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밑에 시온의정서에 대한 질문 글을 올려주셨는데요.</P> <P> </P> <P>시온의정서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포그롬을 우선 논해야 이해가 빠를거 같습니다.</P> <P>20세기까지 유럽의 후진국으로 농노제와 제정을 유지하던 러시아는 제까브리스트 운동을 시작으로 </P> <P>러시아는 장장 200년에 걸친 제정 철폐를위한 혁명의 역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P> <P> </P> <P>이 시기 제정러시아의 권력은 제정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선동을 양산하였죠. 그중하나가 포그롬입니다 </P> <P>이런것이죠 반제 운동이 극에 달했던 이른바 반제혁명단체에 의한 알렉산드로2세의 암살사건이 일어나자 </P> <P>제정 러시아의 비밀경찰들은 혁명단체를 검거하고 탄압을 하면서 동시에 했던 일이 바로 조직적인 유태인에 대한 테러활동 포그롬입니다. </P> <P> </P> <P>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외의 행동인데 혁명진압과 유태인 학살이 연결되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 </P> <P>하지만 혁명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유태인을 탄압한다는 것은 2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P> <P> </P> <P>1. 강력한 정교회신앙 위에 성립한 한 제정러시아의 전제권력 짜르는 그 자체로 정교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P> <P>정치적으로 이에 대립하는 러시아내의 유대교를 배타적 대상으로 설정함은 그 반대효과로 러시아에서 정교회신앙의 중요성이 부곽되고 </P> <P>또한 그 자체로 전제권력도 부곽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즉 정교회로 통일된 러시아에서 유대교라는 이질적인 신앙을 가진자를 </P> <P>적으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위협적인 존재로 부곽시키면 시킬수록 정교회와 전제권력은 더욱 공고해 지는 것이죠 </P> <P> </P> <P>2. 또한 당시 전제정을 타파하고 자유주의 사조를 가져온 지식인 층에 대한 경고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P> <P>러시아는 자유주의와 계몽의 열풍이 불었던 서유럽과 달리 이를 철저하게 규제하며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과목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P> <P>당시의 법학 즉 입헌주의를 바탕으로 한 법치국가 건설 그를 통해 달성되는 권력분산이론은 제정의 적이었으며 </P> <P>당시의 철학 자유주의 철학, 사회주의 철학등은 시대의 조류였지만 역시 전제정의 위협이었죠 이를 대학에서 금지했고 </P> <P>지식인들은 모두 문학을 통해 이런 시대의 고민을 표현했습니다 </P> <P>이런 금지가 있다면 반대되는 철학과 이념이 있어야 이런 탄압이 가능합니다. 당시 도스또예프스키의 고민에서도 드러나는바 </P> <P>그 귀결은 슬라브민족주의였습니다. 서구의 사상과 서구의 철학은 러시아의 정교회적 신앙과 현실에 부적합한 것이며 </P> <P>오히려 러시아를 해하려는 음모에 불과하다. 정교회적 신앙을 바탕으로 짜르를 중심으로 뭉쳐 슬라브민족의 단결을 이루자 </P> <P>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도 초기 이런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가 강력한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것으로 유명하죠 </P> <P>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그것이 의미하는 슬라브민족, 정교회 신앙과 대립하는 이질적인 집단이라는 강한 동기인 동시에 </P> <P>더불어 이들이 상당수가 지식인 층이자 자본가계급이라는 원인도 있었습니다. </P> <P>정교회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웠던 유대인들은 러시아 내부에서도 보다 일찍히 서구의 철학을 흡수했고 </P> <P>많은 반제혁명운동의 인사들 중에 이런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던 1917년 혁명 당시의 </P> <P>정치인사 상당수가 유태인이었음이 그 반증이기도 하였죠. </P> <P>즉 전제정에 대항하고 국가를 전복하여 이른바 서구식의 민주주의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은 </P> <P>대부분 유태인들로 이들은 정교회와 슬라브민족의 적이며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곧 슬라브민족을 위한 애국이다 </P> <P>이런 고도의 정치선동이 탄생한 것이죠 </P> <P> </P> <P>1800년대 후반 탄생한 이런 제정러시아 비밀경찰 체카의 정치선동 전략은 19세기 민족주의 사조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P> <P>러시아에서 매우 훌륭하게 잘 적용되었고 1905년 러시아가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 </P> <P>러시아 보수계급의 강력한 반격이 이어지며 1903년 러시아에서 가장 큰 유태인 학살이 발발한 것이 증명합니다 </P> <P>이전 1800년대 알렉산드르2세 암살 때의 학살과 더불어 이때 수십만명의 유태인이 러시아에서 학살되었고</P> <P>대거 미국과 서유럽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죠. 이는 이때만이 아니라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성공하고도 </P> <P>역시 적백내전 기간에도 재현되었으며 1920년대 공산혁명으로 고립된 러시아에서 극심한 경제난, 식량과 </P> <P>멘세비키의 숙청과정에서도 러시아의 경제난은 유태인 쁘띠브루주아들이(지주계급) 식량을 빼돌려서 발생한거다라는 </P> <P>선동으로 역시 자행되었습니다. 중동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때 소련출신의 유태인들이 특히 많았던 이유는 </P> <P>이런 주기적인 탄압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P> <P> </P> <P>말씀하신 시온의정서의 탄생은 바로 이런 러시아의 정치선동이 오랜기간 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서죠 </P> <P>그와 함께 러시아에서 유태인 학살이 이어졌음은 너무 자명한 일입니다. </P> <P> </P> <P>문제는 이런 러시아의 정치권력 비호를 위해 발생한 포그롬은 그것이 유럽에서 지닌 너무도 효율적인 정치효과 덕분에 </P> <P>미국은 물론이고 서유럽에도 고스라니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초기 유태인 이민자를 경계하는 수단으로 </P> <P>이것이 제작되어 유포된바 있고 스페인 역시 인민전선을 물리치고 파시즘 독재권력을 성립하는 수단으로 </P> <P>유태인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독일의 히틀러는 러시아가 취한 이런 정치선동을 더욱 발전시켜 정교한 아리안 민족주의의 바탕으로 </P> <P>그가 독일 내에서 강력한 민족주의 영향하에 독재권력을 쟁취하고 나아가 인종주의를 확립하였죠</P> <P>그렇게 만들어진 나치즘이 유태인 600만을 학살한 것은 너무 유명합니다. </P> <P> </P> <P>이후 정치권력의 선동전술은 정말 다양하게 진행되었습니다.</P> <P>거짓으로 만든 불건전하고 위협적인 어떤 적대세력의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 </P> <P>반대급부에는 정치권력이 통제하고자 하는 반대의 급부 바로 국가의 구성원인 대중인민들이 있는 것이죠. </P> <P> </P> <P>한국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런 비슷한 유형의 정치공작이 많았습니다. </P> <P>80년대 그 유명한 유서대필 사건이 그러합니다 </P> <P>독재권력에 대항하여 대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기 </P> <P>독재철폐의 유서를 쓰고 분신자살을 한 학생이란 극단적인 충격을 두고 </P> <P>당시의 전두환 정권과 정보기관은 이 유서는 데모를 주도한 집단에서 대필하여 쓴것이다 라고 </P> <P>선치공작을 하였죠. 이어 유서를 쓴 자들도 지목이 된 학생을 구속하고 언론에 유서대필이라 대거 방송을 했습니다 </P> <P>이를 통해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데모를 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친구까지 분신자살 시킬 정도로 </P> <P>매정한 집단이며 더 나아가 독재철폐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자결을 한 학생은 </P> <P>그저 선동에 휘말려 생각없이 자결을 한 어리석은 학생으로 폄훼되었죠 </P> <P>데모하는 학생집단이란 이처럼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함이 목적이었습니다 </P> <P>물론 이후 재심을 통해 유서는 친필이 맞으며 대필사건은 안기부의 정치조작 사건임이 드러났지만</P> <P>당시 권력은 거짓된 문서한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의 점철을 통해 </P> <P>반대급부의 효과를 충분히 누린 뒤였죠. </P> <P>역사적으로 수많은 독재권력의 정치선동을 너무 잘 학습했던 전두환 정권은 </P> <P>그 시작부터 서울의 봄을 강탈하고 제2의 군사독재를 재하는데 항거한 광주의 시민을 </P> <P>빨갱이 선동으로 몰아 붙이며 정치공작을 통한 이미지전략으로 집권했으니 말 다한 정권이지만 말입니다.</P> <P>(광주가 빨갱이 간첩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는 거짓주장은 설령 날조라 할지라도 선동을 강하게 하면 </P> <P>이후 아무리 사실이 밝혀져도 그 이미지는 여전히 남겨지는 법이죠 독일 선전상 괴벨스가 정립한 정치선동 전략이기도 합니다.) </P> <P> </P> <P>시온의의정서는 20세기 초반 바로 이런 정치공작의 선구자적인 문서입니다.</P> <P>단순히 유태인 탄압과 유태인 문제에만 국환된 것이 아니라 </P> <P>근대국가에서 국가권력이 그들이 통제하고자 하는 국민대중을 어찌 이용하고 선동하는가에 대한 </P> <P>대표적인 정치선동의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P> <P> </P> <P>중세 혈통과 힘에 의한 권력의 유지 통치가 종식하고 </P> <P>이후 등장한 국가의 개념 즉 근대국가가 대중권력을 기반으로 성립함과 유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봅니다 </P> <P>바로 이런 권력쟁취를 위한 수단이자 현상이었죠. </P> <P> </P> <P>유태인, 이스라엘의 건국,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등은 </P> <P>사실 이런 본질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P> <P> </P> <P>다양한 의견을 물으셔서 한번 써보았습니다.</P> <P>개인적인 의견이고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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