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아버지..</div> <div> </div> <div>내 기억속에 가장 먼저 기억되는 아버지는 웃음을 짓고 계셨다.</div> <div> </div> <div> </div> <div>내가 대여섯살이나 됐을 때 한 여름이였을 것이다.</div> <div> </div> <div>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형과 함께 마당에서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었다.</div> <div> </div> <div>그때 당시 아버지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하셨다.</div> <div> </div> <div>저녁을 먹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서 아버지를 기다렸고</div> <div> </div> <div>그 기다림은 설렘이 가득했다.</div> <div> </div> <div>설렘이 가득한 이유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div> <div> </div> <div> </div> <div>아니다.</div> <div> </div> <div> </div> <div>퇴근하시면서 늘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사오셨기 때문이다.</div> <div> </div> <div>아이스크림을 들고 마당을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늘 웃음을 짓고 계셨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면 아버지가 참 자상하시네라며 훈훈하게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지겠지만</div> <div> </div> <div>또 아니다.</div> <div> </div> <div> </div> <div>아버지를 떠올리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이렇게 훈훈할 뿐</div> <div> </div> <div>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단어로 폭군이라는 단어이다.</div> <div> </div> <div> </div> <div>시골에서 나고 자란 옛날 사람이고 </div> <div> </div> <div>9남매의 첫째인 장남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다.</div> <div> </div> <div>그리고 자상하다라는 단어랑 거리가 먼 사람이다.</div> <div> </div> <div>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욕은 안하시지만 화부터 내고 다혈질인 분이기도 하다.</div> <div> </div> <div> </div> <div>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div> <div> </div> <div>초등학교 2학년 때 큰 이모는 형과 나를 위해 자전거를 선물해 주셨다.</div> <div> </div> <div>두발 자전거를 타본적도 배워본적도 없는 형과 나는 선물은 기뻤지만</div> <div> </div> <div>복도에 세워둘뿐 타고 다니지는 않았다.</div> <div> </div> <div>먼지만 쌓여가는 자전거가 아까우셨던 아버지는</div> <div> </div> <div>일요일에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신다며 형과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div> <div> </div> <div>여기까지도 아주 훈훈해 보이지만</div> <div> </div> <div>역시나 아니다.</div> <div> </div> <div> </div> <div>아버지가 원체 어려웠던 형과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축 늘어졌고</div> <div> </div> <div>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가게 되었다.</div> <div> </div> <div>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게</div> <div> </div> <div>뒤에서 잡아주시면서 중심을 잡아봐라 라든지 중심을 잡는 노하우라든지</div> <div> </div> <div>이런걸 알려주시면서 자전거를 타길 바라셔야지</div> <div> </div> <div>그냥 "타봐" 이러시고 앞으로 못나가면 화부터 버럭 내셨다. </div> <div> </div> <div>한두시간을 그렇게 혼만 나고 자전거 실력은 늘지도 않고..</div> <div> </div> <div>나중에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전거를 선물해주신 큰 이모를 원망하기도 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아버지랑 단 둘만 집에 있게 되면 공기조차 무거워서 숨도 쉬기 힘들었고</div> <div> </div> <div>누구든 집에 얼른 돌아오길 바랄 정도로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다.</div> <div> </div> <div> </div> <div>이렇게 아버지를 어려워하던 내가 20살이 되었고</div> <div> </div> <div>군대를 갈 시기가 되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입대 날짜가 나오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추석도 같이 못 지내고 입대한다고 우셨고</div> <div> </div> <div>아버지께서는 딱히 반응이 없으셨다.</div> <div> </div> <div>시간은 점점 흘러</div> <div> </div> <div>입대날이 되었다.</div> <div> </div> <div>아버지께서는 휴가를 내시고 어머니와 막내누나를 데리고</div> <div> </div> <div>논산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다.</div> <div> </div> <div> </div> <div>대연병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div> <div> </div> <div>여기저기 훌쩍이거나 웃으며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스탠드 세번째 줄에서 기다리던 나와 가족들은</div> <div> </div> <div>"입영병들은 연병장에 집합하십시오" 라는 소리와 함께</div> <div> </div> <div>이별을 시작했다.</div> <div> </div> <div>어머니와 누나는 울기 시작했고</div> <div> </div> <div>나는 걱정을 안끼치기 위해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달래주다가 </div> <div> </div> <div>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div> <div> </div> <div>아버지는 울진 않으셨지만 눈이 엄청 빨개지셔서</div> <div> </div> <div>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div> <div> </div> <div>그 무서운 아버지가 </div> <div> </div> <div>눈이 충혈될 정도로 빨개지며 울음을 참는다는게</div> <div> </div> <div>나에게는 놀라움을 주었다.</div> <div> </div> <div>우리 아버지도 눈물이 있는 사람이구나...</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논산에서는 입영 행사가 끝나고</div> <div> </div> <div>연병장을 한바퀴 쭉 돌며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다.</div> <div> </div> <div>마지막 인사를 위해 </div> <div> </div> <div>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가족들이 서 있던 </div> <div> </div> <div>스탠드 세번째자리를 쳐다봤는데</div> <div> </div> <div>우리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div> <div> </div> <div>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 동시에 나가면 차가 막힐테니까 먼저 가셨군' 이라는 생각을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내가 참 속도 좋은게 </div> <div> </div> <div>다른 가족들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데</div> <div> </div> <div>섭섭하다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고 </div> <div> </div> <div>차 안막히게 가셔야지라고 이해를 하고 있었다.</div> <div> </div> <div>그렇게 혼자서 남의 가족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건물 뒤로 집합하게 되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나중에 들은 얘긴데 </div> <div> </div> <div>나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스탠드 첫째줄로 내려오고 자리를 살짝 옮기신거였다고 했다.</div> <div> </div> <div>막내 누나 말로는 아버지께서 결국 눈물을 흘리시며 내 이름을 그렇게 크게 불렀는데</div> <div> </div> <div>내가 전혀 엉뚱한데 쳐다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들어 갔었어서</div> <div> </div> <div>아쉬웠다고 했다. </div> <div> </div> <div>아버지께서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는 얘기는 </div> <div> </div> <div>나에게 이상한 감정을 들게 했다.</div> <div> </div> <div>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었다.</div> <div> </div> <div>솔직히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무섭고 싫고, 독립만 하면 아버지 안보고 살꺼라고 </div> <div> </div> <div>입버릇 처럼 말하던 내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수정되는 계기이기도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다시 얘기로 돌아와</div> <div> </div> <div>내가 일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을 때 이야기가 이 글의 목적이다.</div> <div> </div> <div> </div> <div>분명 내가 이 날 휴가를 나간다고 했는데 </div> <div> </div> <div>집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잠긴채 아무도 없었다.</div> <div> </div> <div>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나는 우유구멍에 열쇠가 있나 뒤져보기도 했지만</div> <div> </div> <div>없었다.</div> <div> </div> <div>두번째 휴가만에 내가 이렇게 소홀해 질줄이야..</div> <div> </div> <div> </div> <div>복도식 아파트여서 내 방 창문은 방범창으로 되어있었는데</div> <div> </div> <div>나는 그 부분을 힘껏 손으로 당겨 늘이고</div> <div> </div> <div>낑낑대며 몸을 집어 넣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div> <div> </div> <div>살짝 쓸리긴 했지만 당시에 엄청 말랐던 나는 그게 가능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군인이 휴가를 나와서 집에 왔는데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div> <div> </div> <div>열쇠도 없어서 억지로 집에 들어온 나는 짜증이 좀 났다.</div> <div> </div> <div>이러면 안되지만 </div> <div> </div> <div>나도 모르게 책상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한모금 빨았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연기를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내 방문이 벌컥 열렸다.</div> <div> </div> <div>그리고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div> <div> </div> <div>눈이 마주친 그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고</div> <div> </div> <div>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싸대기 맞겠다..' 였다.</div> <div> </div> <div>담배를 끄던지 했었어야 했는데</div> <div> </div> <div>진짜 몸이 굳어서 의자에 앉아서 아무 반응을 할수가 없었다.</div> <div> </div> <div> </div> <div>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div> <div> </div> <div>"허허 xx야 휴가 나왔니? 맛있는거 많이 먹고 들어가라."</div> <div> </div> <div>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div> <div> </div> <div>아버지께서 나가시고도 한참을 굳어 있던 나는</div> <div> </div> <div>'아 군인이니까 한번 봐주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시간이 한참흘러 이 일을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는</div> <div> </div> <div>내가 군인이어서 봐준게 아니라 </div> <div> </div> <div>나에게 어른 대접을 해주기 시작하신거였다.</div> <div> </div> <div> </div> <div>어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다 정의가 다를 것이다.</div> <div> </div> <div>내가 나를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지만</div> <div> </div> <div>아버지께서는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 어른이였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리고 아버지께서 왜 그리 엄하셨고 가족들에게 서툴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옛날 사람이여서 방법을 몰랐을 뿐</div> <div> </div> <div>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div> <div> </div> <div>아버지만의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최고의 어른은 아니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지금은 70이 가까워져 머리가 하얗게 샜지만 정정한 영감님이다.</div> <div> </div> <div>그리고 아들에게 전화가 오면 기분이 좋아지신다는 마음이 약한 영감님이시기도 하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여담이지만 </div> <div> </div> <div>어머니께서는 내가 제대하는 날 큰누나와 함께</div> <div> </div> <div>나를 금연클리닉으로 끌고 갔다.</div> <div> </div> <div>어머니께 나는 군대를 다녀와도 어른이 아닌갑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