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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animation_320370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2
    조회수 : 360
    IP : 110.76.***.91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3/31 01:33:16
    http://todayhumor.com/?animation_320370 모바일
    [단편/스포] 멱살 - 카나메 마도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시선은 어디든 향할 수 있다. 그때의 너는 꼭 그러했다.

     때로 그런 당연한 몸짓이 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라는 것도 한 선녀의 시선이 향했고, 그 지향이 그야말로 관계가 되었던 것처럼, 시선이 향하는 풍경이란 그런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너의 시선은 고개를 들던 네 목덜미에 향했다. 아니, 너에게 이 표현은 미묘했다. 시선은 물론 닿기도 했으나, 조금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할까. 그래, 그렇게, 핥아 올라가는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 차올랐다. 도서관, 노을이 비추고 있는 주황빛의 서고 사이였다. 그녀는 그녀의 키보다 작은 살짝 고개를 들고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에 비해 간신히 높은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그녀를 내려보는 너의 기분은 묘했다. 감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는 듯한 너의 바보같은 표정은 볼만했겠지. 그 몇 cm되지 않는 높이임에도 올려다보는 그녀를 내려보는, 그럼에도 올려다보는 네 시선은, 그런 시선인양. 갈래로 묶은 머리칼 너머, 목덜미는 그렇게 햇빛을 받아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너의 시선에 차오른다는 표현을 넣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너는 목의 햇빛처럼 차오르고 싶었다. 그녀의 멱살을 간질이고 싶었던 것이다. 너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잠시 멈춘 시간도 그에 동의하는 듯 했다. 아직 너의 목선은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턱에서 미끄러지듯이 이어지는 선은 노을을 받고 있었으나, 그 반대편은 머리칼이 가리고 있던 탓이다. 그녀는 네 마음을 읽은 것 마냥 목을 간질이는 머리칼을 넘긴다. 목선이 깔끔하게 드러난다.

     빛이 탄로난다.

     

     너는 다시금 숨을 삼킨다.

     아니, 침을 삼켰을까. 그랬겠지. 너의 아이들 중에 욕망이나 색욕은 없었으니, 그건 너와 그녀 사이에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살짝 까치발을 들고 책을 꺼낸다. 그제서야 너는 멍하니 바라만보던 시선을 황급히 돌린다. 알아차렸을까 싶은 조마조마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 풍경에 넘어가버린 것인지, 너의 마음은 쉬이 편안해지지 않았다. 전자라면 비웃어줄테고, 후자라면 매도했을텐데. 너는 힐끗 훔쳐본다. 고개를 내리는 그녀를 본다. 다시 시선은 목을 향한다. 성대가 드러날 일 없는 매끈한, 그래야할 그녀의 멱살을 바라본다.

     세로로 떨어져야할 그녀의 목선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 하나가 보였다. 사실, 그건 정말 별일이 아닌 현상이다. 주름이라고 불리며, 세월의 흔적이라고도 불리는 그것. 정말 별일 아닌 시간의 현상.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타나토스의 숨결이 나타나는 곳은 멱살과 손등. 그 숨결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박제를 하지 않는 한, 그 아이러니함을 겨누지 않는 한, 그 흔적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네가 그것에 한 순간 영원의 공포를 느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일종의 거리감을 뜻했다.

     너는 순간 순간을 박제해버리고 싶었을까. 습관처럼, 3년 전의 이야기처럼 시간을 멈추려는 듯이 왼팔을 더듬거린다. 탄로난 너의 빛을 숨기려고 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손 끝에 방패는 닿지 않는다. 너는 그녀의 시선에,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에 당황한다. 한발짝 뒤로 헛딛는다. 책도 떨어뜨린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거꾸로 떨어진 책은 펼쳐진 채로 떨어진다. 몇 페이지가 구겨졌을까. 오갈 곳 없는 것처럼 시선은 흔들린다. 목에 차오르던 시선은 거둬지고, 목에 뭔가 걸린 듯이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런 이상을 숨기는 너는 안쓰러웠다. 간신히 진정하는 시선을 정리하고, 내뱉을 듯 목구멍을 튀어나오려는 언어들을 붙잡는 순간이 되어서야 너는 똑바로 그녀를 바라봤다.

     너는 멱살에 자리잡은 시간의 증거을 다시금 봤다. 너에겐 당연한 운명이었다. 시간에, 세계에 정지했을 그녀와 너. 하지만 갈라놓은 것은 너였다. 그녀 일부의 시계 태엽을 감아버린 것은 너 자신이었다. 감아버린 시계 태엽을 정지시킬 수는 없었다. 3년 전이었고,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명백했다. 네 손으로 일궈낸 기적이면서도 현실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부정할 여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무서웠다. 모르는 사실이 아닌 것을, 대면하고 체념하게 되는 순간의 공포. 공포는 무지에서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너의 불안감의 기원이었다. 너는 그 진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책, 꺼내기 힘들어 하길래.

     너의 입에서 튀어나온 언어는 간신히 정제되어 있었다. 공포 0g, 평범함 10g. 나머지는 폐부에 꾸겨넣었던 것일까. 언젠간 튀어나올까. 그 또한 너의 공포의 연장선이었다. 너의 시선은 다시금 그녀의 멱살로 향한다. 가장 먼저 시간이 찾아온 그 증거물을 바라본다. 얼굴도 한번 본다. 눈가, 입가, 모두 아직은 말끔했다. 웃는 일 많은 그녀에겐 그 두 곳이 가장 문제였다. 목과 함께 주름이 빠르게 나타나는 손등도 본다. 손등은 멀쩡한 듯 했다. 핏줄이나 뼈마디도 나오지 않은, 아직 어린아이 같은 손이었다. 무심코 잡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멍청한 너를 너는 잠시 속으로 저주했다. 이마도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이다. 아직 너는 그녀의 친우가 될 용기는 없었다. 고등학교를 따라 진학했고, 어쩌다 2학년 땐, 같은 반이 되었지만, 너는 끝까지 그럴 작정이었다. 물론 그 다짐과 욕망에는 좀 거리가 있었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없지만, 시간은 많다고 너는 공포감을 달래주고 있었다. 공포는 잠시 배부른 듯이 슬그머니 너의 그림자로 숨는다.

     그러고보니 키, 전혀 자라지 않아서 말야.

     그녀는 말끝은 그렇게 흐렸다. 너의 시계도 그렇게 멈췄으면. 그리고선 너는 생각의 끝을 흐트렸다. 시선은 돌리고 싶지 않았다.

     계속 그러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거야?

     그녀가 가벼운 산책을 마친 후, 정원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때였다. 그녀는 그렇게 다시 물었다. 너는 도서관에서 이때로 돌아온다. 노을 대신 아침햇살이 가득했다. 묘한 대비를 느끼며 너는 그녀를 내려다본다. 온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 멱살의 한 줄기 가로로 생겼던, 그 고등학교 도서관에서의 흔적은 이젠 전염병마냥 그녀의 몸 곳곳에 퍼져있었다. 눈가도 자글자글했으며, 가장 먼저 주름이 생겼을 그 목선에 이제 생기는 없었다, 이마의 머리칼을 굳이 치울 필요도 없이 콧등을 따라 주름은 이어졌다. 멱살은 이제 탄력을 잃고 조금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서 너를 조금 본다. 너의 시선에는 턱선이 차오른다. 여전히 마도카였다. 너에겐 여전히 사랑이었다.

     너는 여전하구나.

     그럴리 없을텐데. 너도 그녀와 함께 늙고 싶다는 생각을 위해, 그리고 그녀가 할 의심을 숨기기 위해 늙은 외형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니, 실은 전자가 훨씬 옳았지만. 어쨌건 그녀는 세월의 도움 덕분인지, 그녀가 가진 본질 때문인지, 너의 본질이 뭔지 대강 알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실임에도, 그건 이해의 수준을 넘어선 당연함이었고, 이 슬픈 연극을 지속하는 것은 너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그 연기를 하는 것이 공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도 잠자코 있었을 뿐. 이따금 튀어나오는 이런 말들은 서로에게 다른 시선으로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이젠 끝이었다.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그녀가, 아니 내가, 나조차도 하나의 뜻으로 통일하지 못하는 그런 말을 남겼을 때야, 나는 무수한 세월을 넘어, 너를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네가 겪은 일들과 너의 시선은 그렇게 하나도 모르지만, 모두 알 수 있었다. 주마등이라기엔 묘했고, 네가 누구를 보고 이렇게 버텨온 건지 알 수 있는 때였다. 그건 요컨대, 사랑이기도 했고, 공포이기도 했고, 이따금 증오도 섞여 있었으나, 그 모두 사랑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나의 멱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네가 다시금 상실의 때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너의 눈은 울 수 밖에 없을까. 그것만은 목에 차오르듯이 안타까운 숨결이었다.

     너의 목은 소녀처럼 깨끗했다.

     





    멱살은, 잡아올리면 멱에 닿는 옷깃을 뜻하기도 하지만,

    목 앞쪽의 살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손등과 더불어 가장 빠르게 주름이 생기는 부위이기도 하죠.

    안티에이징을 신경쓰는 소녀들을 쓸까하다가, 그냥 썼습니다. 주름은 시간의 것이니까요.



    Evangelion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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