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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4549
작성자 :
계피가좋아
★
추천 :
7
조회수 : 2202
IP : 121.170.***.74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1/04/26 21:37:54
http://todayhumor.com/?panic_14549
모바일
브금주의]죽고 난 후
“여...여긴 어디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흰 백지.
정신병자의 방처럼 때 없이 새하얗다.
끝이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내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 블랙홀에 있는 기분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손오공의 머리띠가 씌워진 것 같이 깨질 것 같다.
난 머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본다.
얼마전이었다.
난 폐암으로 죽어버렸다.
하늘에 내 영혼이 붕붕 떠있는채 내 싸늘한 시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딸들은 내 유산 때문인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소리쳐 주고 싶었다.
‘야, 이 빌어먹을 딸내미들아! 아빠가 죽었는데 좋냐? 어?!;
하지만 목소리는커녕 일반 소리조차 낼 수 없는게 현 상태였다.
마치 우주에 떠있는 듯 중력을 무시한채 공중에 떠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가 날 빨아들였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가는 먼지 구더기처럼 계속 하늘로 올라갔다.
큼지막했던 병원이 깨알만큼보이고 손톱 태만큼 보였다.
내가 살던 한국은 머리카락 한 조각 같이 조그마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온갖 별들이 내 주위를 스쳐나갔다.
아주 새까맣고 저 멀리 은빛 부스러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이 곳의 추위는 날 얼려버릴만큼 추웠다.
저 멀리 활활 타오르는 오랜지색 둥근 공이 보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푸른색과 하얀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지구가 있다.
난 태양계를 뒤로 한채 계속 빨려갔다.
얼마나 갔을까.
추위도 배고픔도 외로움도 절망도 삼켜버린지 오래다.
그저 백지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있을 때, 점점 빨려들어감이 강해졌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검은색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악어 마냥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마치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조각난 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이 모양 이꼴이 되어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나 홀로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기분보다 무섭고 외롭다.
소리를 질러보자 모든 곳에서 반사되어 돌아온다.
누가 알았을까?
사후 세상이 이렇게 끔찍한 것일줄은.
여기 온지도 이틀이 지났다.
아니, 지난 것 같다.
시간 감각은 없어진 것 같다.
죄수가 독방에 갇혀진 것 같이 쓸쓸하고 춥고 배고프다.
여기 한복판에 누워있어도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르겠다.
마치 자욱한 안개처럼 불투명하다.
난 수많은 숫자들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이 곳에 흡수되어버린 것 같다.
생각할 수록 화가 치밀어오른다.
딸이란 놈들이 내 유산 때문에 날 떠받치고 있었다니.
그리고 내가 진작 담배를 끊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난 이유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뭔가 만질 수 있는게 나오면 좋겠다.
벽이나 한 줌의 먼지라도 좋다.
제발 손에 뭔가 쥐어졌으면 좋겠다.
터벅 터벅.......
내 발소리가 전체에 울려퍼진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끝이 어딘지도 모른채 사막을 걸어다니는 것처럼 걷고 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 멀리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끝이 안보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줄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좋으니 난 뜀박질을 시작했다.
제발 저 밧줄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그리고 밧줄이 눈 앞에 들어왔을 때, 뜀박질을 멈추었다.
왜 내 눈앞에 목을 매다는 밧줄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걸로 죽으라는 건가?
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시야가 안보일 때까지 계속 줄은 이어져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발 앞에는 어느새 의자까지 준비되어있었다.
이대로 죽을까?
아냐, 조금만 더 있으면 가능성이 보일지 몰라.
아니, 난 이미 죽은 상태잖아?
그럼 내가 죽어도 죽은게 아니란 말이지.
그게 함정인거야.
누가 이런 장치를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아직 죽지 않았어.
제길, 빌어먹을!
어쩌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이 꼴보기 싫은 밧줄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다.
난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자, 어디 한번 죽어봐. 넌 아직 죽지 않았을까, 죽었을까. 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어서, 어서 목을 매달라고. 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난 얼빠진채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내가 살아있을 때 잘못한 것들.
부모님께 못해준 것들.
첫사랑 이야기.
조금만 더 열심히 살걸....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 하느님.
절 다시 살려주신다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흰 소복의 사람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눈 앞에 그 사람은 와있었다.
머리는 노란색이고 흰색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하지만 굉장히 쇠약해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말이냐?”
목소리에서는 굉장히 위엄있는 포스가 뿜어져나왔다.
그 기가 날 압도하는 듯 했다.
난 아무 말도 못한채 눈물만을 흘렸다.
이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갔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눈에는 어느새 투명한 물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리고 한방울이 떨어졌다.
내 발바닥에 톡하면서 떨어졌을 때, 어디론가 빨려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여기로 올 때의 그 기분.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병실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있고 옆에는 심장 박동수가 울려퍼지는 기계가 있었다.
딸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모두 울고 있었다.
간호사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죽을 때, 실신했다고 한다.
딸들이 웃고 있었단 건 죽을 때, 억울하다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던걸까?
난 앞으로 남은 시간을.
너무나도 빠르고 무겁게 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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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 - 좆된몬스터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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