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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12: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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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조선시대때 군대 갈 사람은 가고 안갈 사람은 대신 돈으로 내라는 제도는 처참한 실패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군역/군포제가 운영된 적이 있습니다. 현역 복무자인 정군의 경비 충당을 위하여 현역에서 제외된 보인들이 베를 대신 내어서 포납제라고도 하죠. 16세기부터는 현역으로 군역을 하지 않는 대신에 포를 바치는 대역납포제가 제도화되게 됩니다.
조선시대는 양인개병의 원칙에 따라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양인 남정은 모두 군적에 올라서 신역이라는 이름의 군역을 지게 되는데, 이들은 실제 신역을 지거나 군포를 납부하면서 현역 복무를 하는 정군을 보조하거나 정군의 소요 경비를 충당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군포제가 변질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들어서 군포대역은 벼슬아치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백성들이 납부해야 하는 군포가 초기에 비해 수십배 폭등하게 되었고, 이를 내지 못해 도망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중종때는 대역군납포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하여 무리하게 군포를 납부하지 못하게 막지만,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속오법의 시행에 따른 사청총군 등의 영향으로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관리와 결탁하여 군역을 면제받아 양반지배층에게 피역의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군역은 일반 양민만의 부담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군역의 의무는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의 몫으로 가중되어 죽은 사람에게도 군역을 징수하는 백골징포, 어린이까지 군포를 징수하는 황구첨정, 군포 부담자가 도망가면 친척이나 이웃에게 대신 군포를 납부하게 하던 족징과 인징, 그밖에 일신첩역(한 사람이 여러 역이나 다른 사람의 역을 중첩하여 맡게 됨)이나 일가개역(한 가족 전체가 모두 역을 맡음) 등의 심각한 폐단이 일어납니다. 이게 얼마만큼 막장으로 운영되였냐 하면 50만 호가 져야 할 양역을 10여만 호가 부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영조때 특단의 조치로 균역법이 시행되었으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군역의 개선책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군포를 사람수가 아니라 가호 단위로 해서 양반에게도 징포하게 하거나, 군포를 폐지하고 토지세를 부과하거나, 양반자제 및 유생에게도 징포하고 유한양정을 적발하는 방안 등등) 양반의 반대로 실현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군포 1필을 줄이는 감필론이 시행되었으나 군포의 근본적인 성격에는 변동이 없었고, 양인들에게 군포의 부담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어서 양인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게 되어서 결국 철종때 농민반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