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동영상 한 편 먼저 보시겠습니다. 안 보실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트럼프 당선을 대체 누가 시켜줬는가에 대한
코미디언의 일갈입니다.(동영상에는 영국 기자 조나단 파이라고 나와있지만 사실은 톰 워커라는 코미디언이 연기하는 가상의 캐릭터입니다.)
저 영상에서 기자는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종차별자 여성혐오자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으로 매도해 온 좌파들, 페미니스트들, SJW(소셜 저스티스 워리어,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라 말합니다.
트럼프 지지자들(물론 개중에는 진짜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가 일부 있겠죠)을 상대로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을 하기보다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종차별자, 여성혐오자 등으로 낙인을 찍기만 하는 일이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톰 워커의 비판입니다. 결국 좌파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집해서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는 겁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코미디언은 트럼프를 찍느니 힐러리를 찍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헷갈리면 안 되는 게 이 사람은 결코 우파가 옳았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파 내지는 트럼프 지지자를 대하는 좌파의 태도가 옳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저 썸네일에 나와있는 "그냥 대화를 해보라고"--->이것이 핵심 내용인 셈이죠. 대신 대화를 하되 결코 사람을 상대로 라벨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매도하고 비하하는 것은 결코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이 이미지를 보시겠습니다.
일단 제 입장은 여기 계시는 군게 분들과는 다릅니다. 징병제에 대해서는 이 책 사진에 있는 글 중에 주장 자체로만 보면 옳은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징병제라는 것이 미래에 인구 절벽이 실제로 닥치게 되면, 그 때는 페미니즘이라든지, 양성평등이라든지를 떠나서, 결국에 실행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개인적으로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남성이 군대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예로 소모품처럼 쓰이다가,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전역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나를 개 취급할 때, 옆에 있는 여자도 같이 개 취급 받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고요. 같이 개 취급당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인간 취급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한데, 제가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사진 속의 책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적어도 이 책의 이 부분만큼은 토론 할 때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체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진 속의 이 부분만 한정지어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 자체를 따지지는 게 아니라, 이 글이 가르쳐 주는 지침의 방법론에 관한 것입니다.
인정하게 하기 : 군대 못 가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네가 차별주의자인 건 인정하는 거지? 이 부분을 보겠습니다
실제로 대화상대인 남자가 지독한 여성혐오자에 성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군대 안 갔으면 함부로 말하지 말하라. 조용히 하라"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잘못하는 건 맞고요. 상대방의 입을 "너는 안 겪어봐서 모른다."라는 이유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토론할 때 상대방을 여성혐오자, 일베X, 차별주의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면, 토론 상대방은 마음을 닫습니다. 그 순간 설득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민감한 문제고(특히 본인이 안 겪은 일에 말하는 거라면 지극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이 상황에서)토론 상대방인 남성이 진짜로 차별주의자든, 아니든 간에 저런 언사를 들으면 더 이상 입장을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반감이 생기죠. 토론 할 때 상대방의 도덕성 자체를 공격하고 인신을 공격하는 행위는 결코 좋은 토론 자세가 아닙니다. 물론 남성이 여성을 대화에서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저러한 반응은 정말 최소한의 항변일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책이 유도하는 것은 남성의 공격에 기 죽지 말고, 똑같이 받아치라는 것이고, 그 자세는 옳습니다. 토론할 때는 받아칠 건 받아쳐야죠.
그런데 받아칠 건 받아치되, 토론에서 상대방을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해버리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수 많은 정신의 결, 상대방을 구성하는 수 많은 페르소나를 깡그리 무시하고 '차별주의자'같은 프레임 하나로 묶어버리면, 상대방은 거기서 마음을 닫습니다. 여기서 설득은 불가능해지고, 감정은 평행선을 달립니다.
차별주의자라고 불러주면, 듣는 사람이 아 내가 차별주의자구나! 하고 깨닫거나, 내가 성차별, 여성혐오를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거나, 또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논파되었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라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진에서는 "인정하게 하기"라고 되어있지만 본인이 쓰레기라는 것을 인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서 지역차별 발언을 숨 쉬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에게 야 이 일베X야. 지역차별하면 좋냐? 내지는 너 일베하냐?라고 묻는 순간, 더 이상 상대방의 의미있는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로 일베를 하건, 하지 않건, 이러한 대화 태도는 그 사람이 지역차별적인 발언을 못 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문제는 단어 하나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짓는 이 행위가 개인 대 개인의 대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대 일로 조리돌림을 해서 아예 말을 못 꺼내게 만들거나, 상대방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는 용도로도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예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죠. 상대방이 말을 못 꺼내게 되는 상황이 왔으니까요. 일단 겉으로 느끼기엔 차별적인 언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발언들이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상대방의 입을 막은 쪽은 조용해졌으니까 내가 이겼다 싶을 겁니다. 더 이상 이 놈들이 할 말이 없구나. 도저히 자신이 못 난 존재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구나...싶겠죠.
하지만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그 "잘못된 세계관,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본인을 차별주의자로 몰아가고(실제로 차별주의자더라도)얘기 꺼내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될 테니까 말을 못하는 것일 뿐이지, 본질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엔 그러다 폭발하고 말죠.
그래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남성들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폭발하는 것이고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제목을 보더라도, 많은 여성분들이 일상생활에서 남성에게 시달려 왔고, 어떻게 반박할 지 몰라서 그냥 넘어가버린 적도 많을 겁니다. 저 책은 여성들이 남성에 맞서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도록 도와주려고 쓰여진 것이죠. 책 제목대로 여성들에게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능률적으로 언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들이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 자들에게 차별주의자라는 일침을 날리면 당장 속은 시원할 겁니다. 그리고 분명,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성들이 더 이상 우리는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게 되는 효과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차별주의자라는, 넌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다라는 말을 듣는 남성들이 유의미한 태도 변화를 보일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부드러운 말로 돌려 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용할 팩트가 있다면 사용해서 무자비하게 정론직필로 상대방의 논리를 박살내되, 상대방을 모욕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상대방의 입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표현의 자유와도 연결되는데,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박사모 회원이든, 일베 회원이든, 트위터 유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말할 권리를 막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하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살다보면 사람들이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7시 타령을 해대고, 누군가는 그 분들이 몰려온다 쿵쾅쿵쾅 드립을 치고 어떤 분은 6.9cm가 얼마나 짧은지 이야기하고, 또 어떤 분들은 빨갱이는 능지처참을 당해도 싼 존재들이라고 확성기로 떠들어댑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 앞에서 최우선 가치는 아닙니다. 본인이 내뱉은 말에 대한 도의적, 사회적 책임도, 표현의 자유에는 우선하지 않습니다. 군게 여러분들도 여기서 하고 싶은 말-여자도 군대가라. 내지는 여성은 이래서 안 돼-같은 말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말을 뱉은 것에 대한 책임과 그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는 별개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토론을 통해서 설득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설득하기도 전에 상대방을 모욕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한다면, 그 상대방은 절대 설득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표현을 세상에서 없애버린다고 해서 당신들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지 않습니다.
지금 군게에 글 쓰시는 분들이 차단이 되곤 하는데, 오유의 특수한 기능 중 하나이지만, 정말 정말 정말 안 좋은 기능입니다. 차단시키면 차단 된 분들이 아 내가 잘못해서 차단되었구나 하고 생각합니까?반대로상대방의 입을 닥치게 만들면, 입 닥치게 만드는 분들의 상황이 과연 조금이라도 개선될까요?
왜 토론을 안 합니까? 왜 설득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그래요, 언어가 필요하시죠. 입이 트이셔야죠. 그런데 왜 남의 입을 막는 겁니까? 왜 그 언어로 남을 매도합니까? 그래요. 물론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는 있지만 그런다고 상대가 설득되지 않는다는 건 아시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입을 막고 남의 언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상대방이 과연 내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설복된답니까? 본인 입은 지켜야 하고 남의 입은 막아도 된다는 법은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과거 군사독재세력은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리거나, 빨갱이 프레임을 붙이고 그것으로 협박해서 상대방의 의사표현을 사전에 차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군사독재세력은 다 어디갔나요? 그들은 과연 자신들에 반대하는 자들을 빨갱이 프레임으로 설득시킬 수 있었나요? 이건 좌파를 자처하시는 오유 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사람을 말을 못하게 만드는 것을 떠나서 아예 죽여버린다 해도, 제대로 된 토론이 없으면 절대 상대방은 설득 안 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하려면, 통계 수치를 들이대고, 사실관계를 보강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전에, 남을 모욕하거나, 남의 입을 다물게 만들지 마세요.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면서 먼저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고요? 그럼 상대방을 쿵쾅이라든가 한남 소추 소심으로 모욕하지 마시고 어떻게 논리로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하세요. 물론 표현의 자유는 있으니 똑같이 응대하셔도 됩니다. 다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말할 뿐이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최우선이고, 내 기분은 그 다음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신의 머리와 당신의 손으로 가려주면 됩니다. 이건 양비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긴 글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서 방문일수 방문횟수가 적은데, 5년전부터 쭉 여기를 봐왔습니다. 뭐 그 때도 토론 같은 건 별로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더 한 것 같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왜 욕 먹는지 아십니까? 무슨 주장을 하건 간에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면 사람이 갑자기 일베X이 되거나 국정원 요원이 되는 경우도 많죠.
여기서 나 문재인 지지 안 한다. 무효표 날리겠다. 하는 분들을 간베라고 부르거나, 직업을 바꿔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다고 해서 그 분들이 마음 돌려서 여러분이 지지하는 후보 지지하지 않습니다.
상대방 모욕하는 건 쉽습니다. 내 기분이 나빴으니, 남의 기분도 나쁘게 만들고, 상대방을 저열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면 내가 더 우월해지는 거 같죠. 내가 토론에서 이긴 거 같고요. 하지만 그런다고 절대 이기는 거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을 모욕하지 않고도 본인의 주장을 차분히 펼 수 있는 자세입니다.
이걸 못하면 우리와 당신들은 그 어떤 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할 겁니다. 동영상의 코미디언 말대로,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안 들고 기분이 나쁘다면, 당신의 언어만이 존재하는 안락한 둥우리로 가시든가, 아니면 토론을 해서 상대방의 무지를 짚어서 설득을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