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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26140
    작성자 : 다윗김
    추천 : 10
    조회수 : 1483
    IP : 180.70.***.225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6/05/23 06:45:51
    http://todayhumor.com/?history_26140 모바일
    조선군의 러시아 정벌과 신류의「북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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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병자호란의 인질로 소현세자와 청나라 심양에 끌려가 만 8년 동안 지냈던 효종은 소현세자의 급서 후 인조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효종은 인질 생활의 치욕을 잊지 않고 자신의 재위 10년을 청나라 정벌준비에 바쳤다. 효종 4년 제주도에 표류되어 온 네덜란드 사람 하멜(Hamel)을 훈련도감에 배속시켜 조총(鳥銃)을 제작하게 하고 우수한 조총과 조총병을 양성하는 등 정예 포병 10만 명을 길러 기습으로 청나라를 쳐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같이 북벌의 꿈을 키우던 숭무주의자 효종은 1959(효종 10) 54, 40세의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로 급서하고 말았다. 북벌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청나라는 효종 5(1654)9(1658) 두 차례에 걸쳐 흑룡강 방면의 나선(Russian)정벌을 위해 조선에 군사를 요청했다. 조선은 인조 15(1637) 청에 항복한 후 맺은 이른바 정축년 조약에 의해 청국의 파병 요청을 거절 할 수 없었다.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양성한 조총병을 오히려 청나라를 도와 러시아와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러시아가 흑룡강 주변에 나타난 것은 1650년경이었다. 유럽국가 중 가장 후진적이고 발전이 늦었던 러시아는 몽고의 지배가 끝난 후 17세기 초 로마노프 왕조가 성립되면서 유렵의 동북쪽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넓디넓은 시베리아 진출은 그 이전인 1580년 코사크(Cdssack)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예르마크(T.Yermark)가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한 이래 탐험가, 모피 사냥꾼, 정치범, 기타 수형자들이 시베리아로 흘러들어 러시아인들은 1세기도 못되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했다. 17세기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은 모피 자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시 모피 자원은 러시아 정부의 유력한 재원 중의 하나로 국고 수입의 10%를 차지했다.

    1643~1651년간에 포야르코프(V. Poyarkov), 하바로프(E. Khavarov) 등의 원정대는 흑룡강까지 진출했는데 특히 하바로프는 흑룡강 주위의 부락을 점령하고 우안에 알바진성을 건설하여 그들의 군사 기지로 삼았다.

    만주를 선조의 발상지로 중시하던 청조는 러시아가 이 지역에 성을 쌓고 흑룡강 지류인 송화강(北征日記에는 後通江으로 표기)에서 물자를 약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으며 청조는 1652년 관리들을 보내 영고탑(寧古塔, 寧安)에 주둔하면서 관병을 관리하게 했으나 러시아군에게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1차 나선정벌

    16542월 초, 청은 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창수(鳥槍手) 100인을 뽑아 회령부로 보내고 양방장경(청나라의 장군계급)의 지휘 하에 나선정벌을 위해 310일까지 영고탑에 도착하라고 요구했다. 효종은 나선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 나선이란 어디 있는고?”하고 물었고 사신은 영고탑 근처에 있는 별종(別種)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뒤에 효종은 조선출병군사령관 변급의 귀환 보고를 통해 나선이 서양국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함경북우후(北虞侯) 변급을 영장으로 삼아 제1차 나선정벌군을 파견하기로 했다. 청조가 조선에 청병을 한 이유는 조선의 우수한 조총술을 알고 있었고 출동거리와 보급선이 중국보다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1차 나선정벌 일지>

    1차 정벌군은 변급의 인솔로 100명의 조총수, 20명의 화병(火兵),30명의 수솔(手率) 도합 150여 명의 인원과 마필 등으로 회령에서 영고탑까지 소비할 군량 열흘 분을 휴대했다.

    326일 두만강을 건너다.

    416일 청병과 함께 영고탑으로 향하다.

    27일 송화강에 이르다.

    28, 29일 러시아군과 접전하다.

    52일 러시아군 퇴각하기 시작하다.

    55일 러시아군 흑룡강을 거슬러 도망가다.

    516일 조선군 흑룡강에서 철군을 시작하다.

    613일 영고탑에 도착하다.

    21일 두만강을 넘어 귀국하다.

    :조선군은 막강한 러시아군을 맞아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84일간 원정을 승리로 마치고 돌아왔다.

    양국의 군사 규모는 크게 차이 났다. 변급의 보고서에 따르며, 러시아군은 300() 크기의 대형선 13, 소선 26척이 있었으며 병력은 400명 미만이었다. 이에 맞서 싸울 조청연합군은 대선 20, 소선 140척에 병력은 1천 명 안팎으로 많았지만 대선이라고 해봐야 17명이 승선하는 작은 배에 불과했다. 이런 화력의 열세 때문에 청군은 러시아군을 만나는 족족 패전 했던 것이다.

    변급은 화력의 차이가 나는 선단끼리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생각에 유붕(柳棚: 통버드나무로 만든 선반 또는 방패)을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러시아 함선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 전법에 러시아군은 많은 부상자를 내고 퇴각하기 시작했고 조청연합군은 100여리를 추격해 호통(好通)에서 교전하는 등 여러 차례 접전을 벌였다. 결국 러시아군은 흑룡강을 거슬러 도망하고 말았다.

    1차 나선정벌은 조선 조총부대의 위력을 보여준 전투로 이후 러시아들은 머리 큰 사람(大頭人)이 두렵다!” 했을 정도였는데, 이것은 벙거지를 쓴 조선 군대의 위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선과의 전투 다음해(1655), 청조는 명안달레로 하여금 송화강 깊숙이 들어온 나선을 몰아내고 호마이(呼瑪爾) 하구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를 추격하게 했다. 1657년에는 사이호달이 출정하여 상견오흑(尙堅烏黑)에서 러시아와 싸워 패배하고 이듬해(1658)에 재차 조선의 출병을 요청했다.

    2차 나선정벌

    효종 9(1658), 청국은 황제의 칙서를 조선에 보내 조총수 200명을 선발해 5월 초순까지 영고탑에 도착하라고 요구하고, 따로 예부의 공문을 보내 식량의 현지 조달이 곤란하니 조선군의 식량은 스스로 준비하되 왕복 일자를 계산하여 운반하라고 요구했다. 식량을 조달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2천여 리가 넘는 목적지까지 운반하고 관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음으로 효종은 응할 수 없다고 거부했으나 재차 회계(回啓)가 내려오자 따를 수밖에 없었다.

    <2차 나선정벌 일지>

    2차 출병에서는 함북병마우후 신류(申瀏)를 총병관으로 임명해 조총수 200명과 초관, 기고수, 화정 60여명 등 도합 260여명에게 3개월분의 군량을 휴대하고 떠나게 했다.

    52일 두만강을 건너다.

    59일 영고탑에 도착하다.

    515일 조청연합군은 배로 송화강 어귀(현재의 의란)에 도착하다.

    이곳에서 길림 선창(船廠)에서 제조된 대형 함선을 기다리다.

    65일 함선에 나누어 타고 송화강 본류로 나가다.

    610일 흑룡강 합류 지점에서 러시아 스테파노프(Stepanov) 함대를 만나 격전을 벌이다.

    러시아군은 선단 11척 중 10척이 불타고 1척이 도망가는 대 참패를 당하다.

    1118일 영고탑을 떠나다.

    :승전 후 조선군은 송화강 어귀로 철수했으나 청측은 러시아의 재침을 우려해 다음해(1659) 봄까지 주둔하면서 이 지역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선군사령관 신류는 그 불가함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반박한 끝에 겨우 영고탑을 떠날 수 있었다.

    1212일 회령으로 귀국하다.

    610일에 있은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청군함대는 기함등 초대형선 4, 대형선 36, 중형선 12척 도합 52척으로 편성되었으며 병력은 2500명 정도였다. 이에 대해 러시아측은 대형선 11,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조선출병군사령관 신류의 북정일기를 통해 전투 장면을 살펴보자.

    아침 일찍 열벌 마을을 출발하여 흑룡강 어귀를 지나 20여리를 내려갔을 때 드디어 적의 선단과 맞부딪쳤다. 적선 11척이 흑룡강 한가운데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아군은 즉각 적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선들은 곧 돛대를 세우고 10여리를 후퇴하여 강가에 배를 모아 포진 한 후 판옥 위에 올라서서 아군의 동정을 일일이 살폈다.

    우리 전선들이 번갈아 들락거리면서 적선과의 거리가 한 마장쯤이나 가까워졌을 때 일제히 대포를 쏘며 공격을 개시하자 적선들도 대포로 응수해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되었다. 이때 후영(後營), 전위(前衛), 중군(中軍)의 모든 전선들이 일시에 쳐들어가 활과 총포를 무수히 쏘았다. 적병들이 숨돌릴 겨를 없이 총탄과 화살이 빗발치듯 떨어지니 배 위에서 총을 쏘던 적병들은 드디어 지탱할 수가 없어서 모두 배안으로 들어가 숨거나 배를 버리고 강가의 풀숲으로 도망치거나 했다. 북정일기610일자

    이처럼 전투는 조선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이때까지 조선군은 사상자도 없었는데 청군사령관 사이호달의 사욕이 개입하면서 전세는 엉뚱하게 흘러갔다.

    우리 전선들이 적선을 포위하고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당긴 뒤 포수들이 적선에 올라가 불을 질러 태우려고 하자 청군대장은 불태우지 말라고 긴급명령을 내렸다. 한편 포수와 사수(射手)들이 강가의 풀숲에서 잠복한 적병을 향해 맹렬한 사격을 가하자 적병 역시 치열하게 응전하여 이 때문에 조선군사와 청국 군사는 약간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만약 여세를 몰아 일시에 적선들을 불태웠다면 적병 중에 살아남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 또한 손실이 없을을 터인데, 청군대장이 재물이 탐나 불태우지 말라고 무모한 명령을 내린 것은 매우 유감스런 처사였다. 적선에 올라탔던 포수와 사수들이 다시 원선(原船)으로 돌아와 계속 포위하고 있을 때 피아간의 거리는 불과 일 보 정도로 근접했으며, 이때 배 안에 은신한 적병들이 연속 사격을 가해와 우리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게 되었다.

    사망자는 길주의 윤계인, 김대충, 부령의 김사림, 회령의 정계룡, 종성의 배명장, 유복, 온성의 이응생 등 7명으로 총 맞아 즉사했고, 그밖에 청나라 갑군들과 사공들도 사상자가 속출했다. 형세가 이렇듯 다급해지자 급히 화전을 쏘니 적선 7척이 잇달아 불탔다. 이미 날이 어두웠는지라 배 3척으로 하여금 닻을 내려 적선을 감시하게 하고 나머지 배들은 대안에 집결하여 밤을 새웠다.

    처음 우리 군사가 앞을 다투어 적선으로 쳐들어 갈 때 명천 포수들이 탑승한 배의 포수와 사수들이 모두 배를 비우고 적선으로 옮겨 타자, 이미 상륙한 적병 40여명이 이 배를 빼앗아 강가를 따라 상류로 끌고 올라갔다. 후영에 있던 여러 배가 일시에 추격하는데 내가 탄 배가 제일 앞장을 서서 돌진했다. 여러 전선이 물고기 꿰듯 줄줄이 늘어서서 포위하니 뱃줄을 끌고 가던 적병들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 때 갑군들이 배에 올라 적병 40여명을 죽여 버렸다. 적의 선단은 모두 11척으로 그 중 7척이 불타고 4척만이 남았는데, 이것은 대장이 적선에 실은 재물을 탐내 화공을 허술히 한데다가 날도 저물어 더 공격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정일기610일자

    러시아 선단 11척 중 10척이 불타고 겨우 1척이 도망가는 대참패를 기록한 러시아군의 사령관 스테파노프의 부하 페트릴로프스키(Petilovsky)의 보고서는 러시아군의 참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나선정벌.jpg
    나선정벌2.jpg

    원병군 복장

     러시아 선대는 흑룡강 어귀에서 화승총과 대포롤 무장한 47척의 청국선단과 조우했는데, 이 전투에서 대장 스테파노프와 카자흐 270명이 전사하고 챠르(러시아의 왕)에게 바칠 국고 소유의 담비 가죽 380, 대포 6, 화약, , 군기(軍旗), 식량을 실은 배가 파괴되었으며 겨우 성상(聖像, 예수나 성모의 상 인 듯)을 실은 배 1척이 95명을 태우고 탈출했다. 페트릴로프스키(Petilovsky) 보고서

    이 전과는 조청연합군의 대승이지만 조선군사령관 신류의 말대로 청군사령관이 재물이 탐나 불태우지 말라는 무모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조선군은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무모한 명령 때문에 조선군은 8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지휘관의 사욕 때문에 희생된 병사들이었다.

    청군의 군기가 이렇기 때문에 효종은 오랑캐의 일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며 북벌을 반대하던 나약한 문신들을 이끌어가며 북벌을 자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조선군사령관 신류의 자세는 훌륭했다.

    청군대장이 노획한 적선 한 척을 내주면서 전사한 조선 포수들을 화장(火葬)하라고 했으나, 나는 우리나라의 풍속에는 본래 화장하는 법이 없으니 절대로 화장은 안 되며 만리이역에서 죽어간 그들의 시체를 본국으로 실어갈 수는 없을진대 부득이 본국의 법식대로 매장하겠다고 하니 그는 내 청을 들어주었다.

    나는 흑룡강가의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아 그들 일곱 사람(한 명은 나중에 사망)을 동향(同鄕)끼리 갈라 묻어주었다. 아아! 멀리 이국땅에 와서 모래벌 속에 묻힌 몸이 되었으니 참으로 측은한 마음 이를 데가 없구나.

    청군대장은 노획한 적선을 온통 수색하여 많은 재물을 앗아갔으며 또 여러 군사들이 얻은 전리품도 모조리 거두어갔다. 우리 조선 군사들의 노획품은 조총밖에 없었는데 이것도 모두 그에게 빼앗겼다. 북정일기611일자

    전소를 떠나 흑룡강구로 돌아와 유숙하다.

    청국인들이 저들 군인과 수부의 사망자수를 분명히 말은 안하지만 대략 60-70명가량 되는 모양이다. 심양 고산이 1, 영고탑 보십고(초관격 벼슬) 1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전에 청국은 이들 적군과 세 번 크게 접전하였다는데 한 번은 1백여 명이 총 맞아 죽었고, 한번은 4백 명이 쓰러졌으며, 또 한번은 여러 고산 중에서 4-5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밖에 작년에도 3명이 죽고 중상자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북정일기613일자

    조선의 출병으로 나선정벌이 성공리에 종식되었고 조선 조총수의 위력이 만방에 과시되었다. 조선출병군사령관 신류 장군은 북정일기를 작성해 나중에 조선군이 러시아군 및 청군과 싸울 때 참고가 되게 했으며 한 무장이 국가를 위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가를 잘 보여주었다. 또한 나라에 대한 충절과 부하에 대한 애틋한 자애가 절절히 기록되어 있어 마치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대하는 듯 하다.

    북정일기를 해제한 박태근은 장군의 주저인 북정일기를 보면 자기애(自己愛)’는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놀랄 만한 사실이다. 원래 전기란 자기애가 가장 심하게 노출되는 것이 고금의 통례였기 때문이다라면서 신류 장군의 인격을 높이 평가했다.

    신류의 후손들은 구한말까지 약 40여 명의 무과 출신자를 배출하여 세상에서는 이 충무공을 낳은 덕수 이씨 문중과 비견되는 무문(武門)으로 알아주어 영남무반 제일가로 불렸다.

    =====================================================================================================================

    (참고문헌)

    -이땅에서 잘놀기 블로그 전제/

    http://blog.ohmynews.com/cornerstone/145034 -

    그림 : 중학교 국사 교과서 154쪽 등/ 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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