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을 가장한 오지랖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긴 남자로 살아간다는 건 그리 녹록치 못한 일이다. <div>그것도 실험 결과에 찌들어 머리 깍을 여력도 없는 대학원생이 대충 묶어 올린 스타일이나</div> <div>속세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안빈낙도를 즐기다보니 어찌어찌 자라게 된 야인 스타일도 아닌</div> <div>뭇 남성들의 로망이라는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라면 스트레스 난이도가 조금 더 올라간다.</div> <div>또 하나 슬픈 현실은 대자연마저 장발남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이다.</div> <div><br></div> <div>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div> <div>자연이 대체 어쨌길래 저러는 것인가?</div> <div>답은 의외로 간단하다.</div> <div><font size="5" color="#ff0000">겨울</font></div> <div>겨울의 존재는 장발남을 충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div> <div><br></div> <div>위도 30˚~40˚ 에 위치한 한반도는 뚜렷한 사계절을 가진다.</div> <div>매서운 추위의 계절,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꽁꽁 둘러싸 체온 유지를 꾀한다.</div> <div>그 결과 2 차 성징을 겪은 인간의 성별을 쉬이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외골격적 특징이 두터운 옷에 가려져버리는 것이다.</div> <div>거기에 목도리까지 두른다면?</div> <div>실로 인간의 인지 능력의 낮음을 탓할 수 밖에 없게 된다.</div> <div><br></div> <div><br></div> <div>문제의 그 날도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div> <div>친구들과 나는 한껏 무장을 하고 거리와 가게를 방황하며 놀고 있었는데</div> <div>한 명이 갑자기 홍대를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div> <div>우리는 딱히 할 것도 없는 잉여들이라 흔쾌히 수락하고 가게를 나섰다.</div> <div>하지만 가게를 나오자마자 남자애들은 너무 피곤하고, 홍대는 너무 멀다며 집으로 갔다.</div> <div>하여간 남자들이란..</div> <div>결국 여자애들과 나만 홍대로 가게 되었다.</div> <div><br></div> <div>허나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던 것이,</div> <div>우리는 학교 주변을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는 샌님들이었고</div> <div>새벽의 홍대는 마귀 소굴처럼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것이다.</div> <div>지금 몸을 떠는 게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야 만 우리는</div> <div>그냥 산책이나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젊은의 거리를 방황했다.</div> <div><br></div> <div>그 때였다.</div> <div>날이 춥기도 하고</div> <div>행여나 서로 떨어질까 우리는 다 같이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는데,</div> <div>누군가 갑자기 내 옆으로 와 팔짱을 끼는 것이었다.</div> <div>내 시야에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보였고,</div> <div>난 진짜 귀신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은 두려움에 얼음이 되었다.</div> <div>우리는 경직된 자세로 돌아보았고,</div> <div>그 자리엔 처음보는 남정네가 서 있었다.</div> <div><br></div> <div>서로 말 없이 쳐다보던 1~2 초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쳤다.</div> <div>'뭐지? 일행이랑 헷갈린 걸까?'</div> <div>'길을 잃었나? 경찰서 위치는 우리도 모르는데.'</div> <div>'이게 말로만 듣던 인신매매인가! 불효자는 웁니다!'</div> <div>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법</div> <div>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div> <div><br></div> <div>"무슨 일이세요?"</div> <div><br></div> <div>"아, 나도 같이 놀고 싶어서."</div> <div><br></div> <div>그랬다. 헌팅이었다.</div> <div>하, 진짜.... 20 몇 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헌팅당한 게 남자한테라니... 지지리 운도 없지.</div> <div>그동안 '남자한테 번호 따인 적 있냐?', '남친은 언제 사귀냐?' 등등의 농담 섞인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div> <div>그 때마다 당당히 부정할 수 있었는데,</div> <div>이젠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div> <div>적어도 '남자한테 헌팅 당한 적' 하나는....</div> <div>그래서 나는 울분에 차서 말했다.</div> <div><br></div> <div>"저 게이 아니거든요."</div> <div><br></div> <div>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를 더 충격에 빠뜨렸다.<br></div> <div><br></div> <div>"재밌는 언니네."</div> <div><br></div> <div>결국 내 멘탈은 산산조각이 났다.</div> <div>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div> <div><div><br></div> <div>하지만 홍대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div> <div>그 후로도 헌팅을 시도하는 남자들이 있었다.</div> <div><br></div> <div>갑자기 남자 한 명이 우리 앞에 오더니 우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뒤로 걷기 시작했다.</div> <div>야밤에 체조를 하는 건가</div> <div>아니면 혈관에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르는 건가 싶어</div> <div>우리는 애써 무시하며 피해갔다.</div> <div>그러자 그 남자는 다시 자기 갈 길을 가며 말했다.</div> <div><br></div> <div>"이야, 눈길도 안 주네, 저 년들."</div> <div><br></div> <div>...</div> <div><br></div></div> <div>결국 우리는 '홍대 무서워'만 연발하며 싸늘한 산책을 마감했고,</div> <div>새벽 홍대 나들이는 내게 커다란 스크래치를 남겼다.</div> <div>그리고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홍대는, 특히 새벽의 홍대는 무서운 곳이라는 점.</span></div> <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머리카락이 좀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멀쩡한 남정네도 1 시간에 두세 번 정도의 헌팅을 받을 수 있는 곳라는 점이다.</span></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