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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1337701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11
    조회수 : 1530
    IP : 125.138.***.85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11/19 16:52:11
    원글작성시간 : 2016/11/11 19:14:09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37701 모바일
    발칸시리즈4 세르비아 간략사 1 <오스만 지배부터 자치공국까지>




    바알칸의 네번째 세르비아 입니다. 간략한 글이니 재밌게 읽어주세요!

     

    오스만 지배의 시작

     

    오스만 지배하의 다른 점령 지역처럼 세르비아 역시 오스만 투르크의 군사-행정, 사법기구들이 설치되었다.

    기본적인 군사-행정 단위인 산자크()와 상위 단위이며 술탄의 대리인인 파샤가 통치하는

    파샬루크가 설치되었다. 산자크는 술탄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산자크-베그가 통치하였으며 산자크-베그의

    역할은 산자크의 군대를 책임지고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산자크는 산자크의 재판권을 관할하는

    카디야(이슬람 종교법 재판관)가 관할하는 카딜루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카틸루크는 그보다

    작은 단위인 나히야()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세르비아에서 16세기 중반까지도 기독교도 소()영주나 지주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확립되지 않았을 시기에 그들의 조직되고 강력한 저항을 피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세르비아에서 오스만의 지배가 공고화되고 행정기구들이

    갖춰지자 16세기 중반 이후로는 세르비아 일대에서 기독교도 소영주-지주는 사라졌다. 그들이 자신의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면 무슬림이 되어야했고 신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세르비아 북쪽의 헝가리로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하여 오스만 지배하의 세르비아에서 중세 세르비아로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지배계급이 소멸되었다.

     

    농민 등의 피지배계층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 계층인 라야에 속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하에서의 라야는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으며 경작권과 수확물에 대한 제한적인 권리만을 보유하게

    되었고 농민들이 일정기간 동안 농사를 짓지 않거나 농사를 게을리 한다면 봉토주나 행정기관이 농민의 경작권을

    박탈할 수 있었다. 농민들은 경작하는 토지의 소유주인 봉토주 혹은 오스만 중앙 정부에 일정한 액수의 소작료를

    납부하고 수확물의 1/10을 납부하였다. 여기에 건초세, 가축세, 방목세, 양봉세, 과수세 등의 다양한 잡세를

    납부해야 했다.


    이런 종류의 세금 이외에도 기독교 세르비아 하층민들은 비()무슬림으로서 하리치(인두세)를 납부해야 했다.

    이러한 하리치는 무슬림이 되거나 군대, 혹은 국방에 관련한 업무를 맡음으로서 면제 받을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불하받은 말을 돌보는 일이나 수송 업무의 노역자 같은 것들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보다

    더 드물기는 하지만 일부 세르비아인들은 국경수비대와 경찰, 경비원 같은 준군사 조직이나

    군대에 들어감으로서 하리치를 면제받았다.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세르비아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들은 이등국민이 되었다.

    종교,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기독교도들은 새로운 지배자가 된 무슬림들에게 굴욕을 받았고

    특히 종교 분야에서 기독교도들은 무슬림들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종교활동이 가능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기독교도들은 옷차림도 제한받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성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오스만제국에서 더 나은 삶의 질과 출세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슬림이 되어야만 했다.

     

    세르비아왕국이 무너지고 세르비아 정교회가 약해진 지역에서 이슬람교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기독교의 참패로 말미암은 두려움과 희망의 상실과 더불어 오스만 군대의 약탈, 살해, 징병, 징용과

    황폐화된 지역에 개시된 무슬림 식민이 포교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지금의 보스니아 일대는 정교의 이단인

    보고밀파의 활동으로 정교의 기반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무슬림 개종이 활발한 지역이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무슬림 개종은 특히 도시에서 활발해졌는데 이는 인구와 물자, 자본이 모이는 도시가

    무슬림과 기독교도간의 차별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개종에 대한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하여 농촌은 비교적 수월하게 정교 전통을 수호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세르비아의 부활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르비아의 민족성, 전통을 수호하는 것에는 다른 발칸국가와 마찬가지로 정교 교회가 매우

    큰 역할을 하였는데 전쟁기간과 지배 초기에 많은 교회들이 파괴되고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 정교회는 세르비아 민족의식과 전통을 수호하는데 성공하였다.

     

    16세기 말엽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세르비아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은 다양한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과 협력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593-1606년의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세르비아인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세르비아 일부 지역을

    회복하였지만 오스트리아군이 세르비아에 이르지 못한 것과 오스만 군대의 반격에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봉기에 참여한 이들은 학살당했고 반란의 지도자들은 고문을 받고 살해되었다. 15947월 오스만 사령관은

    이 봉기에 대한 보복과 경고의 표시로 세르비아의 성인인 성()사바의 유해를 수도원에서 빼앗아서

    베오그라드의 브라차르 언덕에서 불태웠다. 이 사건은 아직도 세르비아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며

    코소보 전투와 함께 오스만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시기 반란이 매우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인들의 저항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반란군의 이야기는 부모 세대가

    다음세대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세르비아 민족 의식의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성 사바.jpg   성(聖) 사바



    성 사바 교회.JPG

    聖 사바교회, 성 사바의 유해가 불탄 그곳에 설립된 교회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라는데...?



    1693-1699년의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빈 포위를 격퇴한 후 발칸반도로 진격하여

    1688년애는 베오그라드를 점령했다.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군에 합류했고

    오스트리아군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다시 세르비아 전토에서 반 투르크 봉기가 일어났다.

    또한 베오그라드에서 교회주도하에 의논을 가지고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반 투르크 전쟁에 나서기로 결의했으며

    오스트리아 황제를 세르비아 왕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 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발칸 반도 깊숙이

    들어온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세르비아 일대를 재점령하기 시작하자 많은 세르비아 인들이

    오스트리아로 피난 대열에 올랐다. 오스만 투르크 군은 세르비아를 재정복한 후 피난 가지 않은

    기독교도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세르비아 전토를 공격하여 교회와 수도원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이 시기 이주와 학살로 많은 세르비아 인들이 사망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코소보-메토히야에서 세르비아인을 밀어내고 알바니아인, 무슬림이 주류가 되었다.

     

    200px-Locator_map_Kosovo_in_Yugoslavia.svg.png


    1714-1718년의 오스트리아, 베네치아와의 오스만 투르크간의 충돌에서 오스트리아가 승리함에 따라

    세르비아인들이 사는 일부지역이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통치는 강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여야 했고 정교에서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에

    세르비아 인들은 오스트리아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북부의 세르비아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오스만 투르크 령으로 도망치는 경우도 왕왕 일어났다.

     

    1736-1739년의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 총대주교와 같이 세르비아인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이에 호응하여 세르비아 일부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군이 오스만 군에게 격파되었고 세르비아인들의 봉기도 실패로 돌아갔다. 오스만 투르크는

    다시 세르비아 일대에 가혹한 보복을 가했지만 세르비아인들의 저항 의식을 잠재우는 것에는 실패했다.

     

    1788-1791년의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세르비아인들은 다시 의용군을 조직해서 오스트리아의 편에서

    싸웠다. 또한 세르비아인들은 다시 세르비안 곳곳에서 봉기하였고 세르비아 일부지역을 해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1791년 세르비아를 버리고 오스만 투르크와 강화함에 따라 세르비아인들은 다시 오스만

    투르크의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몇 번이나 오스트리아게 버림받아 가혹한 환경에 놓이게 된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를 증오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한 맹세를 잊지 않고 있으며 황제를 버리고 배신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의 선조들이

    우리의 선조들을 버렸듯이 나와 세르비아 민족 모두를 포기했다. 따라서 나는 사바강을 건너 돌아갈 것이다.

    비록 나에게는 서기도 없고 다른 학식 있는 사람들도 없지만 방방곡곡의 수도원을 찾아가 모든 수도사들에게

    세르비아인들은 더 이상 오스트리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도원에 써 붙일 것을 설득할 것이다.”

    -알렉사 네나도비치,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인 장군, 세르비아로 돌아와 오스만 투르크에게 참수됨-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가 그들의 이익에 따라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외세에 기대는 것보다는 자체적인 민족운동으로 조국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1차 세르비아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1차 세르비아 봉기는 오스만 투르크의 허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뿐 만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의 압제 하에 놓여진 발칸 반도 여러 민족에게 민족의식의 각성과 투쟁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세르비아 자치공국으로

     

    세르비아의 민족의식은 지속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게속 보존되었는데, 이는 시인들의 서사시를 통한

    세르비아 민족의식 보존 노력 때문이었다.

     

    1803년 새르비아인들의 노골적인 봉기준비 움직임이 포작되자 오스만 투르크 군은 세르비아의 지도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세르비아인들을 두려움에 빠트려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이전 시기부터 누누이 해온 오판을 하게

    되었다. 이런 판단으로 앞에서 언급된 알렉사 네나도비치를 비롯한 70여명의 세르비아 귀족, 명망가,

    성직자를 참수하였다. 그러나 이전 시기부터 그래왔듯이 세르비아인들은 이러한 폭거에 두려움이 아닌 반 투르크

    봉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1804년 조르제 페트로비치(카라조르제비치 왕가의 시작)를 지도자로

    1차 세르비아 봉기가 시작되었다.

     

    1차 세르비아 봉기는 이전시기 봉기에 비해 유리한 점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1. 1788-1791년간의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측으로 참전한 경험을 가진 군인이 많았다는 것

    2. 전쟁의 여파로 세르비아인들에게 상당수의 무기가 풀려 세르비아인들이 무장을 쉽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있다

    3. 허약해지고 느슨해진 오스만 투르크의 중앙집권 체제로 말미암아 세르비아 일대에서 관리들과 무슬림 지주들이

       도시와 인근지역 이외에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점

    4. 오스만 투르크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기독교도 세르비아인들을 징병하여 세르비아인들에게

       군대 경험을 하게 한 것과 오스만 투르크 군의 허약함을 알게 된 것 등이 있었다.

     

    봉기는 들불처럼 퍼져나가서 세르비아 전토를 뒤흔들었다. 오스만 정부는 진압을 시도했지만 지방군의

    진압 시도는 실패했고 세르비아인들은 러시아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러시아의 도움을 요청했다.

     

    1805년 세르비아인들은 회의를 열고 오스만 군대의 철수와 자치권을 요구하였다. 이때에 이르면

    이미 세르비아의 세르비아인 뿐 아니라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 또한,

    오스트리아 제국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까지 포함하여 대규모 민족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인들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오스만 정부는 세르비아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진압군을 파견했지만,

    세르비아 봉기군에 의하여 격파되었다.(이반코바쯔 전투)

     

    Boj_ivankovac_spomenik.jpg
    이반코바쯔 전투 기념비


    여기에 러시아의 지원이 겹치면고 세르비아 영토내에서 오스만 군이 지속적으로 격파되면서 베오그라드를

    포함한 세르비아 거의 전 국토가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스만 정부는 협상을 통해 오스만 정부에게 조공을 바치는 대신 징세권, 국방분야,

    행정권의 자치와 더불어 세르비아를 통치하는 세습 대공의 인정, 투르크 인들은 세르비아 내에서 도시 내에서만

    체류할 수 있고 숫자도 500명의 병사로 제한한다는 항목을 제시했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1807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발발하자 투르크의 제안을 거부하고 전쟁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이시기부터 조르제는 세르비아의 세습대공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으며 국가기관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봉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국가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새로운 헌법과 평의회,

    대법원이 설치되고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방의 유력자들은 조르제,

    카라조르제의 이러한 움직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봉기군들간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1809년에 이러한 불협화음이 지휘관들 사이에서 불화를 만들어내어 세르비아 봉기군을 약화시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세르비아 봉기군은 오스만 군을 지속적으로 격파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으로 말미암아 1812516일 오스만 투르크와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서 세르비아는 고립되었다. 강화조약에서 세르비아는 일부 자치권을 보장받기는 하였으나

    투르크 인들의 세르비아 재점령, 무기 압수 등 세르비아에게 불리한 조항이 포함 되어 있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

    지원을 중지함에 따라 오스만 군은 세르비아 봉기군을 포위하여 축차적으로 격파하였다. 카라조르제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오스트리아 영토로 망명하고 1차 봉기는 실패하였다. 1차 봉기가 실패함에 따라 세르비아 전 국토는

    다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전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된 오스만 투르크 정부의 폭압적인

    보복이 뒤이었다. 봉기 참여자들은 살해되거나 투옥되었고 전 국토가 다시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복은 세르비아인들의 저항정신을 꺾지 못했다. 세르비아인들은 봉기의 성공을 기억하였고

    세르비아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1차 봉기의 결과로 러시아의 보장 하에

    제한적이나마 자치권을 누리게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탄압과 학살 보복이 1차 봉기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르비아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1814424일 세르비아인들은 다시 봉기 하였다. 세르비아 2차 봉기는

    열강의 도움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무기를 이미 압수당했으며 오스만 군의 약탈과 파괴로 세르비아 국토가

    황폐화된 것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었으나 오스만 군의 폭압은

    세르비아의 재봉기를 유발했다.

     

    이런 세르비아 측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정부는 겁에 질려있었다.

    러시아가 보장하는 세르비아의 자치권을 파괴하는 행동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두려움은

    오스만 정부가 세르비아 2차 봉기 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세르비아인들은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2차 봉기에서 행정-사법 분야에서 광범위한 자치권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가 오스만 정부에게 지속적으로 세르비아의 자치권이 침해받고 있으며

    전쟁을 위협하고 있었던 점 또한 세르비아가 자치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런 위태위태한 자치권은 1821, 그리스에서 반()투르크 봉기가 시작됨에 따라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리스에서 독립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오스만 정부는 세르비아의 자치권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1826년 러시아의 짜르 니콜라이 1세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루마니아의 공국들과

    세르비아의 자치권 문제에 관련한 최후통첩을 보냄에 따라 오스만 정부가 양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세르비아는 1826년 협약으로 연간 일정한 액수의 조공을 바치는 대신 종교의 자유, 자치적인 행정기구,

    독자적인 행정부와 사법부, 세르비아 자치영토의 확장, 세르비아인의 이동과 무역의 자유, 교회, 학교 등의

    설립권, 세르비아 내의 무슬림의 재산포기 등을 보장받게 되었다.

     

    250px-Principality_of_Serbia_in_1878_EN.png

    세르비아에 대한 이러한 오스만 투르크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공국들과 카프카스 지역 문제로

    1827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발발했다. 세르비아는 오스만의 자치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요청으로

    중립을 지켰고 이에 대한 대가로 1829년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에 의해 자치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군이 세르비아에 주둔하고 러시아의 보장으로 국제적으로 세르비아의 자치권을

    열강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오스만 정부는 굴복하여 182910월 세르비아의 완전한 자치를

    수락하였고 이것이 18302월 세르비아에서 선포되었다.

     

    세르비아 자치공국의 세습공위가 정식으로 인정되었으며 세르비아 자치공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1459년에 멸망한 세르비아 민족국가가 1830, 371년 만에 폐허에서 부활했다.

     

    Civil_Flag_of_Serbia.svg.png

     


            정의의 하느님( Боже правде 보제 프라브데)- 한국 위키백과 


    정의로우신 하느님, 지금까지 우리를
    파멸에서 구해주신 당신,
    변함없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영원히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 주소서.
    전능하신 손길로 이끌어 주시고, 지켜주소서
    세르비아 민족의 앞날을
    하느님, 구원하고 지켜주소서,
    세르비아 국왕과 세르비아 민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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