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눈을 감은채, 멀리서 들리는 달그락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비둘기가 날아드는 소리, 햇살이 창너머로 간신히 찾아오는 그런 소리가 들린다 <div>그렇다 나는 이맘때즈음 눈을 뜬다. 바깥은 적당히 해가 비춰 어두웠던 방이 조금씩 환해지지만 여전히 너는 자고 있는 그런, 나만의 시간에.<br><div><div> <div> <div> <div>너를 만나고 나서부터 아니 정확히는 네가 내 옆에서 잠들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기계적으로 반복되었던 8시반 알람과 함께 기상이라는 </div> <div>나의 습관이 단 몇일사이<span style="font-size:9pt;">에 이토록 변해버렸다는걸 깨닫고 매일 놀라고 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는 하루 6시간 넘게 잔적이 없는 부지런한 사람이고 (적어도 너의 주장에 따르면)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나는 하루를 16시간의 잠으로 메울</span><span style="font-size:9pt;"> 수 있는 그런 게으른 인간이였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하지만 너를 만나고서부터 </span><span style="font-size:9pt;">변했다. 누군가 그러다 곧 죽는거 아니냐고 말 하기도 했다.</span></div> <div><br></div> <div>우리 침대는 좁고 오래된, 어쩌면 여기 파리에서조차 골동품 취급쯤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침대이지만.</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나는 너와 함께있는 이 침대가 어찌나 좋은지, 아침마다 움푹 꺼진 매트리스에 불편할만도 하지만 옆에 잠든 너를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는 습한 파리의 겨울공기에 어깨가 시린지 안쪽을 향해 돌아눕는다.</span></div> <div>어깨 가득 이불을 덮어주며 나는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조심스럽게 나머지 발을 디딘다.</div> <div>방에는 아직 아침 햇볕이 들지 않아서 어깨가 으슬으슬 떨리고 발이 섬짓할만큼 차가워 놀란다.</div> <div>사실 이 작은 방에 들어오는 햇볕이란게 오후 무렵이 다 지나서야 간신히 찾아드는 4시간 남짓한 작별인사가 고작이다.. . .</div> <div>그야말로 <span style="font-size:9pt;">감옥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일조권이지만 창문밖 네모난 안뜰에는 그럭저럭 햇볕이 꽤 오래 머문다.</span></div> <div><br></div> <div>창 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창문들 너머로 아침을 여는 이웃들의 모습이 보인다.</div> <div>삐걱대는 마루소리에 놀랄까 깨금발로 삐익삐익 우는 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div> <div>복도에서 차가운 기운이 방안으로 들이닥친다, 나는 재빨리 나와 문을 닫는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어깨보다 좁은 복도가 보이고, 그 복도 좌우로는 한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욕실이 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 </span></div> <div>욕실과 화장실을 지나 부엌으로가 냉장고를 열고 주스를 마신다.</div> <div>차갑고 달고 상큼하다, 어쩌면 지난밤 먼지가득한 이 잡동사니들의 집에서 들이마셨던 먼지를 이 주스 한잔이 씻어내려주는 듯한 청량감마저 든다.</div> <div><br></div> <div>부엌에서는 또 다른편 이웃들의 창문이 보이고, 바로 앞 창문 빨간냉장고를 가진 스페인 아주머니는 <span style="font-size:9pt;">부엌끼리 마주보는 창문으로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물건을 주고 받을 수 </span><span style="font-size:9pt;">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주스를 다 마시고, 다른 방 의자에 벗어둔 후드를 입고 열쇠꾸러미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동전을 5유로쯤 챙긴다.</div> <div>2미터가 넘는 문을 열면 레드카펫이 깔린 나선형 계단이 펼쳐진다. <span style="font-size:9pt;">(얼마전 페인트칠과 카페트를 다시 깔았다.)</span></div> <div>그래도 복도와 계단은 춥고 오래된 맨션의 냄새가 베어난다, 그 추위와 냄새들 틈으로 작은 소리들이 다시 들린다.</div> <div><br></div> <div>엘리베이터는 나선형계단 중앙에 있는데, 3인승으로 좁은데다가 심지어 <span style="font-size:9pt;">아침에는 보통 4~6층에 머물러서 내려올 생각이 없기에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2층에 사는 우리는 특별한 </span><span style="font-size:9pt;">짐이 없는한 효율적이고 빠르며 폐쇄공포를 체험하지 않아도 되는 계단을 선호한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0층은 다른 두 맨션과 이어져 있어 아침이면 적지않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가령 예를들자면 바로 위층에 사는 영국인 게이 아저씨와 그 대머리 남자친구 그리고 그들의 애완견 샬롯이라던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 </span></div> <div>로비 청소중에도 모두에게 인사를 아끼지 않는 관리인, 포르투갈 아주머니라던가 - </div> <div>혹은 잘 모르는 옆 맨션 사람들 그리고 0층에 사는 대학생 여자 두명(소르본에 재학중인). . .</div> <div>사실을 덧붙이자면 이 멘션 이웃들 모두가 백인인데다가 동양인은 우리 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혼자라고 해야겠지만.</div> <div>아마도 이 동네에 거주하는 동양인은 없거나, 거의 없다는게 우리 둘의 생각이다.</div></div></div></div></div></div> <div><br></div> <div>다행스럽게도 오늘 아침은 샬롯도 관리인 아주머니도 동양인에게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내는 다른멘션 사람들도</div> <div>소란스러운 여대생들도 없는 조용한 로비를 지나고 있다.</div> <div><br></div> <div>3미터쯤은 될법한 문 앞에서 버튼을 누르면 </div> <div>- 달칵 - <span style="font-size:9pt;">하고 잠금장치가 열린다. </span><span style="font-size:9pt;">항상 짐을 들고 있을때면 버거울정도로 무게가 나가는 이 문을 한손으로 가볍게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밀어서 열면, 거리는 상쾌한 바람이 가득하고 높은 플라나타너스 가로수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아래에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침마다 무수히 자라나는 개똥들로 가득하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사실이 그렇다, 내가 바라본 파리지앵의 삶이란,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집 밖을 나설때 부터 무수한 개똥을 밟지 않기 위해 </span><span style="font-size:9pt;">분주히 발 밑을 살피며 시크하게 걷는 고단한 인생을 일컫는다. </span></div> <div>설령 개똥을 밟더라도 아무렇지 않은척 시크하게 가던길을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을때 쯤이면 진정한 파리지앵이라 해도 무방하다.</div> <div><br></div> <div>아침에 혼자 향하는 곳은 " Julien "이라는 불랑제리로, 매일 아침 파리지앵들의 아침식사를 찍어내는 빵집이다. </div> <div><br></div> <div>이용방법은 참으로 고상하면서도 간결한데,</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침인사로 시작해서,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원하는 빵을 고상한 어투로 나열하고,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게 끝이에요- 라고 덧붙여준다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카운터에 있는 마담이 얼마라고 얘기를 해주곤 빵들을 종이에 포장 해준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러면 나는 미리 가지고 온 동전들을 트레이에 올려 놓으면, 빵을 받게되고.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렇게 아침일상의 상투적인 거래는 끝이난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물론 예의있는 파리지앵이라면 빵집을 나서기전, </span><span style="font-size:9pt;">좋은 아침되시라는 인사를 빼주어선 안된다.</span><span style="font-size:9pt;">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적어도 그집에서 계속 빵을 사먹고 싶다면...말이다 ! 다른 빵집은 10분을 걸어야하고, 또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내가 먹을 빵을 담아주는건 전적으로 마담의 역할이고 나는 같은 값이라면 조금이라도 큰걸 먹고 싶다 ! )</span></div> <div><br></div> <div>그렇게 나는 파리지앵의 상징인 바게뜨와 크루와상, 뺑오쇼콜라 하나씩을 양손에 나눠 들고 기세등등하게 다시 집으로 향한다.</div> <div>바게뜨를 손에 들고 거리를 걸을땐, 정말이지 파리지앵이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러다가 개똥을 밟으면 그런 기분조차 <span style="font-size:9pt;">순식간에 사라지지만!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어느새 집앞 거리는, 파리에서 개똥 다음으로 많다고 생각되는 비둘기들이 부지런히 빵부스러기를 쪼아먹고 있다.</div> <div>(아마도 대부분이 바게뜨 부스러기라고 짐작 되는...)</div> <div><br></div> <div>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부엌으로 곧장 가서 바게뜨를 반으로 가른다 ( 정확하게는 옆을 8할정도 썰어준다. )</div> <div>바게뜨의 절반은 햄, 치즈, 바나나, 사과가 들어가고 나머지는 바나나와 사과만으로 속을 채운다.<span style="font-size:9pt;">    </span></div> <div><br></div> <div>원두를 3스쿱 정도 핸드밀로 갈고, 물을 끓인다, 그녀는 대단한 커피홀릭인데, 하루에 3잔은 기본이고 6잔까지도 마신다.</div> <div>나 또한 커피를 사랑하지만 그녀만큼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녀의 커피 대부분이 내 손으로 만들어진다는게 내 삶의 보람중 하나다.</div> <div><br></div> <div>우리의 아침은 대부분 원두커피와 함께 바게뜨 샌드위치가 끝인데, 커피잔과 바게뜨 접시를 트레이에 옮겨 담아 </div> <div><span style="font-size:9pt;">좁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식탁겸 책상 위에 놓는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좁은 방은 이내 커피향으로 가득찼는데, 아직도 자는 그녀를 바라본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정말이지 너가 하루에 6시간밖에 자지 않는게 맞나 싶은 생각이든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렇다 너를 만나고부터 나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기다리는게 싫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와 항상 이야기하고 싶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또 항상 곁에두고 보고 싶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러다보니 어느새 늦게 자고 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절대로 변하지 않았었던.. 나의 많은 잠들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를 만나고 이렇게나 사라져버렸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방을 나가기전 덮어주었던 이불을 이번엔 반쯤 접고 어깨와 팔을 쓰다듬어 준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나도 다시 침대에 누워 뒤에서 살짝 껴앉으며, 어깨와 등에 입맞춤을 한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러면서 점점 목과 귓등 볼 그리고 입으로 향한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는 이미 깨어있은지 오래지만,  우리의 아침식사전 의식을 즐기기 위해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너는 어느새 돌아누워 </span><span style="font-size:9pt;">나를 나른한 눈으로 가만히 바라본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리고 내 입술에서 나는 커피향을 그제서야 맡은듯 너는 내입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아침을 깨우는 커피는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 후에 너는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 혹은 중국어를 몇마디 귓가에 속삭인다.</div> <div>최근 내가 그녀와 공부한 바에 따르면 "너를 좋아해" 라던가 "한번 더 해줘" 라던가 " 수염이 따가워 " 인것 같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러면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 없이 두번째 입맞춤을 하거나, 한국어로 내 기분이나 생각을 장난스럽게 속삭인다.</span></div> <div><br></div> <div>그녀는 러시아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홍콩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자랐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있다.</div> <div>그리고 가끔 (내 기준에서는 꽤 자주), 패션모델을 하곤한다. (보통은 중국, 최근들어서는 한국 일본의 의류회사)</div> <div><br></div> <div>나는 조금 늦게나마 사진을 전공하고 싶어 파리에 도착했다, 가난했지만 자신감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고. </div> <div><span style="font-size:9pt;">사진을 찍기 위해 아침부터 해질무렵까지 거리를 헤메다보니 갑자기 비가 내렸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리고 그녀가 먼저 내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span></div> <div><br></div> <div>우리는 그렇게 한달전에 처음 파리에서 만났다. 비가 내리던 마들렌 거리에서 -</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비가 내리는 거리를 둘이서 걸어본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