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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freeboard_946078
    작성자 : 제나이드
    추천 : 0
    조회수 : 130
    IP : 210.117.***.2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6/26 20:26:51
    http://todayhumor.com/?freeboard_946078 모바일
    친구 U에게..
    촉촉한 빗방울이 내리는 오늘, 친구 U가 생각납니다.

    내 친구는 참 예뻤습니다.
    내 나이 스무살, 대학생 신입 때 처음 만난 동갑내기 친구. 그 친구는 서른이 될 때까지 예뻤습니다.
    순한 양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비단같이 찰랑거리는 긴 머리.. 그리고 얍실한 허리며 청순하게 보이는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근처엔 항상 여러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녀 곁에서 항상 그녀를 즐겁게 해주던 세 명의 형들도 있었고, 싸움 잘할 것 같이 생긴 친구도 그 U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서 말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마음도 착했습니다. 아니, 착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친구들에게는 '착하고 예쁜 친구'로 통했습니다.


    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여자애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하더라도 '여자' 앞에서는 항상 쭈뼛쭈뼛 하며 긴장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얼른 내 앞에 있는 여자가 볼 일을 마치고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참 대학생이 되서도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친구 U는 그래서 더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까? 이성이든 동성이든 항상 주변에 누구든지 따르는 건 외모때문이었을까?
    우연히 같은 조로 활동하기도 하고, 신입생 이후 학생회 활동도 같이 하게 되면서 간간히 인사는 했지만..
    너무 예뻤던 U는 제게 너무 부담스러운 공주님이었습니다.


    부담스러운 공주님을 피하던.. 그렇게 유야무야 지내던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사귀고 싶다기 보다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랑 일대 일로 술을 마셔본 것도 친구 U가 처음이었고,
    나의 컴플렉스를 누군가에게 말한 것도 친구 U가 처음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취한 것도 친구 U앞에서는 가능했고,
    취한 상태에서도 집에 데려다 주고는, 호기롭게 "나 간다"라고 쑥스럽게 말한 것도 친구 U라서 가능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내리는 보슬비처럼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저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참 많이 탔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겁을 내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거리를 두려했던 제가 되려 편했었나 봅니다.
    학생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각자 돈을 모아서 놀러갔던 스키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야간스키를 즐기고 있을 무렵
    U는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키스.. 해봤어?"
    세상에.. 그렇게 쿵쾅쿵쾅거리는 제 심장을 그녀는 느꼈을까요?
    내 눈 앞에, 연예인처럼 예뻤던 U가 눈을 감고 서 있는데..
    결국에는 전 키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두려웠습니다. 그녀 주변에서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오질 않는 걸 봐 왔거든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 사람들 오겠다. 이거 정리하는 것 좀 도와줄래?"
    라고 철벽 아닌 철벽을 쳤죠.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어깨에 기대서 잠을 청했습니다.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외로움 많은 친구에게 강아지를 기르게 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있었던 강아지 간택이었습니다.
    약하지 않고 건강한 강아지였으면 좋겠다는 말에 첫번째 입양했던 아이는 코카 스파니엘이었습니다.. 하하.
    네. 그 3대 견공 중 하나인 코카 스파니엘요. 하하하. 3일도 안되서 엄청 미안하다는 느낌으로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얘는 너무 활발해, 내가 체력이 딸린다 야. 힝."

    다시 어렵게 입양한 아이는 태어난 지 한달 된 말티즈 강아지였습니다.
    제 손이 큰 편이 아닌데, 제 손 하나에 그 강아지는 딱 들어오는 사이즈였습니다.
    이 작은 강아지를 그녀가 받으면 잘 키울 수 있으려나 했는데,

    U는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좋아하며, 티컵말티즈의 수명인 5년을 넘게 잘 키웠습니다.
    그녀의 싸이월드에서 가끔 볼 때마다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저에게 보라고 자랑하는 게 너무 예뻤습니다.


    어느 비오던 날, 그녀는 병상에 계셨던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은.. 그녀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질 않았다는 것..
    왜일까요.?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데, 주변에 남은 사람들은 몇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 때가 눈에 선합니다. 너무 울어서 빨갛게 부어오른 눈두덩을 가리면서
    "고마워... 내 눈 그만 봐!"
    라고 나를 보며 친근한 모습으로 토닥거리는 친구 U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녀의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누구나 그렇듯 천천히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소홀히 할 무렵..


    올해 초.. 친구 U의 마지막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떠난 그 자리를.. 지독한 외로움을 잊기 위해 술로 채웠던 그녀는..


    그 술과 같이 질병이 차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친구 U덕분에 여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는데,


    그 친구 U는 그 많은 친구들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 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마지막을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그녀 U는..


    너무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서른 살.


    오랜만에 들려온 소식.. 결혼 소식이려나 하고 축하나 해줘야지 했던 나의 눈에 눈물을 기어코 뽑아낸 나쁜 친구 U..


    그 친구에게 아직도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K-04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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