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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54243
    작성자 : sss989
    추천 : 7/5
    조회수 : 49599
    IP : 175.192.***.106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7/31 21:46:41
    http://todayhumor.com/?panic_54243 모바일
    1993 서해페리호 침몰 참사
     
     
     
    (펌)
     
    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
    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
    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
    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
    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
    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
    사망자 292명.
    참혹 그 자체야.
    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
    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
    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
    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
    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
    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 샤치 -

    [ 참고 자료 및 문헌 ]
    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
    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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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
    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
    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
    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
    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
    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
    사망자 292명.
    참혹 그 자체야.
    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
    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
    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
    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
    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
    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 샤치 -

    [ 참고 자료 및 문헌 ]
    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
    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form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id="singo_form" method="post" name="singo_form" action="article_write.php?id=singo"></form>
    <style> #realclick { text-align:center; } </style>
    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
    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
    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
    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
    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
    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
    사망자 292명.
    참혹 그 자체야.
    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
    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
    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
    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
    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
    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 샤치 -

    [ 참고 자료 및 문헌 ]
    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
    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form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id="singo_form" method="post" name="singo_form" action="article_write.php?id=singo"></form>
    <style> #realclick { text-align:center; } </style>
    안녕 형들 샤치야. 책을 읽다가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
    기상 악화 속에서 정원을 초과한 위험한 항해가 결국 삼각파도를 만나 대형 사고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야.
    93년에 일어나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자되는 사건인 걸 보면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인 걸 알 수 있어.
     
     
     
     
     

    서해페리호는 위도 - 격포를 오가는 1백 10톤 급의 작은 여객선이었음.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엔 하루 3회 왕복하지만, 그 외 계절엔 하루 1회 왕복에 그쳤다고 함.
    하지만 주말만 되면 항상 낚시꾼과 내왕객이 몰려와서, 주말엔 정원초과가 비일비재.
    즉 주말만 되면 '과적'이라는 위험을 늘 안고 다닌 셈이지.
     
     
     
     
     

    10월 10일 오전, 이 날도 서해페리호는 초과 승선을 한 상태였어.
    서해 페리호의 승선 정원은 221명, 그러나 이 날 서해페리호에 타고 있었던 승선 인원은
    총 362명, 무려 141명을 초과한거야. 정원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어.
    또한 수화물은 갑판 부분에 온통 적재되어, 배의 상부가 무거워진 상태.
     
     
     
     

    선장은 선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고, 항해사는 휴가 중이라 갑판장이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승객들이 한 쪽으로 몰려타지 않도록 유도하고,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은 단 두명.
    기상체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이 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어 파고가 2-3m에 달했기에,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어.
     
     
     
     

    출항 예정 시각인 9시에서 40분이나 늦어진 오전 9시 40~45분경,
    서해페리호는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어.
    과적, 악천후, 안전 불확보.. 그야말로 최악의 감항성.
     
     
     
     
    출항 20분만에 사태는 악화되었어.
    출항 후 좌현 정횡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
    선장은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
    시속 12노트로 운항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했어.
    (이 와중에 스크류에 폐어구가 걸려 기관은 정상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운항미숙, 무리한 기기조작..
     
     

    서해 페리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무리한 기기조작과 2-3m의 높은 파도에 의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뒤뚱거리다 그만 순식간에 뒤집어졌어.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 4대 중 단 1대만이 작동했고,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고 구조요청도 하지 못 했으며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어.
    이를 발견한 사람은 위도면 벌금리 선적의 선영호(7톤) 선장 강길웅 씨였어.
    그는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여객선이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파장금항으로 입항하면서
    소리쳤고 부둣가에 서있던 택시기사 주원훈 씨가 이를 듣고 군산 해양경찰서
    파장금 선박출입항신고소에 신고하여 침몰 상황이 알려졌어.
    군산해양경찰서는 현장에서 15해리 떨어진 횡경도에 피항 중이던 248함을 급파하고
    전 함정을 비상소집, 긴급 출동시켰어.
     
     
     
     
     
     
     
    또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약 50여척이 사고현장으로 접근, 구조 활동을 펼쳤어.
    이때 종국호(10톤) 선장 이종훈 씨는 자신의 어선을 타고 바다 낚시를 하던 중
    침몰사고 무선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접근, 1시간에 걸쳐 44명을 구조해내셨다고 함.
    다행히 갑판이나 배난간에 나와있던 승객은 그렇게 구조될 수 있었어.
    하지만 선실에 있던 승객은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변을 당하고야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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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8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1시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고,
    해군202방어전대, 태안,목포,제주해경 소속 함정 6척, 헬기 등이 참여하여
    수색구조 및 생존부상자 호송 작전을 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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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1일 오후 8시, 구조된 사람은 74명.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해군 SSU 109명, 해경 특수구조단 21명 및 민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악조건 하에 선체수색을 강행하면서 침몰선 내 사체 184구를 인양해.
    11월 2일까지 23일간 선박 연 2,897척과 헬기 연 134대를 투입한 끝에 해상표류사체 108구를 인양했어.
    사망자 292명.
    참혹 그 자체야.
     
     
     
     
     
    사고해역에는 초속 6-9m의 강풍과 2-3m의 비교적 높은 파도가 일어,
    사체 인양에 애를 먹었지만 선실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진도가 빨라졌어.
    인양작업을 벌인 요원들에 따르면 2층 상객실과 3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없었고 정원이 1백 26명이 넘는 1층 하객실에는 사체가 가득 뒤엉켜 있었다고 해.
     
     
     
     
     

    10월 16일까지 침몰선 내 사체인양 작업을 마친 해군과 해경은 선수와 선미를 체인으로 감싼 후,
    크레인선 설악호(9,750)톤을 동원하여 선체를 수면 상에 인양시키는데 성공하지만
    12시간만에 기상악화로 와이어로프가 절단되어 재침몰해.
     
     

    그야말로 두 번 가라앉는 불운을 겪은 셈이지.
    10월 27일 재인양에 성공하면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는 종결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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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는 비록 끝이 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했어.
    292명의 사망자 중에는 위도 주민이 무려 63명이었어.
     
     

    가족이 빠져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선 누구라도 살기 힘들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 200여명이 위도를 떠났다고 해.
    서해훼리호 참사가 얼마 전 목포비행장 야산에서 민간항공기 추락에 의해 60명이 사망한 사고와 맞물려
    일어났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증폭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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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어.
    기상 악화, 과적, 안전 소홀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출항을 감행한 항해사의 의식 결여,
    초과승선이 상습화되어 있는데도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은 당국의 잘못 때문이었지.
     
     
     
     
     
     

    서해페리호 사고는 해상구조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고,
    침몰사고 시 신속한 구조와 수색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이 따랐어.
    서해페리호 사고를 계기로 1994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어,
    해양경찰청장을 중앙구조조정본부장으로 한 구난체계가 일원화되었고,
    신속한 사고 접수와 전파를 위해 5개 구난무선국과 위성 조기경보 수신체제를 구축.운영하게 되었으며
    대형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96년에 내무부로부터 여객선 및 유도선 안전관리 업무를 인수받게 되었어.
     
     
     
     
     

    한편으론 이계시 교통부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었어.
    안전 운항을 관리 감독하는데 소홀한 책임이지.
    당국이 초과 승선을 막지 못한 점도 책임이 컸으니까.
     
     
     
     
     

    정원의 반에 달하는 인원을 더 승선 시키고, 그 사람들의 짐까지 갑판에 가득 실은채로
    여객선이 운항해선 안 될 날씨에 안전 또한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항해를 감행한 결과는
    20분만에 벌어진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게 되었어..
    항해사의 무능함, 그리고 무모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참사야.
     
     

    매년 10월 10일, 위도에 있는 위도 위령탑에서 서해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연과 값진 교훈을 남긴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7년째를 맞이했지..
    너무 큰 댓가를 치룬 다음에야,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먼저 항해사가 사고 방지에 힘을 써야겠지?
    과적을 막고, 기상에 주의하고, 장구를 점검하고, 적절한 운용술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DSCN5590.jpg

    올해도 10월 9일 위도 곳곳이 온통 제사를 지내고 있을거야.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안전 불감증은 이토록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선겔 형들은 서해페리호 참사 20주년이 되든 30주년이 되든,
    이 사고를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늘 안전 운항하길 바래.

    - 샤치 -

    [ 참고 자료 및 문헌 ]
    국가기록원 - 사건/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1면 <2백여명 탄 여객선 침몰>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3일자 1면 <교통장관.해항청장 경질 김대통령 위도 방문>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1일자 31면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
    매일경제 신문 1993년 10월 14일자 31면 <철야로 사체 인양 작업>

    전라일보 2007년 10월 10일자 <서해훼리호 참사 14주기 추모제>
    해양경찰청 《해양경찰50년사》 (주)범신사, 2003
    국토해양부 홈페이지:http://www.mltm.go.kr

    KBS뉴스, <송창언의 사건파일: 292명 목숨 앗아간 페리호 침몰>, 2005. 10. 17.
    기타 다양한 블로그 및 지식인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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