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tbody> <tr> <td style="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2px" bgcolor="#f6f6f8" height="26" width="96"><a class="txt02"><strong><font style="background-color: #f6f6f8">갤로거</font></strong></a></td> <td width="2"><font style="background-color: #f6f6f8"></font></td> <td style="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2px" bgcolor="#f6f6f8" align="left"><a style="cursor: pointer" id="416791" class="btnName" title="샤치" name="chons251"><span title="샤치(chons2**)"><font style="background-color: #f6f6f8">샤치</font></span></a><img style="margin-left: 4px; cursor: pointer" title="chons2**(고정닉)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border="0" src="http://wstatic.dcinside.com/gallery/skin/gallog/g_fix.gif" width="12" height="15" alt="" /><span class="dc_gallery_hits"></span></td></tr></tbody></table></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펌)</div> <div> </div> <div>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tbody> <tr> <td style="text-align: left; 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10px" height="80" valign="top" colspan="2"> <div style="position: relative; width: 100%" id="bgRelaBig"><span style="line-height: 160%"> <div style="width: 100%" id="bgRela"> <div>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br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br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br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div> <div><br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br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br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br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div> <div><br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br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br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br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br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br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br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br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br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br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br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br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div> <div>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br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br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br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br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br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br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br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br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br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br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br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br /></div> <div>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br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br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br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br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br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div> <div>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br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br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div> <div>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br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div> <div><br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br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br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div> <div>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div> <div>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br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br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br />사망자 292명.<br />참혹 그 자체야.</div> <div>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br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br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br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div> <div><br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br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br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br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br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br /><br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div> <div>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br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br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div> <div>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br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div> <div>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br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br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div> <div><br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br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div> <div>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br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br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br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div> <div><br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br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br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div> <div><br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br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br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div> <div>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div> <div><br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br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br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div> <div>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br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div> <div><br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br />너무도 슬픈 일이지.</div> <div>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br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br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div> <div><br />- 샤치 - </div> <div><br />[ 참고 자료 및 문헌 ]</div> <div>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br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br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br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b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div> <div>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div></div></span></div></td> <td style="padding-top: 5px" valign="top" align="right"> <div id="adBookmark5"> <div id="r_adver"> <div id="r_google"> <h2 style="cursor: pointer"></h2> <div id="googlead1Box" class="box"><iframe style="border-right-width: 0px; width: 165px; border-top-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id="googlead1" height="610" src="./dc_ad_right_JH.php?overture=%ED%95%B4%EC%96%91%EB%8C%80%2C+%EC%97%AC%ED%96%89%2C+%EB%B3%B4%ED%97%98&qstr=id%3Dvessel%26no%3D9866&v1=10&v2=10&a1=&id=vessel" frameborder="0" name="googlead1" scrolling="no"></iframe></div></div></div></div></td></tr> <tr> <td colspan="3"><form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id="singo_form" method="post" name="singo_form" action="article_write.php?id=singo"><input name="sin_id" value="vessel" type="hidden" /><input name="sin_name" value="선박" type="hidden" /><input name="sin_no" value="9866" type="hidden" /><input name="subject" value="" type="hidden" /></form> <table style="width: 1100px" border="0"> <tbody> <tr> <td style="padding-top: 180px"><style> #realclick { text-align:center; } </style> <div style="width: 100%" id="dc_advertisement"> <div style="height: 110px" id="dc_ad_box_white" class="box_white"></div></div></td></tr></tbody></table></td></tr></tbody></table></div>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tbody> <tr> <td style="text-align: left; 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10px" height="80" valign="top" colspan="2"> <div style="position: relative; width: 100%" id="bgRelaBig"><span style="line-height: 160%"> <div style="width: 100%" id="bgRela"> <div>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br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br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br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div> <div><br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br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br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br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div> <div><br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br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br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br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br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br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br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br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br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br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br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br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div> <div>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br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br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br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br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br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br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br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br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br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br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br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br /></div> <div>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br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br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br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br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br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div> <div>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br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br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div> <div>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br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div> <div><br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br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br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div> <div>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div> <div>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br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br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br />사망자 292명.<br />참혹 그 자체야.</div> <div>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br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br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br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div> <div><br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br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br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br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br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br /><br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div> <div>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br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br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div> <div>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br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div> <div>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br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br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div> <div><br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br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div> <div>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br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br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br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div> <div><br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br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br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div> <div><br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br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br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div> <div>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div> <div><br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br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br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div> <div>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br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div> <div><br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br />너무도 슬픈 일이지.</div> <div>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br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br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div> <div><br />- 샤치 - </div> <div><br />[ 참고 자료 및 문헌 ]</div> <div>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br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br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br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b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div> <div>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div></div></span></div></td> <td style="padding-top: 5px" valign="top" align="right"> <div id="adBookmark5"> <div id="r_adver"> <div id="r_google"> <h2 style="cursor: pointer"></h2> <div id="googlead1Box" class="box"><iframe style="border-right-width: 0px; width: 165px; border-top-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id="googlead1" height="610" src="./dc_ad_right_JH.php?overture=%ED%95%B4%EC%96%91%EB%8C%80%2C+%EC%97%AC%ED%96%89%2C+%EB%B3%B4%ED%97%98&qstr=id%3Dvessel%26no%3D9866&v1=10&v2=10&a1=&id=vessel" frameborder="0" name="googlead1" scrolling="no"></iframe></div></div></div></div></td></tr> <tr> <td colspan="3"><form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id="singo_form" method="post" name="singo_form" action="article_write.php?id=singo"><input name="sin_id" value="vessel" type="hidden" /><input name="sin_name" value="선박" type="hidden" /><input name="sin_no" value="9866" type="hidden" /><input name="subject" value="" type="hidden" /></form> <table style="width: 1100px" border="0"> <tbody> <tr> <td style="padding-top: 180px"><style> #realclick { text-align:center; } </style> <div style="width: 100%" id="dc_advertisement"> <div style="height: 110px" id="dc_ad_box_white" class="box_white"></div></div></td></tr></tbody></table></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tbody> <tr> <td style="text-align: left; 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10px" height="80" valign="top" colspan="2"> <div style="position: relative; width: 100%" id="bgRelaBig"><span style="line-height: 160%"> <div style="width: 100%" id="bgRela"> <div>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br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br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br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div> <div><br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br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br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br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div> <div><br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br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br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br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br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br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br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br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br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br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br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br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div> <div>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br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br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br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br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br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br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br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br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br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br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br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br /></div> <div>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br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br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br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br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br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div> <div>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br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br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div> <div>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br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div> <div><br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br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br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div> <div>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div> <div>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br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br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br />사망자 292명.<br />참혹 그 자체야.</div> <div>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br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br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br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div> <div><br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br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br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br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br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br /><br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div> <div>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br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br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div> <div>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br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div> <div>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br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br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div> <div><br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br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div> <div>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br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br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br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div> <div><br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br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br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div> <div><br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br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br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div> <div>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div> <div><br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br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br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div> <div>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br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div> <div><br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br />너무도 슬픈 일이지.</div> <div>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br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br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div> <div><br />- 샤치 - </div> <div><br />[ 참고 자료 및 문헌 ]</div> <div>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br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br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br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b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div> <div>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div></div></span></div></td> <td style="padding-top: 5px" valign="top" align="right"> <div id="adBookmark5"> <div id="r_adver"> <div id="r_google"> <h2 style="cursor: pointer"></h2> <div id="googlead1Box" class="box"><iframe style="border-right-width: 0px; width: 165px; border-top-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id="googlead1" height="610" src="./dc_ad_right_JH.php?overture=%ED%95%B4%EC%96%91%EB%8C%80%2C+%EC%97%AC%ED%96%89%2C+%EB%B3%B4%ED%97%98&qstr=id%3Dvessel%26no%3D9866&v1=10&v2=10&a1=&id=vessel" frameborder="0" name="googlead1" scrolling="no"></iframe></div></div></div></div></td></tr> <tr> <td colspan="3"><form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id="singo_form" method="post" name="singo_form" action="article_write.php?id=singo"><input name="sin_id" value="vessel" type="hidden" /><input name="sin_name" value="선박" type="hidden" /><input name="sin_no" value="9866" type="hidden" /><input name="subject" value="" type="hidden" /></form> <table style="width: 1100px" border="0"> <tbody> <tr> <td style="padding-top: 180px"><style> #realclick { text-align:center; } </style> <div style="width: 100%" id="dc_advertisement"> <div style="height: 110px" id="dc_ad_box_white" class="box_white"></div></div></td></tr></tbody></table></td></tr></tbody></table>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br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br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br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br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br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br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br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br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br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br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br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br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br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br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br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br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br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br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br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br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div> <div> </div> <div> </div> <div><br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br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br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br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br /></div> <div>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br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br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br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br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br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br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br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div> <div>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br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 left"><img style="border-bottom: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right: medium none" alt="74.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7/1375274122WyeL4X6uyJHOdFb2a9M7gZ.jpg" width="353" height="500" /></div> <div style="text-align: left"> </div> <div style="text-align: left"> </div> <div style="text-align: left"> </div> <div style="text-align: left"> </div> <div style="text-align: left"><img style="border-bottom: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right: medium none" alt="w3609.pn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7/1375274144nL3ZA4rx.png" width="400" height="273" /></div> <div><br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br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br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div> <div>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br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br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br />사망자 292명.<br />참혹 그 자체야.</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br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br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br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br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br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div> <div> </div> <div> </div> <div><br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br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br /></div> <div style="text-align: left"><img style="border-bottom: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right: medium none" alt="K-2.pn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7/1375274324QfAv9QIOfb93V3rzXCeubV8I.png" width="415" height="311" /></div> <div> </div> <div><br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div> <div>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div> <div> </div> <div> </div> <div><br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br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div> <div>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br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br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br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br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div> <div>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br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br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br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br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br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br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br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div> <div>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div> <div> </div> <div> </div> <div><br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br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br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div> <div> </div> <div> </div> <div>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br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 left"><img style="border-bottom: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right: medium none" id="image_042750524181258176" class="chimg_photo" alt="DSCN5590.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7/1375274351n54wEhmJDBf.jpg" width="800" height="600" /></div> <div><br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br />너무도 슬픈 일이지.</div> <div> </div> <div>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br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br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div> <div><br />- 샤치 - </div> <div><br />[ 참고 자료 및 문헌 ]</div> <div>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br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div> <div><br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br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br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div> <div><b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div> <div>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출처 ;<a target="_blank" href="http://www.dcinside.com/" target="_self"><img alt="디시인사이드 로고" src="http://nstatic.dcinside.com/gn/images/gallery_top/logo_dcinside.gif" width="200" height="27" /></a></div> <div><a target="_blank" href="http://gall.dcinside.com/vessel/9866" target="_blank">http://gall.dcinside.com/vessel/9866</a></div> <div> </div>
야구 여행 좋아함  .수구꼴통 매국노 듣보잡 쥐때박멸 '말로는 신의 종이라면서 뒤로는 개만도못한 나쁜짓 다하는 개독 사악한목사들 박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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