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안녕하세요~ 역사를 사랑하시는 오유 여러분! </div> <div>저는 현직 중학교 역사교사입니다~ </div> <div>이번에 방학을 맞아 3일 정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여는 단기 연수에 다녀왔어요</div> <div>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 교사로서 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반성하게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여러 강의가 있었지만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던 우리 독립운동사 뒷이야기 몇가지 </div> <div>오유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부족하나마 글로 정리합니다~^^::</div> <div>(강의를 해주신 분은 건국대학교 한상도 교수님이십니다)</div> <div>------------------------------------------------------------------</div> <div>얼마전에 프랑스에서 IS를 비판한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 테러가 있었습니다.</div> <div>이들은 명백한 테러집단이지만, 자기들 입장에서는 영웅이 될테죠</div> <div> </div> <div>그렇다면</div> <div><strong><font size="3">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테러일까요?</font></strong></div> <div><strong><font size="3">1921년 9월 12일 김익상 의사의 총독부 폭탄투척 사건은 테러일까요?</font></strong></div> <div><strong><font size="3">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열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 및 경성 시내 총격전은 테러일까요?</font></strong></div> <div><strong><font size="3">1932년 1월 8일 이봉창 열사가 일왕에게 던진 폭탄은 테러일까요?</font></strong></div> <div><strong><font size="3">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에서 폭탄투척 및 시라카와 사살은 테러일까요?</font></strong></div> <div><strong><font size="3"> </font></strong></div> <div>#1 안중근 의사</div> <div>러시아 사람들로 가득한 하얼빈 역에서 꼬박 하루를 넘게 기다리며</div> <div>품 속의 총을 어루만지고 긴장되는 한 순간을 기다립니다. </div> <div>목표물은 단 하나, 오로지 이토 히로부미. </div> <div>그를 처단하기 위해 두 발의 총알로 확인 사살까지 끝냅니다.</div> <div>하지만, 러시아인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죠. </div> <div>만약 조선인 안중근이 애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div> <div>러시아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고운 눈길로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div> <div> </div> <div>#2 김익상 의사와 나석주 열사 </div> <div>조선인들을 가장 괴롭히던 상징적인 두 기관은 바로 종로경찰서, 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였습니다</div> <div>이들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조선인을 핍박하는데 앞장서는 식민지 기관이었죠 </div> <div>김익상 의사와 나석주 열사는 모두 1층에 폭탄을 던지고 도망치는 대신</div> <div>목숨걸고 2층까지 침투하여 폭탄을 투척합니다</div> <div>대담한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살기를 포기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뛰어들었기 때문이죠</div> <div>그들이 2층에 갔던 이유는 단 하나.</div> <div>일본 고위 관원들은 1층이 아닌 2층에 주로 집거했기 때문이었고</div> <div>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기관의 1층은 주로 민원인들이 오고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div> <div>말단 일본인 관리를 처단하는 것보다 고위층을 직접 처단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div> <div>또한 1층에 있다가 애꿎게 희생될 조선인이 없어야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div> <div> </div> <div>#3 이봉창 열사 </div> <div>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하고 일본옷을 입고 온 31살의 젊은이</div> <div>임시정부에 이봉창 열사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지만</div> <div>영웅은 호걸을 알아본다고, 김구 선생은 그의 결의에 담긴 진심을 알아차렸습니다</div> <div>품 속에 소중히 안고 온 폭탄은 습기, 제작 문제 등으로 비록 불발되었지만</div> <div>일왕을 처단하겠다는 이봉창 열사의 굳은 의지는 초인적이었습니다 </div> <div> </div> <div>#4 윤봉길 의사 </div> <div>일본군은 억지로 상하이 참변을 일으켜 수많은 중국인을 죽였습니다 </div> <div>임시정부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상하이마저 일본군의 손아귀에 넘어갈 지경.</div> <div>독립군의 씨는 이미 말라버렸고, 임시정부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div> <div>용기있게 나선 젊은이는 25살의 윤봉길 의사였습니다</div> <div>최후의 순간을 앞두고도 김구 선생과 시계를 바꾸며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습니다.</div> <div>윤봉길 의사가 처단한 사람은 상하이 참변의 총대장 시라카와를 비롯한 일본군 고위 장교들.</div> <div>하지만 단 한명의 외교관도, 단 한명의 중국인도, 단 한명의 신문 기자도 다치지 않았습니다.</div> <div>이는 목숨을 걸고 앞에 나아가 적절한 의식이 끝나고 다른 나라 외교관을 비롯한 귀빈들이</div> <div>모두 식장을 빠져나간 뒤 일본군 장교들만 남았을 때까지 기다린 결과였습니다. </div> <div> </div> <div>이후 중국 언론은 대대적으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보도하며</div> <div>중국인도 해내지 못한 것을 조선인 청년이 해냈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합니다</div> <div> </div> <div>윤봉길 의사가 흘린 피 덕분에</div> <div>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임시정부는 여론을 얻었고,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div> <div>충칭까지 함께 이동하며 독립운동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div> <div>독립을 위한 군대를 조직할 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윤봉길 의사가 시라카와 영혼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div> <div>시라카와가 마지막으로 사령했던 부대의 주둔지에</div> <div>시라카와가 죽었던 그 시간에 맞춰 사형당하였다는 것을 </div> <div>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div> <div> </div> <div><font size="3"><strong>우리의 의열투쟁은 한 두 인물이 폭탄을 던지고 사형을 당한 사건이 아니라</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1920년대 이후 숨통이 끊어진 독립운동의 명맥을 잇는</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초인적인 민족혼이 폭발한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무기를 빼앗기고 만주와 간도를 빼앗기고 독립군의 거의 궤멸된 상황 속에서 </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수뇌부만 골라 처단하였다는 점</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현재 민간인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테러와 명백히 구분되는 점입니다</strong></font></div> <div><font size="3"><strong> </strong></font></div> <div>잊지 말아야겠습니다.</div> <div>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