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몇 개 뱉어놓고 시작할게요. 브웨에에엑~~~</div> <div> </div> <div><strong>- 감자.</strong></div> <div> </div> <div>오지 마을에 찾아온 우리는 불청객이었지만,<br>다행히 그들은 우리를 따스히 맞이해주었다.<br>그들이 제공한 쉼터와 식량을 먹으며 버티기도 미안해질 무렵,</div> <div>그들은 내 가방 속의 감자를 바랬다.<br>감자를 주었다.</div> <div>다음 날, 그들은 가방을 바랬다.<br>가방을 주었다.</div> <div>어제, 그들은 막내를 바랬다.<br>막내를 주었다.</div> <div>그들은 이제 감자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모양이다..</div> <div> </div> <div><strong>- 물음표.</strong></div> <div> </div> <div>뭐든지 네 말은 물음표로 끝났다.<br>먹어도 돼? 해도 돼? 가져도 돼? 자도 돼?<br>그 외의 어떤 마침표나 느낌표도 허락해줄 수 없어.<br>그냥 그렇게 살아.</div> <div>죽어도 돼?<br>아니.<br>살아.</div> <div> </div> <div><strong>- 정수기.</strong></div> <div><br>정수기 앞에서 1시간 동안 서성이던 28번 고객님.<br>당신은 물을 마실까 말까,<br>예금을 들까 말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군요.<br>왜 하필 우리 은행 옥상에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br>수습하기 귀찮게.</div> <div>당신같이 대출 안 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야.<br>별스럽게.</div> <div> </div> <div><strong>- 스트론튬.</strong></div> <div> </div> <div>넌 속 보이는 남자야.<br>늘 소원 들어주기 끝말잇기 같은 걸 하자고 조르고.<br>기회만 주면 스트론튬. 해질녘.</div> <div>그렇게 날 취해놓고 어딜 가려고 그랬어?<br>절대 안 보내줄거야.<br>넌 속 보이는 남자라니까?</div> <div>지금 봐.. 자기.<br>지금 자기 아주 잘 보여ㅡ.</div> <div>이게 자기 대장.. 이건 위.. 이건 뭘까, 조금 울긋불긋한데..<br>아름다워, 넌 참 속 보이는 남자라니깐.</div> <div><br><strong>- 포르쉐.</strong></div> <div> </div> <div>지하주차장에서 포르쉐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까진 좋았다.<br>뒷좌석에 누군가 코를 골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br> 내 불금 저녁은 엉망이 되버렸다.</div> <div>돌아본 뒷좌석, 코골이를 멈춘 채 나와 눈을 마주친<br> 진흙투성이의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div> <div> </div> <div><strong>- 간호사.</strong></div> <div> </div> <div>사치코라는 간호사인데요, 왜 없냐구요.<br>매일 나한테 주사를 놨어요, 복장도 이 병원 간호사들이랑 똑같았고,<br>그 주사는 뭔데요 그럼,<br>치료가 아니었어요?<br>간호사가 아닌데 왜 간호복을 입어요,<br>여기 간호사가 아닌데 왜 주사를,<br>이상하긴 했어, 근데 왜 아무도 몰랐냐구요,<br>왜 몰랐냐구요,</div> <div>나요, 몸이 이상해요,<br>열이 나고, 잠을 잘 수 없어요,<br>제게 뭘 주사했는지만이라도 검사해주세요,<br>사치코,<br>사치코라고 했다구요.<br>CCTV 좀 봐요, 화질이 나빠? 그럼 좋은 CCTV를 달던가 이 개자식들아!<br>그 년 어디 있어, 나, 나는 어떻게 되는건데!</div> <div> </div> <div><strong>- 스토로마톨라이트.</strong></div> <div> </div> <div>소청도인가, 아마 맞을거야.<br>국내에서 스토로마톨라이트를 연구하려면 거기로 가야 한다나ㅡ.<br>우리 그 이, 그런 걸 연구해보겠다고 떠나더니 결국 행방불명.<br>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결국 작년에 장례까지 치뤘지.</div> <div>이상한 건 소청도에서 그 사람을 봤다는 이야기가 매년 들려와..</div> <div>이상한 일이지.</div> <div>이상한 거 하나 더.</div> <div>그 이는 사실 우리 집 증설한 현관 밑 깊은 곳에 묻혀있는데.<br>무슨 소청도야.<br>찝찝하게.</div> <div><br><strong>-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strong></div> <div> </div> <div>해.. 해남 뭐? 이 새끼가, 무슨 그딴 거 발자국 보러 해남까지 가?<br>너 수학 다 풀었어? 너 저번 학기에 수학 몇 점 받았어?<br>반에서 몇 등 했어?</div> <div>공룡 연구? 굶어죽고 싶어?<br>맨~날 트리케라톱스가 어쩌고. 스테고사우루스가 어쩌고.</div> <div>야 이 자식아. 내가 너 공룡 책 사주고 한 건 유치원 때나 그러는 거지.<br>공룡 영재고 뭐고 지금 이 시대에 공룡이 어딨다고 그딴 걸 연구해.<br>방에 들어가.</div> <div>니 여름방학 과제는 공룡 말고 영어캠프 보고서로 할테니까<br> 우선은 그 전까지 수학부터 잡아놔.</div> <div>또 쓸데없는 소리!<br>당장 들어가!</div> <div> </div> <div><strong>- 작성자 농락보소</strong></div> <div> </div> <div> 모든 희망을 잃은 나는 점차 비뚤어졌고,<br>익명의 힘을 빌려 누군가를 헐뜯으며 내 자존감을 달랬다.<br>남의 격을 내려 나와 동등하게 떨어뜨리면 적어도 평등하단 느낌이었으니까.</div> <div>그러던 어느 날 잘못 올린 짤방,<br>어딘가 모자라보이는 여자아이.<br>내게 앙심을 품은 그들은 그를 놓칠 리 없었다.</div> <div>rlm9933 : ㅋㅋㅋ 저따구로 생겼냐, 갖다줘도 버릴듯.<br>qkqkfight : 작성자 딸내미 아님?? 닮았을거 같은데. 악플러 새끼.<br> ...</div> <div>오십개가 넘는 노골적인 조롱과 비난 끝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br>사진 속 장애를 가진 여자 아이는 내가 지키고자 했지만 실패한 내 모든 것,<br>이젠 만져볼 수 조차 없는 내 딸이었던 것을..</div> <div><br><strong>- 엘로임.</strong></div> <div> </div> <div>엘로힘, 엘로힘-. 언제부턴가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 스스로를 라엘리안이라 칭했다.<br>우리는 모두 설계된 존재이며 엘로힘이 그 증거라는 말을 되풀이하며.<br>미칠 것 같았지만 이겨냈다. 나는 세뇌 당하지 않았다.<br>창조? 진화? 아무 쪽이든 상관없어. 나는 태어났고 살아가는 걸로 족하다구.<br>내 삶에 엘로힘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다고.<br>기나긴 싸움 끝에 가족 모두 정신병동에 가둬버린 후 달리는 이 순간,<br>라디오에서는 하늘을 가리는 비행물체에 대한 뉴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도되고,<br>갑자기 햇빛이 점령하던 하늘 위론 먹구름이 떴는지 어둠이 스며든다.</div> <div>불길한 예감이 드는 밤.. 아니, 낮인데...<br>설마.<br>엘로힘...</div> <div><br><strong>- 왜 나는 쿵쿵따를 안 해주나</strong></div> <div> </div> <div> 왜 나하고만 쿵쿵따 안 해줬어.<br>결국 이런 모습으로 널 가지는데 이십년이 걸렸잖아.<br>그때 쿵쿵따 한 번만 해줬어도 이십년은 빨랐을텐데.<br>물론 그땐 박제는 아니었겠지.</div> <div>아무래도 살아있는 쪽이 좋은데,<br>왜 너희란 족속들의 심장은 피가 돌 땐 그렇게 차가울까.</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