 
    그나마 그런 여동생을 칭찬하는 어른들은 보통 '애가 착하네' 정도. 둔한 여동생은 수치심이건 자존심이건, 뭐건 둔해서, 무슨일을 당하든 그저 헤헤 웃으니, 요즘 세상눈으로는 '착하다'라고 할밖에. 

     "네동생한테 너무 그러지말아라."
     "예."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않는 아빠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긴 본모양이다. 엄마는 분명히 이 상황을 봤음에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다. 
    불쌍한 부모님. 
    워낙 옛날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할머니의 욕을 들어가면서 까지 낳은 딸이 커서 굼벵이가 될 줄 알았던가. 게다가 그 굼벵이는 자기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바득 바득 대학을 가겠다 우기니 속이 타겠지. 
    그나마 부모님이 위안삼는것은 첫째인 나역시도 딸이지만, 이미 꽤 이름있는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도 마친 번듯한 딸인것 정도. 뭐, 나야 취업준비중이어도 적어도 저 밥버러지보다야 훨배 낫다. 
     저건 삼수생이니까. 
    욕심만 많은 밥버러지는 그렇게 비싼 원서값을 날려가며 민폐를 끼치고 있는거다.  어쩜 그렇게 밥버러지가 어울리는지! 이미 내가 여동생을 보는 눈은 사람을 대하는 눈이아니다. 
    벌레.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정도의 벌레. 

    "OO아, 그래서...면접은 어떻게 됐어?" 
    "아! 거기요? 일단 그냥저냥 보고 왔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그냥 저, 그, 뭐시기냐... 스카우트 왔던 곳으로 가지 그랬냐. 합격한곳도 있었잖아." 
    "에에이, 거긴 XX이도 갈 수 있는곳일걸요? 됐어, 됐어."  

    흘긋 여동생을 본다. 넌, 죽어도 못가는 곳이지만 비행기좀 태워봤어. 어이구? 샐샐웃네. 여동생은 자기가 언급된것 만으로 샐샐 웃는다. 쳐 웃기는. 

     "....휴, 됐다. 그러면 XX이 너는? 너도 면접보고 오지 않았던가?" 
    "헤, 헤.....네, 네! 며, 며, 며, 면접관 부, 분들이... 잘대해, 해, 주셔서...좋아, 아, 았어요!" 
    "........그래."  

    경쾌하다, 경쾌해. 저거 이미 떨어질게 뻔하지 않나? 그 유명한 **대에 원서를 넣다니. 웃긴건 뭔 전형이었던가. 떡하니 1차를 합격하고 면접을 본다니. 그것도 기적이지. 밥버러지주제에. 






     3. 
     
    "........." 
    "아이고....! XX아.....아이고오....." 
     
    죽었다.  
    굼벵이가 죽었다. 여동생이 죽었다. 기대하고 넣었던 가군 나군 대학이 모두 떨어졌고, 여동생도 옥상에서 떨어졌더랬다.  
    밥버러지가 죽었다! 
    나는 분명히 기뻐해야한다. 성가신 모기 한 마리가 갑자기 펑! 터져 죽어버린것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뭔가를 잊은것 같다. 잊은게 뭐지? 뭐가 문제야. 
     뭐가, 뭐가, 뭐가, 뭔데.  

    "아! OO아, 오랜만이네! 이제 취업은했니?" 
    "괜찮은 회사 찾기가 힘드네요, 하하하." 
    "어이구, 언제 취업하실라고." 
    "그러게요!"  

    찌푸리며 웃는다. 무슨 상관이야. 지가 좋은 회사 들어간걸 굳이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굳이 내쪽으로 왔나보네. 차라리 오열하고 있는 엄마쪽에 붙어있는게 편하겠다 싶었다. 

    "아이고.....너, 너...왜...조금만 더 기다리지 그랬니...응? 응?"  

    .......뭐야? 엄마의 넋두리가 이상하다. 더 기다리다니, 뭘? 문득 여동생 영정 아래에 A4용지가 있는것이 보인다. 

     다군, 수시, 합격.
     **대학교.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것만 같다. 뭐? 그 밥버러지가 **대학교? **대? 그 굼벵이가? 느려 터진 년이?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슬퍼서가 아니다, 이건 분해서다. 어떻게 밥버러지가 나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가 있지? 어떻게? 어떻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이건 잘못됐어! 이년이 무슨 수를 쓴거야? 아님 일부러 자기가 죽은뒤에 밥버러지가 아니라 노력했던 안타까운 영혼으로 찬양받고 싶어서 꾸민 계획인가? 





     어두운 방안에서 워드화면을 켜놓고 나는 멍하니 그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더 그 장례식장에 있다간 기절할것만 같았기때문에, 도망치듯이 집에 들어왔다.  

    밥버러지|  

    꼴보기 싫은 굴림체가 워드 화면에 박힌다. 
    밥버러지. 밥버러지, 밥버러지. 밥버러지는 이제 누구 인가. 
    내가 그 굼벵이같았던 년을 욕할 처지가 되나? 인성도 좋다고 소문났지, **대에 합격했지. 그러는 나는? 밥버러지라고 부르는 나는?  제 분수도 모르고 면접에 붙어도 아, 여긴 나한테 안맞는다고 쉽게 여기며 집에 눌러붙어있는 나는?   여동생이 밥버러지가 되도록 노력했던 나는?  


    어릴적, 동생은 상냥함으로 부모님에게 과하게 '어필'했다. 도태되는 언니. 도태되는 첫째언니. 욕먹는 첫째언니. 여동생은 모든 관심을 가져가 버렸다.  그런 여동생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재밌는 놀이라고 말하며 난간에서 여동생을 밀쳤다. 여동생은 머리부터 떨어져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그 후 부터 여동생은 굼벵이가 되었다. 

    드디어 내 자리를 되찾았다. 
    드디어. 
     ......자리를 되찾은줄 알았는데. 지금 여기서 모니터를 멍하니 보고 있는 나는 뭔가, 나는....난.... 

     머릿속이 차갑다.  천천히 일어난다. 굼벵이같은 여동생처럼. 천천히, 천천히 발을 옮긴다. 





     4. 


     탁, 탁, 탁.  

    높은 철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난간이 꽤 높아서 무릎을 거의 배까지 올려가며 오른다. 몸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혀 그대로 계단에 똑, 똑 떨어지지만, 덥지는 않다. 오히려 머릿속이 차가워서, 몸조차도 차가운것 같다. 

     탁, 탁, 탁. 

     느리게 눈을 꿈뻑인다. 꿈뻑이는 눈에 차가운 밤하늘이 박힌다. 수없이 박혀온 하늘이 서린 눈으로 마주한다. 더없이 춥다.

    -밥버러지.-  

    머리속을 파고들던 말들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눈을 감는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나는 밥버러지구나.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신었다. 신발은 벗기 싫다. 

    망설임 없는 눈이, 몸뚱이가, 새까만 밤하늘에 던져진다.          
    출처 미숙한 상상력, 미숙한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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