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문화(Boy's culture)라는 게 있습니다.<br />어렸을 적에 대나무 숲에 숨어서 비밀기지를 만든다던가<br />친구들과 곤충채집을 하면서 해질 때까지 잠자리채를 들고 놀아보신 적 있나요.<br />자전거를 타고 다른 친구들과 경주를 해본 적은 있으신가요.<br />소년문화에서는 집(dom)을 두 가지로 구분해요.<br />부모님이 존재하고 사회적 규율을 배워나가는 가정으로서의 집과,<br />내가 주도자가 되어서 내가 개척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br />그러니까 부모님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나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요.<br />비밀기지라던지 곤충채집같은 건 후자의 집에 속하겠죠.<br /><br />과거에는, 어른들이 소년문화의 집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br />단지 밥먹을 때가 되면 "철수야 밥먹어라"하고 놀이터에 찾아갔을 뿐.<br />거기서 그들이 무엇을 이루고 친구와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죠.<br />다만 아이들은 자기들이 본대로 사회규범을 이해한 방식을 공유합니다.<br />예를 들면 소꿉놀이를 하면서<br />실제 어른들의 방해없이 그들 나름대로 규범을 해석하고 공유하죠.<br />어른이 보기에는 실제와 다르거나 사실과 틀린 부분도 많지만<br />그걸 방해하거나 즉시 잡아주거나 하진 않았습니다.<br />왜냐, 그걸 지켜보고 개입할 이유도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까요.<br />아이들끼리 배우는 규범에는 집단교류, 친구를 만들고 그들을 이해하는 일도 포함됩니다.<br /><br />다시 집의 이야기로 돌아가서,<br />지금 아이들에게는 후자의 집의 역할을 해줄 공간이 없습니다.<br />정확하게 말하면 후자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br />또한 그들의 부모님과의 가정에서부터 (실물)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br />어른들은 자기들이 편한대로 이 땅을 부동산으로 제도질해서<br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라는 콩알만한 공간을 내어주고<br />그마저도 시소, 그네, 미끄럼틀 같은 '그들이 만든' 놀이기구를 사용하길 원합니다.<br />자전거 경주가 가능한 공간은 아파트 주차장이나 도로처럼 포장이 된 길 뿐이고<br />그건 어른들이 자동차를 타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br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그걸 이용하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죠.<br />하지만 아무도 아파트에 아이들을 위한 자전거 경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br />왜냐ㅡ 그건 어른들이 이용하는 장소가 아니니 공간낭비니까요.<br />그래서 머나먼 곳에 특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놓고<br />주말이나 특별한 날 생색 내듯이 아이들을 데려갑니다.<br /><br />이런 분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져서<br />이제 아이들은 부모님이 정한 놀이학교에서 부모님이 지켜보는 아래 놀 수밖에 없습니다.<br />아이들은, 부모에게 벗어나 아이들끼리 놀고싶어 합니다.<br />하지만 사회는, 점점 더 아이들을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br />사회가 흉흉하기 때문에 과보호가 더 심해집니다.<br />소년문화는, 사실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합니다.<br />어머니들은 가정적이고 안정을 추구하지만<br />소년은 그러한 어머니의 문화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자 합니다.<br />하지만 가정의 집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이 없고 <br />또래친구들과 교류하기 힘들기 때문에<br />소년문화를 실행할 공간이 없다는 한계가 드러납니다.<br />이것은 어떻게든 소년공간을 마련하거나 또는 소년공간을 포기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br /><br />전제가 무척 길었는데, 소년문화는 결국 게임공간에서 실현됩니다.<br />그곳에는 또래들이 있고 부모님이 없습니다.<br />그들 나름대로 친구들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고<br />실물경제가 아닌 모방된 세계에서 앞으로 사는 데 필요한 경험을 배웁니다.<br />얼음땡에서 얼음인 상태에서 멋대로 움직이다간 제외를 당하듯이<br />남들과 함께 정한 규칙을 어기면 타인에게 배척당한다는 걸 알고<br />살구에서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팀이 잘 받쳐주면 이기듯이<br />팀일 때는 운명공동체로서 협력해야 이길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br />지금은 그걸 게임에서 배워나가고 있습니다.<br /><br />여기까지는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의 <br />"COMPLETE FREEDOM OF MOVEMENT": VIDEO GAMES AS GENDERED PLAY SPACES <br />라는 글을 제 임의로 각색해서 쓴 것입니다.<br />요약하자면 '사라진 소년들의 공간'이 게임으로 재현됐다는 이야기입니다.<br /><br />지금 갓 어른이된 아이들의 눈에 '현실은 게임과 같구나'란 생각이 드는 것은<br />그들이 소년문화를 게임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br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택은 게임에서의 직업 전직과 같이 돌이킬 수 없고<br />그것이 곧 앞으로 사회를 살아갈 때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구나,<br />정석대로 스킬을 쌓지 않으면 레벨이 높아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듯<br />학점이나 토익점수, 자격증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세상 살기 힘들구나.<br />문제는 소년문화를 게임에서 보내고 게임을 통해 세상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br />극단적인 해석까지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br />왜 게임에서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지? 라던가<br />현질하는 녀석들이 위력을 발휘하듯 부모 잘만난 녀석들을 이길 수 없구나 같은 생각들.<br />이게 소년문화가 게임에서 재현되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br />(헨리 젠킨스는 게임규칙이 아이들끼리 스스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br />어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br /><br />게임을 한다는 건, 현실에 대한 도피가 아닙니다.<br />사라진 소년문화와 소년공간에 대한 갈망이 일으킨 행동이지요.<br />게임을 안하면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 또래들이 몰려있을까요.<br />과거에는 강이며 들에 모여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됐었는데,<br />지금은 학교 점심시간, 학원 쉬는시간이 아니면 친구끼리 놀기 힘들고<br />만나서 농구공이라도 가지고 놀려면 동시에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때가 되었습니다.<br />소년문화를 게임을 통해 겪은 사람들은 게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br />"그땐 나뭇가지만 있으면 자치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는데"라는 말처럼<br />"바람의 나라에서 다람쥐 잡을 때가 좋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br /><br />지금 게임을 규제하려고 하는 어른들이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br />단순히 그들이 어릴 때의 소년문화는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br />무지한 대상에 대한 공포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br /><br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br />같은 게임을 어린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두루 즐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br />과거에는 또래끼리 어울려 놀면서 차츰 사회를 배워나가던 것이<br />지금은 사회규범을 습득중인 사람과 완전히 규범화된 사람이 같이 놀게 된 것이죠.<br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어른이 와서<br />이것은 규범과 이게 같고 저게 다르고 잔소리하는 것밖에 안됩니다.<br />아이들이 그들의 소년문화 속에서 스스로 배워나가기도 전에<br />이제 게임에서조차 소년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br />이건 게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로 생긴 문제이기도 하지요.<br />이제 또래끼리의 공간이란 건 폐쇄형 커뮤니티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br /><br />그렇다고 게임에서 어른을 배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br />돈이 되는 일에 투자가 일어나고 돈이 되는 곳에 공간이 할애되기 때문인지<br />지금의 어른 문화는 술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br />술을 팔고 돈이 있으니 그걸 기반으로 부동산을 사들이고 또 술을 팔고의 반복이죠.<br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어른들 스스로 이러한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해<br />운동이나 여행(출사포함) 같은 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br />그렇지만 어른들 역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div class="NHN_Writeform_Main"><b></b><br /></div><br /><br />퇴근하고 9시부터 12시까지밖에 짬이 안 나는 상황에서<br />또래들과 놀자니 운동이나 여행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너무 크고<br />그나마 또래가 많은 취미인 게임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br />게임은 숙취도 없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요.<br />(게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조절한다는 전제 하에서 좋은 취미입니다.)<br /><br />시간이 아까운데 그 시간에 토익이나 하고 학점이나 더 올리지 하는 문제는<br />좀더 넓게 생각하면 어차피 죽는데 뭐하러 사냐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봅니다.<br />사람이 반드시 순간을 죽이고 미래만을 위해 살아야할 이유도 없고<br />마찬가지로 미래를 버리고 순간만을 위해 살아야할 이유도 없습니다.<br />어떻게 비율을 조절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br />저는 순간도 소중하고 미래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br /><br /> <div>이것이 제가 바라보는 '게임을 하는 이유'입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div> <div>글이 조금 난해할(?) 지도 모르겠지만 게임이 요즘 까이는 입장인 와중에 이 글을 보니 공감이 되서 가져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