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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자다흘린달빛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2-04-11
    방문 : 1271회
    닉네임변경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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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차단해제
    게시물ID : freeboard_1112236
    작성자 : 자다흘린달빛
    추천 : 2
    조회수 : 230
    IP : 211.205.***.19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5/10/19 00:31:30
    http://todayhumor.com/?freeboard_1112236 모바일
    새벽 야근은 뻘글이지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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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와서 잠이 깬다. 흐트러져버린 머리를 부비대며 일어나지만 잠이 깨지는 않는다. 잠에 어려서 어슴푸레 옆을 쳐다 보지만 요지 부동 조차 하지 않는 마누라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여보, 남편 출근하는데 아침밥은 안 차려 줄꺼야?”

    “…”

    묵묵한 외침만이 돌아온다. 오늘도 아침 먹기는 힘들듯하다. 힘겹지만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속에 나를 맞이하러. 세면대 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부끄럽게만 보인다. 언제나 자신감만이 차있던 얼굴은 피로감이 채워져 있고, 면도를 필요로 하는 얼굴만이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젊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 인줄 알지만 불룩 나온 뱃살을 잡고 당겨 본다. 혹시나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면도를 끝내고 깔끔해진 또 다른 나와 얼굴을 맞대본다.

    피곤하다출근 안 할 수 없나…’

    출근이나 해…’

    또 다른 나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옷을 주섬주섬 쟁여 입는다. 여전히 마누라는 잠에 취해 있는 듯하다.

    여보, 침구들 세탁할 때 된거 아냐? 자는데 몸이 가렵더라. 오늘은 겨울이불 쓰고 세탁 좀 해놔.”

    “…”

    아내의 대답에 나도 침묵으로 대답을 하고 출근을 한다.

    여름이 오지도 않은듯한데 아침 해가 벌써부터 출근을 했다. 혹 내가 늦지는 않았는지 시계를 다시 보게 되는 요즘 아침이다.

    어제 숙제 다했어?”

    아니 못했어. 그거 진짜 문제 더럽지 않냐? 담탱이가 천재일수도 있어.”

    담탱이가 천재면 우리 가르치고 있겠냐? 서울대 애들 가르치고 있지.”

    그렇지? 해온 애들 있으면 베껴야겠다. 6교시잖아.”

    부반장 해왔을 꺼야. 부반장이 다른 건 반장한테 밀려도 숙제정신은 안 밀리잖아.”

    그지? 스파게티빵 사준다고 하고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여고생들이 아침에 숙제 못해가는 문제로 고민한다.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련한 내 모습이 같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구구단 조차 못 외워서 아침 등굣길에 구구단 장을 펴고 다니던 내 모습이 여고생들 사이에 비친다.

     

     회사 정문에서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바짓단 반으로 잘라서 출근 해볼까? 부장 얼굴 볼만하겠는데.’

    웃음이 지어지지만, 웃음은 이내 입구에 있는 경비원의 눈빛만으로도 씁쓸한 무게로 변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마치 나의 수명을 말해주듯이 채워지고 있다. 수명이 채워진 나는, 기계처럼 내 자리로 향하며 의미 없는 인사를 동료들과 나눈다. 자리에 앉아 마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찾음이 나의 존재가 회사 안에 존재함을 말해준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과장으로써 해야 될 일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회사가 당신에게 월급을 그만큼이나 주고 그 자리에 앉혀 놓은 이유가, 돈이 남아돌아서 자리나 채우려고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보고서 처음부터 맞춤법까지 다시 찾아보고 정리 해오세요.”

    무게 있는 목소리, 무게 있는 자리, 그리고 무게 있는 몸무게. 정과장이다. 회사 입사는 당연히 나보다 느리다. 그러나 마치 홍길동처럼 부장자리를 꾀어 찬. 그렇다 낙하산이다. 회식자리에서는 나에게 형님형님 거리면서, 회사에서 카리스마를 표출하는 그런 인간이다. 보고서가 나에 대한 트집거리를 만들어 줬나 보다. 아 그리고 행동거지 때문에 깜빡 했는데 노처녀다. 그런 사람이 술만 먹으면 나한테 형님 이란다. 나는 형님이 되기 싫었다.

    예 알겠습니다. 다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깍듯할 수 밖에 없다. 나보다 상사. 나보다 윗사람이다. 이름이 만들어준 윗사람이 아니라면, 지금의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존경심이었을 것이다.

    이내 머리를 식히러 옥상 흡연실로 올라간다. 시간에 실려 흘러 가는 담배연기는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윗사람이라윗사람이다윗사람이다…’

    자기가 내 위의 자리에 있다는 것 빼고, 나보다 더 나은게 뭐지?’

    윗사람? 윗사람? 뭐였지그거뭐더라…’

    불현듯 머리를 스치지만, 그것은 정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과장님.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십시오. 정과장 살풀이가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김대리. 풋내를 겨우 벗은 내 후임이다. 부서 내에 몇 안 되는 담배친구, 그리고 나의 직속 아랫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저러면 밑에 사람들 못 견디고 나갑니다. 저렇게 볶아 대는데 안타버리고 말짱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장님이 낙하산 치맛바람에 맞았다고 생각하고 참으세요.”

    내가 그거 하나 못 참을 것 같아 보이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그냥 노처녀가 히스테리 부린다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만이야.”

    그렇죠. 그게 마음도 편하고, 신경도 안 써도 되고요. , 저 담배를 안 들고 와서 그러는데 담배 한대만 빌리겠습니다.”

    담배는 얼마든지 있다. 스트레스성으로 피우기 시작한 담배. 마누라도 담배는 정말 싫어한다. 벽지에 베인다. 건강에도 안 좋다 등의 이유로 집안에서 담배 피는걸 싫어한다. 그때부터 나는 베란다 신세다. 베란다 한 귀퉁이에 마련해 놓은 의자와 재떨이, 그리고 보일러가 내 집의 담배친구다. 마지막으로 들이마신 숨을 내쉬면서 가슴 한 귀퉁이에 남겨놓은 분노를 남겨둔 채 불을 재떨이에 비벼 끈다.

    나 먼저 내려간다. 더 있다가는 정과장 히스테리에 꽃이 필 것 같다.”

    먼저 내려가세요. 이거 다 피우고 내려 가겠습니다.”

    보고서 마무리를 해야 된다. 아무리 봐도 맞춤법이나 오타는 보이지 않는다. 내용상에도 더 이상 건의 트집이 생길만한 것이 없다. 그대로 낸다. 나는 아무리 봐도 이상이 보이질 않는다. 부장과의 대결만이 남았다.

    보고서 새로 가져 왔습니다.”

    훑어보는 건지, 보고서 종이를 바람을 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이렇게 잘할 수 있는 분이 왜 그렇게 했어요. 수고 하셨습니다.”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덮는다.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들릴 까봐.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붙잡고 뒷짐을 진 채로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주먹을 불끈 쥔 내 자신이 내 저 미친 여자를 어찌 하기 전에. 내 자리로 돌아와 남은 나의 업무에 집중한다. 그때, 책상 위의 휴대폰이 나를 찾는다.

    마치고 소주 한잔 콜??’

    미친 김대리. 내가 자기 형쯤 되는 줄 아는가 보다. 요즘 사람들이 다 그러려니 서툰 솜씨로 문자 메시지 답장을 보낸다.

    곱창이면 레이스. 아니면 다이

    이내 그 녀석의 답변이 온다.

    레이스. 이 밤의 끝을 위해 건배ㅋㅋㅋㅋㅋㅋㅋㅋ

    간혹 다가 이 녀석은 정말 미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내 밑에 사람이 맞는지, 혹은 회장 아들쯤 되는 건지. 하지만 부장에게 혹사당한 나의 영혼을 돌봐주는 치료의 시간에는 항상 소주와 함께 그 녀석이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 회사를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의 곱창 집으로 향했다. 익숙하고 소주를 부르는듯한 냄새와 소리에 나는 자리에 앉아 연신 소주를 먹는 상상으로 곱창 집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되어 간다.

    아무리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 있는데 그 자리에 그렇게 면박을 줄 필요는 없잖습니까. 뭐가 그렇게 소리 들을 만큼 잘못됐던가요?”

    없어.”

    그렇죠. 없는데 괜히 트집 잡은 거 아닙니까.”

    비어버린 그 녀석에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 주며 그 녀석의 입막음을 대신했다.

    잘못된 부분 자체가 없었어.”

    ?”

    토시 하나, 띄어쓰기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다시 올렸더니, 오케이 하더라고.”

    그 녀석이 먹던 곱창이 보일 만큼 입을 벌리고 있기에, 턱을 밀어 올려 주었다.

    진짜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다시 보고서를 제출 했단 말입니까?”

    . 모르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던 거지.”

    내 뱉은 담배에 한숨이 배여 나온다.

    김대리.”

    .”

    부장 전출 올 때, 같이 배치 받고 왔지?”

    . 과장님 밑으로 배치 받았지요.”

    그때부터 내가 부장한테 책잡힐 만한 일 한적 있나?”

    아니요. 한사코 없습니다. 절대로요. 제가 과장님 후임으로 배치 받고 나서 들은 과장님의 소문은 일에 대한 열정,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이런 소리 밖에 못 들어 봤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항문 밑에서부터 입 위까지 끌어올린다고 고생이 많은 녀석이다. 평소 사탕발린 말 같은걸 하지 않는 성격이고, 이 녀석 역시 그런 짓은 못하는 성격이었다. 후임이 선임 따라 간다고, 이 녀석도 어디서든 할 말, 못할 말을 안 가리고, 해야 될 말은 한다. 나에게만 사탕을 바른 달콤한 아부를 해주는 녀석이다. 비워진 소주잔을 다시 채워주고, 익었을 법한 소리는 내는 곱창을 녀석의 앞으로 밀어주며 익은 정도를 확인한다. 잘 익었다.

    나도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하면 당장 모가지 당하겠지만. 이건 명백히 부장의 직무유기다. 내가 낸 보고서를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그냥 나에 대한 트집을 보고서에서 찾았던 거야.”

    에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한잔 하십시오.”

    소주잔을 기울여 흘리는 이슬 만큼 나의 푸념은 늘어 갔고, 가슴 깊이 묵혀 두었던 분노는 삭혀지고 있었다.

     

    과장님. 과장님. 집입니다. 과장님.”

    김대리의 외침에 눈을 떠본다. 아니 눈을 감았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눈을 뜨니 우리 집 앞이다.

    과장님 댁입니다.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술이 취했는지 중간 필름이 끊긴듯하다. 더 이상은이 녀석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아니. 내가 걸어서 들어갈 테니까. 택시 타고 가봐.”

    주머니에 남아있던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만원 짜리 두 장을 건넨다.

    아닙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나를 바래다준 택시를 타고 그 녀석은 집으로 가버렸다. 내가 준 돈은 받지도 않은 채로. 나는 아쉬울 것이 없다. 주머니 밑으로 다시 구겨지는 지폐 사이로 집 열쇠를 찾는다.

    다녀 왔어.”

    “…”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래 술도 취했겠다. 한번 해보자.

    남편이 왔으면 눈이라도 마주쳐야 될 꺼 아니야!!”

    “…”

    취해서 몸을 못 가누며 바닥에 주저 앉아 양말과 바지를 벗었다. 침울거리는 눈에 들어온 건, 아침에 말했었던 더러운 침대커버. 아침에 빨래를 해달라고 말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침묵만을 일관하던 아내였다.

    침대커버 세탁 안 했어? 왜 안 했어? 남편 말이 우스워!! 너까지 내 말 알기를 우습게 알아?”

    “…”

    무언가 화가 단단히 난듯하다. 여기서 더 이상 하면 내가 손해라는 것을 알기에 이내 그만둔다.

    씻고 거실에 잘꺼야. 더러워서 거기는 못 자. 그거 씻을 때까지 거실에서 잘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퉁명한 듯, 냉정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세수를 끝 마친 채로 거실에서 잠들었다.

     

    이전날의 술로 쓰린 속을 부여 잡고 출근길에 올랐다. 마치 위장이 찢어 질것만 같았다. 아픔이 계속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출근을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불현듯 어제 아침이 떠오른다. 숙제 이야기로 등교를 시작하던 여고생들. 나의 어릴 적 등굣길은 구구단으로 시작했었다. 4단 조차 못 외우던, 지진아로 낙인 찍힐 뻔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남들의 하굣길은 나에게 또 다른 공부의 시간이었다. 못 외운 구구단은 연습장에 빼곡히 적어 내려갔고, 손이 외우던 것을 머리가 외우기 까지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보 같은 모습이 떠올라 또 피식 거리고 웃고 말았다. 웃음이 모자랐던 일상에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한듯한 웃음이었다.

    구구단이라정말 어려웠지 그건…’

    멍청하기 까지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또 다시 나의 수명을 채우며 나의 자리를 찾아간다.

    과장님!! 나랑 지금 이거 장난 치자는 겁니까?”

    출근하며 가방을 내려 놓기 무섭게, 정부장의 호된 소리가 귓전에 내려 앉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제 새로 제출한 보고서 말입니다. 몰라서 물어요?”

    어제 부린 꼼수가 이제야 들킨 모양이다. 강경하게 나갈 수 밖에 없다.

    아무 이상이 없어서 그대로 다시 올렸습니다.”

    아니 이게 이상하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디가 이상하다는 말씀입니까?”

    여기. 이 부분에서 산출 그래프 수치가 틀리지 않습니까.”

    부장에 손에 들려 있는 것. 하나는 이번 해 부서 매출을 도표화 시킨 내가 작성한 보고서이고, 또 하나는 지난 해 부서 매출 자료다. 숨을 크게 들이 킨다.

    왼손에 것은 이번 해 보고서이고요, 오른손에 것은 지난 해 보고서 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 부탁 드립니다.”

    내 말을 듣자 마자, 표지에 있는 작성 년도를 이제서야 본 것 인양 얼굴에 홍조를 띄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요…”

    목소리는 많이 누그러진듯하다.

    제가 수치상으로 확인 했을 때는 문제 없었습니다. 보고서 그대로 제출 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무언가 누그러진 채로 자신의 자리로 향하며, 보고서를 책상에 던지듯 놓는다.

    술로 쓰린 속에 아침해장은 역시 커피다. 딱히 해장할 방법도, 시간도 없다. 커피와 담배를 연신 들이키며, 아침에 만든 성취감에 다시 취해 있었다.

    과장님!!”

    김대리 등장. 이때 이 녀석이 와서 축하를 안 하면 안될 타이밍이다.

    과장님. 부장님 얼굴 보셨습니까? 부서원 전체가 웃음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딱히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자기가 실수를 한 거지.”

    조금은 나아진 속이 다시 쓰려 온다.

    나이 생각해서 조금만 먹을걸 그랬나. 부장 때문에 너무 먹었어.’

    불현듯이 아침에 생각이 나면서, 김대리를 쳐다본다.

    김대리.”

    . 과장님.”

    그거 뭐지그 몇 번 곱했는지 표기 하는 거 있잖아.”

    어떤 거요?”

    ... 똑같은 수 곱할 때 쓰는 방법.”

    거듭제곱이요?”

    어 그래. 그거다 그거. 그게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갑자기 왜 거듭제곱을 물어보세요?”

    아침에 어린 시절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어릴 적에 구구단도 제대로 못하던 시절이 조금 지나서 거듭제곱이라는 개념은 정말 충격적이었으니까.”

    과장님 구구단 언제 다 외우셨는데요?”

    아마 초등학교 3학년?”

    에이. 거짓말 하지 마세요.”

    녀석이 조소를 날리지만, 정말로 사실이었다.

    거짓말 아니야. 구구단 다 못 외운다고, 남아서 외우다가 집에 가고 그랬어.”

    진짜요? 과장님 지금 부서 회계 담당이시잖아요.”

    지금이야어릴 때 그랬던 덕분인지 문제 없지.”

    우와. 의외시네요. 분명히 완벽에 가까운 과장님이신데.”

    어릴 때부터 그냥 빈틈 투성이였어. 내려가자. 부장 또 난리 칠 꺼야.”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생각 조차 하기 싫은 어두운 과거다. 남들의 웃음을 사서 눈물을 팔았던 그 어린 시절이 나에게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부끄러운 과거다. 구구단을 겨우 다 외워서 한시름 놓았을 때, 내 앞에 다시 등장 한 것은 또 다른 구구단. 거듭제곱이라는 놈이다. 딱히 외울 필요는 없었지만, 구구단을 십분 활용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이제 갓 구구단을 다 외우던 나에게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일일이 손으로 적어가며 구구단을 풀어 해쳐 놓았던 연습장은 새까맣다 못해 구멍이 난적도 있다.

    뭐라고 했더라…’

    거듭제곱에 대해 생각난 김에 더 찾아 보려, 컴퓨터의 모니터를 뒤적거려 본다.

    ‘a라는 수를 n번 곱셈으로 연산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으로, 이때 a를 밑, n을 지수라 한다.’

    그래이걸 밑이라고 하고, 이걸 지수라고 했어.’

    거듭제곱에 대한 기억으로 머리를 한구석이 채우고 있을 때,

    과장님.”

    부장의 호출이다. 분명 보고서에는 문제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 부르셨습니까.”

    잠시 저랑 회의실 가서 이야기 좀 하지요.”

    이제는 독대로 핀잔으로 주려나 보다.

    어제 주신 보고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3번이나 보고 그대로 돌려 준거니까.’

    다만…”

    다만…?”

    김대리가 아침에 와서 넌지시 이야기 하길래, 나는 제대로 맞춰보지도 않고 화를 내고 말았네요. 이해해 주세요. 만약 다른 부서원들에게 웃음을 샀다던지, 그로 인해 피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었다면 제가 공식적으로 과장님께 사과하겠습니다.

    김대리요?”

    김대리가 아침에 부장님. 과장님 보고서 검토 해보셨습니까? 혹시 그것 때문에 밤 새우시지는 않으셨지요? 그거 지난번이랑 똑같을 겁니다. 그대로 다시 드린 거라서요.’ 라고 하기에 갑작스럽게 난 화를 참지 못하고 참고 중이던 자료를 들고 과장님을 찾았던 겁니다. 애초부터 참고 중이던 자료가 잘못된걸 모르고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동생처럼 여기었었고, 동생처럼 대해주었던 김대리. 나의 바로 밑에 있던 김대리에게, 나는 배신을 당했다. 아련해지는 시선을 바로 잡고, 부장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참고 하셨던 자료 자체가 잘못된걸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부장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장님.”

    회의실을 나왔지만 아직 머리가 멍하다. 망할 김대리가 나를 배신했다. 그렇게 아껴주었는데, 그렇게 친하게 지내 주었는데, 이 녀석이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다. 내 밑인 놈이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김대리를 찾아서 이실직고를 듣는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배신에 대한 밑이 위를 친 것에 대한 하극상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다. 자리가 비워진 것을 보니 옥상 아니면 다른 부서 서류 전달일터, 일단 마음을 진정 시킬 겸해서 옥상으로 가야겠다.

    김대리!!”

    옥상문을 밀치며 외친 나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고, 그 녀석은 상황을 파악한 듯이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맹수를 바로 앞에 둔 고라니의 눈처럼.

    김대리너 임마!!!!!”

    있는 힘껏 윽박을 지르고 말았다. 그렇게나 아끼던 녀석인데 말이다.

    과장님.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좀 들어 보세요.”

    부장님 통해서 이야기는 잘 들었으니까, 네가 하는 이야기는 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윽박을 지르며 가빠진 숨을 고르며,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과장님. 그게 아니라…”

    출세 하고 싶더냐?”

    아닙니다. 과장님.”

    누그러뜨려진 이성을 다잡고 그 녀석의 몰골을 다시 본다.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 마치 내가 부장님 앞에서 화를 누그러뜨리고 있던 자세와 흡사했다. 다행히도, 반성중인 모습으로 말이다.

    출세를 하고 싶으면 내 밑에 있지 말고, 부장이나 다른데 가서 아양 떨어. 나는 더 이상 네 녀석 아양이랑 사탕 바른 소리 듣기 싫으니까.”

    과장님…”

    부장님께 네 파트 전출 요청 드릴 테니깐 그렇게 알고 있어. 나는 너 같은 녀석이랑은 일 못해.”

    한껏 풀이 죽은 채로 대답조차 못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옥상을 내려 왔다.

    밑에내 밑에 있던 녀석이…’

    한껏 화가 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지수가 없으면 별볼일 없는 그딴 밑 녀석이자기자신을 키워주는 은혜도 모르고 다른 지수에 빌붙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낫지만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거듭제곱에 대한 기억과 그 녀석에게 난 화가 섞여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마치 미친 것처럼 근간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내 자리로 돌아온 후에 부장도, 다른 부서원들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이 필요 했다.

    부장님 먼저 퇴근 하겠습니다.”

    . 들어가보세요 과장님…”

    말끝이 흐려지는 걸 보니 영 탐탁치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걸 아는지, 별다른 소리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침에 걸었던 길, 주변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넥타이는 이미 풀어 헤쳐 가방 안에 자리 잡았고, 손에는 내 옆에 자리 잡은 가방대신 맥주와 담배가 자리 잡았다. 아직도 채워진 수명이 다되지 않은 기계가, 해가 남은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소심한 일탈이 일어났다. 들이키던 맥주가 입가에 흘러내린걸 닦아 내고, 앞으로 시선을 옮긴다.

    머리가 복잡하구만오늘 하루 종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내 위에 깨지고내 밑은 나를 무시하고…’

    그 와중에 아까 했던 생각에 웃음기가 몸 안에 돌기 시작했다.

    거듭제곱밑과 지수라…’

    ‘2 4이 있고, 밑이 지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3을 선택하는 게…’

    자기 자신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 사회고, 그 사회를 사는 사람 아니겠어…’

    너무 실망 말라고너도 같을 꺼야…’

    그렇겠지나도 나에게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그렇지 않았을까지수라는 놈이 얼마를 줬고이제껏 나를 얼마로 보이게 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언제나 밑이라는 자기 자신이 초라 했을 수도 있고…’

    내쉬는 숨에 뜨거운 웃음이 묻어 나온다.

    어릴 때는 그저 순수 했는데세상이란 게 참사람을 바꿔 놓았구나...’

    아니내가 세상에 맞춰진 거겠지순수했던 나의 지수를 버리고내가 커지기 위해서나를 바꾸기 위해서…. 어쩌면 맞지도 않는 지수를 택하고 살아 왔는지도…’

    그게 사회를 사는 모습이지네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라도, 그게 답이야…’

     

    너털거리며 들어온 집에서 눈에 보인 것은, 아직까지 세탁이 안된 침대 커버. 직장에서 화는 화대로 내고 왔고, 술은 한잔 했고, 그때 하필 침대 커버가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여보!!”

    고함부터 지르고 말았다. 더 이상 속안에 쌓여 있던 억압을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격앙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어조를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침구빨래 좀 해놓으라고 몇 번을 이야기 하면 이게 제대로 되겠어?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잠이 제대로 와? 하루 종일 일해서 남편이 돈 벌어다 주면, 집안 일이라도 좀 해야 될 꺼 아냐!!”

    “…”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오늘은 기어이 한판 해야겠다. 싸움이 싫고, 사람들과 다투는 게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이제는 아니다.

    일어나서 이야기라도 좀 해보라고!!”

    걷어낸 이불 속에는 서류뭉치가 있었고, 내발 앞에 떨어진 리모컨이 발끝에 와 닿았다.

    …’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아내가 없어졌는지, 아니면 언제부터 아내가 없었는지. 뭔가 크게 잘못 된 것 같았다.

    뭐가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에게 설명 좀 해줘…’

    서류뭉치 위로 몇 번을 봤는지, 몇 번을 만지고 있었는지, 헤어지고 빛 바랜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 왔다.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

    정신의 아득함이 술이 깨게 만들었다.

    이혼? 이혼? 내가 이혼?’

    믿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주저 앉아 서류를 다시 보지만 서류의 명칭은 정확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왜지왜 내가 이혼을…’

    정신을 차리려 다시 둘러본 방안에서 침대커버가 다시 눈에 들어 왔다.

    침대커버침대커버….’

    뒷통수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번뜩하며 스쳐갔고, 나는 다시 서류를 쳐다 보았다.

    ‘…폭력에 의한 결혼생활 유지 불가…’

    폭력…? 내가…?’

    서류들 속에는 아내의 진술서가 있었다.

    ‘…남편은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쌓였던 화를 저에게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어요. 언제나 집안 모든 것에 트집을 잡았고, 자기가 나를 때려 흘린 피로 얼룩진 침대커버를 씻지 않았다는 이유로 때릴 것을 예고 하기도 했습니다…’

    아득해진 정신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자리 잡은 정신으로 집안을 다시 둘러 보았다.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베란다에서만 피던 담배도 이혼 후에 방안에서 피기 시작했나 보다. 몇 일은 빨래를 하지 않은 듯한 빨랫감들, 뒤죽박죽인 방안 꼴, 영락없는 혼자 사는 남자의 방이었다. 다시 침대커버로 눈을 옮겨 본다. 얼룩이 진 부분을 문질러 보고 눈으로 다시 봤지만, 지워지기는커녕, 더욱 선명하게 얼룩이 있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정말 쓸모 없는 놈이었구나…’

    얼룩진 침대 커버를 움켜지고 흐느껴보지만, 아내는 거기에 없고, 나는 혼자 남겨져 있다. 이제의 반성이 온몸에 흐르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믿었던 사람에게 버려지고, 가정에서 버려지고,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존재 인가 보다...’

    낮부터의 생각이 머리 속에 다시 자리 잡는다.

    지수는밑이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는 존재였구나누군가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어디서든 누군가 밑이 있지 않으면지수라는 존재는 전혀 쓸모가 없고있을 수 없는 존재구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침대 커버의 얼룩에 다시금 젖은 얼룩을 만들고 있다. 지울 수가 없을 만큼 커다란 자욱을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나의 생각은 지워 버릴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배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지수를 받아 내 상처가 밑이 되어 나에게 돌아 온 것처럼.

    출처 누가 : 나는
    언제 :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 회사에서
    무엇을 : 야근을
    어떻게 : 빡쎄게
    왜 :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다흘린달빛의 꼬릿말입니다
    일을 해야되는데.....
    왜 일이 하기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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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9 00:32:45  118.220.***.21  이상과  682059
    [2] 2015/10/19 00:33:47  112.152.***.28  윈드스니커  628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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