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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경험담입니다.
무서운 얘기는 아닌데 성격이 무게랑 맞는 것 같아 글 올려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살던 집은 4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3층엔 우리 가족이, 4층엔 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함께 사셨습니다.
노할머니가 표준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할머니는 저희 친할머니의 생모는 아니지만 친할머니를 6.25전 때 거두어서 키워주신 분이다. 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가족 모두가 모두 노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할머니의 어머니뻘이니 나이가 굉장히 많으셨죠.
정확한 나이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00세가 넘게 사셨습니다.
친할머니는 당뇨로 몸이 좋지 않으셔서 거의 누워 계셨고 노할머니도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거동이 힘드셨습니다.
전 당시에 할머님들과 별로 살갑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분위기상 4층에 가는 것 자체가 좀 불편하기도 했죠.. 두 분이 다 잘 일어나지도 못 하셨으니..
당시에 우리 어머니가 두 분 수발 드느라 힘들게 지내셨습니다.
어릴 때야 할머니~할머니~ 하면서 재롱도 부리고 했지만 머리 좀 컸다고 관심사도 다른 곳에 가 있고, 친구들 만나랴 미술학원 다니랴 놀기 바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밤이었습니다. 자정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4층에서 계시다가 울상인 얼굴로 내려오셨습니다.
노할머니께서 이상하다고.. 무서우니 같이 4층에 가자고 하셨죠.
당시에 아버지는 출가;;상태였고 누나는 독서실에서 있었고.. 집안에 남자라곤 저 혼자였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당황한 얼굴을 좀처럼 본 적이 없었기에 긴장을 하고 노할머니가 계신 4층에 있는 작은방으로 갔습니다.
4층에 올라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방안에서 뭔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났습니다.
TV 같은 데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구워먹는 오징어에서 시체 냄새가 나 싫어한다는 내용들을 종종 봤던 것 같은데 정말 그런 비슷한 냄새였습니다. 순간 직감했죠. 아 돌아가셨구나..
노할머니는 주무시듯 옆으로 누워계셨습니다.
어머니는 거실 전화기로 병원에 연락을 하셨고, 저는 슬픔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노할머니 곁에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문득 노할머니의 누워 계신 모습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바로 눕혀 드리려고 했는데 몸이 이미 굳으셔서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기운없고 약한 몸이셨는데.. 오히려 돌아가신 지금은 장정이 된 내 힘에도 꿈쩍도 안 하시는구나.
시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근육이 경직된 느낌이 있더군요.
그 낯선 느낌에 노할머니의 죽음이 그제서야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잠시 후 건물앞에 응급차가 왔습니다. 응급요원은 아니고 장례일을 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밤이 늦어서 그런지 혼자 온 데다가 나이가 꽤 있으셨습니다;;
어쩌지 저쩌지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노할머니를 제가 4층에서 1층까지 업고 내려왔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뭔가 정신없이 절차를 밟고, 어머니는 공중전화로 작은아버지들에게 연락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곤 이제 어른들 오니까 걱정말고.. 내일 학교가야 하니 택시타고 집에 가라고 저에게 2천원을 주셨습니다.
당시까지는 좀 덤덤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신이 없기도 했고 슬픈 감정이 크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아 맞다 내일 학교 가야지.. 얼른 가서 자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나오려는데 복도에 담배 자판기가 보였습니다.
주머니에 2천원 뿐.. 걸어가지 뭐. 아무 생각 없이 당시에 천원 하던 디스를 한 갑 뽑았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함박눈이 고요하게 내리고 있더군요.
늦은 밤이라 차도 한 대 없었고.. 적막하고 쓸쓸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그 당시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가 좀 힘드네요.
슬펐고, 노할머니에게 무관심했던 저에게 화도 났고, 하지만 눈 앞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눈을 맞고 집으로 터벅터벅 걷다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아까 산 담배가 생각이 나 하나 꺼내 물었습니다. 헐 근데 생각해보니 불이 없었습니다.
담배를 보니 문득 중학교 3학년 때 일이 떠오르더군요. 고입 연합고사를 보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안절부절하며 있던 제게 노할머니께서 담배를 권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긴장되면 담배 펴보라면서. ㅋ
전 눈이 똥그래져서 아휴 할머니 저 학생이에요~ 학생은 담배피면 안된다구 말했습니다.
노할머니는 옛날 분이셔서 그런 개념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나이면 장가도 갔다고 말하시곤 하셨죠.
그 때 생각에 피식 헛웃음이 났지만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술이 씰룩거렸습니다.
혹시나 누가 볼까 싶어 고개를 숙였는데 거짓말처럼 발 밑에 라이터가 보였습니다.
눈이 소복하게 덮여 있었지만 라이터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 사실 미신을 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기막힌 우연이라면 이건 그냥 할머니가 선물로 던져준 라이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을 업어 준 증손주가 불이 없어 담배를 못 피우는 것이 못내 안타까우셨나 보다.
그때부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곶감을 먹기 좋게 말려 어린 저에게 주시던 모습들..
참빗으로 새하얀 머리를 빗으시고 비녀를 꽂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 세기를 오롯하게 여자로 살아오신 분의 임종이 이렇게 허망하구나.
그 100년의 긴 이야기들이 함박눈에 덮여가고 있었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날 정도로 만감이 교차하고 많이 울기도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신기하고 슬프네요
핑계지만 이런 추억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짱공유 rappler 님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06&page=3&no=14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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