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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도대체 화는 왜 일어날까요?
화는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이유는
사사건건 매사를 분별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잘못을 따지는 기준이라는 것이
각자 살아온 경험과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관념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라서
절대 불변의 일반적인 잣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객관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항상 내 생각과 내 취향과 내 기준에 따라 분별합니다.
옳고 그름을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음의 구분, 늦거나 빠르다는 판단, 맛있고 맛없다는 느낌까지 그렇습니다.
이런 구관적인 옳고 그름의 분별이 생기면 그 분별에 따라 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분별이 없으면 내가 옳다고 고집할 근거도 네가 그르다고 비난할 근거도 없으며,
그런 마음 상태에서는 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이유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있는 줄을 알고, 그 분별의 기준이 공한 줄을 알면
어리석은 인연의 씨앗을 뿌리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내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내가 없다는 고정관념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 똑같거나 또는 서로 다르다는 고정관념은 다 헛된 망상, 자기 고집에 불과합니다.
밖의 경계에 반응을 일으키는 주관적 요인, 근본 원인을 관찰해야 합니다.
바깥 경계가 부딪쳐 오기 전에 이미 주체의 내부에는 경계에 반응할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경계에 부딪침으로써 씨앗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내면에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계인지에 따라서 싹이 트는 모양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예 싹이 틀 만한 환경과 부딪치지 않으면 싹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싹의 씨앗은 이미 내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연의 법칙입니다.
싹이 트지 않았다고 해서 내 안에 씨앗이 없는 게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싹이 텄다고 해서 없던 씨앗이 바깥에서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연이란 밭과 같습니다.
그 밭에서 보리가 자라는 가 콩이 자라는가는 어떤 씨앗을 심었느냐에 달렸습니다.
심은 씨앗의 차이가 내 안에 숨어 있는 인의 작용입니다.
지금 내 안에 인이라는 씨앗이 있더라도 바깥 경계에 따라 연이라는 조건과 만나지 않으면
씨앗은 싹이 트지 않습니다. 인과 연이 부딪쳐야만 과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연과의 원리입니다.
『법륜스님의 금강경강의 - 제이십오분 화무소화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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