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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3258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
    조회수 : 1077
    IP : 175.201.***.121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1/12/22 20:37:58
    http://todayhumor.com/?history_3258 모바일
    (펌) 진정한 수성의 인주 - 명제 조예 (내정)
    출처 : http://vermin.tistory.com/59

    약 14년에 이르며 등위할 때를 빼고 두 번 새로이 개원했던 명제의 치세에서, 실은 촉과 오의 ’반도들’ 만큼이나 급선무로 생각되었던 것은 내정, 특히 전례, 인사와 형률/영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조위는 출발점이 다른 두 국체보다는 훨씬 유리하긴 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왕공의 작을 받아 개부한 건 다름아닌 조후의 위국이었고, 건안 원년(196)부터 24년(219)까지의 긴 기간 동안 한조의 제사를 전정했던 경험이 이에 더해져 정격성+실력이라는 문질이 고루 갖춰진 정체를 이미 가지고 시작한 조위는 ‘경영’에 대단한 자신을 가져도 될 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규모’의 문제와, 발달된 구조로 인해 오히려 겪게 되는 ‘복잡성’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구수로는 손오와 촉을 합친 것보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천하 제주에서 형∙양∙익 삼주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을 껴누르고 있었으며, 당고의 금을 전후해 형성된 부화적 사인층과 향리 기반 세호명가의 메인스트림을 끌어안고 있었던 조위는 ‘막 정착한 유망정권’인 촉이나 기본적으로 토호들의 집체라고 봐도 좋을 손오와는 문제의 격이 달랐던 것이다. 그 필요성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크고 아름답고 자신할 수 있을 수준의, 한조를 계승한 예제가 필요했다.

    둘째, 문제 대의 구품관인법 제정의 연장선상에서, 지속적으로 친한적 인사를 필터링하고, 이를 항구적인 취거제도로 굳히며, 동시에 제도의 성격으로 인한 ‘다음 세대’의 필연적인 부화 경향을 견제하고 이른바 ‘성세에 필요한 인재(오히려 異才가 아닐 필요가 있는 것이다)를 뽑아올릴 필요가 있었다.

    셋째, 서한 무제 이후로 지속적으로 팽창되어 온 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넷째, 문제의 재위기간이 짧았고, 황조 성립의 극초기였는데다 다수의 공신들이 높은 품급과 중요한 실직을 점해 전통적인 삼공제+동한대의 상서 지위 향상의 시류만 맞춘 불완전한 친정체제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주요인사의 세대교체와 함께 근신 중심의 ‘추밀적’ 기관을 법제상으로 인정해, 극복해낼 필요가 있었다.

    정체 개창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사족층의 기본적 양해를 위해 꼭 필요한 예제에 관해, 명제는 짧은 재위기간으로 인해 문제가 미처 손대지 못했었고, 정치적으로도 어렵거니와 기술적 차원에서도 숙고가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냈다. 우선 태화 원년(227) 즉위하자마자 종묘를 세워 “우리 조위는 만세만세만만세 이어가면서 여기 다 채울거라능”라는 식의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명제 재위기 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개변이라면, 바로 경초 원년(237) 역법을 한대의 하정에서 상대 역법으로 바꾸고, 당년 3월을 4월로 바꾼 것이다(한 달이 밀렸다). 이는 삼통에서 지통, 오행에서 토행임을 규정, 모든 격의의 순환론에서 조위의 계승을 정당화하고 이론을 일통한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세목적인 사항(희생 제물의 색, 전시 말과 기의 색, 조회시 기의 색 등)까지 모조리 정법에 맞추어 낸 ‘정격황조로서의 면모’는 촉이나 오가 절대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물론 죽기 전에 시호를 미리 정하는 식의 뻘짓도 있었지만, 할 엄두도 못낸 촉과 오에 비하면 운니의 차가 있다).

    금세로 치면 이는 당선자가 수락 연설에서 “본인은 국헌과 관련법에 의거,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되었으며…”라고 도장 쾅 찍어주는 것과 똑 같은 효과다. 재미있는 것은 통감에는 정월 있었던 고당륭의 건의가 직접적인 소인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에 비해, 정사 배송지주에서는 “태자 시절부터 명제가 역법과 수명론에 관해 대단히 관심이 깊어 글을 남겼었고(포스팅 하셨슴미카) 이에 따라 즉위 후에도 지속적 관심을 갖고 역법 개변을 원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 점인데, 실질적인 필요의 측면, 특히 조비가 선위받고 나서 그 직후에 역법을 개정하지 못했다는 ‘대행황제님하로 인한 약점’을 감안한다면, 배송지 주에서 명제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명제는 당시의 시류를 참으로 잘 탄 편인데, 예컨대 233년 “마피의 우물에서 청룡이 나타났으셈!”하자마자 “ㄲㄲㄲ 님들아 나 용 보고 왔뜸(2월) 당장 청룡으로 개원임 ㅇㅇ” 했던 것이나, 경초로 개원했던 때(237)에도 당년 정월 산치현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나서였으니(긴급수배 이적 24시) 유엽 말마따나 여기서는 확실히 ‘한 무제적인 센스’가 발달해 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인사 면에서 명제는 부황 문제의 노선을 거의 충실히 따르면서도,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에 봉착했기에 그 이상의 수완을 발휘해야 했다. 태화 4년 2월 부황 문제의 <전론>을 돌에 새겨 종묘 문 밖에 세우게 했다는 것은, 명제 역시 그 피는 못 속이는 대로 “야이 필력없는 색휘들아 공문이고 지랄이고 다 문장인거임 멋지구리하게 써보는거임”의 유풍을 견지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소싯적부터 호학이었던 명제의 인재의 ‘질’에 대한 이런 접근법은 “유도를 배웠다는 관인들 중에 못써먹을 종자가 너무 많은거셈. 진퉁 박학홍사를 뽑아야 시중과 산기상시의 대임을 감당해 낼 테니, 군국에서는 경학에 뛰어난 사람을 추천하셈”이라는 태화 2년의 조령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명제의 인사정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부화한 딜레탕트들’에 대한 근거있고 옳은 정향의 ‘거부감’을 확실히 표출해 주었다는 점이다(이래서 숭경해 마지않는다). 진수의 적확하지만 너무 소략한 서술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한데(명제본기에는 앞뒤 정황을 다 잘라먹고 마지막의 조서 내용만 나와 있어 통감을 통해 보아야 한다), 어떤 내용인고 하면… 태화 4년의 ‘딜레탕트 결당’ 사건이다. 아직 포의였던 낭야의 제갈탄(위는 ‘개’를 얻었다(*)라는 세설신어에 수록된 세인의 평을 받은 그 사람(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욕으로 쓴 건 아니다))과 중서랑을 찍은 등양, 제갈탄과 함께 후일 조위의 인사정책에 깊게 관여하게 되는 하후상의 아들 하후현 등이 당우를 짓고 서로 글을 써서 애널써킹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음… 이글루의 누군가들이 떠오르는군). 나머지 한 사람(제 4의 사나이?)에 대해서는 통감에도 언급이 없는데, 여하간 무슨 F4도 아니고(우왥) 그들 스스로 ‘사총(四聰)’ 혹은 ‘팔달(八達)’이라 부르며 상호연대를 통한 엽관활동의 선진적 형태(육조에 줄줄이 이어질…)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이외에도 명제의 총신이자 내조의 핵이었던 유방의 아들 유희, 손자의 아들 손밀, 위진의 아들 위열 등이 ‘삼예’로 취급받으며 이들과 연대해 있었다. 참 애비들이 보면 혀를 찼을…).

    엄혹하면서도 확실히 재덕을 가려 따진 조후의 제하에 살아남은, 조위의 복심이자 노성한 관료인 당시의 행사도사로 명목상으로는 인사정책의 최정점에 서있던 동소가 이를 좋게 볼 리 없어서, “돈후하고 충실한 자를 귀히 여기는 게 군왕의 도인데, 부화하고 말뿐인 좆병진들이 해악임을 알기 때문임. 위풍이나 조위 같은(최고의 선배들이로군) 젖병진은 무제께 뒈지지 않았겠슴둥. 항상 조령에서 패악한 결당행각을 깨부수고 부화/허적한 걸 싫어하신 게 너님 아니심(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동소의 이 상주 이전에도 명제 개인이 저런 부화한 딜레탕트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듯하다)? 이넘들은 폄훼당하는 걸 젖나 겁내고 서로 찬탄해대며 써킹질을 해대니(추천 추천 읽지는 않았지만 멋진 글이네염 추천 추천), 세리나 좇는 조평신이라고 할 수 있겠으심. 여기저기 노비와 빈객을 풀어 궐내의 향배를 읽고 서신과 상소문을 컷인하며 프락치질/몰 심기까지 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법률에서는 용납하지 않는 바이고, 사면도 못할 대죄인데, 위풍이나 조위도 이색휘들보다는 덜할 거 아니겠음?”라고 상주했다.

    어떻게 ‘저색휘들 내치고 싶은데 아 시발 슬릿이 안보인다능 할아부지의 덕을 따르자면 막잡아 죽일 수도 없고(어떻게 공융병진처럼 불효죄라도 안 저지르려나) 카우뿌우’하던 명제는 이 상주에 옳다구나 싶었고, 곧바로 동년 2월 4일에 조서를 내렸다. “(배시시 히히히) 엣흠 인세의 질박함과 화려함은 교화로 변하는 것이니, 병란으로 경학의 가르침이 끊기었는데 어찌 사인들, 장차 등용될 자들(향품을 받게 될 사람들)을 훈도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음? 그렁께롱 낭리는 최소 한 가지 경전에 달통해야 할 끼고, 재덕이 백성을 다스릴 만 해야 관위를 맡기며, 박사의 시험을 거쳐 성적우수자를 등용하셈(든 것도 없이 몰려다니면서 써킹질하는 것들 뽑지말라 이거야 이 중정색휘들아). 그들 가운데 부화해서 정도에 힘쓰지 않는 자는 과감히… FIRE! DISMISS! FIRE! 예아!” 조서에는 뭉뚱그려서 까댔지만, 실제로 명제는 곧바로 상서를 조종해 인사를 단행, 제갈탄과 등양 등에게 트롬프의 느끼한 미소를 뿌리며 “You’re fired”를 날려주셨다.

    동소의 상주에 나왔던 대로, 명제의 이런 “문질 다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재질도 쥐뿔도 없고 관인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소양인 경학에도 손 안대면서, 향망을 얻었다고 왕왕거리고 결당해서 애널써킹질이나 하며 단체엽관 하는 색휘들은 죽여버릴 거임(이게 진짜 향원의 짓거리이지 싶다)”라는 식의 유조는 꽤 자주 발현되었다. 본건 외에도, 명제 사후에 대한 통감의 언술을 보면, 이 도당의 인물들이었던 필궤(사마의에게 속아넘어간 상ㅄ), 등양, 이승, 애증이 얽히는 하안(넌 그냥 정강성처럼 밭이나 갈지 그랬냐), 정밀 등도 ‘부화한 젖병진’임이 만천하에 드러났기에 명제는 재위기간 내에 절대 이들을 요직에 등용하지 않았고(필궤가 다만 재위 말기 병주자사를 찍었을 뿐이다), 통감의 언급대로 ‘눌러버리고 기용하지 않았다’. 

    당시의 ‘엽관을 위한 딜레탕티즘’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첫째는 경학 등의 ‘사인으로서의 기본 재덕’을 깡그리 즈려밟고 위풍처럼 향망과 인맥에 의거하면서 자기는 ‘구세의 이재(異才)’라고 박박 우기고 다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한 말~조후 시기에 이르기까지 등용되어 이른바 ‘조위의 세신’으로 봉사하거나, 당고의 금을 전후한 시기 형성된 호가 태생으로 그 아부지의 음덕에 의거해 “힝 나 삼묘 자제라능 날 무시하지 말라능”라는 식의 ‘골이 비어서 청허’인 사인들이 될 것이다(하안은 빼주고 싶지만). 명제 개인의 노력도 대단히 공헌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조위의 정내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명제 재위기의 노력은 아무래도 위진(아드님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과 노육의 이하의 일화들에서 확실히 드러난다고 본다. 중호군 장제(합비의 자물쇠)가 “님아 한 고제는 도망다닌 한신도 뽑아썼고 주 무왕은 낚시꾼을 건져서 태사로 삼았으며 포의와 노복도 왕공을 달았는데, 님하는 왜 문자로 시험쳐서 하는 채용밖에 안하심(좀 기이한 장재도 뽑아야 할 거 아님?)?”하고 묻자, 위진은 “니마 성왕과 강왕의 성세가 목야의 한판때하고 똑같으셈? 문경의 시기가 뱀 일도양단하던 때하고 똑같으셈? 기재로 달려 일어나게 하는 건 지금 필요가 없다능”라고 답했다. 한편 황문랑 이풍이 노육에게 “님하는 왜 성품과 언동을 본 다음에 재덕을 언급하는거임(중정치곤 일이 너무 많지 않으심?)?”하니 노육은 “니마 재주는 선행을 하기 위한 수단인거임. 큰 재주=큰 선행, 작은 재주=작은 선행 ㅇㅋ? 자기가 재간있다면서 선행을 할 수 없다 카는건 재주가 그릇에 안맞는 경우임 ㄳ”라고 답했다. 이 두 대화는 그 자체로 명제 시기의 인사원칙과 그 집행의 대간이 적확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며, 위의 ‘엽관주의 딜레탕티즘’의 두 가지 형태를 완벽히 쳐발라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제가 붕어한 후 소릉여공이 등극하자 보정이었던 조상에 붙어 현요함을 우걱우걱 뜯어먹은 이 도당은 곧바로 정말 고굉의 신이라 할 부하와, 노식의 아들이자 충간을 아끼지 않았던 노육 등을 면직시켜 버렸으니, 명제가 “유자를 누르고 법리만을 따졌다”고 평하는 건 정말이지 불공평한 이야기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정말 못 써먹겠는데다 이토록 편벽하니 뭘 어떡하란 말인가. 굳이 말하면 명제의 취거 원칙은, 미야자키의 평에 의하면 “덕과 가격을 고려했으나, 유품사상에 물들지는 않고 공평한 선거를 했던” 레전드 중정 산도와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무튼 졸자는 명제의 이러한 논리와 조처는 ‘고정된 가격’이 구품관인법의 고화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을 20년 정도는 늦춘 것이니 나름대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형률 면에서는 어떨까? 명제는 개인적 기호라고 할까, 아니면 악취미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법경적’ 측면에서는 절묘하게 들어맞는 황제였다. 정사 배송지주에는 무능했던 총신 진랑을 언급하며 조예의 이러한 개인적 특질을 “당시 명제는 죄인을 적발해내는 데 관심이 있었고, 왕왕 사형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고 있다. 정사와 통감에는 명제가 법제, 특히 형률의 정비와 적용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남긴 여러 성과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자주 “재판은 천하의 생명을 다루는 거임”라고 자못 시리어스하게 말했다거나, 태화 3년 10월 평망관을 청송관으로 고치고 큰 심리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 임해 대리하는 과정을 직접 살폈다니(정위는 아 님 귀찮게 왜 이러시냐능 ;ㅅ; 하고 질질 쌌을 것이다) 그 열의가 대단했다 하겠다.

    그런데 단순한 ‘불쑥불쑥 친림하는 열성파 인주’로서의 일화적 면모만 보인 것은 아니고, 동한대 이미 60편에 이른 한률, 덧붙은 300여편 짜리 <법령>, 906권짜리 <결사비>등 볼륨이 갈수록 커지는 여러 가지 법률과(26,272조에 773만 자에 이르렀다고 한다. Oh my…), 이에 따라 유자들마다 해석이 갈리는 문제(마융이든 정현이든), 그리고 법 적용이 민생과 소위 ‘자생하는 뜻을 보이는 것’에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옥리/법리를 천시하는 경향이라는 종합적 문제에 부닥치자, 과감히 이에 칼을 대기 위해 나섰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 우선 볼륨의 문제에 관해서는, 진군과 유소에게 명해 공룡급 볼륨의 한률을 축소해 <신률> 18편, <주군령> 45편, 이외 <상서관령>, <군중령>을 합쳐 180여 편으로 줄이도록 했다. 해석의 문제에서는, 정현의 장구만을 이용하도록 명시해 충돌과 오역을 최대한 피할 수 있게 배의했다. 그리고 위기의 상주에 따라 율박사를 설치, 옥리와 법리의 인재 풀을 구성하고 그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정비된 신률의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과연 할아버지의 피를 이었다 할 만한 과감함과 제사에 대한 세목적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고, 특히나 동한대 상서의 급부상 이후로 지속된 ‘경향’을 이후 육조 시기까지 전해주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넘어가게 되니, 바로 ‘내조권력’의 형성이다. 사실 이것은 조위만 놓고 따진다 해도 명제 대에 비로소 개화한 것은 아니고, 실은 조후, 즉 무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위공이 된 직후 조조는 찬현령 유방과 참군사 손자(재위 직후 손권의 침구에 대해 헌책했던 바로 그 손자다)를 비서랑으로 뽑아, 근측에서 출납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어 문제 시기에 발달하게 된 것이 바로 이후 육조 내내 악명을(한문이든 명족이든 다 끼어들어 권력의 핵심이자 복마전으로 기능했기에) 드높인 ‘중서’인데, 이는 유방과 손자가 있던 비서를 개칭한 것이다. 유방은 중서감이 되었고 손자는 중서령이 되어 명제 대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중서는, 서한 무제 시기 처음으로 환자(환관)가 아닌 사람을 뽑아쓰게 된 이후로도 그렇게 관질이 높지는 않았다. 처음의 명칭이 중서알자령이었던 중서령은 동한대까지 4백 석, 즉 조위의 9품제로 본다면 8품에 당하는 대단히 낮은 관위였다. 내조권력의 비공식성이 이런 ‘낮은 관위에도 불구하고 추밀의 중사를 다루는’ 데에 있다는 실례 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예가 아닐까 하는데(하긴 명대의 내각학사도 영락연간까지 품급이 제한되었었지), 이것이 조위 시기, 특히 문제와 명제를 거치며 조정되고(중서랑=5품관), 이후 육조 송~양대에 이르면 중서령이 2~3품(천감 7년 이후 양대 관반(숫자가 클수록 높다)으로 계산하면 13), 속관인 중서랑이 종5품(9반)으로 격상된다. 굳이 말하자면 명제의 재위기는 중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내조권력의 성립과 발달 그 자체는, 이후의 육조에서 내조(특히 중서)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에 대한 평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분명 까야 할 부분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우선 결단과 집행이 빨라진다. 상서가 되었든 중서가 되었든 이후의 문하시중, 내각, 군기처, 통리기무아문이 되었든 어쨌든 간에, 그 시발은 특별한 필요(특히 군기추밀의 새나가서는 안 되고 신속을 요하는 중대사)에 의해 결정과정을 단축시키기 위해 설치된 출납관이었다는 공통점이 추출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역시 육조, 특히 유송-남제 대의 중서권력이 까이는 것처럼, 결단이 빠르고 중사를 가벼이 처리하는 만큼, 황제의 임의 전정적 성격이 매우 강해지고, 인사조치는 가혹하기 그지없어지며(수틀리면 물리적으로 댕강), 난대, 즉 기존 감찰기구를 이용한 헌책과 검토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중간과정에서의 변정이 어려워지는 난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에서 명제의 재위기에 이르는 시기 중서 권력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몇 가지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좀 상투적 표현을 섞자면 ‘병란이 아직 멎지 않았기 때문에’ 추밀중사를 신속히 처리하고 급변하는 사세에 접응할 수 있는 탄력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오와 촉의 침구는 정말 끊이지 않고 이루어졌고, 여기에 더해 조위는 서변의 다종한 강인들, 남흉노, 북변의 선비, 동북변의 오환과 고구려 등을 모두 통어해야 하는 ‘군기적 측면’에서의 심각한 neediness가 있었다. 이런 사세에서 사실 서한, 그것도 경제 이전으로 회원하는 수준의 ‘외조권력에 의거하라’는 건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조후는 이걸 하기가 편했다. 한조라는 큰 울 아래에서, 자신의 위공/위왕부를 개부하여 이중 정부 체계를 형성한 사세이기 때문에, 이미 그 존재 자체가 기형적이라면 위국 내에서 기능조정과 역분의 분담만 설정하면 나머지는 사람을 배비하는 일 밖에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위가 황조로 그 격의가 높아지고, 단일한 정격정부로 사인들과 황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도가 되면, 이전의 황조들과 똑 같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가볍고 효율적’이며, ‘인주가 현명하기만 하다면 그 터미날값은 항상 긍정적일 수 있는’ 황조 정체에서 자주 선택되는 가능항인 ‘내조권력 강화’는 결국 문제 시기에 고려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고, 명제 역시 이를 고민했기에 할아버지가 떨궈주고 아버지가 물려준 유방과 손자 등을 활용하는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게다가 시류와 사세도 이것이 가능한 조건과 필요성을 동시에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네임드 레전더리 노신들-조후의 위왕 등위 이전부터 문제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위의 양주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 명제의 재위기에 별세했던 것이다. 사도로 모개 이후의 인사정책에서 구품관인법 성립 후 중정제까지 많은 변혁을 묵묵히 맡아냈던 왕랑, 변새의 방위와 군벌 초무에서 무거운 상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을 해낸 종요, 청아한 덕으로 구심점 역할을 했던 화흠, 때로는 직간으로 때로는 과감한 헌책으로 조위의 개창 이래 많은 공업을 남긴 동소 등이 모두 명제의 재위기에 사망했던 것이다. 외조를 동한말의 외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게 했었던 사람들이 죽으면서 남긴 이 보공은 어떻게든 메워야 했다.

    끝으로 부언하자면 내조권력의 강화라는 한 가지 경향은 명제의 인사정책적 지의와도 통하는 일면이 있는 것인데, 즉 정말 ‘성세’에의 문턱에서 ‘문질이 빈빈한’ 재사들을 원했던 명제로서는 기존 외조권력과 무제로부터 물려받은 고굉의 노신들, 그리고 따로 다루겠지만 노유 불문하고 그에게 날카롭고도 따스한 직간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사인들과 일부 일민에의 접근으로 ‘문’을 갖추고, 한편으로는 실적과 재간으로 증명된 재사들을 중서나 상서계통의 ‘친정체계’를 통해 뽑아올려 ‘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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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4 16:12:27  124.199.***.66  Hish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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